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52. 왕페이와 데이트2
* * *
“그럼 뭔가 하고 싶은 건 있어? 왕페이?”
“저는 그저 사부에게 따르도록 하곘습니다.”
“그런 식으로 나오는거냐...”
여기서 어차피 태클을 걸어봐야 제대로 된 대답은 나올 것 같지 않으니 일단 코스는 스스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영화관과 오락실은 제외했고, 다른 곳이라고 한다면...
“쇼핑이나 할까?”
“뭔가 살 것이라도 있는 겁니까 사부?”
“응. 있지...”
눈앞에 차이나 드레스를 입고 있는 왕페이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며 대답했다.
“왜 저를 그렇게 보십니까?”
“.....”
이곳은 이능력이 있는 이세계.
하지만 그 문화나 기본적인 상식이나 가치관 같은게 원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이다.
다시말해....
왕페이의 이 차이나 드레스 복장을 시내에서 입고 다니는 것은 눈에 띈다.
무슨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아님에도 이리 당당히 돌아다니니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어떤 걸 사려고 그러십니까?”
“어... 왕페이 네 옷을 좀 사려고.”
“?!”
왕페이의 질문에 답하자 왕페이가 깜짝 놀라 내게서 멀어진다.
“뭘 그렇게 놀라는거야?!”
“사부...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무슨 짓이냐니?! 그냥 옷을 사주겠다고 한 것뿐인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뭐가 문젠데?!”
옷을 사주겠다고 하니 마치 물을 피하는 고양이마냥 내게 반응하는 왕페이였다.
대체 이게 무슨 반응이지...
“사부는 제가 부끄러운 겁니까!”
“어....”
조금 그렇지?
시내에서 아무렇지 않게 차이나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면...
솔직히 부끄러울 수 있잖아.
“부끄러운 거군요!”
“그, 그래!!”
왕페이의 질문에 내가 머뭇거리자 소리치는 왕페이에게 그냥 뻔뻔하게 소리쳤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제자가 부끄럽습니까!!”
“2가지가 틀렸어!!”
첫째, 제자가 아니라 복장이 부끄럽다.
둘째. 애초에 넌 내 제자가 아니다!
“부끄러움에 제자인 것마저 부정하시는 겁니까! 스승으로서 체면도 없으신 겁니까!”
“있을 리가 없지!”
스승이 아니니까.
애초에 스승이 아닌 사람에게 스승으로ㅅ 체면을 물어도 곤란할 뿐이다.
“그런... 고작 복장 때문에 사제 관계를 져버리실 줄이야... 사부에겐 큰 실망입니다! 강호의 도리는 어디로 간 겁니까!”
“난 강호의 도리를 몰라!”
애초에 강호에 있던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에게 그곳의 도리를 묻는들 알 리가 없잖아!
애초에 진짜로 왕페이는 내 제자도 아니고..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사주는 옷을 순순히 받으면 아무 일도 없는 거잖아?!”
“그럴 수 없습니다! 평소의 제 복장이 부끄럽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순순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이건 자존심의 문제 입니다!”
그거 참 쓸데없는 자존심이네!!
“하아....”
쓸데없는 이유로 쓸데없이 완고하다.
대체 지금 이 녀석을 어쩌면 좋을까...
절대 쇼핑하러 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왕페이를 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지금 그러니까 자신을 부끄러워 한다는 점에서 자존심이 상했단 말이지...?
그러면 왜 부끄러운지 설명을 해야되나?
아냐..
어차피 뭔 이유를 대던 그냥 부끄럽다는 이유로 삐지겠지.
어떻게 해야하지?
뭘 어떡하면 왕페이를 구슬릴 수 있을까?
“.........!!”
완고한 왕페이의 모습을 보며 고민하던 나는
번뜩 무언가 생각이 하나 머리를 스쳤다.
“왕페이.”
“뭐죠. 저를 파문시키려는 사부님?”
“.....”
속 좁아!!
그리고 우리 교회는 어떤 문파도 아닌데?!
파문을 시킬래야 시킬 수 없는 구조다.
그리고 보통 파문은 관장이 시키는거 아니냐고..
태클 걸 곳이 한두가지가 아닌 왕페이의 반응을 뒤로 한 채,
나는 우선 목을 한 번 가다듬고 왕페이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왕페이가 부끄럽다고 한 것엔 이유가 있어!”
“이유 말입니까...”
“그, 그렇다니까.”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목소리를 깔며 차가운 반응을 보이는 왕페이에게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왕페이. 오늘은 뭘 하는 거라고 했지?”
“데이트 아니었습니까?”
“데이... 뭐, 뭐. 맞긴해. 그래. 데이트지.. 다시말해! 수련금지. 휴식을 하라고 했잖아.”
“그랬습니다.”
“그래! 나는 그런 점에서 지금 왕페이, 네 복장이 부끄럽다는거야.”
“?”
나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 듯 왕페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자. 잘들어 왕페이. 나는 오늘 휴식이라고 했어. 하지만 너의 그 복장은 언제나의 수련을 할 때와 변함없는 모습.”
“수련을 하지 않은 때도 비슷한 차림이니 상관없지 않습니까?”
“아니! 그렇지 않아. 왕페이. 나는 네가 잠을 잘 때는 잠옷으로 갈아입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거야... 잘 때 정도는 좀 편한 복장으로 자는거야...”
“바로 그거야! 내가 지금 말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오늘은 휴식이니 휴식할 때에 걸맞는 편한 복장으로 있어야 하거늘! 너는 지금 언제나 입고 있는 차이나 드레스를 입고 있지! 내가 창피하다고 한 점은 바로 그것 때문이야!”
“.......”
“.......”
아.... 뭔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나?
일단 논리가 그렇게 탄탄한게 아니니 그럴 수도 있지.
확실히 지나가던 사람이 이 소리를 듣는다면 뭔 개소리야!
하고 소리칠만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는걸!
수련을 중시하는 왕페이에게 수련과 연관지어 이런식으로 말하면 어느정도 먹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역시 사부!! 그런거였습니까!!”
“......”
먹혔네.
다행히 걱정과는 달리 왕페이에게 헛소리는 제대로 먹힌 듯 했다.
“확실히 오늘은 수련금지. 수련을 위한 휴식으로 또 다른 수련임에도 복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음에 창피했던 것이군요!”
“그, 그런거라고 볼 수 있지..”
일단 알아서 내 헛소리를 잘 알아먹은 것 같았다.
“사부.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사부의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별 시답잖은 이야기에 의미부여를 하며 왕페이가 감명 받은 얼굴로 내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야.. 야.. 하지마!!
창피하다고!!
그런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낯부끄러운 행동을 이런 시내에서 하지 마!!!
이러나 저러나 창피한 왕페이를 진정시키며, 나는 서둘러 왕페이를 이끌어 근처의 옷가게로 향하였다.
“하아... 뭔, 옷가게 하나 오는게 이리 피곤할까..”
왕페이를 옷가게로 데려온 나는 큰 한숨을 쉬며 가게를 둘러보는 왕페이를 슬쩍 바라보았다.
“흐음...”
역시 왕페이도 여자인건가.
옷가게로 들어서자 이곳의 옷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왕페이를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사부.”
“응? 왜. 마음에 드는 옷이라도 찾았어?”
진지한 얼굴로 옷을 둘러보던 왕페이가 나를 불렀다.
“전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리고 큰소리로 그런 말을 하지 말아주겠니?
옆에서 지나가던 점원분이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여긴 제대로 무인에게 맞는 휴식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게 어떤 옷인데?!”
따로 무인 전용 휴식복이라는게 있는거야?
그런거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저도 잘은 모릅니다!”
“모르면서 왜 당당한건데!”
“하지만 역시 무인의 휴식복이라 한다면 뭔가 펑퍼짐하면서도 움직이기 쉽고, 좀 전통적인 느낌이 나는 그런 옷이...”
“쓸데없이 요구사항이 많잖아... 그리고 그냥 움직이기 편한 복장이면 되는거 아냐? 왜 꼭 전통적인 느낌이 들어야 하는건데...”
“역시 무인으로서 뭔가 고풍스러운 멋을 추구하는게..”
“필요없어!!”
쓸데없는 무인에 대한 이미지다.
“필요없습니까...”
“애초에 나도 그냥 복장이라고!”
“그거야 사부는 평범한 무인과는 다른 이상한 사랑의 힘을 사용하니까 그런거지 않습니까!”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그리고 사랑의 힘을 사용하지 않아!”
존경을 할거면 존경을 욕을 할거면 욕을 해라.
거기에 내가 사랑.... 하는 건 마리밖에 없다.
다른 애들에게 사랑의 힘을 부여하거나 한 적 없어!
무, 물론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가 굉장히 쓰레기가 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아무튼 그렇다면 그런거다!
“어쨌거나 사부는 정파보다는 사파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복장정도야 정통 무인이 아닌 그런 복장을 입으시겠죠.”
“너 말이지....”
정파니, 사파니..
애초에 파가 없기에 따지자면 사파가 맞기야 하겠다만..
“그런거면 너 내 제자니까 너도 사파가 되는거잖아. 왜 정파의 복장같은걸 고집하려고 그러는 건데.”
“어...?!”
자기가 말하고도 이제야 눈치챈 모양이다.
“그런...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냐...”
여기서 더이상 태클은 걸지 말도록 하자.
그냥 왕페이 하고 싶은거 다 해..
그렇다고 너무 하고싶은대로 다 하면 또 이상한 사건이 일어날 것 같으니까..
조금 적당히..
“그런거라면.. 그냥 적당한 운동복 같은걸 고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제발 그렇게 해줘라. 부탁한다.”
다행히 이번에도 이야기는 잘 통했는지 왕페이가 트레이닝복을 알아보러 갔다.
하아...
고작 쇼핑만 하는 건데 스즈랑 오락실 간 것보다 더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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