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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의 평범한 유부남-69화 (69/77)

〈 69화 〉 어둠속의 빛

* * *

아침 햇살과 광활한 병원의 부지가 한눈에 보이는, 직원들에게는 소위 명당자리라고 불리는 탁 트인 테라스 형식의 직원 흡연실 속 난간에 팔을 기댄 채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을 바라보며 지연은 폐부 속 깊숙이 들어온 연기를 바깥으로 밀어냈다.

" 하아. "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정말 빌어먹게도 야속한 제 마음을 몰라주고 맑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는 하늘 위 뭉게뭉게 떠다니는 구름처럼 특유의 냄새를 풍기며 저 위로 날아가는 담배 연기와 함께 지연은 이내 끝까지 타들어 간 담배를 들고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녀의 시야에 들어오는 재떨이 위 수북이 쌓여있는 담배의 산.

인기가 좋은 흡연실이었기에 단순히 다른 직원들이 피고 버리고 간 꽁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저 담배의 산은 불과 몇십 분 전부터 자리를 잡고선 뻑뻑 피워내 만들어낸 그녀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었다.

헌터가 아닌 일반인이었으면 이미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했을 정도로 높이 쌓여있는 담배산의 위용은 그만큼 엄청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꽤 심각한 감정을 가지게 하겠지만 그녀는 잠시 눈길을 고정했을 뿐.

이내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대충 처리하고선 다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선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일 뿐이었다. 마치, 엄청난 연기를 내뿜으며 철도 위를 야생마처럼 내달렸던 증기기관차처럼.

그 순간, 자신의 폐를 담보로 하는 치킨게임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선 실행하고 있는 그녀의 등 뒤로 천천히 걸어오는 하얀 가운을 입은 여성.

당연하게도 헌터이기에 등 뒤로 누군가가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는데 만약 이곳이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게이트라면 재빠르게 뒤를 돌아 주먹을 휘두르거나 무기를 휘둘렀겠지만, 이곳은 병원 외부 흡연실이 아니던가?

분명 자신과 똑같이 단순히 담배를 피우러 온 사람일 가능성이 거의 백 퍼센트였고 그렇기에 그녀는 큰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등 뒤에 서 있는 여성이 가스가 떨어져 불어오는 바람에 힘없이 흔들리는 그녀의 라이터 불을 강제로 꺼버리고 빼앗아버리자마자 그녀는 쓰고 있지 않던 신경도 곤두세워 인상을 찌푸리고선 고개를 뒤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 씨발, 뭐야? "

안 그래도 시궁창 같던 기분을 더욱 악화시키는 몰상식한 누군가의 행동에 짧은 욕설과 함께 무어라 화를 내려고 하는 찰나, 그녀의 시야에는 서서히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는데.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짧은 욕설과 함께 무어라 화를 내려고 하던 그녀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아까까지만 해도 준비하고 있었던 짜증과 분노가 아닌 반가움과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아리송한 감정, 그리고 희미한 웃음이었다.

" 담배 좀 작작 피워. 이 년아. 청소하시는 아저씨가 여기 와서 보면 놀래 기절하겠다. 거 몸에 좋지도 않은 걸 이렇게 많이 피면 어떡해? "

재떨이 위 수북이 쌓여있는 담배의 산을 보며 그녀를 타박하는 여성. 그러나, 지연은 여성의 타박에 눈살을 찌푸리기는커녕 피식 웃음을 보이면서 가볍게 말을 맞받아쳤다.

" 미안한데 일단 그런 충고는 일단 손에 들고 있는 담뱃갑이랑 라이터 먼저 버리고 난 뒤에 얘기해야 순서가 맞지 않을까? 언니. "

" 큭. 들어와서 잔소리 할 때 아차 싶어서 바로 숨겼는데 그 찰나의 순간에 그걸 또 본 거야? 기집애. 쓸데없이 동체 시력만 좋고 지랄이네. "

지연은 자신의 뒤에서 머쓱한 웃음을 보이고 있는 임윤지에게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뱉어냈다.

" 아니, 애초에 직업이 의사, 심지어 병원장인 사람이 담배를 피우러 오면 어떡해? 나한테는 몸에 좋지도 않은 걸 이렇게 많이 피면 어떡하냐고 잔소리를 쏟아내면서 정작 얼마나 안 좋을지는 이 세상에서 제일 잘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이 흡연실에 제 발로 걸어들어온다가 뭔가 앞뒤가 안 맞지 않아? "

" 야! 담배 한 대 피우는 거랑 수십 대를 연속으로 피는 거랑 같냐? 아무리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는 헌터라고 하더라도 좀 폐를 쉬게 내버려둬야 하는 법이야. 쯧, 하여간 계집애 무식해서는. "

" 갑자기 여기서 무식 이야기가 나온다고? "

" 난 의사면서도 힐러잖아? 그 누구보다도 자기 몸에 대해 잘 안단 말이지. 그러니까 난 좀 펴도 괜찮은 거야. 그리고 애초에 좆같고 힘들고 안 좋고 여러모로 불행한 일들이 생겼을 때 담배를 안 피우고서야 배길 수 있겠어? 그런 상황에서 너같이 무리해가며 담배를 태우면 몸에 영향을 주지만 적당한 흡연은 스트레스를 풀어주면서 몸의 긴장을 완화시켜 도움을 주는 법이야. 잘 알아둬. 이년아. "

손을 휘휘 저어내며 지연과 똑같이 난간에 팔을 걸치고선 담뱃불을 붙이며 고개를 저어내는 임윤지의 행동에 점점 짜게 식어가는 지연의 눈빛은 어느샌가 세로로 치켜세워졌고 곧이어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방금 자신이 했던 것처럼 입 밖으로 하얀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임윤지, 그녀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기 시작했다.

" .........본인도 본인이 희대의 개 씹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건 인지하고 있지? "

" ..... 알고 있어. "

" 알고 있어서 다행이네. 씨발, 내가 여태까지 살아가면서 들었던 개소리 중 단연코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병신 같은 이야기였어. 아마, 전 세계적으로 개소리 컨테스트가 열리게 된다면 아마 언니가 방금 말한 이야기가 일등을 차지하고도 남을 정도일 거라고 내가 장담할게. "

" 그냥, 씨발 정신도 살짝 나가고 여러모로 복잡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인 거니까 넘어가. 뭐, 다들 그렇겠지만 원래 편한 사람끼리 있으면 뻘소리 같은 거 많이 하잖아. 유독 방금이 좀 심했던 거라고 생각해. "

" 근데 까고 말해서 흔히 하는 뻘소리라고 하기에는 약간 진심이 들어가 있었던 걸로 느껴졌는데..... "

" 그냥 넘어가라고. 씨발. 그냥 아니라면 아닌 거지. 뭘 자꾸 꼬치꼬치 캐묻고 지랄이야. 오랜만에 성창이나 메이스로 진짜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아볼까? "

" 내가 아직도 예전의 나로 보이는 거야? 예전이면 모를까. 어차피 지금은 맞아도 아프지도 않을 건데 괜히 머쓱하니까 가오잡는 거 봐. 예이.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원하신다면 입을 다물어드리지요. "

" 저저 싸가지 없는 거 봐라. 썩을 년. 어떻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철이 드는 게 아니라 싸가지가 없어지는거지? 신기한 애네. "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서로 간의 사이가 적대관계라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친한 이성 간의 사이가 아닌 동성 간의 사이가 늘 그렇듯 입 밖으로는 험한 말을 뱉어내면서 정작 얼굴은 여유롭고 편하게 풀려있는, 티격태격 하는 사이를 보여주며 그들은 사이좋게 담배를 입에 문 채로 하얀 연기를 입 밖으로 뱉어냈다.

이제 막 헌터의 길에 입문해 괴물들을 보고서는 오들오들 몸을 떨던 꼬맹이에 불과했던 윤지연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느새 그녀가 한 길드를 이끄는 길드의 수장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헌터로 성장한 것처럼 둘의 만남은 정말 오랜만에 성사된 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둘은 서로에 대해 반가움을 무작정 표현할 수가 없었다.

장소가 장소였고, 상황이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흘러나와야 할 반가움의 해후나 회포 대신 둘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그저 어색한 침묵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둘의 담배가 서서히 필터 끝까지 타오를 때 쯤. 둘 사이에 흐르던 어색한 침묵의 기류를 먼저 깨뜨린 사람은 임윤지, 그녀였다.

" 미안하다. "

" .....뭐? 뜬금없이 담배 피우는 와중에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

마지막 남은 담배 연기를 뱉어내면서 짧은 사과의 말을 건네는 그녀의 행동에 지연이 고개를 갸웃 움직이며 반문했지만 곧이어 이어진 그녀의 말에 지연은 떼고 있던 입술을 저절로 붙이게 되었다.

" 내가 조금만 더 실력이 좋았더라면, 조금만 더 집중했더라면. 힐러로서의 능력이 좋았더라면, 의사로서의 지식이 더욱 풍부했다면 분명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 "

" 그만. "

아까와는 다른, 완전히 목석같은 차가운 지연의 목소리에는 냉담한 기운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 그만해. 그딴 봊같은 소리 따위 진짜 듣고 싶지 않으니까.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언니는 힐러로서, 의사로서 최고의 존재야. 내 기억이 아직까지 맞다면 언니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했겠지. 언니는 할 만큼 했어. 단지 운명이 우리들의 편이 아니었을 뿐. "

" ... "

" 그러니, 본인을 자책하고 탓하는 그런 말은 꺼낼 생각도 하지 마. 진짜 기분 봊같아지니까. "

" ... "

" 그리고 애초에 나한테 사과를 왜 하는 거야? 언니의 그런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병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그 사람인걸. "

" 그야, 그 남자분이 너한테 소중한 사람이잖아. "

" 그래, 소중한 사람……. 어? "

순간 흐르는 정적과 함께 지연의 고개가 삐거덕거리며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

'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방금 분명 유진 씨가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으면 이런 느낌일까? 골 속에서부터 띵하며 울리는 소리와 함께 모든 행동이 정지된 지연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라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아까까지 심각했던 모습과는 완벽히 대조되는 어벙한 표정으로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 소중한 사람? 누구? 설마 유, 유진 씨를 말하는 거야? "

설마 하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는 언니가 다른 사람을 말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기에 조심히 이야기의 당사자가 누군지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나 다를까 내가 우려하던 그 대답이었다.

" 그 남자분 이름이 유진이라는 이름이야? 좋은 이름이네. 뭐랄까... 이미지에 맞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너는 또 뭘 그렇게 이상한 반응을 보이고 그래? 네 남자친구분이잖아. "

오 마이 갓. 지져스 크라이스트.

" 씨발, 그게 무슨 개소리야! 이 언니가 진짜 미쳤나!? 남자친구 아니야! 그분 결혼하신 유부남이라고! "

" 어? 결혼하셨다고? 누구랑? "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소중한 사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 언니가 유명 길드 길드장 Y씨 유부남이랑 내연관계, 불륜 저질러 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에서 나 매장 시키려고 작정했나. 큰일 날 소리를 지껄이고 있네! "

" 어..... 아무리 못해도 너랑 최소 썸을 타는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나 헛다리 짚은 거냐? "

" 헛다리를 짚어도 존나 잘못되게 짚었어. 이 미친 언니 새끼야. "

" 아, 아니 그런데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여태까지의 네 반응이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었는데. "

" 반응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사람이 죽어가는데 반응 같은 게 정해져 있을 리가 없잖아? "

" 하긴..... "

" 애초에 완전히 모르는 사이도 아니야. 경섭이랑 같이 대학교 다니시는 분인데 어찌어찌하다가 경섭이랑 되게 친해지셔서 우리 집도 몇 번 방문하고 그랬어. 아무래도 경섭이랑 친하시다 보니까 나랑도 자연스레 몇 번 마주치고 이야기 나눴고. 어느 정도 인연이 있는 사이란 말이지. "

" ... "

" 조금의 인연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리고 내 가족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내 눈앞에서 무너져 간다는 게 얼마나 거지같고 봊같고 지옥 같은 일인지는 언니도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 안 그래? "

" ... "

잠깐의 정적 후 입을 여는 그녀.

" 그래, 맞아. 그 누구보다도 그 감정이 뭔지 잘 알고 있지. 나이를 먹으면 점잖아지고 입을 놀리는 것에 대해 조심해져야 하는데 이래서야 원, 내가 또 실수를 해버렸네. "

그녀의 사과에 지연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튕겨 저 멀리 버리면서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냈다.

" 알면 됐네요. 이 사람아. 뭐, 이 이야기는 뒤로 넘겨두고 그나저나, 언니. 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솔직하게 대답해줄 수 있어? "

" 뭔데? "

" 언니가 보기에는 유진 씨가 입은 그 상처들.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

" ..........뭐, 난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회복을 할 수 있을 거다, 없을 거다 라고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지만, 신체적으로만 놓고 봤을 때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예전과 같이 건강한 몸으로는 회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거야. 아니, 그냥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해. "

" ... "

" 생각을 해봐. 유리잔이 단순히 깨졌더라면 테이프든 본드든 어떤 방법이라도 써서 중간에 물이 새더라도 붙일 수야 있겠지만 만약 유리잔이 형체도 없이 산산조각이 나버린다면 그걸 다시 원래의 모양으로 복구시킬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겠어? "

" .....회복할 가능성이 아예 없다라. 지금도 그렇고 처음 유진 씨를 병원에 데려왔을 때도 그렇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유진 씨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뜻이지? "

" 까고 말해서 처음 그 남자분을 봤을 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게 기적이라고 느꼈을 정도야. 이쯤 돼서 내가 묻고 싶은 건데 그분은 도대체 무슨 일을 당했던 거야? 도대체 어떤 일을 입었길래 그런 상황까지 가게 된 거야? 국도를 과속해서 달리는 덤프트럭에 치여도 몸이 그 정도 걸레짝이 되지는 않아. "

" 나도 잘 몰라. 경섭이랑 창우한테 물어봤는데 잘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을 뿐이야. 우린 그저, 그 상태가 된 유진 씨를 주워서 데리고 왔을 뿐이고. "

국도를 과속해서 달리는 덤프트럭에 치여도 몸이 그 정도 걸레짝이 되지는 않는다니. 도대체 무슨 일을 당했길래 그 착한 사람이 그런 꼴을 입게 된 걸까. 이건 나도 언니와 똑같이 가지는 궁금증이다.

" 아마, 일반적인 사고는 절대 아닐 거야. 나중에 내가 천천히 알아봐야지. "

" 네가 천천히 알아본다고? "

" 응. 일반적인 사고는 절대 아니라는 거 언니도 잘 알고 있잖아? 사실, 원래대로라면 유진 씨한테 어떻게 된 상황이고 자세한 경위와 설명을 묻고 싶기는 한데 괜히 안 좋은 기억을 들춰낼 수도 있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유진 씨가 깨어나려면 아직 한참 남았지 않아? "

" 뭐, 워낙 몸 상태가 좋지도 않고 안정제와 진정제 등 여러 약품의 투여량을 초과했기 때문에 최소 정신을 차리려면 최소 몇 주 길게는 몇 달은 쉽게 넘길 수도 있지. "

" 그래, 그래서 유진 씨한테 묻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아서 나 스스로 움직여보려고. 솔직히 경찰들을 움직이기에는 그들을 움직이기에 설득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도 하고 그리고 까고 말해서 내가 걔네들보다 더 빨리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

" 하긴, 경찰 인력보다는 너 하나 움직이는 게 더 효율적이지. 국가에서 대접해주는 유명한 A급헌터니까 말이야. "

" 아이 거참, 꼭 사람 쪽팔리게 그런 말을 해야 해? 그리고 이거 약간 비꼬는 말인데? "

" 뭐가 비꼬는 말이야? 사실인데 왜 부정하려고 그래.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전 세계에 어디를 가도 유수한 대접을 받는 존재까지 너 스스로 도달한 건데. 이 언니는 네가 괴물을 보고서 헐레벌떡 도망 다니며 코를 훌쩍거린 시절이 기억나는데. 벌써 이만큼 크다니. 감회가 새롭다, 새로워. "

" 비꼬는 게 아니라 놀리는 거네. 썅. "

어느새 전부 타들어 가 몽당연필처럼 짧아진 담배를 튕겨서 버린 임윤지는 잠시 맑은 하늘을 바라본 후 이내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가운과 함께 뒤로 몸을 돌렸다.

" 일단 먼저 들어갈게. 뭐, 너는 여기 더 있으려고? 설마 담배 더 피우려고 그러는 거냐? "

" 여기서 더 폈다가는 나도 숨찰 거 같아서 그냥 하늘 좀 보다 들어가려고. 언니는 들어가서 업무 보려고? "

" 뭐, 그래야지. 그전에 일단 유진 씨라고 했나? 아무튼 그분 정보랑 여러 가지 좀 조회하고 알아본 다음에 보호자한테 병원 입원 사실 알리고 따로 조치할 거하고 업무 보러 들어가야지. "

" 요즘은 다른 의사도 아니고 병원장이 그런 걸 일일이 다 하나 봐? "

"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단지 내가 치료하고 담당한 사람이기도 하고 너랑 아는 사람이니까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또, 내가 아니라 다른 애들한테 맡기면 조처를 하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

신경 써준다는 말이네.

" 고마워. "

" 고맙긴 뭘. 네가 나중에 풀코스로 대접해준다고 했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

" 씨발, 그걸 또 기억하고 있네. 제발 그런 쓸데없는 것 좀 일일이 기억하고 다니지 좀 마. 고마웠던 감정 싹 사라지네 진짜. "

" 큭큭. 아무튼, 먼저 가본다. "

길다면 길었던 대화를 끝내고 서로 인사를 한 뒤 흩날리는 의사 가운과 함께 흡연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헤어지려고 하는 그때였다.

그녀가 문을 잡고 열기도 전에 흡연실의 문이 거세게 열리면서 한 의사가 뛰어 들어왔는데.

" 허억, 흐윽. "

이마와 볼에 송골송골 맺힌 땀과 거칠게 몰아 내쉬는 숨소리, 풀어헤친 옷은 그가 많이 뛰어다녔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그때, 흡연실 문 앞에 있었던 임윤지,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남자 의사 때문에 어깨를 들썩거리며 놀란 감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 아이, 깜짝이야. 갑자기 뭐야? "

" 벼, 병원장님. 여기 계셨군요. 왜 전화를 안 받으시는 겁니까. 찾느라 정말 죽을뻔 했습니다. "

" 전화를 했다고? 아, 내가 핸드폰이 무음이어서 확인을 못 한 것 같군. 일단 미안한데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나를 찾으려고 했던 거지? 긴급환자라도 들어왔어? 그런 거면 다른 애들 보고 시키면 되는데. "

" 그, 그게 아니고.... "

" 그게 아니고 뭐. "

" 오유진 환자분이 방금 깨어났습니다. "

* * *

부산스러운 병실 복도를 황급히 뛰어가는 두 여성. 그중 다리에 힘을 준 뒤 속력에 박차를 가한 윤지연은 뒤에서 다른 직원에게 무어라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임윤지를 뒤로하고선 재빠르게 오유진이 누워있는 병실로 달려갔다.

' 일어났다고? '

언니가 말하기를 몸 상태도 너무 좋지 않고 안정제와 진정제 등 여러 약물을 과다로 투여했기 때문에 깨어나는 데는 최소 몇 주가 걸린다고 들었는데. 단 하루도 채 지나지 않고서 일어나다니.

무슨 문제가 일어난 건가?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방금 들어와 이 소식을 알려줬던 의사분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는데.

걱정과 기대. 상반되는 두 감정이 머릿속과 마음속을 뒤집어놓기 시작하자 그녀는 이빨로 입술을 짓이기더니 아까보다 더 빠르게, 더욱더 빠르게 속력을 내 그가 묵고 있는 병실로 달려갔다.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어느새 도착한 병실의 문을 거칠게 열어재낀 뒤 몸을 안으로 들이민 그녀가 볼 수 있는 광경은 오직 하나였다.

움직이지 않는 팔과 다리, 초점이 사라진 눈동자와 함께 창문 밖의 빌어먹게도 좋은 날씨를 바라보면서 무언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유진, 그의 모습.

그 모습만을 볼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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