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어둠속의 빛
* * *
아담한 책상 위 작은 그릇에 담겨 저절로 입안에 군침이 싹 돌게 만드는 자태를 뽐내는 소고기 야채 죽의 모습.
그러나, 병실 침대 위에 앉아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유진은 군침을 삼키거나 커녕 숟가락을 들어 올리기는커녕 그저 모락모락 솟아 오르는 김을 멀뚱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눈동자로 동영상을 찍는 것처럼 음식의 자태를 기록하려는 것도 아니고, 의미 없는 시간만이 계속 흐르자 결국 참다 못해 옆에서 그 광경을 계속 지켜 보고 있던 그녀는 혀를 한 번 차더니 굳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 움직였다.
" 안 드십니까? "
" .....아. ㄴ, 네? "
" 혹시 뭐 소고기 야채 죽을 싫어 하신 다거나 따로 알레르기가 있다 거나 그런 건 아니시죠? 제가 아무래도 취향을 잘 모르다 보니 일단 가게에서 맛 좋고 인기 좋은 메뉴로 골라온 건데... "
" 아, 아니에요. 저 음식 가리는 거 없이 다, 다 잘 먹어요. 아, 알레르기 같은 것도 크게 없고요. "
" 아니, 알레르기 같은 것도 없으시고 음식을 가리는 것도 아니신데 그럼 왜 아까부터 숟가락도 안 들고선 틀린 그림 찾는 사람처럼 멀뚱히 음식을 오 분째 바라만 보고 계신 겁니까? "
" .... "
" 혹시 배가 그렇게 고프지 않으신 거에요? 그렇다면 괜히 저를 생각하는 마음에 억지로 집어넣으려 하지 마시고 뚜껑 덮어 놓으셨다가 나중에 드셔도 됩니다. 저 신경 쓰신다는 마음에 억지로 드실 필요 없어요. "
" 아, 아니요. 배가 부른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배는 고픈데 그게 아니라 다, 단지..... "
" 단지? "
말의 끝을 마무리 짓지 않고 자꾸만 말끝을 흐려가면서 머뭇거리는 그의 행동이 답답하게 느껴진 건지 그녀가 미간을 살짝 좁히고 목소리를 살짝 높이며 그에게 빠른 대답을 촉구하자 어깨를 살짝 들썩인 그는 곧이어 천천히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기 시작했다.
" 너, 너무 죄송스러워서.... "
물론 더듬거림은 여전했고 목소리 또한 기어들어 갈 만큼 작았지만 그래도 이곳이 다른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들을 정도의 시끄러움을 가진 공간도 아니지 않은가?
어렴풋이긴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의 말을 전부 알아들은 그녀는 그의 말에 당황하면서도 의문감을 감추지 못하고선 강풍으로 돌아가는 선풍기처럼 빠른 속도로 눈을 끔뻑 거리기 시작했다.
" 예? 죄송스럽다고요? 아니, 도대체 뭐가 죄송스럽다는 건지... "
" 그, 그냥 전부 다 죄, 죄송스러운걸요. 이 죽 비, 비싼 거잖아요.... "
" 예? "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주마등과 함께 순간적으로 뇌의 사고가 정지된 그녀는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본인이 잘못 들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곱씹어 보았다.
생각해보자. 무슨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을 대접해주는 것도 아니고 고작 끽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 죽 하나 대접해줬다고 이렇게 미안해 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곱씹고 점검해보아도 내 청각에는 문제가 없고, 그렇다는 것은 즉, 아까 내가 들은 게 잘못되지 않았다는 뜻인데.
" ... "
잠시 이어지는 정적 후, 순간적으로 뇌의 사고가 정지된 그녀는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머릿속으로 완전히 계산을 끝마쳤고 곧이어 어이가 정말로 없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실소를 내뱉으며 고개를 절레 절레 저어냈다.
" ....하! 내가 스테이크나 트러플이나 푸아그라 사주면서 비싼 거 아니냐는 소리는 들어봤는데 살다 살다 죽 한 번 사준 거로 너무 비싼 걸 사준 거 아니냐면서 미안해 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 아니, 죽이 비싸봤자 뭐 얼마 한다고 그러는 거예요? 이거 끽 해봐야 만원 조금 넘는 거예요. "
" 그, 그래도... "
" 뭐가 그래도 에요. 상식적으로 여기다 금 덩어리를 하나 집어넣어도 몇십만 원은 안 나오는데. 그리고 설령, 이 죽이 몇 십만 원. 아니, 몇 백만 원이 넘는다고 하더라도 저는 누군가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데에는 돈을 아끼는 사람이 아니니 괜히 쓸데없는 걱정이나 미안함 가지지 말아요. 더군다나 내가 환자한테 그런 아까운 마음을 가질 만큼 쓰레기 새끼도 아니고. "
" ...그, 그렇지만 음식 뿐만 아니라 이 병실도 전부 지연 씨가 부, 부담한 거잖아요. 하, 한눈에 봐도 엄청 비싸 보이는 곳인데... "
아니, 무슨 천진반도 아니고 그건 또 어떻게 알아낸 거야?
" 그 아까 들어온 의, 의사 분이랑 이야기하다 우연히 알게 된 건데.... "
어떻게 알았냐는 그녀의 강렬한 눈빛에 못 이기고 서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그가 사실을 말하자 그녀는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그에게 나불댄 임윤지, 그녀를 머릿속에 그려내면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 그 언니는 무슨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전부 나불대고, 지랄인지 원, 아니, 뭐 제가 부담한 것도 사실이고 이 병실이 엄청나게 비싼 것도 사실이긴 한데 유진 씨가 그렇게 신경 쓸 정도는 절대로 아니에요. "
" ... "
" 아까 들어온 그 여자 의사가 이런 이야기는 안 해줬나 봐요? 아니면 들었는데 까먹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제가 여기 병원의 높은 분이랑 매우 잘 알고 있는 사이라서 절대 정가로 계산하는 법이 없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악착같이 깎아내기 때문에 그런 가격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더군다나 유진 씨도 알다시피 제가 경섭이 누나인 건 알고 계시죠? "
" ....네. "
" 무슨 고기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음식 한 번 가지러 저희 집에 방문해보신 적 있으시잖아요. 그때, 저랑 처음 마주쳤고 또한 저희가 거주하는 집이 어떤 곳인지도 목격하셨고. "
" 네. "
" 말하다 보니 약간 자랑하는 것 같이 느껴지긴 하는데 하여튼, 그럼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때 유진 씨가 봤던 광경 속의 전 고작 해봐야 개인 병실에 불과한 이런 것을 계산하는 것에 아까워하거나 휘청거릴만한 사람처럼 보이나요?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왜냐고? 단 한치의 사족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말이 철저하게 정답 그 자체였으니까. 결국 그는 무어라 목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는 대신 입술을 꽉 붙이고선 고개만을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납득했다 해도, 분에 넘치는 베풂을 받았다면 작은 감사라도 표현을 해야 하는 것이 그의 신념이자 마음속에 자리 잡은 상식이었기에 몸이 불편한 와중에도 몸을 돌려 움직이지 않는 오른팔 대신 왼팔로 서랍을 뒤진 그는 잔뜩 구겨지고 피로 젖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쭈글쭈글해진 지갑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그녀에게 조심스레 내밀었다.
" 저, 이, 이거라도 받아주세요. "
지갑과 마찬가지로 잔뜩 구겨지고 핏물에 젖어 잔뜩 쭈글쭈글해져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폐란 걸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그의 손 위에 놓여있는 오천 원 짜리 지폐.
" 주, 죽값에도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은 마련해 차차 갚아나갈 테니 지금은 이것만으로 참아주실 수 있으실까요...? "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움직이지 않는 오른팔 대신 왼팔로 건넨 오천 원짜리 지폐를 본 그녀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자신에게 건넨 오천 원을 밀어내고서 돈 따위 안 갚아도 되니까 그냥 편하게 있으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끝내 그렇게 행동할 수는 없었다.
소리를 질러봤자, 성질을 내봤자, 화를 내봤자, 짧은 시간이지만 여태까지 봐온 그의 성격상, 경섭이에게 들어온 그의 모습이라면 내가 받아들일 때까지 끝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을 테니까.
" 알겠으니 몇 년이건 몇십 년이건 기다려줄 테니 부담 없이 갚아나가요. 기다려줄게요. "
그렇기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의 말을 받아주었다. 그러자, 여태까지 모든 삶을 비관하듯이 얼굴에 그려낸 무표정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순간적으로 그의 얼굴에 감도는 옅은 미소.
정말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 미소였지만 당연하게도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던 그녀는 이빨로 입술을 세게 짓누를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 기다려준다는 말 한마디에 미소짓는 그의 모습이 정말 바보같이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바깥으로 티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킨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플라스틱 숟가락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 드세요. 원래 죽이란 게 식기 전에 먹어야 맛있는 법이잖아요. "
" 아, 네. 감사합니다. "
" 뜨거우니 후후 불어서 드셔야 해요. 괜히 허겁지겁 먹었다가 입천장 다 데어버리면 고생하는 거 알죠? "
이제야 근심·걱정을 모두 놓은 것인지 숟가락을 받아들인 그는 아까 말했던 것처럼 배가 많이 고팠던 것인지 코를 그릇에 박아 넣을 지경으로 허겁지겁 그릇에 담긴 죽을 해치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늘 언제나 사용하던 오른손으로 수저를 조작하는 것이 아닌 익숙하지 않은 왼손으로 수저를 조작하고, 움직여서 그런지 숟가락에 담긴 음식물 중 반 이상은 바깥으로 튀어 나가 책상을 마구 더럽히거나 턱을 타고 흘러내리며 옷을 더럽히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일그러지는 그의 얼굴.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무어라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 누구보다도 지금 이 상황이 고통스러운 것은 다름이 아니라 당사자 본인일 텐데.
그렇기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조심스레 티슈로 그의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음식물과 책상을 닦아줄 뿐이었다.
그렇게 그의 턱과 책상을 번갈아 가며 닦아주기를 몇 번 반복하자 어느새 축축해진 티슈를 버리기 위해 숙였던 허리를 곧게 편 후 쓰레기통에 티슈를 버린 그녀는 빠르게 뽀송뽀송한 새것을 꺼냄과 동시에 정말 무심한 듯이 덤덤히 한 가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 유진 씨. 윤지 언니한테 대충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처음에 듣고선 어찌나 깜짝 놀랐던지 어안이 저절로 벙벙해지더군요. "
무슨 이야기를 들었길래 어안이 벙벙해졌다는 걸까? 찔리는 구석도 없을 정도로 이야기 자체를 별로 하지 않았기에 그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선 고개를 갸웃 움직였지만 이내 들려오는 그녀의 말소리에 모든 행동을 굳게 멈춰버릴 수밖에 없었다.
" 넘어지셨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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