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49. 스즈와 데이트
* * *
“오늘은 제 차례네요!!”
“너무 뛰어다니지 마...”
결국 마리와의 데이트 이후, 스즈와 함께 데이트에 나섰다.
나.. 지금 집을 나가는 이 순간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어.
“드디어, 세컨드로서 저의 강력함을 보여줄 수 있겠군요.”
“세컨드의 강함이라니..”
그건 도대체 무슨 강력함인데..
“그러면, 우선. 달링. 저는 조금 뒤에 나갈 테니 저기 저 나무 앞에 서 있을 수 있나요?”
스즈가 교회 앞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차피 지금 교회를 같이 나와놓고 왜 그런 짓을..
스즈의 요구가 이해되지 않았으나, 어차피 거절하면 징징댈테니 들어주기로 하였다.
하아..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나무 앞에 서 있었다.
“흐아앙~!!”
“?”
나무 앞에 있자, 금세 스즈가 허둥지둥 내게 달려온다.
뭐야, 이렇게 바로 올 거면 왜 서 있으라고 한 건데?
이해가 되지 않는 스즈의 행동에 의문이 들었다.
“미, 미안해요. 제가 좀 늦었죠?”
“....?”
갑자기 상황극인가?!
뜬금없는 스즈의 발언에 나는 순간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눈치챘다.
일단은... 맞춰주는게 맞겠지?
“아니... 나도 방금 왔어.”
“헤헤!”
스즈의 상황극에 맞추자 스즈가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역시 맞춰주는게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저 달링이랑 데이트가 너무 기대돼서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어... 나, 나도 그래.”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가는 스즈에게 맞춰주자 스즈가 내게 안겨왔다.
“흐흥~ 역시.. 그런 마누라보다는 세컨드인 저와의 풋풋한 데이트가 기대돼서 잠도 못...”
“아니! 그건 아니지!!”
느닷없이 선 넘지 마!!
“사람을 무슨 바람 피우는 쓰레기로..!”
“그러는 ‘척’일 뿐이잖아요! 그러는 ‘척’!”
“아무리 상황극이라도 그건 싫거든?!”
“체..”
“혀 차지 마!!”
하마터면 분위기에 홀라당 넘어갈 뻔했다.
이게 무슨 세컨드의 강함이냐고...
“아무튼, 오늘은 저와의 데이트니까 마리안느따위는 잊어버리고 저에게 집중하셔야 돼요!”
“바람 피우는 쓰레기 컨셉은 싫은데...”
“그럼 약점을 잡혀 어쩔 수 없이 함께 하게 되는 남자로?”
“음... 그건 나쁘지 않을지도..”
“그리고 서서히 저의 매력을 알게 돼서, 결국 저에게 푹 빠지게 되는...”
“뭘 요구하는거야!!”
“그럼 끝까지 저를 싫어하는 컨셉으로 있겠다는 건가요!”
“어... 어어....”
“달링은.. 제가... 그렇게도 싫으신가요?”
“......”
울상을 짓는 스즈의 모습에 항복하고 말았다.
여기서 눈물로 공격하다니.
비겁하다.
“싫은건 아냐.”
“그렇죠? 이렇게 가슴이 큰데!”
“가슴 때문에 좋아한다는 말이 아냐!!”
누굴 진정 쓰레기로 만들 일 있나..!
확실히 스즈가 나쁜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저런 모습들이 백치미로 넘기자면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자유분방한 녀석이라는게 문제인거지..
싫다기보단 부담스럽고 피곤하다고...
눈치도 보지 않은 채 자신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는 스즈를 보며..
도대체 저런 모습 어디에서 설레임을 느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물론, 마누라가 있으면서 다른 여자에게 설렘을 느낀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아무튼, 지금까지의 스즈의 모습을 보자면 도무지 여자로서의 매력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여자랑 데이트를 하는건지.
꼬맹이를 데리고 외출을 하는건지..
“아무튼, 그러면 오늘 무슨 데이트를 하면 좋을까요? 달링~?”
“글쎄.. 지난번에 스즈랑 시내는 갔다 왔는데..”
“마리안느랑 똑같은 코스는 싫어요.”
“그럴 거 같았어.”
그리고 애초에 나도 스즈를 시내로 데리고 갈 용기가 없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고 시내 지리도 아직 잘 모른다.
“그럼 뭐 어디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
그렇게 전혀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 스즈에게 물었다.
근데, 이렇게 물어도 나는 이 근방 전혀 모른단 말이지.
“저희 신사라도 갈래요?”
“너.. 너희 신사?”
“네. 부모님께 인사라도 드릴 겸...”
“기각!”
누굴 지금 죽게 만들 일 있나..
안녕하세요. 스즈를 세컨드로 두고 있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지.
“부모님께 인사드리지 않을 생각인가요?!”
“너 같으면 댁의 따님을 세컨드로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냐!”
“부모님껜 퍼스트라고 말하면 되죠!”
“그렇게 말하든 안 하든! 안 되는건 안 되는 거야!”
“고집쟁이!”
“반사.”
스즈와 이야기하다보니 나까지 유치해지고 말았다.
“뭐, 저기 들판이라도 걸을까?”
“도시락 안 싸왔는데요.”
“적당히 돌아다니다 다시 돌아와서 밥 먹으면 되지.”
“저녁 늦게 돌아갈 거에요!”
“........”
오늘 그냥 완전히 하루를 쓰고야 말겠다는 스즈의 의지가 보였다.
“....그럼 시내를 나가야 되겠네.”
가고 싶은건 아니었지만, 밥도 먹고 시간을 때우려면 시내 이외엔 도무지 없었다.
“으응... 마리안느랑 같은 코스는 싫은데.”
“마리랑 안 가본 시내를 돌아다니면 되는거지.”
“마리랑 어디 가셨는데요?”
“그냥.. 영화관 가서 영화나 한 편 보고 왔어.”
“정말 영화만 보고 왔나요?”
“...!”
느닷없이 날아오는 스즈의 질문에 순간 굳어버리고 말았다.
어... 여, 영화만 보고 온 건 아니지.
확실히 스즈와 영화를 보다 둘이서 키... 크흠.
“역시 영화만 본 건 아니죠!”
“무, 무.슨.소.리.야. 여, 영화만 봤.단.다.”
“목소리랑 말투가 지금 딱딱하게 굳어 있거든요!!”
큭... 너무 갑작스럽게 훅 들어온 질문이라 나도 모르게 대처가 잘 안 됐다.
지난번에 그런 질문을 했을 땐, 그래도 옆에 마리도 있고 말려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갑자기 이런 1대1 질문으로 훅 들어와 물으면..
스스로 생각하지만 거짓말을 잘 하는 타입도 아니고 말이지.
“영화관에서 뭘 한거에요?”
“그, 그게... 키스를....”
“섹스요?!”
“키스! 임마! 키스!!”
점점 작게 기어들어가는 내 목소리를 오해한 스즈가 큰 목소리로 섹스를 외쳤다.
아무리 근처에 사람이 없다고 해도 남사스럽게 뭔 짓을 하는거야!!
당찬 목소리로 외치는 스즈의 오해를 풀기 위해 얼른 키스라 소리쳤다.
“키... 키스... 키스라니...”
“부, 부부사이에 할 수도 있는 거지.”
“그런... 그럼 저랑도 지금 당장 키스해요!”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세컨 사이에 키스정도야 가능하잖아요!”
“바람이잖아!”
“아내 공식인증이잖아요!”
“아....”
할 말 없었다.
그때. 모두의 앞에서 여기까지만이라며, 마리가 공식 인증을 찍어버렸지.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야 뭐 할 말이 없다.
근데 아내가 공식 인증한 바람이라..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전개는 이상해..
“그러니까 키스해도 괜찮죠?”
“나, 나중에! 나중에 해줄게!”
“나중이라뇨! 지금 그렇게 말해놓고 나중에 그냥 어물쩡 넘어가려는 속셈이죠!”
왜 이런데만 눈치가 빠른거지?! 스즈!
키스를 하려는 스즈를 막아내며 말하자 금세 내 의도를 간파해버렸다.
젠장.. 설마 이렇게 빨리도 알아차릴줄은..
“아... 아냐! 나중에 제대로 분위기 잡고 해줄 테니까..!”
“.....”
지금 이 상황을 넘기기 위해 말하자 스즈가 갑자기 행동을 멈췄다.
먹힌건가...?
스즈의 행동이 멈추자 나는 슬쩍 스즈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정말 인가요?”
그러자 나를 유심히 바라보며 묻는 스즈.
“그.. 그래. 정말이야.”
“정말로, 정말인가요?”
“무, 물론..!”
“....”
여전히 스즈의 시선이 따가웠다.
그런 식으로 노려볼거면 차라리 그냥 믿지 않는다고 확실히 말해줘!
사람 이렇게 긴장하게 만들지 말아줘!
“이번만 속아드릴게요..”
“...”
이번만 속아준다는건 무슨 소리야.
“제대로 분위기 잡고 해주시는거죠?”
“그, 그렇다니까..?”
왠지 불길한 스즈의 질문에도 나는 일단 상황을 넘기기 위해 말하였다.
“뭐, 어물쩡 넘어가려고 하면 강제로라도 해버릴 거니까요.”
“....”
이거.. 그냥은 못 넘어가겠네..
이미 스리슬쩍 넘어가려는 내 의도는 모두 읽혔다고 보는게 맞았다.
하아.. 결국 나중에 돌아가기 전에 스즈에게 키스는 해야되는건가..
괜찮은거야?
마리. 이해해줄 거지?
나는 마리가 이해심이 넓은 여자라고 믿어.
지금의 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날 힘과 지혜가 없다.
하아.. 계속해서 마리한테는 죄책감만 늘어나는구나.
“아무튼 시내로 나간다고 하셨죠?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그러게...”
일단 스즈를 데리고 조용한 곳을 가기에는 글러보이는데 말이야.
어디로 가는게 스즈를 잘 데리고 갔다고 소문이 날까?
“오락실?”
뭔가 활동적인 스즈에게 오락실이 괜찮은 선택인 것 같았다.
“오락실... 괜찮은 것 같네요.”
거기에 스즈도 괜찮다고 동의하였으니.
괜찮겠지.
스즈의 동의까지 얻었겠다.
나는 그런 스즈의 말에 스즈와 함께 시내의 오락실로 향하기로 하였다.
“오락실이라, 오랜만에 가보는 것 같네요.”
“간지 꽤 오래 됐나보네?”
“네. 어릴 적에 펀치기계를 박살낸 뒤로 가본 적 없거든요.”
“..........”
이거 진짜 괜찮은 걸까?
헤헤..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스즈의 모습을 보며, 나는 괜한 선택을 했나 싶은 불안감이 느껴졌다.
진짜 괜찮은 거겠지?
“이왕 하는거 다시 한 번 신기록을 세워봐야겠죠! 전력으로 휘두를 거에요!”
“......”
진짜 괜찮은거 맞겠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