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PTSD
* * *
신지아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전송 버튼을 눌렀다.
“휴우.”
그냥 코톡 하나 보내는 건데 뭐 이리 긴장이 되는지.
[하늘아! 오늘 1교시지? 난 이제 나가려고 하는데 혹시 어디야?] 하나 보내는데 몇 번을 지우고 다시 썼는지 몰랐다.
‘긴장할 거 하나 없어. 그냥 친군데 대체 뭘 긴장하고 있는 거야?’
어렸을 때부터 남자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보니, 솔직히 남자 대하는 법에 대해서 잘 모르긴 했다.
개강 날 아침 우연히 하늘과 만났고, 곤란해하는 하늘을 두고만 볼 수 없어서 이것저것 물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엔 이렇게 의식하지 않았는데….’
하늘이 얼굴도 귀엽고, 적당히 아담하니 딱 여자들이 좋아할 상이긴 하지만, 사실 하늘의 외모 정도 되는 남자가 세상에 눈 씻고 찾아봐도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하늘에게는 외모를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성적으로 끌어들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섹시하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색기가 있다’라고 해야 할 듯한 묘한 기운.
학창 시절에도 친구들이 남자 아이돌에 헤벌레 하고 있을 때에 관심도 별로 주지 않았던 지아였다.
‘그랬었는데….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러고 있는 거냐고….’
자꾸 하늘이 지하철에서 희롱당하고 지었던 표정, 그리고 학교에서 바지를 부풀어오르게 했던 커다란 물건이 눈앞에 맴돌았다.
‘아냐, 정신 차려야 해. 정신 차리자.’
지아는 자신의 뺨을 양손으로 두 번 두들긴 뒤 고개를 흔들고 집을 나섰다.
지아는 핸드폰을 켜 자신의 시간표를 확인했다.
‘오늘은 3교시부터 강의 시작이긴 하지만….’
1교시, 즉 출근 시간과 겹치는 지하철 안에서 또 어떤 여자가 저번처럼 성추행을 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아는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하늘이는 내가 지켜줘야 돼.”
* * *
“그러고 보니 지아도 오늘 1교시던가?”
역까지 가는 길에 일없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저번에 교환했던 시간표를 확인했다.
“응? 오늘 지아는 3교시부턴데?”
나는 다시 지아와 나눴던 대화창을 보았다.
“어….”
그러고 보니 지아는 ‘너 오늘 1교시지?’ 라고 했을 뿐, 자기도 1교시니까 같이 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뭐지…?’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옆에서 마침 지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늘아! 안녕.”
여자치고는 살짝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 꽤 매력적인 목소리다.
“어, 안녕. 지아야, 너 혹시 목소리 좋다는 소리 많이 안 들어?”
“어? 목소리?”
“응. 좀 멋있는 중저음이라고 해야 하나? 난 좋은 거 같아서.”
내 말에 지아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
“저, 정말…?”
저 반응은 오히려 내가 생각지도 못했다.
원래 살던 세계 같았으면 남자들한테 꽤 인기 있을 거 같은 멋있는 중저음인데.
‘아, 혹시 세계가 바뀌어서 이것도…?’
지아는 조금 부끄럽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은…. 목소리 때문에 어렸을 땐 놀림도 좀 받았었거든. 그런 말 들은 건 처음이야.”
그래, 바꿔서 생각해 보면 남잔데 되게 특이한 하이톤 가진 사람들이 있었지. 학창 시절에는 그런 애들 보고 놀리는 녀석들도 몇몇 있었고….
“아무튼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느낀 그대로 말한 건데 뭘. 자, 가자. 1교시 맞춰서 도착하려면 생각보다 좀 빠듯하네.”
“그, 그러네. 그래도 다음 지하철 타면 안전빵일 걸?”
지아의 말에 아까 시간표가 문득 떠올랐다.
“근데 시간표 보니까 지아 너는 오늘 3교시부터던데? 굳이 이렇게 아침부터 나올 필요 없지 않아?”
1교시는 지옥이다.
조기 기상에 지옥철까지 겪고 나면 벌써 하루 쓸 기력 다 쓴 기분이 든다.
축복받은 3교시의 지아가 벌써부터 사서 고생이라니, 왜지?
“어? 어. 그게…. 그러니까.”
지아는 잠시 당황하더니 곧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음, 나야 뭐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다 보니까. 시간도 딱 맞고…. 아침에 도서관 가서 공부하거나 책 읽고 있으면 차분해지고 좋거든.”
“오…. 역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성실한 타입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3교시 수업인데 1교시까지 학교에 도착해서 공부, 독서를 한다?
나로선 상상하기 힘든 루틴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박수를 치고 지아와 함께 역으로 들어갔다.
“어우, 벌써부터 사람 많네.”
역은 개강 날에 봤던 풍경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키 큰 직장인 여성들이 주를 이루어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가고 있었고, 나와 지아는 그 사이에 치여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이는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문득 기시감이 느껴졌다.
‘어?’
그때 에스컬레이터에서 내 앞에 있었던 여자와 완전히 똑같은 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스윽
그 여자는 내 쪽을 흘끗 돌아보더니, 저번처럼 앞부분이 파인 옷을 손가락으로 슬쩍 내렸다.
그리고 분홍빛 유두가 드러나는 순간.
“저기요. 옷 조심해주세요.”
지아의 단호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옆을 보니 지아가 진지한 얼굴로 내 앞의 여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아의 말에 앞의 여자는 대답 대신 피식 웃더니 옷매무새를 고치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앞을 보았다.
“저런 거 조심해야 돼, 하늘아.”
“어, 응. 고마워, 지아야.”
“…뭘. 이 정도는 당연히 하는 거지.”
지아는 그렇게 말해놓고 부끄러운지 헛기침을 했다.
사당행, 사당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어, 이거 타야 되는데.”
살짝 마음이 급해진 나와 지아는 인파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사람이 평소보다도 더 많은 것 같은데.”
“그러게.”
잘못하면 이번 열차를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이 열립니다.
안내 음성과 함께 내리는 사람이 우루루 쏟아져나왔고, 이어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쑥쑥 들어가기 시작했다.
“으윽.”
앞사람을 따라, 뒷사람에게 밀려서 나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중간에 키 큰 여자들의 가슴이 얼굴에 제대로 밀착되는 사고가 있었지만 정신줄은 꼭 붙잡았다.
겨우겨우 사람들 사이에 발을 들이밀고 열차에 올랐다.
지아도 다행히 옆에서 잘 따라오고 있었….
“거기 나와요! 다음 거 타세요.”
다고 생각한 순간 누군가가 소리쳤다.
돌아보니 지아가 발 디딜 틈이 없어 비집고 들어오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다음 거 타시라니까!”
그 말에 지아는 순간 울상이 되어 날 바라봤다.
“하늘아….”
“아 거참! 거 남학생 붙들고 늘어지지 말고 나와요! 여자가 됐음 양보할 줄도 알아야지.”
그 말과 함께 지아는 무리에서 튕겨져나갔고, 곧 내 눈앞에서 문이 닫혔다.
아아, 승객 여러분께서는 무리한 탑승을 하지 마시고 다음 열차를 이용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안내 방송까지 나왔다.
지아는 스크린도어 너머로 나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
멍하니 있던 지아는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 눈이 커지면서 나를 가리켰다.
아니, 정확히는 내 뒤를 가리켰다.
내 뒤에서 입맛을 다시는, 아까 에스컬레이터에서 본 키 큰 여자를.
“귀찮은 녀석이 사라졌네.”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열차가 출발하고 검은 터널이 배경을 채우자 내 뒤에 있는 여자의 모습이 창에 비쳐 보였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봤을 때는 내 앞에 있었기에 키 차이가 이렇게 나는 줄 몰랐는데, 이렇게 동등한 높이에서 보니 내 눈높이가 이 사람의 어깨선 언저리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꼴깍.
지하철에서 인파에 낑기는 거야 워낙 많이 경험해 봐서 둔감하지만, 이런 상황이 되고 나니 자연스럽게 뒤쪽에 신경이 쓰였다.
덜컹
지하철이 덜컹이는 순간, 뒤쪽 여자의 몸이 내 쪽으로 밀착됐다.
“읏.”
내 몸은 인파의 압력에, 그리고 뒤쪽 여자의 몸에 밀려 지하철 출입문에 완전히 달라붙었다.
“후우….”
인압에 저항하는 걸 포기하고 출입문에 달라붙자 차라리 좀 편해진 것 같았다.
“…!”
손바닥과 뺨으로 출입문의 시원한 감각을 잠깐 즐기고 있는데, 뒤에서 말캉한 감촉이 느껴졌다.
“귀여워.”
키 차이 때문인지 가슴이 등이 아닌 어깨에 닿았고, 더 밀착되자 뒤통수가 가슴 사이에 폭 묻혔다.
그리고 뭘 더 어떻게 할 새도 없이 내 바지 속에 손이 쑥 들어왔다.
“흣?!”
오늘은 벨트 없이 밴딩 슬랙스를 입고 나온 탓일까. 손은 너무나도 쉽게 들어와 이미 한껏 부풀어올라 있던 내 자지를 움켜쥐었다.
“후우, 역시 개변태였네?”
살짝 위쪽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개변태 자지년이 색기를 흘리고 있으면, 참을 수가 없잖아.”
그 말과 동시에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흐익?”
덜컹
순간 자지를 문지르며 움켜쥐는 자극에 이상한 신음이 나왔지만, 지하철이 덜컹이는 소리에 금세 묻혔다.
찔걱, 찔걱
“흐읏….”
그녀는 나를 출입문에 완전히 몰아붙여 놓고, 손만을 바지 속에 넣어 내 자지를 한껏 희롱했다.
가슴이 내 머리를 누르고, 뒤쪽에서는 다리로 내 하체를 고정시키고 있어서 어떻게 움직일 수도 없었다.
“흣, 흐윽….”
“하읏….”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지금의 나는 얼굴을 출입문 유리에 박은 채로 나지막한 신음을 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뭔 악력이 이렇게….’
일단 피지컬 자체가 압도적이었고, 그에 걸맞는 크고 핏줄이 선명한 손이 내 자지를 쥐어짜니 정신이 날아갈 것 같았다.
찔걱 찔걱
그녀는 내 귀두 부분을 움켜쥔 채로 힘을 줬다 풀었다 하며 살짝씩 위아래로 움직였다.
“하, 존나 귀엽네, 개변태 새끼.”
내가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헥헥대자 그녀 역시 약간의 얕은 숨을 내뱉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그때 큰일 날 소리 하나가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자, 잠깐만. 지금 열차 방향이 이쪽이니까 오른쪽이면….’
“흣….”
좆됐다….
하필이면 이쪽 문이다.
사정감은 점점 차오르고 있고, 이대로 가면 도착해서 문이 열릴 때쯤엔 성대하게 가버릴 게 분명했다.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럴 순 없었다.
제발….
“흣….”
하지만 이미 피지컬로 찍어눌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흐읍….”
나는 이제 반쯤 포기한 채 몸을 맡기고 얕은 신음을 반복적으로 냈다.
“흣, 흐윽….”
“흡….”
“흐으….”
“흣….”
온몸에 힘이 풀렸다.
눈을 감고 그녀의 손에 내 모든 감각을 맡긴 채 나는 체념했다.
‘이제 끝인가….’
그리고, 기적처럼 다음 순간 내 몸을 짓누르고 있던 압력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내 몸이 빙글 돌았다.
문이 열립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