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폭발
* * *
하늘의 선남들이 날개옷을 입은 채 작정하고선 밑을 향해 단체로 물을 때려 붓는 것인지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선 여전히 세차게 내리는 굵은 빗줄기들.
그리고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 상황 속, 균열이 잔뜩 일어난 벽이 인상적인 낡은 빌라의 모습은 마치 흉가를 보는 것처럼 흉흉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는데, 창문 안으로 비치는 형광등 불빛은 이 빌라가 흉가가 아니라 엄연히 사람이 살고 있는 정상적인 집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 순간, 낡은 쇳소리와 함께 빌라의 문이 열리자마자 모습을 드러내는 한 여자의 모습.
옷과 한 손에 들려 있는 야구 방망이에 피를 잔뜩 묻힌 채 가쁜 숨을 몰아 내쉬고 있는 여성은 다름 아닌 선유린이었는데 그녀의 등 뒤에서 풍겨 나오는 무형의 기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위 악마가 들린 빙의자를 저절로 연상케 했다.
" 후. "
한숨을 내쉰뒤 몸을 돌려 다시 집안으로 향한 그녀는 곧이어 피 칠갑을 한 채 바닥에 누운 채로 약간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한 남자를 바깥으로 끌고 나왔는데 그녀는 오유진, 그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나머지 한 손에 힘을 준 다음 굵은 빗줄기가 내리고 있는 바깥을 향해 힘껏 던져버렸다.
그러자, 낡고 균열이 가 있으며, 잔뜩 녹이 슬어있는 계단에 온몸을 부딪히면서 바닥을 향해 굴러떨어지기 시작하는 그의 연약한 몸.
사람의 뼈와 철이 맞닿는 시끄러운 소리는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 소리를 뚫고 짙은 새벽녘 사람들의 단잠을 깨우면서 온 동네에 퍼져갔고 실제로 몇몇 사람들이 동네방네 울려 퍼지는 큰 소리에 놀라 커튼을 열어 시선을 고정하거나, 창문 밖으로 머리를 빼꼼 내밀어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 중 그 누구도 그를 향해 도움의 손길을 뻗어내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 이런 일 따위는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동네니까, 저 집은 늘 그랬으니까, 남의 일 따위 자기가 신경 쓸 바가 아니니까.
그렇게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이내 바닥을 향해 힘없이 고꾸라진 그의 몸.
철푸덕ㅡ 쾅ㅡ
큰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고꾸라져 온종일 빗줄기를 맞은 탓에 진창이 되어버린 진흙은 뒤집어쓴 그가 원래도 연약한 몸에, 아내의 구타, 추가로 계단을 구르면서 입은 심한 내상에 입에서 피와 이물질들을 토해내면서 신음을 뱉어내자 계단 위에 고고하게 서 있는 그녀가 저절로 미소를 지어냈다.
" 아프냐? 하긴, 누구한테 이렇게 진심으로 맞은 적은 살아생전 처음일 테니까 아픈 건 당연할 건데 내가 입 아프게 말해 뭐하겠냐. "
" 케엑, 끅, 흑. "
" 그런데 그거 알아? 내가 정신적으로 받은 충격은 네가 지금 느끼고 있는 아픔의 수십 배였어. 내가 정신적으로 받은 충격을 기준으로 벌을 집행하라고 한다면 너는 야구 배트가 아니라 아예 중세시대 마남사냥처럼 불에 산채로 태워버려야 해. 알아들어? "
" ... "
" 에휴, 씨발. 내가 누구랑 대화를 하고 있는 거냐. 눈깔 풀린 거 보니까 알아듣기는 커녕 정신도 못 차리고 있네. 아오, 이걸 확 다시 죽여버려? "
흐릿한 눈으로 그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넘겨버리는 그의 행태에 다시 열이 뻗친 그녀가 야구 배트를 허공에 휘두르면서 다시 한번 으름장을 놓았지만 이미 반 정도 시체가 되어버린 그가 그녀의 말에 대답해줄 가능성 따위는 없었고 그녀 또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얼마 가지 않고 흥미가 떨어져 버려 들고 있던 야구 배트를 다시 내리고서는 익살스러운 눈빛을 그려냈다.
" 하아, 뭐 됐어. 그냥 여기서 끝내자. 애초에 반 정도 시체인 새끼 붙잡고 백날 뭐라 말해봤자 뭔 소용이 있겠냐. 어차피 내가 어떤 좋은 말들을 지껄이든 간에 너 같은 걸레들은 머릿속에 담아둘 생각도 없을 게 뻔한데. "
" ... "
" 야,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뭔지 알아? 진짜 좆같음을 떠나서 너 같이 뚱땡이 여드름 파오후 쿰척쿰척한테 몸이나 함부로 팔고 다니는,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종이보다도 못한 걸레랑 부부 사이인 게 존나 쪽팔려서 앞으로 고개를 제대로 못 들고 다닐 것 같아. "
" ... "
" 내가 앞으로 무슨 낯짝으로 사무실에 나가서 그 뚱땡이 새끼랑 얼굴을 마주 보면서 일을 해야겠냐? 거기다가 이제는 골목 사람들도 네가 몸이나 팔고 다니는 창남인걸 알게 됐고. 안 그래? 이 씨발 새끼야? "
야구 배트를 들고 주위를 넓게 가리키면서 직접적으로 골목 사람들을 언급하자 커튼 사이와 창문 너머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선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잠깐 거둬졌다.
왜냐고? 당연히 그들로서도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약간 부담스러웠으니까.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이 잠깐 거둬진 것을 확인한 그녀는 한때 자신의 남편이었던. 그러나, 이제는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뚱땡이에게 몸뚱아리를 판 창남으로 전락해버린 그를 향해 마지막 통보를 전해주기 시작했다.
" 그냥 앞으로 집에 들어올 생각 하지 마. 너의 그 더러운 몸뚱아리가 내가 열심히 피땀 흘려서 번 돈으로 산 집에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치가 떨리거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지만 상상만 해도 감히 소중한 내 집안 바닥을 밟고 들어온 네 그 두 다리를 다 잘라버리고 싶어져. "
" ... "
" 그러니, 앞으로 영영 집에 들어올 생각 하지 마. 잘 알고 있겠지만 당연히 몰래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말고. 혹여나, 들어왔다가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그날부로 초상 치르는 거야. 알겠어? "
" ... "
" 이왕 이렇게 된 거 그 뚱땡이 새끼한테 가서 계속 재워달라고 그래. 네 그 몸뚱아리를 다시 팔아 재낀다고 하면 그 새끼 성격상 숙박은 물론 삼시 세끼 전부 제공해주면서 용돈까지 챙겨줄 테니까. "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그를 향해 던지는 것으로 통보를 끝낸 그녀.
" 꺼져 씨발, 더러운 새끼야. "
그 말을 끝으로 피 칠갑을 한 채 진흙 바닥에 쓰러져있는 그를 뒤로하고선 야구 배트를 아무 데나 던져버린 후 매정하게 뒤로 돌아 현관문을 닫고서 집안으로 사라져버리는 그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그녀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사람들의 시선은 거둬지지 않고 있었는데, 오히려 유일한 걸림돌인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커튼 뒤에서, 창문 뒤에서 아까보다 더욱 거센 시선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 야밤에 이게 무슨 행패야. 이 껌껌한 새벽에 골목 사람들 잠 다 깨겠네. 그나저나, 무슨 일인데 이렇게 시끄러웠던 거야? 저 남자는 왜 바닥에 대가리를 처박고 있고? "
" 아, 다름이 아니라 남자가 바람 피웠나 봐. 그래서, 여자가 개빡쳐서 존나 후두려 패고 집 밖으로 쫓아 보내버렸어. "
" 진짜? 와, 씨발 대단하다. 대단해. 아니, 누구랑 바람 피웠대? "
" 몰라. 나도 자세하게는 못 들었는데 얼핏 들은 거로는 아내 직장 상사랑 바람을 피웠다나 뭐라나. "
" 어머, 웬일이니. 웬일이야. 그냥 바람피운 것도 아니고 아내 직장 상사랑 바람을 피워? 또라이네. 나 처음에 피 칠갑 되어있는 거 보고 약간 심한 게 아닌가 라고 생각했는데 딱 네 말 듣자마자 그 생각이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어. "
" 그렇지? 나도 처음에는 약간 그런 마음 가지고 있었는데 여자 쪽 이야기 듣자마자 그런 마음이 싹 사라지더라고. 애초에 저런 새끼들은 더 맞아야 해. 저 정도는 아직 부족하다니까? "
왜냐면 저 새끼는 더러운 새끼잖아ㅡ
굵은 빗줄기 소리를 뚫고 비수가 되어 그의 심장과 귓가에 꽂히는 그들의 이야기들. 뒤이어 일부러 들으라는 듯 짙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수많은 사람의 웃음소리까지.
그러나, 그는 반항도, 반박도,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가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상황 속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가만히 진흙에 머리를 처박은 채 그들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마치, 구경거리가 끝나 공연장을 벗어나는 관객들처럼 사라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곧이어 그는 더이상 웃음소리도, 이야기 소리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자연스럽게 어둠만이 깔린 동네 속 진흙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피를 흘리면서 홀로 남게 되었다.
짙은 어둠 속,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골목.
뺨을 타고 내려와 흙바닥으로 떨어지는 빗물처럼 실핏줄이 잔뜩 터지고 상처가 나 피가 고여 빨갛게 변해버린 그의 눈에서 나온 눈물 또한 빗줄기처럼 뺨을 타고 흘러 내려와 자연스럽게 흙바닥으로 하나둘 떨어졌다.
" 흑, 끅, 흐윽. "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사랑해야 할 부부의 끝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앞에 펼쳐진 상황은 거짓말로 점철된 세계도 아니었고, 가상으로 이루어진 세계 또한 아니었으며 당연하게도 꿈 또한 아닌 명백한 현실이었다.
그렇다. 나는 또다시 버려졌다.
본래의 상식이 통용되는 세상에서 순식간에 낯선 세계로 떨어진 그때처럼, 이상 따윈 쫓지 않으며 자신의 그릇을 파악하고 주제를 파악한 뒤 큰 꿈 따윈 가지지 않기로 결심하고 현실에 순응한 그때처럼, 나는 또다시 버려졌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고, 아끼며, 유일하게 의지를 하는 사람으로부터 아주 처참하고 잔혹하게.
그렇기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 * *
새벽 4시.
아무리 밤 문화가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발달하여있는 대한민국이지만, 새벽 4시라는 시각은 너무나도 늦은 시각이었기에 이미 번화가의 술집이나 식당들은 대부분 불이 꺼진 채 황량한 먼지만이 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썩어도 준치라 했던가? 아무리 늦은 시각이어도, 굵은 빗줄기가 내린다고 하더라도, 번화가였기에 아직까지 문을 열고 있는 가게도 많이 존재했고, 사람들 또한 시간에 맞지 않게 의외로 많은 인파를 이룬 채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거하게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 우산을 같이 쓴 채 커플인 티를 팍팍 내는 남녀, 아무런 의미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각자의 개성을 뿜어대고 있는 와중 그들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점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시선.
술에 취한 사람이건, 알콩달콩 팔짱을 낀 채 같이 우산을 쓰며 모텔로 들어가려는 커플도, 아무런 의미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도,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사람들도, 모두가 단 한 곳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단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저 사람 뭐야....? "
우산을 쓰지 않아 비를 전부 맞아가면서 쓰레기가 가득한 건물 사이에 벽을 기댄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성.
이미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한 수준이었지만 사람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외관 때문이었는데.
덕지덕지 묻어있는 핏자국과 진흙들. 잔뜩 찢어져서 넝마가 되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옷차림과 마치 망치로 내려쳐 진 듯이 한쪽이 심하게 뭉개져 무너져버린 얼굴. 온몸에 시퍼렇게 들어 있는 멍과 타박상, 무언가에 베인 상처와 크게 찢어진 상처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상하게 꺾여버린 손가락들과 덜렁덜렁 멕아리 없이 움직이는 한쪽 팔, 그리고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게 꺾인 다리까지.
애초에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괜찮은 거야? "
" 무슨 사고 난 거 아니야? 많이 다친 것 같은데. "
하나같이 걱정스러운 눈빛, 말과 함께 쓰레기가 가득한 후미진 건물 사이의 벽에 몸을 기대고 있는 그를 보면서 자기들끼리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눈빛과 말로 걱정스럽다는 기색만을 표현할 뿐, 막상 핸드폰을 열어 구급대원에게 신고해 그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뻗는 사람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혹여나 일이 잘못될 수 있으니까.
귀찮으니까.
내 일이 아니고 내가 다친 게 아니니까.
그렇게 모든 사람이 그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조용히 지나가던 그 순간, 그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무시를 하던 사람들과는 다르게 고개를 숙인 채로 피를 쏟아내던 그의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가는 여성들.
잠시 주위를 살펴보면서 더 이상 주위에 사람들이 없으며,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 또한 없다는 것을 체크한 여성들은 곧이어 학생 시절 수련회 때 캠프파이어를 하는 것처럼 그를 서서히 에워싸기 시작했다.
멀리서 본다면 누가 봐도 영락없이 곤경에 처해있는 연약한 남성을 도와주기 위해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여성들의 모습.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본다면 앞서 말한 것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망상에 불과한지 손쉽게 알 수 있었다.
" 진짜로 하려고?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