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의 평범한 유부남-67화 (67/77)

〈 67화 〉 어둠속의 빛(뒷부분 내용 추가 완료)

* * *

어느새 달은 저물고 하늘 높이 떠올라 있는 햇빛과 명백히 대비가 되는 적막만이 흐르는 수술실 보호자 대기실 속, 침묵을 유지한 채 저마다 자리에 앉아 수술실의 빨간불이 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들 중 유독 윤경섭, 그만큼은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우왕좌왕 움직이며 마음속에 있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 채 밖으로 이리저리 표출해내고 있었다.

" 씨발, 진짜 씨발. 어떡하지? 저러다 큰일 나면 진짜 어떡하지. 진짜 미치고 팔짝 뛰겠네. 아 씨발 진짜.... "

수없이 많은 욕설과 함께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는 윤지연과 박창우 두 명이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윤경섭.

평소대로라면 가만히 앉아서 손깍지를 낀 채 고개를 숙이고 조용함을 유지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날파리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요란한 소리를 끊임없이 내는 그를 보면서 창우가 무어라 한소리를 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박창우, 그의 눈도 아까와는 다르게 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 야. 정신 사나우니까 괜히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어. 도대체 몇시간째야? "

결국 자꾸만 욕설을 내뱉으면서 주위를 돌아다니는 경섭을 보다 못한 그의 누나, 윤지연은 흔들리는 눈동자를 빛내고 있는 창우를 대신해 조심스레 입을 떼 그를 향해 주의를 날렸다.

"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지금 그거 나보고 한 소리 맞지? 누나. "

" 그러면 여기서 몇십시간째 정신 사납게 돌아다니면서 욕이나 내뱉고 있는 사람이 너 말고 누가 있겠냐. 괜히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지랄 떨지 말고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얌전히 앉아 있기나 해. 그게 여러 가지로 너한테도, 이 상황에도 도움 되는 거니까. "

" 지랄하지 마! 아까부터 침착! 그놈의 침착! 내가 무슨 침착맨도 아니고 아까부터 왜 자꾸 나한테 침착하라고 지랄을 떠는 건데!? "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흔쾌한 승낙 대신 악과 분노가 잔뜩 묻어있는 처절한 울부짖음뿐.

악과 분노, 그리고 자신을 향한 명백한 적의가 드러나는 남동생의 울부짖음에 작은 한숨을 뱉어내는 그녀.

" 하아. "

누나로서는 충분히 열이 받을 수 있는 상황.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향해 바락바락 기어오르는 그를 끝까지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크게 화를 내거나 그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따끔하게 다그치는 기색을 나타내지 않았다.

사실, 원래대로라면 지금과 같이 그가 자신을 향해 소리를 질러대면서 바락바락 기어오를 시 화를 내거나 그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따끔하게 다그쳤겠지만.

알다시피 지금 놓여 있는 상황 자체가 매우 특수한 상황이었고, 이러한 상황 때문에 남동생의 정신이 많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묵묵히 그의 울부짖음을 끝까지 받아내 주면서 덤덤하게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 누나는 유진이 형이 그런 만신창이 상태로 수술실로 들어가는 걸 못 본 거야? 이딴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침착을 유지하라는 거냐고!? "

" 그래, 어렵겠지. 네가 무슨 감정을 가지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이렇게 성을 내고 격양된 감정을 드러내봤자 네 마음만 더욱 불안해질 뿐 결과적으로는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잖아? "

" 뭐? 하, 지금 그게 할 말이야? 지금 그게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이냐고! 누나. "

" 왜? 그럼 나도 너처럼 전화기 붙잡은 채로 이리저리 주위 사람들한테 전화 잔뜩 돌려가면서 찡찡대거나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계속 내뱉기라도 할까? 나라고 안 슬픈 줄 알아? 나도 너처럼 충분히 슬퍼하고 있고 화가 나고 있으며 분노하고 있다고! "

" ... "

" 하지만, 너랑은 다르게 그딴 식으로 행동해봤자 좋아질 것 따위는 없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뿐이야. 그러니,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기나 해. 너도 한두 살 먹은 어린애가 아니잖아? 본인의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성인이라면 이럴 때일수록 터질 것 같은 감정은 눌러두고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법이야. 냉정해져. "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이미 유진 씨는 의사들의 손에 이끌려 수술대에 들어갔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 따위는 없으며, 더군다나 이곳에서 우리가 화를 내고 분노를 표출해봤자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나빠지기만 할 테니 조용히 입 닫고 가만히 있으면서 모든 일이 좋게 끝나길 기도하라는 의미가 포함된 상황 자체를 관통하는 그녀의 핵심적인 충고에 그의 얼굴은 삽시간에 굳어져갔다.

여기서 일반 사람들이라면 상황 자체를 관통하고 있는 그녀의 핵심적인 충고와 머릿속을 강타하는 논리정연한 말에 수긍한 뒤 내키지 않아도 가만히 의자에 앉아 말한 대로 모든 일이 잘 풀릴 수 있도록 하늘에 기도를 올리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그릇된 분노에 몸이 잡아먹혀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 내, 냉정해지라고? 지금 나 보고 냉정해지라고 말 한 거야? 씨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애초에 냉정해지려고 해도 누나 때문에 도저히 냉정해질 수가 없단 말이야! "

" 뭐? "

울그락 붉으락 얼굴색을 잔뜩 붉히고 몸을 부르르 떨면서 그가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자 그녀가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이미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핀트가 어긋나버린 그는 멈출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멈추지 못했다.

" 누나만 믿으라며! 여긴 누나가 잘 아는 곳이고 여기 오면 무조건 유진이 형이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잖아! 그리고 아까전에는 대책도 내놓는다고 했으면서 결국에는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결과는 뭔데? "

" ... "

" 난 누나만 믿고 있었단 말이야. 철석같이 누나만 믿고 있으면 유진이 형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지금 이게 뭐냐고. 이거잖아. 이 봊같은 결과가 현실이잖아! "

칼로 상대방을 난도질하는 것처럼 그녀를 향해 날아오는 온갖 원망과 왜곡된 사실, 욕설 등에 덤덤한 무표정을 유지해나가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져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가 하는 행동은 단순히 감정 쓰레기통을 찾아 자신의 원망을 퍼붓는 행동이었기에 도를 넘어도 한참 넘는 행위였고 아무리 특수한 상황이라도 용납할 수 없는 선을 넘어버리는 행위였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도 그녀는 단순히 감정 쓰레기통을 찾아 자신의 원망을 퍼부으면서 용납할 수 없는 선을 넘고 있는 그를 바라보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릴 뿐, 화를 내거나 그를 따끔하게 다그치지 않고서 나긋나긋하고 설득력 있는 어조로 그를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 여기 의료진분들은 전부 다 하나같이 실력이 뛰어난 분들이고 더군다나 그 수술을 집도하는 사람은 이 대한민국 내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니까 믿어도 돼. 네가 뭘 상상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무조건 유진 씨는 무사히 수술대 밖으로 나올 테니까 괜한 생각하지 마. 장담할 수 있어. "

" 거짓말하지 마요. 누나. 유진이 형이 무사히 수술대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요? "

그러나. 아까까지만 해도 의자에 앉아서 손깍지만을 낀 채 묵묵히 남매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창우의 끼어들기에 그녀는 순간적으로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선 고개를 갸웃 움직였지만, 곧바로 제정신을 차린 채 말을 이어 가려 했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충격적이고도 부정적인 그의 대답에 그녀는 저절로 하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초인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는 힐러조차도 치료하지 못했는데 고작 해봐야 사람의 손으로 수행할 수밖에 없는 의료 기술 따위로 힐러조차도 치료하지 못한 유진이 형을 치료시킨다라. "

잠시 이어지는 침묵.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안 그래도 경섭이가 저 꼴이 나서 미쳐 돌아버리겠는데 창우야, 너까지 그러면 나 진짜로 힘들어져. "

" 어색하게 입꼬리 올리시면서 변명해봤자 전혀 설득력 없어요. 경섭이라면 뭐, 헌터 업계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반대의 경우라서 아까 누나가 만난 그 나이 드신 아줌마가 누군지 잘 알고 있거든요. 애초에 이쪽 계통 파는 사람 중에 그 아줌마 모르면 간첩 아니겠어요? "

접착제를 바른 것처럼 단단히 붙어버린 입술을 간신히 떼어내고선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린 그녀가 머리를 잔뜩 긁어대며 무어라 이야기를 뱉어냈지만 돌아오는 것이라곤 불신이 가득한 눈빛과 함께 잔뜩 굳어있는 창우의 얼굴과 갑자기 일어난 영문모를 새로운 대화 주제에 눈썹을 찌푸린 경섭의 얼굴뿐.

" 하아. "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반건조 오징어처럼 힘을 뺀 그의 눈가에 점점 고여가는 눈물방울들. 그러나, 마치 억지로 슬픔을 삭히려는 것처럼 그가 잔뜩 더러워진 소매로 끊임없이 눈을 비벼댔기에 그 눈물들이 뺨을 타고 바닥에 흘러내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이제야 조금 진정이 된 걸까? 하늘 높이 올라가 있는 햇빛에 비치는 눈물 자국과 함께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쉰 창우는 다시 한번 슬픔을 억지로 삼켜가면서 덤덤히 말을 이어갔다.

" 사실 처음에 누나가 그분이랑 이야기 나누실 때는 진짜 정말 깜짝 놀랐어요. 동시에 저런 사람과의 인맥이 있으니까 누나가 그렇게 호언장담을 했던 것이구나 라고 생각도 들어서 유진이 형에 대한 불안한 마음도 덜어낼 수 있었고요. "

" ... "

" 솔직히 말해서 대한민국 최고라고 불렸던, 현재까지도 그렇게 불리고 있는 존재가 직접 환자를 맡겠다는데 불안에 떨 미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그거 알아요. 누나? 저 두 분이 이야기 나누시는 거 전부 다 들었어요. "

" ... "

" 능력을 써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고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힐러 중 능력만으로 유진이 형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그리고 수술실 들어가기 전 누나에게만 넌지시 말했던 필사적으로 노력은 해보겠지만 힘들것 같다. 라는 말까지 전부 다 들었다고요. "

" ... "

" 어쭙잖은 힐러도 아니고, 한때 대한민국 최고라고 불렸던,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렇게 불리고 있는 힐러가 직접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 유진이 형이 무사히 수술대 밖으로 나오는 걸 장담할 수 있다니.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요. 누나. "

그녀는 그의 말에 어떠한 긍정도, 부정도 나타내지 않았다. 그저, 침묵을 지켜가면서 잔뜩 굳은 표정만을 나타내고 있을 뿐. 그러나, 그녀의 굳은 표정을 긍정의 표시로 받아든 창우는 씁쓸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말을 이어갔다.

" 지금 당장 저희를 위로하고 달래기 위해 끊임없이 좋고 희망적인 말만 반복하시는 것 같은데 그냥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유진이 형. 거의 가망이 없는 거잖아요. 네? "

그녀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대답할 수 없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것은 게이트를 밥 먹듯이 드나들고 매일같이 괴물들과 싸움을 벌이며 생과 사를 오가는 전투를 하는 헌터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상황인데 하물며 그러한 일을 일반인, 그것도 연약한 남자가 겪는다? 아마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할 터.

그녀는 그러한 상황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진실을 숨기고 거짓된 희망만을 늘어놓는 것이라며 창우와 경섭은 생각했지만 그러나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은 그들이 방금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모조리 백지로 돌려버리는 충격적인 대답이었다.

" 백 퍼센트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예 가망이 없는 건 아니야. 아무리 낮게 잡아도 유진 씨가 돌아올 수 있는 확률은 3할 정도가 넘어. 내가 아까 말했던 것처럼 무조건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아예 없는 싸움은 아니야. "

" 네...? "

"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누나? "

예상하지도, 예상할 수도 없었던 충격적인 그녀의 대답에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을 더듬으며 되묻는 창우와 경섭. 그러나, 그녀는 그들의 의문 섞인 되물음에도 아까와 똑같은 대답만을 내놓을 뿐이었다.

" 말했잖아. 백 퍼센트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예 가망이 없는 건 아니라고. "

" 말도 안 돼요. 누나! 제발 헛소리 좀 그만 늘어놓으세요. 애초에 임윤지, 그분이 힐러로서 능력을 써도 치료가 불가능했는데 가망이 아예 없는 게 아니라니요!? "

" 그게 정말이……. 야? 누나? "

아까와 똑같은 그녀의 말에 창우는 믿지 못하겠다며 부정을, 경섭은 처음 불을 발견한 인류처럼 희망적인 눈빛을 빛내며 긍정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들의 거친 반응에도 떨 거나 흔들림 없는 기색으로 말을 이어가는 그녀.

" 너희가 힐러라는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힐러라는 존재는 그리 전지전능하고 만능적인 존재가 아니야. "

힐러라는 존재는 오히려 여러 방면에서 나사가 빠진 바보 같은 존재야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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