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PTSD (2)
* * *
신지아는 하늘의 뒤에 있던 여자가 혀로 입술을 핥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저사람 분명.’
아까 하늘에게 성희롱을 하려고 했던 사람.
위잉
하지만 이미 문은 굳게 닫혔고, 열차는 이제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지아가 할 수 있는 건 그 여자를 가리키며 입모양으로 조심하라고 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하늘아, 안 돼. 그, 그 여자 위험해.”
하지만 지아의 말은 당연하게도 하늘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정신이 없어 보이는 하늘의 뒤에서, 키 큰 직장인 여자는 씨익 웃으며 멀어졌다.
지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떡하지?’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다음 역까지 뛰어가서 하늘을 구하고 싶었다.
이 역과 다음 역 사이는 직선 거리는 짧지만 지하철은 커브 구간이라 잘 뛰어가면 가능성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문이 열리자마자 아무런 방해도 없이 나가서 뛰어야 가능한 일이지,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어깨빵을 해가며 뚫고 가서는 절대로 시간 안에 도달할 수가 없다.
‘출근길이라 택시를 타도 길이 막힐 텐데.’
지금은 순간이동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해도 이 지하철을 앞서갈 방법이 없었다.
‘상태창!’
‘…….’
“될 리가 없지.”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야자까지 마친 후 고된 하루의 끝에서 자신을 위로해 주던 웹소설의 주인공을 따라해 보았지만, 당연하게도 반응은 없었다.
힘이 빠졌다.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있던 지아의 어깨를 툭툭 건드린 건 의외의 인물이었다.
“안녕, 여기서 뭐 해?”
구릿빛 피부, 흑발에 연보랏빛 눈.
“신지아, 맞나? 우리 월요일 교양 수업 같이 듣잖아.”
성유진이었다.
“서, 성유진?”
“뭘 놀라고 그래? 후, 나도 오늘 1교신데 앞에 거 놓쳐서 지각하겠네.”
성유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더니, 신지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
신지아는 살짝 경계하듯 망설이다가 마지못해 성유진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너, 하늘이한테… 저번에.”
“응?”
화장실에서 하늘을 성추행하고 유유히 사라졌던 성유진.
신지아는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출석 부를 때 성유진이 하늘에게 아는 척을 했던 걸 보면 지하철 때도 성유진이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때 일을 지금 와서 묻는 게 조금 뜬금없을지 몰라도, 신지아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 저번에 하늘이한테 이상한 짓 했잖아. 그, 그거 범죄인 거 몰라?”
“범죄라니, 본인도 즐겼는데 무슨 소리야.”
성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게슴츠레 뜨고 중지와 약지를 살짝 입에 갖다 댔다.
“즐겼다니….”
현행법 상, 성범죄 사건의 경우 남자가 발기를 했을 때 유죄를 입증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
애초에 발기했다는 것 자체가 남자가 의식적으로 흥분 상태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왜, 아주 좋아하던데. 너도 한입 해 봐. 반응이 아주 좋다구.”
하지만 하늘과 직접 여러 이야기를 나누어 봤던 지아는 알 수 있었다.
하늘은 단지 저항할 수 없었던 것뿐, 분명 그런 상황을 원하지는 않았을 게 분명했다.
“하, 한입이라니. 내가 너 같이…. 그런 줄 알아?”
“그런 게 뭔데? 서로 재밌고 기분 좋은 일 하면 좋은 거 아냐?”
“좋아하다니, 하늘이가 그런 걸 좋아할 리가….”
“그걸 네가 어떻게 확신해? 적어도 직접 만져본 내가 너보단 더 잘 알 것 같은데.”
“그건….”
순간적으로 신지아의 말문이 막히자 성유진은 피식 웃었다.
“너무 빡빡하게 살지 마.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어, 다음 거 왔다.”
다음 열차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성유진은 먼저 앞으로 걸어나갔다.
문이 열립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지하철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신지아도 한 번 더 놓치기 전에 얼른 인파 사이에 낑겨 들어갔다.
시끌시끌한 열차 안.
지아는 방금 성유진과의 대화에서 살짝 충격을 받은 듯, 닫힌 열차 문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흔들리는 동공을 주체하지 못한 채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하늘이는…. 하늘이가 그런 걸 좋아할 리가, 그럴 리가 없어…. 하늘이가….”
* * *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내 몸은 빙글 돌아 그녀의 품에 파묻혔다.
“흡….”
지하철 문이 열림과 동시에 그녀는 내 몸을 잡고 문 옆쪽의 좁은 공간으로 끌어들이며 안았다.
“내리고 타세요, 내리고!”
등 뒤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그녀의 품에 안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얼굴은 가슴에 파묻혔고, 상체부터 하체까지 쭉 밀착된 채로, 사람들이 전부 탈 때까지 그녀에게서 나는 살냄새를 가만히 맡고 있어야 했다.
후우, 하.
딱히 향수는 뿌리지 않은, 적당히 바디로션만 바른 것 같은 뽀송뽀송한 살냄새.
자극적이지 않지만, 그래서 계속 맡게 되는 냄새.
덜컹
마침 지하철이 출발하고, 열차가 덜컹거리자 내 얼굴이 그녀의 품 안에서 흔들리면서 입술이 가슴에 닿았다.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며 씩 웃더니, 에스컬레이터에서 그랬던 것처럼 파인 웃옷을 손가락으로 슥 내렸다.
그때 보았던 분홍색 유두가 이제는 눈앞에 있었다.
“빨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상체를 살짝 틀어 젖꼭지를 내 입에 맞추어 가져다 댔다.
“흡.”
왜, 가슴에서 살짝 더 튀어나온 신체 부위일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고 사람을 흥분시키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내 입은 유두에 정확히 닿았고, 유륜에 있는 아주 미세한 돌기들이 입술 표면을 통해 생생히 느껴졌다.
잠시 그 감촉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바로 위쪽에서 그녀의 강압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라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손을 다시 내려 내 바지 속으로 집어넣었다.
“흐읏…!”
어느 정도 안정권에 접어들었던 사정감이 움켜쥠 한 번에 다시 위험 수치까지 올라갔다.
‘이건… 협박이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지하철 안에서 정액 분수쇼를 시켜버릴 거라는 협박.
그리고 이건 그냥 감이지만, 이 여자는 정말로 아무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해 버릴 것 같았다.
츕
나는 그렇게 지하철 안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의 젖을 빨기 시작했다.
츄웁, 춥
“하아….”
그녀도 기분이 좋은지 낮은 숨을 뱉었다.
“개변태 새끼…. 자지가 더 커졌네.”
내 자지를 잡고 있는 그녀는 자지가 완전히 부풀어오른 걸 직접 손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 역시 내 자지가 완전히 흥분해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몸이 달아오르고, 자지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흥분하면 흥분할수록 자지의 감각은 예민해져 갔고, 그저 잡고 있을 뿐인데도 잡고 있는 손의 부드러운 감촉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고,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자극으로 다가왔다.
중간에 열차가 덜컹이기라도 하면 나는 사정감을 참느라 애를 써야 했다.
츄읍 츕
“하아….”
그녀는 한손으로는 내 자지를 인질로 잡은 채, 다른 한손으로 내 목 뒤를 감싸쥐었다.
“혀.”
단 한 글자였지만, 알아들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혀를 사용해 젖꼭지를 애무했다.
혀끝으로 젖꼭지를, 그리고 젖꼭지 주변을 정성스레 마사지하듯 가볍게 눌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젖꼭지 가운데를 살포시 누르고, 다시 가볍게 입술 전체를 사용해 빨았다.
“하…. 새끼 존나 잘 빠네. 따먹고 싶게.”
그녀가 중얼거렸다.
나는 열심히 가슴을 애무하면서도 살짝 시선을 올려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는 애원의 눈빛을 보냈다.
“하아…. 그런 눈빛을 하면….”
그리고 다음 순간.
“읍…!”
그녀는 내 자지를 잡은 손에 갑자기 힘을 주고는 무차별적으로 주물럭댔다.
“존나 괴롭히고 싶어지잖아….”
“흐읏…!”
반칙이다.
이건 약속에 없던 거잖아.
하라는 대로 다 해줬는데.
그런데 왜….
“흐읍…!”
머릿속이 급격히 새하얘졌다.
안 그래도 위태롭던 감각이, 무차별적인 자극에 폭발하듯 쾌감이 되어 온몸에 퍼져나갔다.
‘진짜 끝이다….’
이렇게 끝나게 되다니.
지하철에서 절정하면서 정액을 내뿜어버리는 변태가 되어 주저앉을 운명이라니.
하지만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찾아오는 쾌감을 두 팔 벌려 맞이하는 것밖엔.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절정을 맞이했다.
“……!”
그리고 그 순간 자지를 쥔 손이 더 밑으로 내려갔고, 내 PC근의 위치를 정확히 짚은 상태에서 꾹 눌렀다.
“흑, 흡!”
내 머릿속은 이미 쾌감으로 물들었지만, 아래쪽에서는 강제로 출구를 닫아버리자 정액은 나가지 못하고 내 PC근만을 계속해서 강타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정액이 완전히 밖으로 분출될 때의 쾌감과 정액이 PC근 근처를 지날 때 느끼는 쾌감이 다르다는 것을.
절정을 느끼고, 분출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은 그 모든 종류의 쾌감을 한데 모아 놓은 것이었다는 것을.
“히끅….”
그리고, 그 중 한 가지를 차단했을 때, 다른 한 가지의 쾌감이 집중되어 내 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것을.
내 PC근은 의지에 상관없이 조였다 풀렸다를 반복했고, 나는 거의 정신을 잃다시피 한 채 그녀의 가슴에 기댔다.
밑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내 바지가 축축하지 않다는 걸로 미루어 봤을 때 정말로 정액이 나오지는 않은 것 같았다.
“어때, 이것도 꽤 색다른 천국이지?”
그녀가 위에서 웃으며 나지막이 물었다.
문이 열립니다.
그때, 반대편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우르르 내렸다가 탔고, 열차는 출발했다.
“어디까지 가?”
나는 그녀의 물음에 사실대로 대답했다.
“하…한국여대앞 역이요.”
“잘됐네. 거기까진 이제 전부 문이 저쪽에서 열리거든.”
“…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나를 품에 끌어안았다.
* * *
정액을 싸지 않고 연속으로 몇 번이고 절정을 하다 보면, 이젠 내가 현실에 있는 건지 어디에 있는 건지조차 헷갈리는 순간이 온다.
이번 역은 한국여대앞, 한국여대앞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잘 먹었어. 다음에 또 봐.”
그녀는 그 한 마디를 남기고 열차에 남아 다음 역으로 떠나갔다.
나는 간신히 인파를 따라 내렸고, 얼마 못 가 근처 벤치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후우….”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손으로 잡아 멈췄다.
아직 1교시는 시작도 안 했는데 7교시 정도까지는 끝낸 기분이었다.
‘근데 이거…. 절정은 하는데 싸질 않아서 그런가. 뭔가 해소된 그런 느낌은 없네.’
내 자지를 한손으로 희롱했던 그 커다란 손을 잊지 못했는지 내 자지는 아직도 반 발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 맞다. 지아.”
그제서야 아까 출발할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낸 나는 황급히 휴대폰을 꺼냈다.
[읽지 않은 코코넛톡 메시지 : 32개]
[지아 : 하늘아, 괜찮아?]
[지아 : 이상한 짓 당하는 거 아니지?]
[지아 : 그런 짓 당하면 바로 말해. 내가 신고해 줄게.]
[지아 : 내가 같이 탔어야 했는데 미안해.]
…
이외에도 지아의 메시지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하늘 : 어, 응. 난 괜찮아. 걱정해 줘서 고마워. 나 지금 도착했어.]
내가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코톡 옆의 1이 사라졌다.
[지아 : 응! 나 다음 거 타고 지금 가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웬만하면 사실대로 얘기 안 하는 게 낫겠지….’
이미 벌어진 일인데 괜히 지아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지아는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내 쪽으로 달려왔다.
“하늘아! 걱정했어. 가자.”
“응.”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그러고 보니 걔는… 이미 갔나 보네.”
지아는 뭔가 생각난 듯 주변을 둘러보더니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응? 누구랑 같이 왔어?”
“어? 아, 아무것도 아냐. 자 가자.”
내가 묻자 지아는 화들짝 놀라더니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학교에 도착했고 3교시부터 시작인 지아는 도서관으로, 나는 살짝 늦은 김에 아예 여유롭게 터벅터벅 걸어 강의실로 향했다.
“성유진 지각? 오케이 됐고. 방금 들어온 사람 누구야?”
교수님은 출석부에 지각자 표시를 하고 있었던 듯, 방금 들어온 나에게 자연스럽게 이름을 물었다.
“강하늘입니다.”
“아, 네가 그 전산오류 전형. 오케이. 다음부턴 일찍 일찍 다녀라. 라떼는 다 20분씩은 일찍 오고 그랬는데….”
나는 빈 자리에 적당히 앉았고, 교수님은 첫 시간이니만큼 간단히 앞으로 진행될 강의의 커리큘럼과 과제, 시험 등에 대해 설명했다.
“자, 그리고 조별과제가 있는데. 그냥 내가 임의로 프로그램 돌렸으니까 조원은 이렇게 간다. 어차피 니들도 알아서 짜라고 하면 아직 친구도 없는데 귀찮고 번거롭잖아? 정정으로 빠지는 조는 어쩔 수 없어. 새로 들어오면 거기다 넣어줄 테니까 일단은 이렇게 간다. 알겠지? 다 이렇게 친해지고 그러는 거야.”
교수님은 그렇게 말하고 앞에 명단이 적힌 화면을 띄웠다.
명단을 훑으며 쭉 내려가니 4조에 내 이름이 보였다.
[4조]
[강하늘, 문정연, 성유진, 이예진]
“어…?”
낯익은 이름이 우리 조에 보였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고. 마지막으로 여기 조원들끼리 모여서 인사 한 번 나누고. 단톡 팔 녀석들은 단톡 파고. 오케이?”
“넵!”
“넵!”
“감사합니다!”
교수님은 그렇게 강의실을 나가셨고, 조원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4조?”
그때 옆에서 들린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선 성유진이 웃으며 맑은 연보랏빛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 또 만났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