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여대에 입학한 남자로 살아가는 법-24화 (24/79)

〈 24화 〉 편의점 그녀

* * *

지이이이이이잉­

번쩍.

나는 진동이 울리자마자 빠르게 눈을 떴다.

그리고 베개 밑에 손을 넣어 알람 해제 버튼이 있을 위치를 터치하고 바깥쪽으로 슥 슬라이드했다.

‘오케이.’

알람이 울릴 때 혹시라도 바깥까지 들릴까 봐 일부러 벨소리 대신 진동만 울리게 해 두었다.

평소 같았으면 벨소리가 울려도 잠에 취해 대충 끄고 다시 잤을 테지만.

오늘의 나는 달랐다.

화악­

이불을 홱 젖히고 일어나, 책상 위에 얌전히 앉아 있는 고양이 무드등을 켰다.

“냐옹.”

“쉿…!”

이런.

켤 때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는 기능이 추가돼 있는 걸 깜박했다.

‘…그렇게 크게 난 것도 아니니 상관없겠지?’

그다지 밝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 불빛만으로도 충분하다.

모든 준비는 어제 자기 전에 마쳐 두었으니까.

옷장을 열자마자 바로 앞에 준비해 둔 옷으로 신속하게 갈아입고 핸드폰, 지갑을 주머니에 챙겼다.

‘어차피 이번주까지는 오티다. 교재 따윈 필요없지.’

모든 준비를 마친 나는 자세를 낮추고 살금살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

“좋아.”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숨을 죽여 주변을 살폈다.

‘누나들은 아직 자고 있는 것 같고.’

윤서 누나야 알람이 울릴 때까지 세상 모르고 잔다지만, 민서 누나는 조심해야 한다.

굉장히 부지런하고 평소에 가장 먼저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편이니까.

‘하지만 오늘은 내가 누구보다 빠르게, 누나들관 다르게. 집을 나설 것이다.’

나는 민서 누나가 어제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일은 하늘이 내 거야.

이렇게 본격적으로 선포를 하기 전에도 걸핏하면 아침에 침대 안에 들어와 요상한 방법으로 날 깨운 민서 누나다.

오늘 아침에 세상 모르고 자고 있으면 무슨 일을 당할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살금, 살금.

사뿐 사뿐.

삐걱­

‘힉.’

복도 바닥에서 순간 삐걱 소리가 나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건 뭐 잠입 액션 게임도 아니고.’

예전에 재미있게 했었던 메탈 기어 솔라스가 생각나는 순간.

‘게임 제목처럼 엄청 기어 다녔었는데.’

나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침착하게 걸음을 옮겼다.

특히 계단을 내려갈 때에는 쭈그려 앉아서 난간을 잡고 계단에 가해지는 중력 가속도의 크기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도어락 소리가 나지 않도록 버튼은 놔두고 직접 돌려서.’

사라라락­

“휴우.”

달칵. 띠리리링.

‘잠기는 소리는 어쩔 수 없지. 아무튼…. 무사히 탈출!’

시계를 확인해 보니 아직 새벽 4시 44분이었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 보는 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으로 촛대월드 가는 날에도 이렇게 일찍 일어나지는 않았다.

목표를 달성하자 몸에 들어갔던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하품이 나왔다.

“하암….”

아직은 조금 쌀쌀한 새벽.

지하철도 아직 다니지 않을 시간이다.

어제 집에 와서 저녁도 못 먹고 윤서 누나와 질펀한 섹스를 했더니 벌써부터 배가 고팠다.

‘편의점 가서 시간이나 좀 때울까.’

나는 기지개를 한 번 쭉 켜준 뒤 자주 가는 편의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의 난 알지 못했다.

불이 꺼진 2층의 방에서 날 지켜보고 있는 한 그림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 * *

“어스쇼.”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운터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대충 중얼거렸다.

이쪽은 보지도 않고 열심히 스마트폰 스크롤을 내리면서 입으로만 자동반사로 인사하는 모습.

하루이틀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저 알바생 누나도 진짜 오래 일하네.’

세계가 바뀌기 전부터 자주 가던 편의점이라 저 알바생의 얼굴은 이미 눈에 익어 있었다.

얼굴이 꽤 예쁜 편이라 내 기억으론 손님들 중에서 번호를 따 가려는 사람도 많았었다.

‘그럴 때마다 되게 딱 잘라 거절했었지 아마.’

굉장히 귀차니즘에 절어 있고 무표정한 얼굴로 일하다가 번호를 물어보는 손님이 있으면 “남자친구 있어요.” 한 마디 딱 하고 마저 계산해 주고 보낸다.

손놀림은 어찌나 현란한지 손님이 무슨 말을 더 하기도 전에 1초만에 봉투에 물건 싹 담아서 들려 주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뭐, 사실 나로선 그런 면이 오히려 편했지만.’

살갑게 인사하면서 이것저것 FM대로 안내해 주는 것보다, 물건만 딱 찍고 조용히 카드 꽂고 “감삼다.” 하고 서로 빠이 치는 게 나로선 훨씬 편하고 좋았다.

특히 단골로 자주 다녀도 막 알아보고 이것저것 얘기를 걸기보단 오히려 계산 절차만 더 단순화되는 그 느낌이 좋았다.

둘 중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고 합의한 적도 없지만 알아서 척척 하고 끝내는 것에 대한 묘한 쾌감이 있달까.

“어.”

“?”

하지만 왠지 오늘은 뭔가 달랐다.

읽던 웹소설의 최신화를 마저 다 본 것처럼 자연스럽게 고개를 살짝 든 알바생이 나를 보고 “어.” 라는 말을 내뱉었다.

“…….”

다행히 시선은 다시 핸드폰으로 내려갔다.

그냥 날 비교적 오랜만에 봐서 자연스럽게 반응한 듯싶었다.

‘흠, 뭘 먹어야 가성비 좋게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그래도 구색을 갖춘 식사를 하려면 역시 편의점 도시락인가?

아니면 가성비의 끝판왕, 삼김에 컵라면?

가볍게 먹기에 이것만한 것이 없다, 샌드위치 and 우유?

그것도 아니라면 캔커피 덤증정 행사 하는 빵?

‘역대급 고민이다.’

턱을 쓰다듬으며 고뇌에 빠진 나는 옆에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저기요.”

나에게 하는 말인 줄 모르고 가만히 있자 목소리의 주인은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네? 에? 저요?”

“네.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알바 누나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어, 아뇨? 왜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왜요라고 물어버렸다.

“그냥 뭐 찾으시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알바 누나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보통 이 시간에 안 오시지 않아요?”

“어, 네 뭐. 그렇죠.”

“근데 웬일로?”

왜 이렇게 갑자기 딥하게 질문을 하는 걸까.

평소엔 포인트 적립하는지도 안 물어보면서.

“그냥 눈이 일찍 떠져서요. 어제 저녁을 안 먹었더니 배가 고픈데 아침은 먹어야겠고 해서….”

알바 누나는 내가 대답하는 동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진짜 예쁘긴 예쁘다.’

기본이 무표정이고 살짝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눈 자체가 워낙 커서인지 오히려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해야 하나.

별로 화장도 안 한 것 같은데 피부는 깔끔하고 부드러워 보이고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남자들이 번호를 그렇게 물어보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음, 그럼. 이건 어때요. 신상으로 나온 건데 맛있거든요.”

알바 누나는 딱 봐도 편의점 클라스를 넘어선, 굉장히 맛있어 보이는 조각 케이크를 집었다.

“저, 아침 식사로요…?”

분명 맛있어 보이긴 하지만 아침으로는 좀….

“이건 후식으로 먹고 식사는 이걸로 하면 되죠.”

이번엔 굉장히 알차 보이는 도시락 하나를 집어들어 보였다.

<황제 치킨마요&스테이크&돈까스=""/>

“어, 추천은 감사한데…. 제가 이것저것 다 먹을 돈은 없어서….”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이번 주 용돈이 빠듯했기에 일단은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요?”

알바 누나는 도시락을 제자리에 놓고 케이크만 내 손에 척 들려 주더니 갑자기 카운터 뒤쪽 방으로 사라졌다.

“…?”

잠시 후 나온 알바 누나의 손에는 방금 추천했던 도시락과 똑같은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럼 케이크는 사시고 도시락은 이거 드세요.”

“네…?”

“폐기긴 한데, 이거 아직 유통기한 안 지났거든요. 저희 매장은 지나기 전에 미리 빼 놓는 편이라.”

나는 알바 누나의 손에 들려 있는 도시락을 빤히 바라보았다.

꿀꺽.

‘맛있겠다.’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확실히 도시락에 케이크까지 먹으면 만족스런 식사가 될 것 같았다.

‘근데 이렇게 막 받아도 되는 거야…?’

그래도 손님인데 돈 주고 팔 수도 있는 걸 공짜로 주면….

알바생 입장에서는 뭐 상관없을지 몰라도 사장님이 알게 되면 큰일 나는 거 아닌가…?

“안 받을 거예요? 팔 떨어지겠는데.”

알바 누나는 도시락 든 쪽 팔을 일부러 주무르는 시늉을 했다.

“아, 그럼…. 고맙습니다….”

받으면서 한 번 더 인사했다.

“잘 먹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케이크는 내 돈으로 계산해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가지고 와서 열어 보니, 생각보다도 훨씬 푸짐해 보였다.

“와…. 치킨마요에 스테이크에 돈가스까지….”

이 모든 게 한 도시락 안에 들어가 있다니.

게다가 양도 적지 않은 편이라 맛보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아 보였다.

나는 재빨리 젓가락을 뜯어 치킨마요부터 집어먹었다.

“오…. 맛있다!”

배가 고픈 상태에서 먹으니 입에서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행복한 표정으로 이것저것 먹고 있는데, 문득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

살짝 고개를 돌리니 카운터에서 알바 누나가 턱을 괴고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나는 반사적으로 다시 도시락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지? 왜 날 계속 보고 있는 거지?’

내가 뭐 잘못했나?

도시락 괜히 받았나?

준다고 해서 받은 것뿐인데….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혀에서 살살 녹던 고기가, 알바 누나를 의식하기 시작하자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

결국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다 먹고 나자 배는 충분히 불렀다.

‘원래는 여기서 시간을 좀 보내다가 해 뜰 때쯤 나가려고 했는데….’

알바 누나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아무래도 계속 있다가는 먹은 것마저 체해버릴 것 같았다.

“자, 잘 먹었습니다.”

나는 자리를 정리하고 나가는 길에 꾸벅 인사했다.

“다음에 또 와요. 저 일할 때는 폐기 먹고 싶은 거 있음 줄 테니까.”

“네, 네…. 감사합니다.”

바깥은 아직 어두웠다.

어디 가 있을 만한 곳이….

“PC방이나 잠깐 가 있을까.”

입시 공부한다고 고3 때는 잘 하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게임을 좋아하고 실력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 PC방에 즐겨 다니곤 했었다.

“그럼 이쪽으로….”

여기서 PC방으로 가는 가장 빠른 루트.

골목길 쪽으로 들어가던 나는,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안녕? 오랜만이네.”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읍, 읍…!”

나는 그대로 입이 막힌 채 어두운 골목길 안쪽으로 끌려들어갔다.

* * *

“어디 보자…. 후. 불닭알새우칩 3개….”

편의점 알바 경력 3년차, 이현주는 창고 제일 위쪽 선반에서 진열대에 채울 과자를 꺼냈다.

편의점 일은 귀찮지만 익숙해지면 딱히 힘든 것도 없어서 괜찮은 편이다.

처음에는 그냥 아버지가 점장이다 보니 몇 번 도와주면서 시작했는데, 어느새 월급까지 받으면서 일하게 되어버렸다.

아버지 말로는 새로 점포 하나 더 오픈하면 점장 자리를 주겠다나.

뭐, 어찌 됐든 지금은 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지금은 그냥 눈앞에 있는 할일만 하면 된다.

그게 제일 시간이 빨리 가니까.

과자를 바구니에 담던 이현주는 문득 CCTV 화면에 무언가 낯익은 사람이 잡히는 걸 발견했다.

“어.”

방금 그녀가 준 폐기 도시락을 먹고 허겁지겁 나가버린 남자애였다.

‘귀여웠는데.’

평소에도 단골이라 귀엽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왠지 오늘 봤을 때는 직접 말을 걸지 않고는 참을 수 없어서 폐기 도시락까지 줘 가면서 접근했었다.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좀만 더 천천히 먹고 가지….’

다음에 오면 또 이것저것 말을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잠깐만. 저거.”

이현주는 뭔가를 발견하곤 재빨리 CCTV를 확대했다.

여자 3명이 방금 그 남자애의 입을 막고 골목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저거 신고해야 되는 거 아냐?’

방범용으로 외부에도 CCTV를 달아 놓기를 잘한 것 같았다.

여자들은 골목 구석으로 남자애를 끌고 가더니 다짜고짜 옷을 벗기고 남자애의 성기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마침 CCTV의 각도가 정확히 그들을 비추고 있었기에, 무슨 짓을 하는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적나라하게 CCTV 화면에 나타나고 있었다.

“뭐, 뭐야.”

신고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던 이현주의 손이 멈추었다.

이현주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CCTV 영상을 최대로 확대했다.

‘저게 가능해?’

영상에는 잠깐 만진 것만으로 탱탱하게 부풀어오른 하늘의 성기가 확대되어 나오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하늘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얕은 숨과 함께 신음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여자 셋 중 태닝을 하고 어깨에 문신이 있는 여자가 제일 먼저 위로 올라타 삽입을 했다.

“와….”

위에서 허리를 움직이는 여자, 그리고 밑에서 헐떡이며 느끼고 있는 하늘의 모습을 보며 이현주는 침을 꼴깍 삼켰다.

‘저, 저렇게 됐다는 건 남자 쪽에서도 흥분을 했다는 소린데.’

겉으로 보기엔 그렇게 귀엽고 여자 안 밝힐 것처럼 생겼는데, 그 뒷면에 저런 걸레 같은 면이 숨겨져 있었다니.

“…꼴려.”

이현주는 침을 꼴깍 삼키며, 핸드폰은 완전히 내려놓고 아랫도리로 손을 가져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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