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폭발
* * *
해피 타임을 방해하는 노크 소리.
" 씨발. 뭐야? "
당연하게도 이제 본 게임에 막 들어가 재미를 보려고 하는 찰나, 귓가를 방해하는 소음이 반가울 리 없는 그녀는 솟구치는 화를 참지 못하고선 인상을 찌푸린 채 욕설을 내뱉었다.
' 씨발년이. 한창 즐기고 있는데 와서 방해하고 지랄이야. 봊 같은년이 눈깔 다 뽑아버릴까 보다. "
운전석 쪽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눈에 들어오는 여성의 모습.
담배를 입에 꼬나물고 우산을 든 채로 한눈에 보아도 짜증이 가득 섞인 얼굴과 함께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두드리는 여성은 동네 뒷골목에서 흔히 보이는 삼류 양아치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전형적인 삼류 양아치의 모습이었기에 평소 길가를 걷다가 마주치게 된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을만한 인물이었지만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에게 자신을 구해줄 구원자가 강림한듯한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한 모습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저 여성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이자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인 것을 본능적으로 인지하였기에 사라진 눈동자의 초점은 돌아왔으며 젖먹던 힘까지 짜낸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으으읍! 으읍! 읍! "
필사적인 몸부림.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의 모습은 처절하기 그지없었는데 안타깝게도 그의 발버둥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곧바로 제지당하기에 이르렀다.
짝ㅡ
마치 배구선수가 강스파이크를 때리듯이 휘둘러지는 그녀의 거대한 손바닥과 곧이어 차 안에 울려 퍼지는 강렬한 타격음.
" 케엑. 켁. "
일반인과는 궤를 달리하는 힘을 가진 헌터라는 존재가 조금 진심을 담아 손을 휘둘러서 그런 걸까? 순식간에 그의 한쪽 볼이 빨갛게 부어올랐고 굳게 다문 입가 사이로는 주르륵 핏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눈앞에 다가온 희망에 생기를 찾은 그의 눈동자는 다시 흐려졌고 그는 고개를 아래로 처박은 뒤 기침을 내뱉으면서 계속 입에 고이는 금속 맛의 핏물을 끊임없이 뱉어냈다.
' 너, 너무 아파. '
머리를 망치로 강타당하면 이런 느낌일까? 그녀의 손바닥이 내 뺨을 후려치자마자 눈앞이 백색으로 물들었고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핏물과 온몸에 전해지는 끔찍한 고통만이 남아 있을 뿐.
' 주, 죽어. 이건 무조건 죽을 거야. '
아내한테 맞을 때랑은 차원이 다른 느낌이다. 확실해. 아까와 똑같은 강도로 한 번 더 맞게 된다면 틀림없이 죽어버릴 게 분명했다. 그럴 리 없다고? 아니, 무조건 죽을 것이다.
왜냐고? 모든 사람에게 존재한다는 본능적인 생존 감각. 바로 이것이 내가 한 번만 더 아까와 같은 강도로 맞았다가는 죽게 될 테니 몸을 사릴 필요가 있다고 요란하게 떠들어대고 있었으니까.
" 야 이 씨발 창남새끼야. 괜히 아가리 쳐 놀리지 말고 입 닥치고 조용히 있어. 봊같은 새끼가 어디서 개수작이야? "
그 순간, 욕설을 내뱉으면서 아래로 고개를 처박은 채 입에 고이고 있는 핏물을 쏟아내는 그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그녀가 억지로 그의 머리를 들어 올리면서 싸늘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 흐으으. 흐읍. "
" 야 이 봊만한 새끼야. 네가 정신줄을 놓았구나? 왜? 지금 밖에 있는 사람이 이 상황을 구원해줄 구원자로 보이나 봐? 병신 같은 창남새끼가 뭘 기대하는 거야? "
" 흐읍. "
" 네가 아무리 소리 지르고 발버둥 쳐봤자 바뀌는 거 없으니까 그냥 꿈 깨. 어차피 소리 질러봤자 네 아가리에 양말이 물려 있어서 바깥까지 들릴 리도 없고 애초에 창문 선팅도 짙게 되어있어서 저 봊만한 년은 안쪽에 뭐가 있는지 들여다보지도 못해. "
마치 짓궂은 아이가 장난감을 다루듯이 머리채를 잡은 채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미소를 보이는 그녀.
" 잠깐 행복했나 봐? 유감이지만 네가 바라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니까 얌전히 여기서 따먹힐 준비나 하고 있어. 네 그 봊만한 아내년이랑은 다른 노련한 테크닉으로 불알 안쪽까지 싹싹 털어먹어 줄 테니까 기대해. 이 요망한 쌍놈. "
그렇게 잠시나마 그의 마음속에 깃들었던 희망을 발길질로 산산조각 내버린 그녀는 가소롭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린 채 다시 그의 자지를 가리고 있는 흰 팬티를 향해 손을 뻗었는데.
그때였다.
" 아니 씨발, 왜 말귀를 못 알아 처먹지? 저기요. 죄송한데 안에 있는 거 다 아니까 문 좀 내려보라니까요? "
다시 한번 그녀의 해피타임을 방해하는 노크 소리.
" 하, 나 씨발. 진짜 이 개 같은 년이 아까부터 무슨 개소리ㄹ…. 어이구 깜짝이야. 미친년인가? 남의 차 창문에 얼굴은 왜 붙이고 지랄이야? "
짜증을 내뱉으며 다시 한번 고개를 운전석 쪽 창문으로 돌린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들썩였는데 다름이 아니라 창문밖에 서 있는 여성이 창문에 얼굴을 딱 붙인 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가면서 주먹으로 노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저기요! 창문 좀 내려보라니까요!? 지금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안에 있는 건 선팅이 아무리 짙어도 어느 정도 알겠으니까 괜히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창문 내려보라고요! 아니, 아까부터 내가 몇 번을 말하는데 무시하고 지랄이야. "
느낌적으로 바깥에 있는 여성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란 걸 눈치챈 것인지 그녀는 곤란해졌다는 듯이 혀를 한 번 걷어찼다. 그러더니, 머리를 벅벅 긁으며 결심을 굳힌 그녀는 곧이어 험악한 표정을 지은 채 흔들리는 눈동자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그를 향해 주먹을 들어 올리며 싸늘하게 읊조렸다.
" 야. 괜히 아가리 쳐 놀리거나 몸을 움직였다가는 너 진짜 죽여버릴 거야. 네가 입을 여는 순간 사람이 구타를 당해서 사망에 이르는 게 뭔지 몸소 보여줄 테니 험한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아가리 닥치고 가만히 있어. "
살기가 담겨있는 경고.
' 아, 안돼. 외쳐야 해. 도와 달라고 소리쳐야 하는데..... '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건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창문 밖에 있는 여성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눈앞에 일렁거리는 죽음의 향기에 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의 소리라도 새어 나가지 않게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자신을 깔아뭉개고 있는 그녀가 무서웠고 두렵고 공포스러웠고 아까 자신의 뺨을 후려친 그 고통이 너무나도 강렬했으니까.
대충 옷을 주섬주섬 챙긴 뒤 그를 깔고 있던 몸을 치우고선 운전석으로 옮겨간 그녀가 한숨을 푹 내신 뒤 곧이어 창문 조작 버튼을 눌러 서서히 창문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생각이란 것이 있었기 때문에 창문 전체를 내리지는 않았고 오로지 아이컨택 정도만 할 수 있을 정도로 버튼을 조작해 창문을 내려버린 뒤 한 손으로는 그가 허튼짓을 하지 못하도록 그의 두 팔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지잉ㅡ
" 뭐. "
창문이 내려짐과 동시에 퉁명스럽고 화가 가득 담긴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그녀가 기가 찬다는 듯이 헛웃음을 내비치더니 곧이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튕겨 꺼버린 후 하얀 연기를 내뱉으며 눈썹을 씰룩 움직였다.
" 와, 목소리에 불만이 많으시네. 정작 화를 내야 할 건 나인데 말이야. 크으으, 거 이야기 할거면 창문 좀 다 내리시죠? 무슨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서로 눈동자만 보고 있는 게 그림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
" 내가 창문을 끝까지 내리든 말든 그건 내 일이니까 집어치우고 용건만 말해. 나 바쁜 사람이야. "
" 와, 초면에 씨발, 사람 열 받게 말을 개 봊같이 하시네. 화가 많이 난 것 같은데 정작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나인 걸 모르시는 건가? 이렇게 적반하장으로 나오면 많이 곤란한 거 알고는 있어요? "
" 용건만 말하라고. "
피가 튀기는 기 싸움. 그야말로 서로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금방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지만 먼저 고개를 숙인 것은 우산을 들고 있는 그녀였다.
" 에휴, 괜히 싸워봤자 일만 커지지. 그래요. 전부 집어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이봐요. 아줌마. 다름이 아니라 빨리 차 좀 빼세요. "
" 차? "
우산을 들고 있는 여성은 사이드미러를 검지로 가리켰는데 사이드미러에는 흰색 BMW에 길을 가로막혀 움직이지도 못하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버린 채 털털 굵은 배기음만을 내고 있는 구형 쏘나타 차량이 비치고 있었다.
" 그래요. 차 빼시라고요. 지금 씨발, 골목길 한가운데에 정차를 해두면 어떻게 해요? 구석이나 빌라 주차장에 차를 댄 것도 아니고 차가 다니는 길목 한가운데에 정차해두고 몇 분이 넘도록 안 비키면 지나가는 다른 차들은 어떡하라는 겁니까? 제정신이에요? "
" 다른 길로 지나가면 되지. 굳이 이 길로 가야 해? "
" 와, 이 아줌마. 진짜 대가리에 든 거 없는 거 일부러 티 내는 건가? 애초에 씨발, 길 자체가 하나밖에 없는데 돌아가긴 뭘 돌아가요. 씨발, 내 차가 무슨 불도저도 아니고 빌라랑 아파트를 전부 다 뚫고 가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쯧. "
신경을 긁어대는 날 것 그대로의 멘트에 그녀가 주먹을 말아쥐었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한, 사실상 그런 모습을 봐도 별로 상관할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그녀는 가래침을 바닥에 뱉어내며 껄렁껄렁하게 고개를 흔들면서 이야기했다.
" 목소리 들어보니까 나이도 먹을 만큼 넉넉히 처먹은 것 같은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하, 됐다. 씨발. 그냥 전부 집어치우고 지금 존나 열 받긴 하는데 괜히 푸닥거리하기 싫고 바쁘니까 좋은 말 할 때 토 달지 말고 빨리 차나 빼요. "
" ... "
목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굵은 핏대.
" 후우우. "
한눈에 보아도 자신의 기준에 한참 미치지도 못하는 삼류 양아치에 불과한 인생 실패자 따위가 건방지게 자신의 앞에서 껄렁껄렁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껴 당장이라도 눈앞에 보이는 존재를 때려눕히고 싶었지만, 그녀는 심호흡을 고르면서 겨우 그 마음을 억눌렀다.
평소 같았으면 곧바로 주먹을 휘두르거나 말을 물고 늘어지며 지저분한 싸움을 시작했겠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참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지금 그녀에게는 이따위 일들 보다 더욱 중요한 일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괜히 감정에 치우쳐 일을 벌렸다가는 여러모로 모든 일들이 귀찮아질 가능성이 있었기에 그녀는 운 좋은 줄 알아라를 마음속으로 되새기면서 알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 오. "
약간의 신경전과 말다툼이 있었지만 그래도 빠르게 일이 해결되자 우산을 들고 있던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내비쳤다.
" 차로 돌아갈 테니까 바로 빼주세요. 사이드브레이크 채워놓으면 진짜로 박아버릴 테니까 미리 알아두시고. "
" 알겠으니까 차로 돌아가기나 해. 그리고, 감당 못 할 말은 처음부터 늘어놓지 말고. "
" 궁금하시면 사이드 브레이크 채워놓고 내가 박는지 안 박는지 가만히 기다려보시던가. "
" ... "
끝까지 한 마디를 지지 앉고 달려들고서는 우산을 쓴 채 자신의 차로 돌아가려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다시 한번 화를 삭였지만 곧이어 방해꾼이면서도 위험인물이 사라졌다는 것에 안심하기 시작하면서 차를 골목길 한가운데가 아닌 조금 더 으슥한 곳으로 옮기고 난 뒤 남은 일들을 마저 시행하려는 생각에 음흉한 웃음을 그려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안심하며 미래를 생각하면서 음흉한 미소를 짓는 그녀와는 다르게 두 팔이 붙잡힌 채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그로서는 자신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그녀가 자신의 차로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고선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 아, 안돼. 안 되는데.... '
말해야 한다.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소리쳐야 한다.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 치라고, 지금 이게 너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데 그걸 발로 차버릴 거냐고, 이대로 아내에게 바친 지조와 절조를 빼앗겨 버릴 거냐고 외치고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머릿속에 새겨진 공포와 고통, 그리고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행동에 발목을 걸어대고 있었다.
자꾸만 안 좋은 방향으로 미래가 그려졌다. 만약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 치며 도움을 요청했다가 밖에 있는 저 여자가 내 외침을 듣지 못한다면? 그럼 나는 꼼짝없이 죽어버리지 않을까?
무서웠다. 실패했을 경우 나에게 닥쳐올 미래를 생각하니 저절로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며 저절로 뱃속에서 헛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정말, 미치도록 무서웠다. 아내가 나에게 화를 내며 주먹을 휘두를 때보다 몇십 배, 몇백 배의 공포감이 밀려왔다.
' 나, 난 어떻게 해야.... '
마음속의 갈등이 이어지는 와중 우산을 쓰고 있는 그녀가 자신의 차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마지막 희망의 불빛이 점점 멀어지자 그렇게 그의 눈동자가 다시 초점을 잃어가며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고, 그의 머릿속과 마음속은 부정의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그의 몸을 잠식해나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마치 지옥 속을 걷고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날개를 펼치며 내려온 천사처럼 부정적인 생각만이 가득한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 한 사람.
' 여, 여보. '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
그러자, 흐려지던 그의 눈동자에 다시 한번 생기가 돌아왔고 머릿속과 마음속을 잠식하던 부정과 공포감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 그래. 해야 해. 유진아. 아까랑은 상황이 달라! 지금 너한테는 기회가 다가왔다고! "
나는 아내를 위해 지조와 절조를 바치기로 한 사람이다. 아까 전까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하며 아내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품었지만 그걸 반전시킬 기회가 다가왔지 않은가?
그럼 그 기회를 잡아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멍청하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무기력하게 아내를 위해 바치기로 한 지조와 절조를 이 아줌마에게 힘없이 빼앗겨버릴 수는 없었다.
' 실패는 생각하지 말자. 무조건 성공하는 거야. 미래를 바꿀 기회가 왔잖아? 저 사람이 들을 수 있게 젖먹던 힘까지 모조리 쥐어짜는 거라고! '
그렇게 몸을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그는 모든 정신과 힘을 집중해 공기를 들이마셨고 어느새 꽤 뒤편으로 걸어간 그녀를 불러 세우기 위해서, 자신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아내를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외쳤다.
" 으으으으으으읍! 으으읍! 으으으으으으읍! "
단순하 소음이 아니라, 진심이 담겨있는 그의 울부짖음.
입안에 양말이 들어 있어서 그리 큰 소리가 울려 퍼지지는 못했지만, 창문이 조금이나마 열려 있었기에 그의 외침은 충분히 바깥으로 새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과연 우산을 쓰고 있는 그 여성이 그의 외침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미지수에 불과했다.
만약 못 들었다면 그에게는 끔찍한 미래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는 그런 가능성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서 그녀가 자신의 외침을 들었으리라고 끊임없이 되새기며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서 눈동자를 굴려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 하..... "
당연히 그녀는 으름장을 놓으며 나에게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허튼짓을 저질렀기에 그녀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고 마치 신화 속 악귀가 지을법한 표정을 얼굴에 그려내며 주먹을 말아쥔 채로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뱉어내고 있었다.
죽여버리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살기등등한 눈빛을 마주한 그가 두려움과 공포에 어깨를 들썩였지만, 마음속으로 희망을 생각하며 억지로 그 기운을 이겨낸 그는 머릿속으로 신을 떠올리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 신이시여. 제발 제 바람을 단 한 번만이라도 들어주세요. 여지껏 안 들어주셨잖아요. 단 한 번이라도 제 기도 들어주신 적 없잖아요. 신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제 기도를 듣고 있다면 침묵만 하지 말고! '
한 번만 들어주세요ㅡ
" 이 씨발 창놈 새끼가! "
" 흐읍! "
소리를 지르며 거대한 손바닥을 들어 올리는 그녀의 모습을 목격하고선 눈을 질끈 감아내는 유진. 저 거대한 손바닥이 휘둘러져 아까처럼 내 뺨을 후려치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그가 입술을 꽉 깨물며 곧 있으면 자신에게 엄습해올 고통에 단단히 대비를 마쳤지만 이게 웬걸?
예상과는 다르게 몇 초의 시간이 흘러도 온몸을 엄습하는 고통은커녕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혹여나 아줌마가 시간 차이를 두고 내가 방심하자마자 구타를 시작하려는 걸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주위 소리가 너무 조용한데?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진단 말이야. 그게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건가?
눈을 질끈 감고 있었기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는 그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의아함을 느끼면서 감았던 눈을 천천히 조심스레 뜨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눈에 들어오는 눈앞의 상황.
아줌마는 시간 차이를 두고 내가 방심하자마자 구타를 시작하려는 것도 아닌, 다른 속셈이 있는 것도 아니라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를 때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창문 밖으로 빛나는 날카로운 맹수의 눈빛.
" 아줌마. 창문 좀 내려봐. "
전형적인 삼류 양아치의 모습을 띠고 있던 여성이 작게 열려있는 창문이 닫히는 것을 막기 위해 틈 사이로 손가락을 넣은 채로 그녀를 잡아먹을 듯한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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