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53. 왕페이와 데이트 3
* * *
“어떻습니까 사부!!”
“어.... 응...”
옷을 갈아입고 나온 왕페이의 모습을 본 나는 그런 건조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도 그럴게...
그냥 펑퍼짐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왔는데 따로 뭐라 할 말이 없다.
“편해 보이네?”
뭐 그냥 이런 정도의 이야기?
적당히 펑퍼짐한 후드에 고무줄 달린 느슨한 바지.
확실히 움직일 때 굉장히 편하겠네.
뭐 그런 이야기 이외에 따로 할 말은 없었다.
디자인이 뭐 특이한 것도 아니고.
예쁘다!!
....라고 말하기엔 조금 누가 봐도 입바른 소리 같았으니까.
그냥 편하게 보인다.
그 외의 다른 반응을 하기엔 쉽지 않았다.
“그렇게 보이십니까? 역시! 사부!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어....”
그런 거에 감탄하지 마.
그냥 편해 보이는 옷을 편해 보인다고 말했을 뿐인데 감탄이 나올 줄이야.
이건 역으로 나를 먹이려는 고도의 심리전인 걸까..?
오히려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런 편한 옷이라면 나중에 사부가 저를 벗길 때도 편한...”
“왁!! 와악!!!”
얘는 지금 밖에서 무슨 상스러운 발언을 하고 자빠진거야!!
쓸데없는 말을 하는 왕페이의 입을 그대로 막아버린 채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왕페이가 하는 말을 들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후우...
왕페이 이 녀석은 대체 지금 낯 뜨거운 소리를 그렇게 크게..!!
게다가 애초에 왕페이랑은 그때 이후로 한 적 없잖아!
정확히 말하면 왕페이가 그때 이후 내 방에 또 침입한 적이 있기는 하다만..
언제나 거절하거나 마리의 방으로 도망가거나 했었지.
“왜 그러시는 겁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마리의 입에서 손을 떼자 마리가 억울하다는 듯 내게 항의했다.
“너야말로 지금 밖에서 무슨 낯부끄러운 소릴...!”
“어디가 낯부끄러운 겁니까! 무인이 파워 업을 하는 이야기는 오히려 온 동네에 소문을 내도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저기.. 일단 왕페이? 파워업은 됐으니 나랑 상식 공부라도 좀 하지 않을래?”
“지식은 전투 지식만으로 충분합니다!”
“전혀 아니야!!”
무천도사님도 지식을 쌓는 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고?
“아무튼, 이제 옷도 갖췄으니 뭘 하실 생각입니까?”
“흐음....”
솔직히 말하자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왕페이랑 있는 거 너무 피곤해!!
그나마 상식인인 마리는 그렇다 해도 어떻게 스즈보다 더 피곤할 수 있는 거지?
확실히 첫 만남에도 왕페이가 피곤한 녀석이라고 느꼈지만..
그래도 설마 고작 시내로 외출하는 것만으로 이 정도로 피곤해질 줄이야..
도무지 왕페이랑 뭘 해야 좀 편하게 있을 수 있을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동물원이라도 가면 코끼리나 사자랑 싸우려 들 것 같고..
영화관이나, 오락실은 이미 갔다 오기도 했고, 왕페이가 얌전히 있을 리도 없었다.
뭔가 없을까...
뭔가 왕페이가 얌전하게 있거나 아니면 왕페이의 욕구를 좀 충족시킬만한 어딘가가..
“아.. 배팅장이라도 갈래?”
“배팅장?”
고민을 하던 와중 그나마 왕페이에게 맞는 곳을 생각한 나의 제안이었다.
“그래. 야구.. 는 알지?”
“저를 너무 무시하시는 것 아니십니까?”
“........”
그럴 만한 수준이잖아.
약간 앙칼진 목소리로 내게 항의하는 왕페이에게 그런 대답을 하고 싶었다.
뭐, 야구를 안다고 하면, 배팅장이 뭔지야 알겠지.
“그래. 야구를 알면 됐다.”
왕페이의 대답에 나는 그런 대답과 함께 왕페이의 옷을 계산해 배팅장으로 향하였다.
배팅장에서 뭐 사고칠 건 없으니까.
몸을 좀 움직이고 싶은 왕페이와도 잘 맞을 것이다.
“여기가 배팅장입니까.”
“그래. 저기서 날아오는 공을 배트로 잘 휘두르면 되는 거지. 야구는 안다니까 어떤 느낌인지 알지?”
“쉰다고 하셨으면서 이런 수련을 하러 오시는 겁니까?”
“수련 아니라고!!”
솔직히 왜 수련 이야기가 안 나오나 싶긴 했다.
“하지만 이건 어딜 봐도 수행이지 않습니까?”
“그냥 노는 거야!”
“흐음...”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왕페이에겐 할 말이 많았지만..
여기에서 이야기를 멈춰주는 것만 해도 어디냐 싶은 마음에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래. 그렇게 넘어가 줘서 고맙다.
왜 이런 거에 고마워해야 하는지..
스스로가 조금 처량해지는 기분이었지만 뭐 어쩌겠냐.
“동체 시력과 반사신경, 거기에 휘두르는 타이밍과 적절한 힘 조절까지. 이런 복합적인 훈련을 고작 놀이라고 치부하는 사부는 대단하시군요.”
“.......”
이젠 그냥 태클을 걸 힘도 없었다.
그냥 본인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도록 하자.
참고로 나도 배팅장은 몇 번 와 본 적도 없고 잘하지도 못한다.
내가 배팅하는 모습을 보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네..
오히려 좋나?
왕페이의 이 말도 안 되는 존경심을 박살 내버릴 기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적당히 하는 방법을 알려준 뒤 기계에 돈을 넣어주었다.
일단 왕페이가 먼저 배팅을 한 뒤에 내가 하는 게 좋겠지.
그러면 본인과의 수준 차이가 아주 확실히 느껴질 테니 나를 아주 물로 볼 것이다.
음... 물로 보면 그건 그것대로 막 덮치려고 해서 안 좋을 수도 있나?
뭔가 시작하니 갑자기 그런 불안감이 들었으나.
이미 시작된 것 돌이킬 수 없었다.
“그럼...”
카운트가 시작되고 왕페이가 자세를 잡자 기계에서 공이 튀어나왔다.
투웅.
야구공이 날아오자 두 손으로 꽉 잡은 배트를 힘차게 휘두르는 왕페이.
“.........”
“.........”
결과는 헛스윙이었다.
맞았다면 홈런 이상이었다고 자신할 힘찬 스윙이었으나.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역시 처음이라 좀 어렵군요.”
“그렇지.”
원래 처음 할 땐 타이밍을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
아직은 타이밍을 제대로 모르니 그럴 수도...
투웅.
휘익!!
또 한 번의 헛스윙.
그래. 아무리 왕페이의 신체 능력이 좋다고 한들 타이밍을 맞추는 건 어려울 수도 있는 법이니까.
그런 생각에 나는 왕페이에게 괜찮다는 격려와 함께 다음엔 맞출 수 있다는 응원을 해주었다.
왕페이 역시 살짝 오기가 생겼는지 다시금 배트를 잡으며 기계를 노려보았다.
투웅.
휘익.
투웅.
휘익!!!
투웅.....
“....”
“....”
그렇게 결과는 전부 헛스윙.
아니, 왕페이 너 신체능력 뛰어난 거 아니었냐?
막 동체 시력도 좋고 스즈의 청룡이랑 싸울 정도면 이 정도야 껌이잖아.
막 날아오는 공이 느리게 보이고 이런 거 아니야?
청룡의 공격은 대체 어떻게 반응하는 거야?
“크읏... 능력을 봉인하고 하지만 않았어도..!!”
“네 능력 그냥 방어막이잖아..”
방어막을 친다 한들 타이밍을 맞춰서 휘두르는 거랑 대체 무슨 상관인데..
“주변에 결계를 쳐서 그대로 튕겨내버리는...”
“기각! 그거 그냥 반칙이다.”
“그래서 쓰지 않은 것 아닙니까. 크윽.. 고작 이런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니... 제자로서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아니.. 뭐....”
솔직히 하나도 치지 못했다는 점은 조금 부끄럽다면 부끄럽기는 했지만.
그게 왜 제자로서 부끄러운건데.
나도 이거 잘 못 한다고.
“이렇게 어려운 수행을 고작 놀이 정도로 하는 사부니 뭔가 보여주시는 거겠죠?”
“.....”
...그냥 내가 먼저 할 걸 그랬다.
이런 전개를 생각했던 게 아니기에 오히려 저렇게 순수하게 기대하는 눈빛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 일단 나도 제대로 못하니까 말이야. 절대 기대하지 마.”
“괜히 또 그러시는군요.”
그런거 아니라고...
기대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왕페이의 모습에 나는 괜한 부담감을 느끼며 기계에 돈을 넣었다.
그래..
어차피 원래 계획도 왕페이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거였으니까.
그냥 마음편히..
원래 계획대로 한다고 생각을 하자고.
투웅.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날아오는 공을 향해 그대로 배트를 휘둘렀다.
“8할...”
“역시 사부입니다!!”
그냥 마음 편히 휘둘렀을 뿐인데 10번 중 8번을 맞췄다.
물론, 안타나 홈런 등의 비율로 생각하자면 나름 파울볼도 있었기에 낮아지겠지만..
그냥 공을 때린 횟수로만 따지자면 8할이다.
“역시 이런 어려운 수행을 놀이처럼 하시는 사부라 이런 것도 간단히 하시는군요!”
“아니야...”
존경심을 박살내려던 내 계획은 어느새 왕페이의 존경심을 더욱 올리는 결과가 돼버렸다.
그런 왕페이의 반응에 나는 최대한 부정해보았으나
오히려 겸손하기까지 하다며 왕페이의 존경심이 더욱 올라가는 모양이었다.
“역시.. 사부는 뭔가 달라도 다르군요..! 저도 얼른 사부에게 사랑의 힘을 받거나 수행을 받아 그런 경지에 도달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아니라고 하잖아!!”
점점 올라가는 존경심에 부담감을 느낀 나는 그대로 배팅장을 뛰쳐나와 집을 향해 달렸다.
“사부! 같이 가시죠!!”
하지만 실질적 신체능력은 왕페이에게 딸리는 나였기에..
금방 왕페이에게 따라잡혀 그대로 왕페이와 함께 집을 향해 달려가게 되었다.
“역시 사부였습니다! 저 어떻게든 사부에게 사랑의 힘을 받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강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남편...?”
“아니야!! 내가 뭐 한 거 아니라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자, 나는 쓸데없이 존경심이 높아져 말하는 왕페이의 발언을 해명해야만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