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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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혹은 뉴스에서나 나올 법한 황당한 상황에 아직도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와는 다르게 주먹에 박혀 있는 유리 조각들을 대충 털어내며 덤덤히 창문 안으로 얼굴을 들이민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가며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하더니 이내 감탄사를 뱉어냈다.
" 와우. 난장판이구먼. 그나저나,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심각하네. "
잔뜩 어질러져 있는 차량 내부, 코를 찌르는 담배 냄새, 열려 있는 글러브 박스에 걸려 있는 콘돔 다발, 그리고 바닥에 이리저리 뒤섞여 널브러져 있는 여성의 옷과 남성의 옷들, 마지막으로 반나체 상태로 입에선 핏물을, 눈가에선 눈물을 흘리며 숨을 헐떡대는 남성의 모습까지.
명백한 범죄의 현장에 창문 안으로 얼굴을 들이민 여성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져갔고 곧이어 핏물과 눈물을 쏟아내며 반나체 상태로 엉성하게 누운 채 숨을 헐떡거리는 유진의 모습과 글러브 박스에 걸려있는 콘돔 다발을 번갈아 본 여성은 눈앞에 비치는 참혹한 광경에 저절로 필터링 없는 욕설을 가감 없이 입 밖으로 내뱉었다.
" 대충 십새끼인 건 짐작하고 있었는데 내 예상보다 더한 놈이었네? 대충 십새끼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십새끼구나? 이 개 같은 새끼야. "
정상적인 여성으로서,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지닌 채 사회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눈앞에 펼쳐져 있는 상황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껴 차갑게 식어가는 여성의 눈동자가 운전석에 앉아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를 향해 쇄도했다.
그러자, 차량 내부에 감돌기 시작하는 상대방을 찢어 죽여버리겠다는 흉흉한 살기와 당장이라도 주먹을 뻗어낼 것 같은 긴장감들. 그리고 그 서늘한 기운 속에서 그녀는 창문 안으로 얼굴을 집어넣은 채 자신을 향해 살기를 뿜어대는 여성의 시선을 받아내면서 마른 침을 목 뒤로 꿀꺽 삼켜냈다.
" 내가 말했지? 아무리 조건을 따져봐도 그런 소리가 들릴 만한 장소는 네 차밖에 없고 무엇보다 행동 하나하나가 모조리 의심된다고 말이야. "
" ... "
" 뭐? 선량한 시민을 파렴치한 범죄자로 몰고 가니 기분이 굉장히 봊같다고? 사람을 놀리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라고? 자기는 남자 비명이고 뭐고 아무런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고? "
" ... "
" 염병 지랄을 떨어라. 이 쓰레기 같은 강간범 새끼야. 남자가 고프면 빡촌을 가서 서로 윈윈하는 형식으로 즐기던가. 타고 있는 차량이랑 입고 있는 꼬락서니 보니까 돈도 많은 것 같고 나이도 처먹을 만큼 처먹은 새끼가 할 짓이 없어서 감히 이딴 짓을 저질러? 이런 봊같은 씨발년을 봤나. 와, 이거 그냥 창문 안 깨부수고 그대로 차 빼려고 할 때 그냥 보내줬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네. "
필터링을 거치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신랄한 욕설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양아치녀는 손바닥으로 그녀의 뺨을 툭툭 건드리며 일부러 그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 아, 생각해보니까 넌 빡촌을 못 가는구나? 하긴, 얼굴이 아스팔트에 갈린 것처럼 생겨먹었는데 룸에 들어가기도 전에 실장 선에서 정리되겠지. 병신같은 년. 쯧쯧. "
그러나, 그러한 다양한 자극에도 그녀는 무어라 반박을 하거나 똑같이 욕설을 섞어가며 싸우기는커녕 작은 소리라도 새어 나가면 안되는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고 눈동자를 밑으로 깐 채로 창백한 얼굴을 띄고 있을 뿐이었다.
무어라 반박을 하거나 똑같이 욕설을 섞어가며 대답하기는커녕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여성은 잠시 침음을 흘리더니 곧바로 뺨을 때리고 있던 손을 위로 올려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이리저리 흔들면서 일부러 아까보다 더한 자극을 그녀에게 선사하며 그녀의 흥분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 야, 강간범 새끼야. 앉아서 가만히 이야기만 처 듣지만 말고 뭐라고 말 좀 해봐. 응? "
" ... "
" 너 아까까지 아가리에 모터 달린 것 마냥 쉴 새 없이 떠들어댔잖아? 아까처럼 지금도 똑같이 지껄여 보라고. 왜? 현장을 들키니까 지금은 못 하겠어? 네 앞에 있는 사람이 예상외의 또라이니까 못하겠냐고. 응? 아까처럼 존나 의기양양하게 가슴 펴고 나한테 욕 해보라고. 이 씨발 강간범 새끼야. "
그래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 계속해서 이어지는 정적 속 결국 일부러 그녀를 계속 자극시켜봤자 얻어낼 게 없다고 판단한 여성은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있던 손을 신경질적으로 놓아버리고선 한심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시선을 다른곳으로 돌려버렸다.
" 찌질한 년. 뭐, 됐어. 관두자. 저기, 그 나, 남자분? 괜찮으세요? "
여성의 시선이 향한 곳은 엉성한 자세로 조수석에 누운 채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그였는데, 아까 상대를 찢어 죽여버리겠다는 진심이 담긴 살기와 함께 서늘하고 스산했던 목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한낮의 햇빛 같은 따뜻하고 자상한 목소리로 진심 어린 걱정을 보내고 있었다.
" 제가 지금 구해드리겠습니다. "
방금까지 안 좋은 일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혹여나 자신을 무서워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 양아치녀는 최대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그를 진정시키면서 창문으로 밀어 넣었던 얼굴을 빼내었다. 그리고선 또다시 시선을 거두어 아직까지 당황스러움을 얼굴에서 지우지 못한 채 어버버 거리고 있는 그녀를 향해 쏘아 보내면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 야,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도망갈 생각이나 이상한 짓거리 하려고 하지 마라. 약간의 낌새를 보이거나 액셀에 발을 올린다? 그러면 넌 진짜로 나한테 비 오는 날에 먼지 나도록 뒤지게 처맞는 거야. 알았어? "
" ... "
" 못할 것 같아? 궁금하면 액셀에 발을 올리거나 핸들에 손 올려보면 돼. 대신, 그 뒤에 벌어질 일들은 난 책임 못 진다? 본인이 저질러놓은 일에 의해서 돌아올 결과에는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 그나저나, 이 씨발년. 문까지 잠갔네. 찌질한 강간범 새끼. 진짜 철저하게도 행동했구나. "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잡이를 당겨보지만 굳게 닫혀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 육중한 문의 모습.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아도 문을 잠근 이유가 남성의 도주를 차단하고 원활한 강간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여성은 또다시 욕설을 내뱉으면서 차량의 내부로 손을 뻗어 운전석 쪽에 있는 버튼을 마구잡이로 눌러대 차량의 잠금장치를 해제시켰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것을 확인한 뒤 저벅저벅 조수석으로 돌아간 여성은 혹여라도 문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그가 다칠까 봐 조심스레 천천히 문을 열어젖혔고 아니나 다를까, 머리에 문을 기대고 있었기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그의 머리를 안전하게 받아낸 여성은 이제 안심하라는 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아무것도 묻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제는 괜찮습니다. 괜찮으니 안심하세요. "
또다시 다른 여성에게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는 것이 수치스럽지는 않을까? 걱정을 한 여성은 겉옷을 벗어 반나체 상태인 그를 덮어주었고 쓸데없이 입을 나불대면서 알량한 위로를 전달하는 것보다 침묵을 선택한 채 말없이 그를 토닥거리며 차량에서 빼내기 위해 허벅지 밑으로 팔을 집어넣는 그때였다.
양아치녀의 팔을 붙잡는 누군가의 손길.
" 뭐야? "
아까까지만 해도 얼빠진 얼굴을 지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그녀가 눈동자를 크게 뜬 채로 콧구멍을 벌렁거리면서 그를 구출하려는 행동을 제지시키자 양아치녀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또다시 흉흉한 눈빛을 띠며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 야, 내가 아까 이상한 짓거리 하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손 놔. 이 씨발 새끼야. 짐승보다도 못한 벌레 같은 새끼가 감히 사람의 몸 위에 손을 올려? 팔 잘라버리기 전에 당장 손 떼라. 씹새끼야. "
당장이라도 자신의 옷깃을 잡고 있는 팔을 잘라버리겠다며 으름장을 놓자 놀랍게도 이번에는 아까와는 다르게 그녀에게서 대답이 들려왔다.
" ㄴ…. 내.... "
그러나, 작은 목소리와 더듬거리는 말투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인해 그녀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웠고 여성은 눈썹을 좁히며 다시 반문할 수 밖에 없었다.
" 뭐? "
" ㄴ…. 내 남.... "
" 벌레 새끼가 도대체 뭐라는 거야. 봊뚱땡이 새끼가 높은 숫자면 다 좋은 줄 알고 전부 처먹다 보니까 이젠 혀에도 살이 찐 건가? 됐어. 그냥 지껄이지 말고 아가리 처 닥치고 있어. 이 더러운 새끼야. "
하지만 보나 마나 추잡스러운 변명을 지껄일 게 뻔하다고 생각해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지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은 여성은 팔을 잡고 있던 말던 힘으로 밀어붙이며 한시라도 빨리 그를 구출하려고 했지만 곧이어 옆에서 들려오는 뚱딴지같은 소리에 고개를 갸웃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 내 남편한테서 손 떼! "
골목길이 떠나갈듯이 울려퍼지는 뚱딴지 같은 소리. 아니, 그것을 소리라고 표현하는 게 과연 올바를까? 오히려 소리가 아니라 귓가를 불쾌하게 찌르는 소음이라고 말하는게 올바른 표현이지 않을까?
" 소, 손떼라고! "
당연하게도 그녀가 무슨 심오한 의도를 가지거나 이 불리한 상황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자신의 상황을 한 번에 역전시킬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려 저런 말을 지껄인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머릿속은 아까 운전석의 창문이 깨진 뒤로 새하얀 백지의 도화지를 가진 바보처럼 변한 지 오래였다.
즉, 다시 말해 무슨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기발한 대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생각을 거치지 않고 단순히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을 무작정 내뱉는 것 뿐이었다.
" 씨발 뭐? "
당연하게도 귓가를 찌르는 불쾌하면서도 더럽고 추잡스러운 개소리에 속아 넘어갈 리 없는 여성은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내비치면서 실소를 자아냈다.
" 나, 남편? 남편한테서 손 떼라고? 지금 이 남자분이 네 남편이라고? 이 미친 또라이 같은 년아? "
" 그래! 내, 내남편이야 이 개 같은 년아! 가, 감히 남의 남편한테 소, 손을 데고 지랄이야! 다, 당장 그 더러운 손 안 떼!? "
" 무슨..... 야, 갑자기 내 팔을 잡고 아가리를 열길래 무슨 추잡스러운 변명을 할까 생각했었는데 내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신박한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네. 너 나랑 장난하냐? "
" 자, 장난 아니야! 아, 아까 나보고 강간범이라고!? 더, 더럽고 파렴치한 쓰레기 새끼라고!? 나, 남편이랑 한창 차, 차에서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와서 멋대로 오해 해놓고선 방해하고 지랄인 거야! 그, 그것도 모자라 가, 감히 남의 남편 몸에 소, 손을 대!? 너 내, 내가 콩밥 못 먹일 것 같아!? 겨,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손 떼! "
" .... 아까부터 뭐라는 거야. 이 미친년이 드디어 정신을 놓은 건가?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 내가 봤을 때 약간 획 맛이 가버려서 대충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는 것 같은데 정신 차려. 멍청한 년아. 그리고 반대로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 사람은 난데 누가 누굴보고 신고를 한다 만다야. "
씨알도 먹히지 않을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표정 하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짓고 있는 그녀를 보며 실소를 자아내는 여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곧이어 고개를 숙이며 가쁜 숨을 몰아 내쉬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을 꺼냈다.
" 저기, 그 죄송한데 앞에 있는 이 뚱땡이 새끼. 그쪽 와이프 아니죠? "
물론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세상일이란 모르는 법. 만약 그녀의 말대로 정말로 부부 사이면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것이 돼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확인차 가장 정확한 대답을 들려줄 수 있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둘의 관계에 대한 진실을 묻자 그는 떨리는 눈동자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물음에 대한 긍정의 표시를 나타냈다.
" 그거면 됐어요. "
이미, 끝난 게임. 사실, 뭐 처음부터 정해진 답변이나 마찬가지였다. 단지, 혹여나 하는 마음 때문에 확인했을 뿐. 여성은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는 뜻으로 그의 뺨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선,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팔에 힘을 주더니, 그녀의 마수에 잡혀있던 팔을 뿌리쳐버리고 천천히 읊조렸다.
" 내가 웬만하면 진짜 성격 죽이고 넘어가려고 했어. 안 그래도 마음이 심란한 사람 앞에서 괜히 또 험한 꼴을 보여주는 것도 안 좋고 그렇게 했다가는 일이 조금 커지니까 귀찮은 마음에 마음속으로 참을 인을 계속 그리면서 참아왔거든. "
천천히 주먹에 들어가는 힘. 그리고 말아쥐는 주먹.
" 그랬는데 넌 안 되겠다. 내가 아까 말했지? 진짜 비 오는 날에 먼지 나도록 맞고 싶으면 허튼 짓거리 해보라고 말이야. "
그 순간, 빛과 같은 속도로 그녀의 얼굴에 말아쥔 주먹이 꽂혀 들어가자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져 갔으며 깨진 이빨과 코에서 나온 핏물, 입에서 분출되는 침들이 사방으로 튀기 시작하며 요란스러운 광경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난잡한 상황 속에서 구릿빛 피부의 양아치녀는 꽂았던 주먹을 다시 하늘 위로 높게 치켜세우더니 마치 억겁의 죄를 짊어지고 있는 죄인에게 선고하는 옥황상제처럼 외쳤다
" 야 이 씨발년아. 너 오늘 좀 맞자. "
돌덩이 같은 단단한 주먹이 다시 그녀에게로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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