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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 병원
* * *
“어, 어. 응. 누나.”
나는 탈옥을 시도하려다 간수와 눈을 마주쳐버린 죄수처럼 떨떠름한 표정으로 윤서 누나를 바라보았다.
힐끔.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동공에 지진이 났으리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누나는 입을 꾹 다문 채로 나를 쳐다봤다.
‘화가 난…거겠지?’
무리도 아니었다.
1. 누나의 방을 몰래 훔쳐봤고
2. 누나가 자위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음에도 못 본 척하기는커녕
3. 그 모습에 흥분해서 누나를 딸감으로 자위를 했다.
화룡점정으로 그걸 들키고 도망치듯 바깥에 나갔다가 기절한 채로 업혀 들어왔으니 이건 뭐….
입이 백만 개여도 할 말이 없었다.
‘사과부터 해야겠지.’
잘못했을 때는 일단 사과부터 하는 게 좋다. 이리저리 핑계, 변명을 늘어놓아 봐야 사태만 더 커질 뿐.
나는 굳게 마음을 먹고 입을 열었다.
“누나, 미….”
“야! 걱정했잖아!”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나는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며 소리쳤다.
“으, 응?”
“하아…. 잠깐 나갔다 온다고 하고 안 돌아와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분명 화를 내고 있기는 했지만 말투에서 약간의 울먹거림이 느껴졌다.
“너무 안 와서 찾으러 나가긴 했는데 도대체 어디부터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전화는 놓고 나갔고, 무작정 돌아다니다 보니까 웬 골목에 쓰러져 있길래 얼마나 놀랐는데! 그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누나는 한바탕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 뒤 숨을 몰아쉬었다.
“미안, 누나. 잠깐 편의점 갔다 오려고 했었는데….”
내가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하자 누나는 조금 누그러진 듯 꼭 쥐었던 손에 힘을 풀었다.
“…그래도 별일 없어서 다행이야. 남자가 한밤중에 돌아다니면 얼마나 위험한데. 몸 조심해야 돼.”
“응.”
나는 대충 골목길에 있던 이유를 편의점에서 혼술 하고 살짝 취해서 잠든 것 같다고 하며 둘러댔다.
사실대로 말할까도 고민했지만, 지금 누나의 표정을 보니 도저히 뒷골목에서 여자 3명한테 따먹히고 기절한 거라고 말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하아….”
누나는 내 말을 듣더니 다시 한숨을 쉬고, 내 옆에 앉아 무슨 말을 꺼내려는 듯 한참 동안 입술을 달싹였다.
“…?”
내가 살짝 고개를 들자 누나는 뭔가를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하늘아, 어제 방에서 있었던 일….”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올 게 왔구나.
“으, 응….”
나는 주먹을 무릎에 올린 채 눈을 내리깔았다.
어떤 말이라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건 그냥, 그러니까. 일종의 사고…같은 거니까.”
누나는 살짝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말고, 원한다면 나도 잊을게.”
오잉?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생각했던 거랑은 좀 다른 반응인데.’
혹시….
내가 집에서 도망치고 밖에서 기절할 때까지 술 마시고 꼴아 있던 게 누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누나 입장에서 생각하면, 자신이 자위하는 모습을 보고 동생이 발정했고, 그 사실에 동생이 자괴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도망쳐서 꽐라가 될 때까지 술을 마시고 기절했다….
그러니 자신에게도 책임이 어느 정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얼마나 착한 누나란 말인가…!’
그런 누나를 보고 발정해버렸다는 사실에 나는 다시 자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 누나.”
나는 누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앞으론 안 그럴게.”
누나도 나를 마주보았다.
“…….”
눈이 마주친 거리가 생각보다 가까웠는데도 누나는 얼굴을 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기분 좋은 섬유유연제 향이 풍겨왔다.
누나의 호박색 눈동자가 왠지 조금 진득해 보였다.
문득 살짝 정신이 들었다.
어, 이건 무슨 분위기지?
“아냐, 그래도 돼.”
뭘?
갑자기 뭘 그래도 된다는 거야?
누나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누나의 몸이 아주 천천히 가까워졌다.
그리고.
“자, 화해는 다 했어?”
문이 벌컥 열리며 민서 누나가 들어왔다.
윤서 누나와 나는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순간 움찔했다.
“아, 혹시 방해했나?”
민서 누나가 손으로 입으로 가리며 웃었다.
윤서 누나는 황급히 내 어깨에서 손을 떼고 얼굴이 빨개져서 외쳤다.
“무, 무슨 방해! 이야기는 잘 됐어. 그치, 하늘아?”
“어, 응! 그렇지. 아주 잘 마무리됐어, 누나.”
나도 덩달아 말을 더듬으며 맞장구를 쳤다.
“아, 맞다. 병원 가 봐야 되는데. 그럼 난 나갔다 올게!”
그렇게 말하고 나는 방에서 나왔다.
“그래, 술 마시고 기절까지 했으니 병원 가서 진료 한 번 받아 보는 것도 괜찮지. 다녀와.”
술 때문에 가는 건 아니었지만, 이유를 마음대로 짐작해 주면 그건 그거대로 다행이었다.
“으악, 새끼 발가락!”
나는 급히 나오다 새끼발가락을 문지방에 찧으면서도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깽깽이로 나갔다.
* * *
“저런….”
하늘이 새끼 발가락을 찧는 모습을 보며 윤서가 자기도 모르게 같이 눈썹을 찌푸렸다.
하늘이 나가고 나니 방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윤서는 여전히 생글거리는 얼굴로 하늘이 나간 곳을 바라보고 있는 민서를 보았다.
‘언니가 아니었으면 덮칠 뻔했어….’
고마워, 누나. 앞으로 안 그럴게.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하늘의 모습에 순간 이성을 잃을 뻔했다.
그걸 알면서도 차라리 이성을 잃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아무리 성인끼리는 합법이라고 해도…. 지금까지 동생을 그렇게 본 적이 없으니 자꾸 죄책감이 들잖아….’
미성년자와 성인의 성관계에 대해서 법은 굉장히 엄격한 편이지만, 성인끼리라면 남매라고 해도 관계 자체가 불법은 아니었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남매가 서로를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 일이 많이 벌어지지는 않는 것뿐이었다.
특히 윤서의 경우 연약한 남동생을 누나로서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생각을 언니가 알면 기겁하겠지?’
윤서는 자신의 이 감정을 언니에게만큼은 반드시 숨겨야겠다고 다짐했다.
‘으으, 방금 하늘이 눈빛 때문에 자꾸 야릇한 생각만 나잖아.’
윤서의 아래쪽에서는 이미 점성을 가진 액체가 살짝씩 스며나오고 있었다.
윤서는 민서가 자신 쪽을 돌아보자 최대한 티나지 않게 무릎을 살짝 모았다.
“하늘이 얘는 이렇게 조심성이 없다니까. 하필이면 대학도 시꺼먼 여편네들 그득한 곳으로 가서는…. 세상에 흑심 품은 무서운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치, 윤서야?”
빙긋 웃는 민서에게 윤서도 억지 웃음으로 답했다.
“그, 그렇지.”
대답하면서도 양심에 찔린 윤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맞다. 체육관 스케줄 조정해야 되는데. 깜박하고 있었네.”
윤서는 어색한 억양으로 핑계를 대고는 자신의 방으로 쌩하니 사라졌다.
“…….”
민서는 침대로 천천히 걸어가 방금까지 윤서가 앉아 있던 자리에 손가락을 올렸다.
엄지와 검지로 그 부분을 잡은 뒤 들어올려 손가락을 떼자 점성이 있는 액체가 실처럼 늘어졌다.
민서는 미소를 지었다.
“귀엽긴.”
민서는 손가락을 혀에 슥 닦고는 방을 나섰다.
“좀 더 빨리 선수를 쳐야겠는걸.”
* * *
“지갑, 핸드폰 다 잘 챙겼고.”
급하게 나오긴 했지만 이번에는 챙길 건 다 챙겼다.
이제 변해버린 내 체질의 정체를 알아낼 때가 왔다.
물론 변해버린 이 세계의 정체를 알고 싶은 마음이 더 컸지만, 아무래도 나 이외에 세계가 변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이 세계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내가 미친놈이 되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적어도 이 체질에 대해서 먼저 파악을 해보자는 취지였다.
‘남녀가 바뀐 세계? 뭐 좋다 이거야. 아니, 좋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렇다 쳐도, 나도 그럼 다른 남자들이랑 비슷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거지.’
그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이제 ‘김수현 내과’ 간판 앞에 서 있다.
꼴깍.
“어서오세요. 처음오신거세요?”
의외로 여간호사가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남녀가 바뀐 거라고 치면 간호사는 대부분이 남자일 거라고 지레짐작했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반이 남자, 세상의 반이 여자라는데 길거리에서도 그렇고 남자보다 여자가 확연히 많은 것 같기도 했다.
“네, 처음 왔어요.”
“여기에 성함하고 연락처 적어 주시고 저쪽에 앉아 계세요.”
기다리는 동안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봐도 대부분이 여자였다.
그중 젊은 여자 몇몇이 내 쪽을 흘끔거리며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최대한 신경쓰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휴대폰을 보고 있자 곧 내 이름이 호명됐다.
“강하늘님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끼익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커다란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의사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어, 설마.’
그리고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긴 머리.
다가갈수록 확실해지는 모습.
아무래도 상담받고 싶은 주제가 성 관련 주제다 보니 의사가 같은 남자이길 어느 정도는 바라고 들어왔는데, 완벽한 허사였다.
눈앞에 있는 의사 선생님은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매우 젊은 여성이었고, 그녀는 얼타고 있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 어디가 아파서 오셨죠?”
“어, 그러니까.”
나는 일단 의사 선생님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 의사 선생님이니까 긴장하지 말고 전부 솔직하게 말하자.’
아무리 이 세계의 여자들 성욕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눈앞의 사람은 무려 의사다.
하루에도 환자를 몇십 명은 볼 테고 나는 그냥 그중 21번 환자에 불과하다.
그리고 의대를 나와 레지던트를 거쳐 이렇게 젊은 나이에 자신의 병원까지 차릴 정도면 초 엘리트 코스를 밟았을 터.
그런 엘리트가 나를 성적으로 생각할 리가 만무하다.
‘그래, 갑자기 세계가 바뀌고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피해의식이 생긴 게 분명해.’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차분하게 내가 겪은 몸 상태에 대해 설명했다.
몸이 너무 성적으로 민감하다, 다른 남자들은 안 그런 것 같던데 내 몸은 민감하고 재장전 시간도 너무 빠르다, 내 몸 상태가 좀 이상한 것은 아니냐, 등 내가 궁금한 점을 설명하자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음, 이전에는 이런 증상이 없다고 하셨죠?”
“네, 네.”
“특별히 약물을 복용하신 건 아니고요.”
“네. 전혀요.”
선생님은 다시 키보드를 몇 번 두들기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왔다.
“그럼 한번 진찰을 해 봐야겠네요.”
“네? 네.”
의사 선생님은 여전히 인자한 미소를 짓고, 나를 지나치더니 진료실 문 쪽으로 갔다.
“…?”
딸깍.
그리고 문이 잠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