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46. 데이트
* * *
데이트.
“잠깐만 마리랑 데이트 좀 해도 괜찮을까요!”
아침 식사 시간.
모두가 모여있는 자리에서 나는 당당히 모두에게 그렇게 말했다.
“본처랑 데이트인가요?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아하게 스프를 한 입 떠서 먹는 레이첼이 말하였다.
“관장님과 사부님과의 시간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빵을 고기마냥 씹어먹는 왕페이 역시 이런 내 말에 동의해주었다.
“저는 반대에요!!”
어째서인지 우리와 함께 아침을 먹고 있는 스즈는 적극적으로 반대를 표한다.
에리는 본가로 돌아가 아침을 먹고 있을 시간이기에 다행히 에리는 이 자리에 없었다.
어차피 있다고 한들 에리 역시 동의할 것 같았으니 상관없긴 했다.
“그럼 데이트하고 와도 괜찮군요.”
“저 반대라고 말했는데요!”
“다수결로 인해서 2대1이야. 포기해 스즈.”
“저도 동의하니까 3대 1이에요.”
“그럼 나도 동의하니까 4대1이네.”
계속해서 반대하는 스즈에게 마리 역시 동의하며 말하였다.
그런 마리의 말에 나 역시 힘을 주며 다수결을 4대1까지 만들어버렸다.
“으아앙! 왜 저만 왕따시키는 거에요!”
“본인이 스스로를 왕따 시킨 것 같은데.”
억울하다는 듯 울상을 짓는 스즈가 뗑깡을 부린다.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안 된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내가 마리에게 잘못한 것이 많기 때문에 응어리를 좀 풀기 위해서는 마리와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마리안느랑 시간을 보내시면 저랑도 시간 보내주실 건가요?”
“어....? 어....”
스즈와 함께하는 시간이라...
그것 참 정신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즈를 말려줄 사람이 나 이외에도 한명 쯤은 더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혼자서 스즈의 행동에 하나하나 태클을 걸며 제동을 걸기엔 내 힘이 부족하다.
“자자. 남편이 본처랑 데이트 좀 하겠다는데 방해하시면 안 되죠.”
스즈가 뗑깡을 부리자 옆에 있던 레이첼씨가 스즈를 달랜다.
설마, 레이첼씨가 도움을 줄 줄이야.
그나마 정상인 비율을 따지면 마리와 에리가 정상.
스즈, 왕페이, 레이첼씨가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줄 알았는데.
레이첼씨가 스즈를 말려줄 줄은 생각도 못 했는걸.
“본처라니! 본처라니! 기독교에서 일부다처제의 허용은 안 되는 걸로 아는데요! 마리안느가 본처에 저희를 첩으로 두겠다는 건 마리안느는 지금 신의 뜻을 거역하겠다는 이단자 아닌가요!”
레이첼의 설득에 스즈가 마리를 종교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다.
“아뇨. 초기 구약에도 나와있지만 그때는 일부다처도 가능했어요. 그리고 신약에서 일부일처를 요구하는 듯 나와있긴 하지만 일부다처를 죄악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돼요. 여러 성서들을 보다보면, 일부다처는 타락이 아닌 ‘방탕’ 함과 ‘무책임’한 개인의 대한 신의 책망정도로 정의 할 수도 있는거죠.”
스즈의 공격에 마리가 마치 준비라도 한 듯 무언가 일부 다처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말한다.
그건 그렇고 ‘방탕’ 과 ‘무책임’ 인가..
왠지 모르겠지만, 뭔가 스스로가 찔리는 기분이 든다.
그... 그래서 그런 책임을 지기 위해 오늘 마리와 데이트를 좀 하려는 거라고!
나는 방탕하고 무책임한 남자가 아니다.
....아마도.
스즈와 마리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괜히 찔리는 느낌에 태클을 걸었다.
“그런게 어디있어! 마리안느 이거 완전히 자기 좋을대로 해석하기 위해서 공부했지?! 밤샘공부로 지금 피곤하지?!”
“아, 아니거든요!”
스즈의 지적에 마리가 자신의 눈 밑을 가리며 당황한다.
밤샘 공부한거냐고요...
저 모습은 아마도 피곤함에 생긴 다크서클을 숨기려는 모습일 것이다.
나의 괜한 짓 때문에 마리가 저런 밤샘 공부를 위한 노력을 하게 만든건가..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건 내 탓이 아니라 저기 강제로 나를 덮치려고 한 여자들의 책임이 크다!
“......”
아무튼 그렇다!!
왠지 조금 찔리는 느낌도 없지않아 있긴 했지만 아무튼 내 잘못만이 있다는 것이 아니란 소리다.
그리고 그러니까 안 그래도 점점 위협당하는 마리의 입지를 더욱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일단 마리와의 데이트를 통해 마리의 호감도를 조금 높여야하지 않을까..
나는 일단 그렇게 생각했다.
“으앙~!! 싫어어!! 나만 혼자 왕따 시키지 말란 말이에요! 아니면 나중에 나랑도 데이트 제대로 해주시던가! 세컨드에 대한 취급이 이것 밖에 안 돼요?!”
“스스로를 세컨드라고 인정해버렸네...”
본인 입으로 스스로를 세컨드라고 칭하는 스즈의 말에 바로 지적해버리고 말았다.
“지금 다들 마리가 압도적 본처라고 인정하는 분위기잖아요!”
“그래서 대세에 따르기로 한거야...?”
뭐, 그렇다고 한다면 나 역시 나쁘지 않은 상황이긴 했다.
“흐흥...”
그리고 그런 스즈의 인정에 마리 역시 기고만장한 태도를 취하며 코웃음을 쳤다.
이거 괜찮은거냐고...
“아무튼 다음에 저랑도 데이트 하는 거 아니면 전 무조건 반대에요! 데이트 할 때 중간에 끼여서 깽판칠거야!!”
“어린애같이 왜 이래. 스즈...”
진짜로 어린애를 하나 키우는 느낌이었다.
하긴... 스즈의 승부욕이나 이런저런걸 생각해보면 스즈가 어린애 같은 녀석이긴 하지.
응애. 나 아기 스즈. 내 마음대로 할꺼야!!
음... 어딘가의 단비꺼야!! 라고 말하는 애가 갑자기 생각났다.
무서워... 설마 스즈가 여기서 더 각성을 한다면 그런 녀석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
제발 부탁이니 그런 녀석으로만 자라지 말아다오...
이런 말을 하긴 했지만, 일단 스즈도 다 큰 어른이다.
“가슴만 컸다 뿐이지, 속은 좁아 터졌네요.”
뜬금없이 마리가 스즈에게 가슴을 가지고 시비를 건다.
마리... 괜찮겠어? 그 화제로 넘어가면 결국 마리 너만 상처입을 텐데..
그런 걱정을 하며 나는 스즈에게 시비를 건 마리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러는 마리안느는 속은 그렇게 크면서 가슴은 왜 그렇게 작대~?”
“뭐요!!”
이것 봐... 바로 카운터 펀치가 들어오잖아.
물론, 저번부터 말했지만 마리의 가슴은 평균 사이즈다.
스즈나 왕페이, 레이첼씨가 큰 것일 뿐이지 마리의 사이즈만 따지자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사이즈다.
오히려 작다라고 말하려면 에리의 사이즈를 가지고 논해야지..
“좋겠다~ 마리안느는 가슴도 작아서 속이 그렇게 넓고 깊네~ 왕페이랑 레이첼씨랑 나는 가슴이 큰 만큼 속이 좁은거고~”
“뭐가 어쩌고 저째요....”
스즈에게 한마디 했다가 바로 카운터를 역풍으로 맞아버린 마리였다.
그러니까 왜 이기지도 못할 화제를 꺼내서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버리는거야 마리..
울컥하는 마리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얼른 이 화제를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러면, 또 마리가 흥분해서 이상한 제안에 그냥 승낙해버릴지도 모른다.
마리는 평소에는 좀 냉정하고 시스터답게 넓은 포용력을 보여주지만...
이상하게 가슴 이야기만 나오면 이성을 잃어버리니까 말이야.
“전 가슴만큼 속도 넓다고 생각하는데요.”
“맞습니다. 무도인에게 넓은 포용력은 필수인 법입니다.”
마리와 스즈의 싸움에 레이첼씨와 왕페이가 개입하여 마리의 편을 들어 주었다.
“뭐에요! 그럼 저만 속이 제일 좁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왕페이와 레이첼씨의 가세에 스즈 역시 당황하며 둘에게 소리쳤다.
“뭐... 마리씨를 제외하면 가장 크기가 작으니까..”
“사부의 그 열정적인 면을 좋아하긴 하지만, 가끔 너무 불탈 때가 있습니다.”
“흐아앙!! 다들 나만 미워해!!”
둘의 가세에 스즈가 식탁에 엎드린 채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정신사납게 울거나 하지 말라고요...
하... 이걸 진짜 뭐 어떻게 하면 좋냐..
울기 시작하는 스즈의 모습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마리를 바라보았다.
이런 내 눈짓에 마리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스즈의 등을 토닥였다.
“미스즈씨.”
“훌쩍...”
마리가 스즈의 등을 토닥이자 삐진 듯 여전히 훌쩍이며 마리를 보지 않는다.
미쳐버리겠군...
괜한 이야기를 꺼낸건가...
그냥 마리한테만 슬쩍 이야기를 해서 여기 있는 사람들 몰래 데이트를 즐기러 가야 했던걸까...
그런 후회를 하며 나는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바라보았다.
“알았어요. 저 다음에 남편이랑 시내라도 나갔다 오도록 하세요.”
“정말?”
“스즈....”
마리의 양보에 훌쩍이던 스즈는 그대로 고개를 들며 마리에게 물었다.
그렇게 금방 바뀌어버리는 스즈의 태도에 나는 조금 짜게 식은 표정을 지으며 스즈를 부른다.
그러나 이런 내 부름은 무시한 채 스즈는 마리의 말에 눈을 빛내며 묻는다.
“나도 다음에 데이트 가도 괜찮은거야?”
“네... 허락 할게요.”
“마리안느처럼 달링이랑 단 둘이?”
“네. 뭐.. 그렇게 하시죠.”
“내 의사는...?”
둘이서 진행되는 스즈와의 데이트 건에 나는 조심스럽게 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단숨에 묵살되어버리는 내 의견.
그래요... 어차피 저는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최약체..
네. 무능력자입니다.
원래 최약체에겐 선택권이라던가 자유 의사는 존재하지 않는 법.
그냥 체념하도록 하자...
“헤헤... 마리안느~ 사랑해.”
아까 전까지 그렇게 가슴으로 놀려대놓고선...
진짜로 아이같은 모습을 보이는 스즈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거 나중에 스즈랑 시내라도 나갔다가 바닥을 뒹굴면서 이거사줘 저거사줘 이러는거 아냐?
왠지 그런 모습을 보여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은 스즈였다.
“흐응... 그런 거라면 저도 다음에 사부님과 데이트를 가도 괜찮겠습니까?”
“그러게. 나도 본처라서 양보해주려는 거였는데 각자 데이트권을 주는거면 사양하지 않지.”
“여러분..? 그러니까 제 의사는...”
“하아... 뭐, 어쩔 수 없네요.”
“마리?!”
분위기에 편승하여 왕페이와 레이첼씨가 각자 나와 데이트권을 얻으려 했다.
그런 둘의 모습에 마리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지 머리를 부여잡은 채 그대로 둘에게 승낙을 하고 말았다.
아니, 그러니까 내 의사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