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54. 레이첼씨와 데이트1
* * *
“하아...”
“왜 저랑 나가시는데 한숨을 쉬시죠?”
“결국, 때가 왔군요..”
“왜 저랑 데이트하는데 그런 각오에 찬 눈빛을?”
그럴 수밖에...
솔직히 지금까지의 데이트도 꽤 고역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역시 레이첼씨가 가장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 사람.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제가 그나마 거기 멤버 중, 상식인이라 생각하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
레이첼씨의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태클을 걸자, 레이첼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본인이 상식인이라고?
상식인은 강제로 덮치거나 하렘을 옹호하거나 하지 않는다.
“뭐,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지만..”
“죄송합니다.”
협박하는 레이첼씨에게 바로 사과를 박았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스즈나 왕페이가 폭주하면 그냥 정신 없다. 정신 나갈 것 같다.
이런 류의 느낌이라면..
레이첼씨가 폭주한다면,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르려고..?
이런 느낌으로 도무지 뭘 할 건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원래 인간의 가장 강한 두려움이 미지에서 오는 두려움이라고 했다.
레이첼씨는 그런 미지의 존재 같은 사람이니까.
일단 드래곤이기도 하고.
“그럼 데이트 계획은 짜놓으신 게 있나요?”
“4일 연속이나 제가 데이트 계획을 짠다는 거 너무 힘든데요.”
“뭐, 계획이 없으시다면 그냥 마을 근처 호텔에서 대실이라도 해서 쉬다가...”
“지금 당장이라도 짜보도록 하죠.”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여자는..!
“흐음~ 왜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걸까요. 남자라면 좋아해야 정상이지 않나요?”
“남자라도 전부 같은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단순 남자가 아니라 유부남이라고요!”
“결혼식을 하거나 애를 낳은 게 아닌데 유부남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요?”
“뭐, 뭐... 꼭 결혼식을 올려야만 결혼을 했다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웨딩드레스를 입거나 결혼식의 신부는 여자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
말문이 막혀버렸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잠깐. 애초에 그럴 거면 당신들부터 집에서 나가주시죠?”
“왜 그래야 하죠?”
“둘만의 신혼집에서 결혼하고 오순도순 살려고요.”
“꼭 둘만의 신혼집일 필욘 없잖아요?”
“다섯의 신혼집이란 말은 너무 이상한데요?! 그것도 남자 하나 여자 넷의 신혼집이라는건!”
“이런 집이 있는 거고 저런 집도 있는 법이죠.”
“너무 개방적이라 못 따라가겠습니다.”
“따라오지 않아도 괜찮아요. 끌고 갈거니까.”
“.....”
말을 말자.
레이첼씨와 이 이상 이야기를 해봐야 정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는다.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얼른 오늘 어디로 갈지나 생각해보기로 했다.
레이첼씨를 데리고 시내로 가도 괜찮은 걸까?
아까 말한 것처럼 날 강제로 호텔에 끌고가려거나 하진 않겠지?
슬쩍 레이첼씨의 눈치를 보며 오늘의 코스를 고민하였다.
“생각나는 곳이 없다면....”
“이, 있어요!!”
있을 것이다.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레이첼씨에게 연구라는 명목으로 호텔에 끌려가게 되겠지.
“근처의 계곡?”
“흐음.. 일부러 사람이 없는 외진 곳으로 끌고 가다니.”
“잠깐. 다시 생각할게요.”
일부러 호텔이 없는 시내로 생각했더니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났다.
이게 무슨..!
혀를 낼름거리는 레이첼씨의 행동을 무시하며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사람이 없는 곳은 안 된다.
그렇다고 호텔이 근처에 있는 시내도 안 될 것이다.
그러면 일단 사람이 좀 있으면서도 좀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그런 곳을...
“3...2...”
“왜 카운트 다운을?!”
갑자기 시작된 레이첼씨의 카운트 다운에 다급해진 나는 얼른 머리를 굴렸다.
으... 아아!!
“그래! 공원.. 공원으로 가죠!”
“공원 말인가요?”
“네..!”
거기라면 딱히 근처에 호텔이 있는 것도 아니고.
레이첼씨가 무언가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낮은 곳이라고 생각되었다.
음.. 급히 생각한 것치곤 꽤 잘 생각했다고 생각한다.
“한밤중의 공원이 아닌 한낮의 공원이라니. 취미가 꽤...”
“어째서 공원이 그런 이미지가 되어버린 걸까요?!”
어디서 나온 지 모를 목줄을 꺼내며 내게 건네는 레이첼씨에게 소리쳤다.
“공원이란 그런 곳 아니었던가요?”
“공원의 뜻을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시민의 휴식, 오락을 위한 공공기관.”
“의미적으론 잘 알고 있는 거 같은데?!”
“휴식.. 오락..”
“단어의 뜻을 제대로 모르는 거냐!”
뭔가 오락과 휴식이란 단어에서 불순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었다.
“에이. 잘 알고 있죠. 농담이죠.”
“.....”
그럼 아직까지도 손에 들고 있는 그 목줄은 뭔데.
길거리에서 뭐 늑대나 개를 잡아서 산책시킬 것도 아니잖아.
심지어 슬쩍 눈대중으로 봐도 레이첼씨 목둘레에 꽤 알맞게 제작된 것 같았다.
이런 사람과 외출하는 게 맞는 걸까?
걱정만 가득한 외출에 한숨을 쉬며 나는 일단 결정된 대로 공원에 향했다.
“그러면 일단 네발로 길까요?”
“농담이라면서요!!”
공원에 도착하자 그런 말을 하는 레이첼씨에게 곧장 소리쳤다.
다행히 아까 꺼냈던 목줄은 사라졌다만.
“농담이죠.”
“방금 숙이려고 했던 모습이 보였거든요??”
농담이라면 넘어가려는 레이첼씨에게 그런 지적을 하자 레이첼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농담도 이렇게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실 줄이야.”
“....”
내가 잘못한 것일까.
아무리 봐도 레이첼씨 잘못인데.
“뭐, 그러면 공원에 왔으니 뭘 하실 건가요? 공원 데이트니까 벤치에서 진한 키스 같은거?”
“그냥 산책할 겁니다!”
이 사람 진짜로 공원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자꾸만 이상한 발언을 하는 레이첼씨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산책이라고요?”
산책이라는 말에 적나라하게 실망한 표정을 드러내는 레이첼씨였다.
“겨우 산책을 위해 공원에 오다니.”
“보통은 산책을 위해 공원에 오거든요.”
연구는 내가 아니라 레이첼씨의 뇌를 한 번 끄집어내서 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뭐, 조금 시시한 일이지만 실험체가 원하는 걸 들어주는 것도 연구자의 책무니까요.”
그럴 거면 처음부터 좀 제대로 해주지 그랬어요.
어쩔 수 없다는 듯 공원을 걷기 시작하는 나와 발을 맞추는 레이첼씨였다.
“모처럼의 데이트니까 분위기 좀 잡아주실래요?”
“어떻게 잡으면 되죠?”
고작 공원을 산책하는 것으로 분위기를 잡으라니.
나도 공원 산책 데이트를 해본 적 없어서 그런 거 몰라.
“음... 팔짱이라도 낄까요?”
“다가오지 마세요. 아내가 있는 몸입니다.”
“다른 여자와 데이트를 하면서 그런 말을?”
“.....”
할 말이 없었다.
레이첼씨의 지적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팔을 잡아당기는 레이첼씨에게 순순히 팔을 넘겨주었다.
“!”
“어때요? 두근거리시나요?”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러나 마리에겐 미안하지만, 확실히 마리가 팔짱을 꼈을 때와 꽤 강력한 존재감을 내뿜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내분이 이렇게 해주면 이런 감촉을 느끼긴 힘들 텐데.”
“그런 말. 마리 앞에서 절대 하지 마세요.”
안 그래도 가슴에 열등감이 있는 마리였다.
그런 마리 앞에서 쓸데없이 그런 말을 한다면 무조건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 뻔했다.
그리고 마리도 이런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거든요?
당신이 너무 크니까 좀 더 확실하게 느껴질 뿐인 거지.
마리의 가슴에는 잘못이 없다.
“가슴으로는 유혹하기 힘들다는 건가요? 그렇다기엔 꽤 가슴에 흥미 있는 사람 같아 보였는데?”
“그건....”
맞긴 하지만..!
그래도 순순히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면 역시 저만의 유니크함으로 승부를 해야 하는 걸까요?”
“레이첼씨의 유니크함?”
그게 뭐지?
내가 알기론 레이첼씨의 유니크함이라면 미치광이 학자라는 속성일까.
하지만 단순히 그런 거론 유혹되지 않는다.
미치광이 학자라는 속성 어디에서 매력을 느껴야 하는 건데?
“뿔 만질래요?”
그런 말과 함께 레이첼씨는 자신의 머리에 숨겨있던 뿔을 생성해내었다.
“아.. 뿔이요...”
자신의 뿔을 슬쩍 어필하며 말하는 레이첼씨의 행동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레이첼씨가 당황하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뿔에 별로 관심이 없나요?”
“어...”
뭐랄까. 뿔을 손잡이처럼 사용해보고 싶다는 성적 판타지가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뿔 자체에 매력을 느끼거나 한 건 아니었으니까.
별로 뿔로 유혹을 한다고 한들,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이상하다. 분명 침대에선 관심이 많으셨던 것 같은데..”
“공원에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공공장소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럼 진짜로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한 번 호텔에서 실험해 보도록 하죠.”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싫어요.”
나의 3단 거절이 이렇게 간단히?!
싫다는 나를 억지로 붙잡아 끌고 가려는 레이첼씨에게 반항하며.
나는 오늘이 가장 힘든 날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큰일났는데 이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