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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의 평범한 유부남-72화 (72/77)

〈 72화 〉 어둠속의 빛

* * *

순간 세상이 멈추었다. 이 드넓은 공간 속 들리는 소리라곤 그저 벽에 걸린 채 째깍째깍 움직이는 시계 초침과 심한 떨림을 보여주는 그의 왼손뿐.

들고 있던 숟가락을 책상에 떨어뜨린 후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일 정도로 혼란스러운 기색을 보이는 오유진.

뭐랄까.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들킨 범죄자 같다고 해야 할까? 살짝 내려오는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심한 눈 떨림이 더욱 그런 느낌을 부각 시켜주고 있었다.

' 역시. '

이로써 확실해졌다. 그가 다친 이유는 단순한 사고 따위가 아니라 모종의 사건이 존재한다는 것을.

뭐, 솔직히 윤지 언니에게서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의심은 계속하고 있었다. 애초에 단순한 사고 따위로 입을 수 있는 상처가 아닌데 단순히 넘어져서 이렇게 다쳐버렸다고?

아무리 끼워 맞추려고 노력해보아도 말이 안되는 소리란 것은 오유진, 그를 빼고서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혹시나, 만에 하나 세상일이란 그 누구도 모르는 법이기에 단 일 퍼센트의 가능성도 여지에 두고 있었지만 지금 그의 반응을 보아서는 그 가능성 또한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는 게 맞겠지.

'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거지? '

여기서 생기는 단 하나의 의문점. 도대체 그는 어째서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자꾸만 사실을 회피하면서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 우리를 믿지 못하는 걸까? 그게 아니면 단순한 수치심? 그것도 아니면 PTSD? '

이유는 많았고 그에게 접목시킬 수 있는 가설 또한 한두가지가 아니었기에 그녀는 이렇다 할 결과를 딱히 내리지 못한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겨 차가운 눈동자와 함께 그를 빤히 노려보았다.

여전히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 것인지 거친 숨소리와 함께 왼손으로는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고 가쁜 숨을 몰아 내쉬는 유진.

그러나, 그 또한 이런 모습을 더욱 보여주었다간 여태까지 자신이 보여주었던 행보와 정반대되는 모습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형식으로든 문제가 생길 거라는 걸 눈치챈 것일까?

조금 전까지 안절부절못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이내 마음을 고쳐잡고선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려 그녀를 똑바로 마주 본 채 태연한 표정을 지어냈다.

" 네. 넘어졌었죠. 그런데 그게 왜? "

그러나, 그녀는 볼 수 있었다. 태연한 표정 속 미세한 떨림을 보이는 그의 두 눈동자를.

" ... "

짧은 긍정의 말속 마치 뭐가 문제냐는 듯 다분한 의미가 담겨 있는 어투와 함께 태연한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 움직이는 유진.

그러나, 어린 나이에서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일을 겪고 수많은 인간을 만나온 그녀가 이런 하수의 속셈에 넘어가는 일 따윈 없었다.

" 약간 실례스러운 말일 수도 있지만, 도대체 어떻게 넘어지셨길래 이렇게까지 다치신 건지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물어본 겁니다. "

비수가 담겨 있는 날카로운 질문을 내던지는 그녀.

어떻게 본다면 단순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질문은 ' 넘어지긴 개뿔. 단순히 넘어져서 다친 게 아니라 다른 일이 있었던 거잖아. 안 그래? ' 라는 말을 돌려서 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의 뜻도 담고 있지 않았다.

차갑게 식어있는 눈동자와 함께 그녀가 어디 한 번 대답해보라는 듯한 기색을 풍기자 그 또한 그녀의 말속 진정한 의미를 알아챈 것인지 몸을 움찔거리며 잠시 흔들리는 기색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역시 당연하게도 그의 입 밖으로 들려오는 대답은 그녀가 원하는 대답이 아닌 아까부터 계속해서 들어왔던 똑같은 대답일 뿐.

" 조금, 심하게 넘어지긴 했죠. 제가 원래 평소에는 이러지 않지만, 또, 어떨 때는 한없이 모자라지고 덤벙대고 조심성이 없어져서.... "

" 도대체 뭘 어떻게 덤벙대고 조심성이 없어지면 그렇게 되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속된 말로 6층 높이의 건물에서 굴러떨어져도 이 정도는 되지 않을 텐데. "

계속되는 그녀의 회유와 긁기.

" 글쎄요. 넘어질 때도 그렇고 그 이후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뭐라고 대답해드릴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워낙 경황도 없었고 강한 충격 때문에 제정신도 아니었으니까. "

하지만, 그녀의 회유와 긁기에도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는 유진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평행선. 어떻게든 뚫으려는 창과 어떻게든 막으려는 방패의 대립은 도저히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허공에서 부딪히는 서로의 시선만이 더욱 거세지고 사나워질 뿐이었다.

' 시발. '

답답하다.

답답해 미칠 것 같다. 언제까지 이 평행선을 내달려야 하는 거지?

사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때 무슨 일이 있었고, 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길래 그 꼴로 그곳에 쓰러져 있었던 것인지, 혹여라도 안 좋은 일을 당한 건 아닌지 꼬치꼬치 캐물어 마음속에 존재하는 이 혼합된 감정을 당장이라도 풀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아닌 내가 알 수 없는 어떠한 일로 인해 큰 상처를 입고 평생 극복해내지 못할 장애를 가지게 된 안타까운 피해자일 뿐이었으니.

나에게는 아무렇지 않다고 느껴질 질문이 반대로 그에게는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스위치, 혹은 쓰라린 마음을 후벼파는 창이 되지 않는다고 어찌 확신할 수 있겠는가.

사실, 어찌 보면 정해져 있는 정답이었고 그 이상의 선을 넘을 수 없는 그녀로서는 결국 먼저 허리를 숙이는 것이 예정돼있는 정답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 그렇게 그녀가 한 발자국 물러나면서 모든 일을 끝냈어야 했다.

하지만, 무언가 핀트가 어긋난 걸까? 착잡한 상황 속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는 단 한 가지의 생각은 그녀 안에 있는 단 한 가지의 줄을 끊어버리기에는 충분했고 또한 예정되어있는 것이나 다름없던 정답을 무용지물로 만들기에는 충분한 일이었다.

" 도대체 유진 씨는 뭘 두려워하고 있는 겁니까. "

아까처럼 말속에 진정한 저의를 숨기고 돌려서 말하는 것이 아닌 갑작스럽게 뱉어내는 그녀의 직설적인 화법에 당황한 것인지 하던 말을 멈춰버리는 유진. 하지만, 그녀는 하던 말을 멈추지 않고서 끝까지 계속해서 이어가기 시작했다.

" 윤지 언니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생각해보지만, 도저히 답이 나오지를 않더군요. 도대체 유진 씨는 왜 바른대로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겁니까? "

" 아,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바른대로 말하라니. 애, 애초에 전부 사실대로 말하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바른대로 말을 하라고 하면 제가 도대체 무, 뭐라고 말을 해야..... "

" 단순히 넘어져서 다치게 됐다라. 하, 씨발. 솔직히 생각해보세요. 그 말이 봊도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는 걸 그 누구보다도 본인이 제일 잘 알고 계실 거 아닙니까. "

" ... "

" 이해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떠올리기에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니겠지요. 아니, 오히려 떠올리고 싶지 않을 겁니다. 저 또한 그랬기에 지금 유진 씨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백번 이해할 수 있죠.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어떤 것도 바뀌지 않는 법입니다. "

" .... "

" 유진 씨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그 어떤 것도 바뀌지 않을뿐더러 아무런 도움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

" .... "

" 혹여나 보복이 두려운 겁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런 걱정은 아예 집어치워 두셔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보복은커녕 곁으로 다가오기만 한다면 내가 직접 두 손으로 사지를 분질러줄 자신이 있으니까. "

" .... "

" 그게 아니라면 그때 있었던 일이 혹시 입 밖으로 꺼내기가 조금 곤란한 껄끄러운 일이었던 건가요?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하게 그저 저희를 믿지 못하는 건가요? "

" .... "

" 무어라고 말을 좀 해주세요. 전혀 믿지도 못할 허무맹랑한 소리만 계속하지 마시고! "

그러나, 계속되는 질문에도 반응은커녕 아무런 대답도, 무언가를 하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 그의 거듭된 행동에 결국 답답함과 짜증감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인지 그녀는 격양된 감정을 숨기지 못하며 커진 목소리로 병실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고래고래 내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깨를 들썩거리면서도 왼손에 쥐고 있던 숟가락을 책상 위에 놓아두고 몸과 가까이 붙어있던 죽이 담긴 그릇을 멀리 밀어버리는 것으로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싫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하려고 하는 의지도 없다는 의견을 간접적으로 피력한 그는 더이상 그녀의 눈빛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옮겨냈다.

조용한 정적만이 흐르는 병실 속, 주먹을 꽉 쥔 채로 분한 감정을 참고자 입술을 짓이기는 그녀와 죽은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그의 대화는 그렇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은 상태로 단절되어 버렸다.

* * *

넓고 화려하면서도 세련미가 넘치는 병원장실 속,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 후 쉬지 않고 다시 입에서 뭉게구름을 뿜어낼 준비를 하는 그녀를 보며 임윤지는 책상 의자에 앉은 채로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표정 보니 너도 실패한 것 같네.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먼저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그분은 이야기를 할 준비도 의지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로 보이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하더라도 원하는 대답을 얻지는 못할 거라고 말이야. "

" .... "

결국 대화가 단절돼 어색한 기류만이 감돌던 병실을 신경질적으로 빠져나와 곧잘 병원장실로 달려가 모든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그녀에게서 한 소리를 듣고 있는 중인 지연은 아주 익숙하게 담뱃불을 붙이고선 다시 한번 입 밖으로 하얀 뭉게구름을 뿜어냈다.

" 후우. "

" 그분이 뭐라고 대답하던? "

" ....그냥, 자꾸 넘어져서 다친 거라는 소리만 반복할 뿐이야. 회유하고,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긁어도, 달래보아도, 무슨 짓을 하든지 간에 계속.... "

" 넘어져서 다쳤다라. 너도 지겹게 듣고 왔나 보네. 나도 정말 귀에 딱지가 눌어붙을 정도로 지겹게 듣고 왔는데 말이야. "

" .... "

" 참 의문이야. 본인의 꼴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원인에 관해 물으면 들키면 안 되는 보물이라도 숨기는 것처럼 티가 나는 거짓말도 스스럼없이 뱉어내면서 최대한 대답을 회피하는데 정작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동자는 계속해서 흔들린단 말이지. "

동감한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말과 함께 대답을 회피하고 태연한 척을 하는 와중에도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두 눈동자는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 그러게 말이야. "

" 단순히 넘어져서 사람의 몸이 그렇게 망가졌다라. 유치원생을 붙잡고 물어봐도 뻔히 보이는 거짓말인 걸 알 수 있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이다니. 그런데데 누가 봐도 거짓임을 알 수 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 모습 또한 참 뭐라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웃겨 보이지 않아? "

" ....그렇지. "

썩은 미소와 함께 이내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신경질적으로 책상에 던져버린 임윤지는 곧이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후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고 있는 지연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온 후 나지막이 이야기의 운을 뗐다.

" 무슨 생각하는지 다 보인다. 분하면서도, 걱정되고 봊같겠지. 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자꾸만 회피하려는 모습만 보이는 그 사람이 답답하다고 생각할 테고. "

" .... "

" 근데 알잖아? 애초에 우리가 아무리 도움을 주려고 경찰에 인계하던, 도움의 손길을 내밀던 결국 당사자가 협조하지 않는다면 전부 무용지물인 것을. "

" .... "

" 아까 겪고 왔으면 그분이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로 무언가를 말할 마음 따위는 없어 보인다는 걸 느꼈을 거 아니야. 그렇게 된다면 아까 말했듯이 우리가 아무리 도움을 주려고 경찰에 인계하던, 도움의 손길을 내밀던 전부 무용지물이 될 게 뻔히 정해져 있어. 이미 오답이 나와 있는데 그 답을 체크할 만큼 네가 멍청한 사람은 아니잖아. 안 그래? "

" .... "

" 내가 봤을 땐 넌 인간으로서, 그리고 안면이 있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는 전부 지켰다고 봐. 그러니, 뭘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기본적인 것만 지켜. 그리고 어차피, 조금 있으면 너도 포함해서 경섭이 걔도 그분 옆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게 될걸? "

더 이상 병원장실을 담배 연기가 전부 차지하는 것을 가만히 놓고 볼 수만은 없었던 것인지 그녀가 말을 하면서 손을 움직여 지연의 입에 물려있던 담배를 뺏어버려 강제로 재떨이에 버려버렸지만, 지연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보이는 기색 대신 오히려 의문이 섞인 목소리로 임윤지에게 대답을 촉구할 뿐이었다.

" 나랑 경섭이가 유진 씨 곁에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니.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

해야 할 검사라도 남은 건가? 하지만, 그녀의 짐작과는 달리 들려오는 대답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러나 이 거지 같은 상황속에서 아주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 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 왜긴 왜겠어. 네가 나한테 했던 말 기억 안 나? 저분 유부남이니까 괜히 이리저리 엮지 말라고 했던 거 말이야. "

" 아......! "

" 이제 기억 나냐? 아무튼, 이것저것 해서 그리 어렵지 않게 아내분이랑 연락이 닿을 수 있었고 현재 대충 자초지종은 전부 설명 해놓은 참이야. "

" .... "

" 아마, 소식을 들었으니 이곳으로 열심히 달려오고 계시겠지. 이쯤돼면 너희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할 이유는 굳이 따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대충 짐작 가지? "

가다마다. 대가리에 든 게 없는 골빈 년놈들만 아니면 모두가 알아채지 않을까?

" 너야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행동 조심히 해. 하루아침에 멀쩡했던 남편이 저렇게 변해버렸는데 아내로서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어. "

" 그렇겠지. "

옆에서 지켜만 보는 제삼자로서도 저절로 이가 갈리고 두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가는데 만약 내가 유진 씨의 아내였다면 아마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선 이리저리 난동을 피웠겠지.

그 누구보다도 사랑스럽고 멀쩡했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모종의 알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해 병실에 누워 나를 맞이한다? 그 아픔과 상실감을 이루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감정이라는 것을 가지고 생활하는 인간으로서 현재 헤아릴 수 없는 고통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이름 모를 그녀를 생각하며 숙연해진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그저 혀를 차거나 깊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 아, 씨발.... "

많은 사람의 걱정과 우려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유진의 아내, 선유린이 걸려온 연락을 받고 난 뒤 고통에 허덕이면서 무겁고 절망적인 마음을 이끌고 병원으로 달려오는 것이 아닌 차갑게 식은 눈빛과 마치 짐짝을 치우러 가는 듯한 귀찮음이 다분히 묻어있는 표정으로 입 밖으로는 싸늘한 욕을 뱉어내며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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