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어둠속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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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시간이 흐르고, 헌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일반인들과는 남다른 체력을 가지고 있어 말똥말똥한 눈을 띄고 있는 그녀와는 다르게 일반인에 불과한 경섭과 창우의 얼굴에는 어느새 피곤한 기색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그들은 새벽 시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밤을 지새우는 것이 아니라 불안한 마음과 예민한 신경을 유지한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는 중인데 만약 몸에 이상이 오지 않으면 그게 더욱 의문스럽고 공포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원래 수면이라는 것은 인간이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기 위해서라면 빠뜨리거나 잊으면 안 되는 필수불가결적인 존재였기에 지연은 중간중간마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잠을 자두라며 여러 번 충고를 해주었지만, 그들 중 어느누구도 그녀의 충고를 제대로 들어 실천에 옮기는 사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이라고 피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자고 싶지 않은 것 또한 아니었다. 당연히 그들도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 누워서 행복한 꿈나라의 세계로 떠나고 싶은 마음만은 굴뚝 같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자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잘 수 없는 것이었다.
소중한 사람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데 어찌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선 혼자 편안히 잠에 빠져들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그들은 혹시나 모를 불상사에까지 대비하려 이를 꽉 깨물고서는 온몸에 힘을 주어 이 시간을 최대한 버텨내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의 정신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어느새 무거워져 가는 눈꺼풀과 점점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는 눈두덩들. 이러다 수술실에 들어간 환자를 기다리다가 환자가 되게 생긴 그들은 뺨을 때리거나 괜히 물을 마시는 등 쏟아지는 잠의 폭격에 필사적으로 저항해보았지만,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고개와 몸은 앞서 했던 행동들이 전혀 쓸모없는 행위였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본능이 이성을 이기고 서서히 몸을 잠식해나갈 때 쯤, 그들을 구해낸 것은 옆에 앉아서 날카로운 표정을 띠고 있는 윤지연도 아닌, 병동을 바삐 돌아다니고 있는 간호사들도 아닌, 꺼져버린 수술실의 불빛이었다.
수술실의 안내 불빛이 꺼졌다는 것은 곧, 수술이 끝났다는 뜻 아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다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 수술실의 불빛이 꺼지자마자 자리에서 동시에 일어난 세 명은 주위를 살펴보는 미어캣처럼 목을 길게 뻗어내 수술실 안을 기웃거리며 노려보면서 그곳에서 나올 의료진들을 기다렸다.
곧이어, 수술실의 문이 열리고 의료진들이 등장하자 먹이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치타처럼 득달같이 달려든 그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질문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 끄, 끝난 건가요!? 전부 다 끝난 거예요!? "
" 수술은 어떻게 된 건가요? 전부 잘 마무리된 건가요? 유, 유진이 형은 무사한 거 맞죠? 막 잘못됐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
" 어, 저기 잠시만. 그러니까, 이러시면 제가 말을 해드릴 수가 없으니 잠깐만 물러나 주시고 진정해주셔야.... "
" 빨리 말해주세요! 현기증 날 거 같단 말이에요! "
"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유진이 형은 무사한 거 맞죠!? 그것만 말씀해주시면 돼요! 며, 몇 초면 충분하니까 솔직히 얼마 안 걸리잖아요! "
" 아니, 일단 진정하시고 조금만 물러나시면 제가 말씀 해드릴 테니까 제발 제 앞에서 조금만 물러나 주시면……. "
저글링처럼 달려들어 속사포 같은 질문을 쏟아내는 그들을 보며 그녀는 진정해달라며 부탁했지만, 이미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것인지 그녀의 부탁을 한 귀로 흘려버린 그들은 눈과 귀를 막은 채 자신들의 말만 계속해서 쏟아냈다.
당연하게도 보호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의료진의 입장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상대가 같은 성별인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었기에 본인이 손을 움직여 떼어놓기도 애매한 상황이라서 갈 곳을 잃고 그녀의 손은 방황하며 갈 곳을 잃은 채 허공을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뒤에서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윤지연, 그녀가 재빨리 눈치를 챙겼고 손을 뻗어 자신의 할 말만 쏟아내는 창우와 경섭을 재빨리 의료진들에게서 떼어놓았다.
그리고 혹여나 그들이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게 단단히 옷깃을 잡은 뒤 자신의 할 말만 쏟아내던 그들과는 다르게 먼저 의료진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현하였다.
" 늦은 시간 동안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언니도 정말 고생 많았어요. "
" 에이, 고생은 무슨. 그런 소리는 할 필요 없어. 의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왜 그런 감사 인사를 받아야겠냐. "
" 우리는 그걸 예의라고 부르기로 사회적으로 합의를 한 거예요. 뭐, 하긴 언니가 괜히 이런저런 사족 붙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긴 하니까. 그러면, 이것저것 말하면서 길게 늘어뜨리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
" ... "
" 수술 어떻게 됐어요? "
제일 중요한 안건이자 이야기의 핵심 주제 그 자체가 나오자마자 그녀는 천천히 마스크를 벗어내면서 대답했다.
" 성공이야. "
성공이라는 단 한마디의 짧은 말. 누구에게는 보잘것없는 그런 단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 말의 파급력은 이들에게만큼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하게 와닿고 있었다.
당연히 그 말을 듣자마자 아까까지만 해도 굳은 얼굴을 짓고 있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환한 얼굴을 뽐내며 서로 얼싸 껴안고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고 있는 그들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서는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해냈다.
경섭은 울었고, 창우 또한 눈물을 글썽거렸다. 윤지연은 그들처럼 눈물을 대놓고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눈을 질끈 감으며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사실에 잠시 안심하고 기뻐하면서 남몰래 감정을 드러냈다.
" 다행이네. 진짜, 정말 다행이야. "
" 안 그래도 수술실에 들어가자마자 난리도 아니었어. 진짜, 아슬아슬하게 끝났는데 네가 만약 조금이라도 늦게 병원에 데리고 왔었더라면 아마 손을 쓸 수도 없었을 거야. "
" 하, 정말 다행이라는 말 밖에 안 나오네. 아무튼,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했으니까 유진 씨는 무사한 거지? "
그러나, 그 순간 그녀는 유진 씨가 무사하냐는 질문에 순간적으로 다들 어두워지는 의료진들의 얼굴을 똑똑히 목격 할 수 있었다.
뭐랄까? 뭔가 죄송스럽다는 안색이랄까? 큰 잘못을 범한 것처럼 하나같이 다들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고 피하려 하고 있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와 동시에 이어지는 정적까지.
갑자기 이어지는 그들의 영문모를 행동들에 아까까지만 해도 안심과 행복을 느끼던 그들의 마음속에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고 동시에 마음속에는 혹시라는 생각 또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서로를 껴안고 서럽게 울어대 화장까지 전부 지워져 반들반들한 생얼을 빛내고 있는 경섭과 창우 또한 분위기가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걸 눈치챈 것인지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려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눈알을 열심히 굴려 갔다.
" 그 표정은 뭐야? 아까보다 뭔가 안색이 안 좋아졌는데...? "
" ... "
" 언니. 방금 우리한테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하지 않았어?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건데. "
" 아니야. 그게 아니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난 게 맞아. 물론 진정제랑 안정제도 물론이고 여러 약을 과다로 투여해서 깨어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야. "
" 그럼 전부 끝난 거잖아. 문제없잖아. 도대체 뭐 때문에 언니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혹시, 힘들어서 그런 거야? 힘들어서 그런 거면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좀 밝은 표정을 유지해 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언니가 그런 표정 짓고 있으면 다들 오해한단 말이야. "
" 아니, 힘든 것도 아니야. 애초에 내 뒤에 있는 애들이라면 모를까. 힐러로서, 의사로서 몇 시간 수술 좀 했다고 힘든 표정 지을 내가 아니라는 건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 지연아. "
" 그럼 씨발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런 표정 짓고 있는 거냐고!? 수술 잘 끝났다며? 목숨에 지장 없다며! 그럼 전부 끝난 거잖아. 무슨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사람 괜히 불안해지게 왜 그런 똥 씹은 표정을 얼굴에 그려내고 있는 건데!? 이유를 말하라니까! "
" .... 목숨에는 지장이 없어. "
" 그래, 아까 말했잖아.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서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
" 목숨에는 지장이 없어. "
" 씨발, 왜 아까부터 했던 말을 반복하는 거야? 그래, 목숨에는 지장이 없.... "
그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단 한 가지의 아찔한 가설. 설마, 언니가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인 건가?
" 언니. 설마..... "
부디 머릿속에 떠오른 그 가설이 아니기를 빌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부정이 아닌 아무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무(無) 그 자체일 뿐.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無)의 자세는 사실상 긍정의 표시나 마찬가지인 행동.
결국 자신이 떠올린 아찔한 가설이 현실로 받아들여지자 벙찐 얼굴과 함께 머리카락을 쥐어뜯은 그녀는 진심을 담아 허탈한 웃음을 바깥으로 내뱉었다.
병동이 떠나갈 듯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그녀의 허탈한 웃음소리. 그러나,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의료진도,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 애를 쓰는 경섭과 창우도 허탈한 웃음을 뱉어내는 그녀를 말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할 수 없었다. 왜냐고? 지금 웃음을 내뱉고 있는 그녀의 마음이 지금 자신들의 마음과 똑같았으니까.
* * *
" ... "
처음 보는 천장과, 매끈한 대리석 기둥, 관리가 잘되는 것인지 잡티 하나 없는 바닥과 드라마에서나 보던 고급스러운 조명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실제로 내가 살고 있는 집의 모든 방을 다 합쳐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 넓이와 살면서 처음 본 대형 TV와 각종 시설까지 전부 다 처음 보는 광경들이다.
혼란스럽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여긴 도대체 어디야. 나 왜 여기 있는 거지? "
흐릿하긴 하지만 마지막 기억을 더듬어보면 분명 난 집에서 아내한테 쫓겨난 다음 집 앞에 쓰러져 누워 있었는데 말이야.
물론 그 뒤의 기억이 흐릿하기는 하지만 어쨌든지 이게 나의 마지막 기억이긴 한데 어째서 나는 지금 이곳에 있는 걸까? 무슨 이유 때문에 이곳에 있는 거지? 아니, 애초에 이곳은 도대체 어디지? 머릿속이 너무나 혼란스러워 도저히 정리되지 않았다.
분명 비와 진흙에 몸을 굴러 잔뜩 더러워졌을 텐데 어째서 난 이렇게 백옥같이 깨끗한 옷을 입고 있는 것이고.
이만한 방에 묵을 만한 재산이 없는데 어째서 난 이렇게나 화려하고 넓은 방 안의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 누워있는 것이고.
분명 나와 연이 끊어진, 이젠 예전의 인연과 추억이 되었을 뿐일 사람일 텐데 어째서 경섭과 창우가 매트리스 위에 고개를 박은 채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고.
선명하게 전부 보여야 할 두 눈인데 어째서 오른쪽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이고.
잘만 움직여야 하는데 어째서 오른팔, 오른 다리를 포함하고 있는 오른쪽 몸이 아예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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