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폭발
* * *
" 켈록. 케헥. "
기침과 함께 입 밖으로 뿜어져나오는 걸쭉한 액체.
입안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맛과 향기, 그리고 뺨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은 굳이 손등으로 입가를 닦아보지 않아도 입 밖으로 침이 아니라 피가 흘러내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튼, 바닥에 주저앉은 채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핏물을 뱉어내면서 갑작스레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에 당황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그로서도 자신이 아내에게 뺨을 후려 맞았고, 그로 인해 바닥을 나뒹굴고 있다는 것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애초에 입 밖으로 흘러내리는 걸쭉한 액체의 느낌과 코를 찌르는 금속 냄새, 혀를 찌르는 금속 맛, 그리고 뺨에서는 강렬한 통증까지 느껴지는데 모를래야 모를 수가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내가 아내에게서 맞았다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아내에게 뺨을 후려 맞을만한 이유. 그 이유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아내와 함께했던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아내가 나에게 폭력을 행사했을 때는 미약하게나마 어느 정도의 이유가 존재했다. 즉, 어느 정도의 이유 없이는 아내는 나에게 별다른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뜻.
그러나, 방금 내가 맞았을 때를 떠올린 다음 나 자신에게 미약하게나마 어느정도 맞을만한 이유가 존재했느냐고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면 입 밖으로 나오는 대답은 당연하게도 " NO " 였다.
애초에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한 것이라고는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아내를 반겨주기 위해 현관문으로 후다닥 뛰어갔을 뿐.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내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 만한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고, 그런 것 따위를 할 겨를조차도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아내는 무슨 이유가 있어서 나에게 손을 휘두른 걸까?
' 모르겠어. 그냥, 미칠 것 같아. '
머리가 굴려지지 않는다. 원래라면 열심히 잔머리를 굴리면서 상황을 파악해보려 애썼겠지만 아까 아내에게 뺨을 후려 맞았을 때부터 온몸에 퍼져가는 강렬한 통증 때문에 예전과 같이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게 돼버렸다.
원래도 그녀에게서 받은 상처가 전부 다 아물지도 않았고, 심지어 상처 또한 다분히 남아있었기에 연고를 바르고 아까까지 얼음찜질을 계속해줘도 느껴지는 통증에 눈을 질끈 감았을 정도인데 그러한 부위를 일반인과는 궤를 달리하는 헌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그의 아내가 진심으로 후려쳐버렸는데 몸이 남아날 수가 있겠는가?
" 허억, 흐윽. 우욱! 케헥! "
당연하게도 제대로 된 생각을 하기는커녕, 의식조차 겨우 붙잡고선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고통 섞인 신음처럼 맨정신을 유지한 채로 눈을 제대로 뜨고 있는 것조차도 힘겨워하고 있는 그는 자꾸만 입안에 고여가는 핏물을 계속해서 바닥에 토해냈다.
폭포처럼 바닥에 토해내는 그의 핏물 속에 섞여 있는 살점들과 파악할 수 없는 이물질들은 현재 그의 상태가 비정상을 넘어서 꽤 위험하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녀는 매우 차가운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여전히 피를 토해내고 있는 그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 옛말은 틀린 게 없어. 짐승은 은혜를 은혜로 갚고, 사람은 은혜를 원수로 갚고,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도 말라고 했는데 말이야. "
그 순간, 피를 토해내는 그를 바라보면서 다짜고짜 속담을 중얼거린 선유린.
누가 봐도 한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의도와 뜻이 섞여 있는 의미심장한 말이면서도 동시에 힌트가 될 수 있는 말. 평소 같았으면 그녀의 말을 이정표 삼아 열심히 머리를 굴려 최대한 해결책을 찾아볼 유진이였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는 머리를 굴려 해결책을 찾기는커녕 의미심장한 그녀의 말에 숙였던 고개를 든 후 벙찐 대답을 내뱉을 뿐이었다.
" 에....? "
허나, 그의 벙찐 대답이 그녀의 신경을 거스른 걸까?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내뱉은 그녀가 곧이어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익숙하게 불을 붙인 후 하얀 연기를 내뿜으면서 신발조차 벗지 않은 채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빗물이 잔뜩 묻어있는 그녀의 신발이 깨끗한 집안 바닥을 더럽히면서 마치 이승에 미련이 남은 영혼을 명계로 데려가는 저승사자처럼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다가올 때마다 사시나무 떨듯이 극한의 떨림을 보이기 시작하는 그의 몸.
아무런 힘도 없는 아이가 눈앞에서 괴물을 마주 보면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는 상황 속, 그는 본능적으로 땅바닥을 손으로 짚은 뒤 조금이라도 그녀에게서 멀어지려 뒤로 물러났지만 좁은 집안 속, 그래봤자 얼마나 도망칠 수 있겠는가?
당연하게도 얼마 못 가서 벽에 등을 부딪친 그는 떨리는 눈동자와 함께 어느샌가 자신의 앞에 다다르고선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맞춘 뒤 안광을 빛내고 하얀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그녀를 똑바로 마주 보면서 드는 공포감에 목 뒤로 꿀떡 침을 삼켜냈다.
" 안 그래? 이 씨발새끼야. "
짝ㅡ
차가운 표정과 목소리와 함께 욕설을 내뱉는 선유린. 곧이어 하늘 위로 그녀의 손바닥이 치켜세워지고 다시금 그의 뺨을 향해 쇄도하자 청아하면서도 큰 소리와 함께 그의 고개가 옆으로 돌려졌다.
그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핏물들과 살점 그리고 정체 모를 이물질들. 특히나 벽지와 바닥에 뿌려지는 핏물들과 살점들은 마치 끔찍한 살인 사건 현장을 연상케 하는 수준이었기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오히려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서 숨을 헐떡거리며 피를 토해내고 있는 그의 머리채를 휘어잡더니 힘을 써서 강제로 상체를 끌어올려 버렸고 초점이 흐릿해진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 보면서 얼굴에 독한 담배 연기를 뱉어낸 후 다시금 손바닥을 위로 치켜세워 그의 뺨을 향해 휘둘러버렸다.
짝ㅡ
아까와 똑같이 청아하면서도 큰 소리와 함께 옆으로 돌아가는 그의 고개와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핏물들과 살점, 그리고 정체 모를 이물질들. 모든 게 아까와 똑같았지만 다른 게 있다면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핏물과 살점들의 양, 점점 흐릿해져 가다 못해 공허해져 가는 그의 초점, 그리고 이제는 신음도 내뱉지 않고 점점 조용해져 가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멈추지 않고 다시금 손바닥을 위로 치켜세웠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그 이상은 세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계속해서 온 힘을 다해서 그의 뺨을 향해 손바닥을 휘두르는 선유린.
더 이상 조용한 집안 속, 귓가를 때리던 빗소리와 움직이는 시계의 초침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것들을 대신해 집안을 가득 채운 것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타격음과 무언가를 토해내는 소리, 그리고 살갗이 찢겨 나가는 소리뿐.
불과 몇 분 전까지 깨끗하다 못해 미끄러질 듯이 반짝반짝 빛나던 집안의 바닥은 살인사건이 일어난 현장처럼 피로 적셔진 지 오래였고 산뜻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을 주는 벽지 또한 완전한 빨간색으로 물들어버렸다.
또한, 엉망이 되어가는 집안처럼 일반인과는 궤를 달리하는 힘을 가진 헌터의 진심이 새겨진 타격을 계속해서 받아내는 그의 꼴 또한 아까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말도 안 되게 망가지고 있었는데, 입에서 피를 쏟아내는 것도 모자라 눈동자는 빨갛게 충혈돼 터져버려 입과 마찬가지로 피를 쏟아내고 있었고 한쪽 얼굴은 망치로 얼굴을 얻어맞은 것처럼 서서히 뭉개져 가고 있었다.
또한, 지속적인 타격을 맞고 있는 귀 또한 뭉개져 피를 왈칵왈칵 쏟아내고 있었으며 근육이 보일 정도로 한쪽 볼의 살갗은 찢겨 나가버렸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죽은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며 어떤 반항도, 소리도 내지 않으며 축 늘어진 몸으로 그녀의 손바닥을 끊임없이 받아내는 그.
그러나,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가 그러한 꼴이 되어도, 집안이 이렇게나 더러워져도 여전히 흉흉한 눈빛을 빛내면서 계속해서 그를 구타하기 위해 손바닥을 위로 치켜세웠지만, 그 순간, 피에 온몸이 적셔진 그의 입 밖으로 나온 희미한 말. 그 한 마디에 거짓말처럼 그녀의 행동이 멈춰졌다.
" ㅇ, 왜 그래……. 요........ 사, 살려 주..... 세요.... "
" ... "
자신을 구타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과 떨리는 목소리로 외친 살려달라는 작은 외침. 그 외침이 그녀의 무언가를 자극해버린 걸까?
그 외침에 그녀는 하늘 위로 치켜세웠던 손바닥을 아래로 내린 후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을 거칠게 놓아버려 그를 바닥으로 내팽개쳐버렸고, 그 후 그녀는 망가질 대로 망가져 존재하는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는 그를 향해 독한 담배 연기를 뱉어내면서 시선을 맞춘 후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 입 닥쳐. 몸뚱아리 팔아치운 더러운 버러지 같은 창남 새끼야.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