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폭발
* * *
그만해주세요ㅡ
그만해주세ㅡ
그만해주ㅡ
그만해ㅡ
메아리처럼 차 안을 감도는 그의 단호한 한 마디. 그의 손길에 쳐내진 자신의 손과 평소 선한 눈빛과는 다른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는 그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 그녀는 반응장치가 오작동 난 기계처럼 잠시 일시 정지한 상태로 가만히 상황을 관망하더니 곧이어 어깨를 들썩이며 헛웃음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 지금 친 거야? 내 손 친 거 맞지? "
대답 대신 그가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고 침묵을 유지하자 아까까지 헛웃음을 내비치던 그녀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져 갔다.
" 하, 씨발. 존나 어이없네. 와! 진짜 오랜만에 화나려고 그러네? "
욕설과 함께 그에게 밀착했던 몸을 다시 원위치시킨 그녀가 입에 담배를 문 채 불을 붙이고선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눈썹을 씰룩 움직였다.
독한 담배 연기를 들이마셔 약한 기침을 내뱉던 그는 위협적이면서도 부정적이고 또한 경고성이 다분히 묻어나는 그녀의 행동에 살짝 떨림을 보이며 지레 겁을 집어먹었다. 그러나, 결심한 대로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기에 그는 겁을 먹은 상태에서도 또박또박 자신의 말을 다시 그녀에게 전해주었다.
" 모, 못들으신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다시 말할게요. 여기서 그, 그만해주세요. 더 이상 받아드릴 수는 없어요. "
" .....그, 혹시 미친 거야? "
" 네? 미, 미쳤다니요? "
갑자기 이 아줌마가 뜬금없이 무슨 개소리를 싸지르는 거지? 그런데 단순한 개소리로 치부 하자기에는 이 아줌마의 눈빛에는 정말로 진심이 담겨 있었다.
" 아무래도 내가 봤을 땐 우리 유진 씨가 밖에 비도 오고 날씨도 꿉꿉하니까 정신이 해까닥 돌아버린 것 같아. 그러니까 나한테 이런 개소리도 지껄이고 내 손길도 거칠게 쳐내고 그러는 거지 않겠어? 차가운 생수라도 하나 줄까? 찬 걸 먹으면 머리가 시원해져서 금방 정신 차릴 수 있을 텐데? "
" 미, 미친 거 아니에요. 정신이 나간 것도 아니고 실수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진심을 담아서 하는 이야기니까 이런 건 필요 없어요. 사장님. "
손을 뻗어 글러브 박스의 문을 열고 차가운 생수를 건네면서 이걸 먹고 정신 차리라는 그녀의 손길을 아까처럼 세게 뿌리치자 멀리서 봐도 단번에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 가지가지 한다. 어른이 준 물통을 곱게 받아서 처먹지는 못할망정 쳐내다니. 아무튼 그럼, 제정신인 상태인데 이런 짓거리를 저지른다는 거네? "
그녀의 말에 대답 대신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침묵을 표시했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그 의미를 알아채지 못할 만큼의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고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곧바로 조수석 바닥으로 떨어진 물병과 그를 번갈아 가면서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더니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짧은 욕설을 내뱉었다.
" 씨발, 봊같네. "
만화 속에서 나오는 악독한 악당들이 뿜어내는 살기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일까? 포식자 앞에 서 있는 피식자는 한없이 약할 따름이었다. 피식자인 내가 포식자가 코앞에서 그 기운을 온몸으로 마주하려니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리는 것을 어찌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 유진 씨 이거 감당할 수 있어? 나 헌터 업계에서 진짜 잔뼈가 굵은 사람이야. 무려 한 길드의 길드장이라고. 이딴 식으로 행동하면 이후에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겠는데 괜찮겠어? "
" ... "
" 물론 누굴 죽이거나 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사회적 활동을 막는 건 이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야. 특히나 뒷배도 없고 모아둔 돈도 없는 싸구려 시궁창 D급 헌터의 인생 앞길 막는 건 일도 아니라고. 유린 씨를 여기 헌터 판에 다시 발도 못 디디게 해볼까? 그리 어려운 거 없어. 전화 한 번만 하면 모든 게 알아서 척척 해결되는데 한 번 보여줘? 보여줄까? "
" 네. 상관없어요. "
" ㅁ, 뭐? "
예상 밖의 대답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그녀였다. 말을 더듬으면서 재차 반문하는 그녀를 향해 정말로 상관없다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자신의 아내를 떠올렸다.
" 아내는 분명 저의 이런 선택을 이해해주고 존중해줄 거예요. "
물론 확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내가 나의 선택을 존중해주지 않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내를 믿고 있다. 아내는 나의 이런 선택을 전적으로 존중해줄 것이라 믿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손가락을 빨면서 그저 상황을 관망하겠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질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분명히 이 아줌마가 손을 쓴다면 백 퍼센트 아내는 직장에서 잘려버리겠지.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레 경제적으로 타격이 올 게 백 퍼센트였는데 난 언제든지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수행하며 이 타격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고작 아르바이트로 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겠다고 코웃음을 칠 수도 있겠지만 아르바이트를 단순히 하나만 아니라 세 개, 네 개를 쉬지 않고 수행한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건 불가능하다고? 아니, 가능하다. 학업을 뒤로 미루고 잠을 줄여가면서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사실이지 않은가.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기 전에는 항상 이렇게 생활해왔는데 인제 와서 못할 게 뭐가 있겠나.
" 제가 다 책임지고 이겨낼 거에요. 할 수 있는 데까지 모든 힘을 다해서 젖먹던 힘까지 모조리 짜서 노력할 거니까 상관없어요. 그러니, 전화고 뭐고 마음껏 해보세요. 전 얼마든지 준비 돼 있으니까요. "
고개를 치켜세운 채 장판교 위의 장비처럼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우겠다는 그의 결심이 담겨있는 눈빛을 마주한 그녀가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지고 얼굴에 지어낸 웃음일까? 어이가 없어서 지은 웃음일까? 분노로 인한 웃음일까? 그것도 아니면 정말로 웃겨서 지은 웃음일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녀가 웃음을 지은 이유 따위를 파악할 시간 따위는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쾅ㅡ
귓가를 세게 강타하는 굉음. 굉음의 원인은 다름 아닌 담배를 물고 있던 그녀였는데 그의 말을 묵묵하게 듣고 있던 그녀가 결국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마음 안에서 솟아오르는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자동차 콘솔박스를 향해 주먹을 휘두른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일반인과는 궤를 달리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 헌터였기 때문에 콘솔박스는 그녀의 주먹이 닿자마자 큰 굉음을 내며 산산이 조각나면서 힘없이 무너져내렸고 작은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라 질끈 감은 그의 눈가 주위로 날아오는 날카로운 파편들.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폭력적인 상황에 반사적으로 딸꾹질을 내뱉었다.
" 히끅. "
" 씨발, 진짜 봊같게 만드네. 오늘 사람 제대로 열 받게 만들려고 작정하고 그러는 거야? 응? "
" ... "
" 야, 난 너랑 대등한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야. 네가 지금 뭔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난 너보다 훨씬 높은 곳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내가 바람 한 번 불면 그대로 날아가 버려 꺼져버릴 잿더미 주제에 뭘 요구하면 예 알겠습니다! 하고 고개를 숙여 굽신거려도 모자랄 판에 감히 그딴 건방진 소리를 해? 씨발, 장난 똥 때리냐! 봊같은 새끼야! "
" ... "
" 씨발, 푸근하게 인상 짓고 웃어주고 가만히 이야기 처 들어주니까 존나 만만하게 보이냐? 야!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주는지 모르지? 야! 주위 사람들이 내가 너한테 하는 모습 보면 눈깔 뒤집고 기절해! 그만큼이나 잘해주는데 씨발, 하. 원래 성격 한 번 보여줘? 오늘 여기서 푸닥거리 한 번 해볼까? 제대로 한 번 해줘!? "
분노에 몸이 잠식돼 흥분에 가득 차 동네가 떠나 갈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온갖 욕설과 함께 모독적인 말들을 토해내는 그녀의 행동에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단단히 겁을 먹은 것이었다.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본능을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극도의 흥분으로 인해 지금 그녀는 눈앞에 보이는 게 없는 상황이었기에 혹여나 방금 콘솔 박스를 부숴버린 주먹이 자신에게로 날아오지 않을까 생각돼 심장은 쿵쾅쿵쾅 움직였고 마음 또한 조마조마 졸여졌다.
또한 귓가에 때려 박히는 날카롭고 카랑카랑한 그녀의 목소리에 저절로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고 있었고, 몸을 잠식하는 두려움 때문에 당장이라도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았지만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그는 약해지려고 하는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았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쉬지 않고 욕설을 내뱉고 주먹을 휘둘러 기물을 파손한 덕분에 조금이나마 마음의 진정이 찾아온 그녀는 극도의 흥분으로 인한 어깨의 들썩거림이 아까보다 많이 호전된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 많이 호전됐다는 것이지. 그게 완전히 없어졌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어느샌가 필터 끝까지 타버린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재떨이에 비벼 꺼버린 그녀는 겁에 질려 있어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돌리고 있는 그를 노려보면서 손에 박혀 있는 콘솔 박스의 날카로운 조각들을 하나씩 빼내기 시작했다.
" 주제도 모르는 건방진 년이 감히 내가 말을 하고 있는데 고개까지 숙이고 있네. 와, 진짜 이 봊같은 씨발 창남새끼가..... "
손등에 박혀 있는 작은 조각까지 모조리 털어내 버린 그녀가 금방이라도 살인을 저지를 것 같은 흉흉한 기색과 함께 욕설을 뱉어냈다. 그녀의 언급과 더불어 그녀의 마음이 이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다는 것을 알아챈 그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리며 외쳤다.
" 이만 집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문 열어주세요. "
" 하! 와. 진짜 이거 대단한 새끼네. 야, 너 진짜 이후에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난 진짜 이후에 현세에 강림한 악마가 뭔지 너희한테 제대로 보여줄 건데 감당할 수 있다고? 네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너 같은 하위 계층이 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냐고. "
" ... "
" 본인은 지금 뭐, 굉장히 의기양양한 상태로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하는 것 같은데 막상 겪어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그리고 그때 가선 아, 씨발 내가 왜 그때 그렇게 안 했지! 그냥 얌전히 말 들을 걸이라고 혼잣말 하며 후회하겠지. 그렇지만 그때는 되돌릴 수가 없어.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결정은 번복할 수 없어. 잘 선택해. 이 선택으로 너뿐만 아니라 네 가정 전체의 방향성도 정해질.... "
그때였다.
" 책임도! 감당도! 전부 제가 질 거니까 상관 쓰지 마시라고요! "
잔뜩 으름장을 놓는 그녀의 경고에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것으로 응수하는 그.
" 더 이상 왈가불가하지 마세요. 이건 제가 선택한 길이고 이 길에 후회할 일은 절대로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사장님은, 아니지. 당신은 그냥 당장 차 문 열고 우리 집 앞에서 꺼져주면 돼. 다른 건 바라지도 않아. 당신 같은 사람한테 다른 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그냥 입 닥치고 잠긴 문이나 열고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 "
이 세상에 떨어진 뒤로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화를 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본 적은 정말로 처음이었다.
숨이 차올라 가슴을 들썩거리는 그는 곧이어 이를 갈면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그녀의 눈빛을 애써 피한 채 몸을 돌렸고 자동차 손잡이에 손가락을 올리고서는 마지막으로 덤덤히 이야기를 꺼냈다.
" 문 열어주세요. "
" .....하. "
잠시간 이어지는 침묵. 또한 그 속에서 침묵과 같이 맴돌고 있는 전운. 마치 사이가 극도로 안 좋은 나라들이 선 하나를 두고 군대를 배치해 서로를 마주 보며 대치하고 있는 것처럼 금방이라도 무엇인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을 애써 무시했고 그녀는 눈빛만으로 상대를 찢어 죽일 것처럼 말없이 그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대치. 그러나, 그 속에서 먼저 움직인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녀였다.
" 야. 그러면 문 열어주기 전에 우리 계산할 건 하고 가야 하지 않겠어? "
" 무슨 계산이요? "
" 무슨 계산이긴. 네가 여태까지 나한테 받아먹은 거 전부 돌려받아야 하지 않겠어? 네 입으로 쳐들어갔던 음식값이랑 너 태워준다고 쓴 기름값 그리고 뭐 여러 가지 기타 등등 다 포함해서 지금 나한테 그 비용 청구하고 가. "
여태까지 그와 함께하며 먹었던 음식값. 차량을 태워주며 쓴 기름값. 그리고 여러 가지 기타 등등의 비용을 청구하라는 그녀의 선언에 그는 고개를 돌려 어이가 없다는 고개를 갸웃 움직였다.
" .....네? "
" 청구하고 가라고. 그럼 홀랑 받아다 처먹고 가려고 했냐? 그렇게 안 되지. 난 널 그렇게 쉽게 보내줄 수 없어. "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지? 진짜 어이가 가출하다 못해 안드로메다로 승천해 버릴 것 같다. 원래도 이 아줌마가 병신같은 머저리 새끼란 건 알고 있었는데 사람이 병신같은 머저리 새끼를 넘어서 극도의 찌질함마저 갖추고 있었네.
여태껏 살아오면서 들어왔던 수많은 개소리 중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희대의 씹소리였다. 정말 만화나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실제로 내뱉다니. 혐오감과 증오감 그리고 불쾌함이 동시에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나저나 여태까지의 비용을 모두 청구하고 가라고? 지랄하지 마.
" 얼만데요? "
그래, 뭐 일단은 가격이라도 한 번 들어보자. 뭐 얼마를 원하는 거야?
" 원래라면 더 받아야 하는데 너 같은 거지새끼들이 돈이 어디 있겠어? 내가 마지막까지 자비를 베풀어줄 테니까 고마운 줄 알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천만 원만 내놓고 가. "
" 하.... "
" 코웃음 치지마. 씨발 새끼야. 네가 여태까지 먹었던 음식값이 얼마인지 알아? 너네 같은 병신새끼들은 쳐다보지도 못하는 음식들이라고. 지가 먹은게 어디 싸구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처먹은 음식인 줄 아냐? "
그래. 천만 원. 그래, 뭐 그쪽이 데려갔던 식당들은 하나같이 다 비싼 곳이었으니까 충분히 그 정도 금액이 나올 수도 있겠네. 그런데 이거 어쩌나?
" 돈 없어요. "
가진 돈이라고는 지갑에 들어 있는 오천 원 밖에 없는데 말이야.
" 지갑에 오천 원 있는데 그쪽 담뱃값이라도 쓰실래요? "
" 봊까는 소리하지 말고 당장 천만 원 가지고 와. 너 이거 내놓기 전까지는 여기서 못 나가. 계좌이체도 받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지금 돈 내놓고 가라고. 네가 감당할 수 있다며? 책임질 수 있다며? 네가 그 입으로 그렇게 말해놓고선 인제 와서 이딴 식으로 행동하면 곤란하지. "
이런 치사하고 졸렬한 새끼. 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그녀를 마주보고 모든 걸 감당하고 책임진다고 당당히 말한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으니까.
" 이런 찌질한.... 하, 그러면 갚아 나갈게요. 지금 그 돈을 모조리 내놓는 것은 저한테 무리에요. 애초에 그만한 돈도 없고요. 제가 천천히 아르바이틀 돌려서 돈을 마련해 갚아 나갈 테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갚아 나갈 테니까 문 열어주세요. "
그러나, 택도 없다며 혀를 차면서 손가락을 흔드는 그녀.
" 에이, 장사를 그런 식으로 하면 쓰나? 개소리하지 말고 지금 당장 가지고 와. 내가 아까 말했잖아? 내놓기 전까지는 차 안에서 못 나간다고. "
" 없는데 어떻게 해요. 돈이 없다고요. 그만한 돈을 지금 가지고 있지 않아요! 제가 안 갚는다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 갚아 나간다고요! 아르바이트를 몇십 개를 뛰어서라도 빠른 시일 내에 갚아 드릴 테니까 인제 그만 해주시고 문 열어주세요. "
" 아, 씨발 몇 번을 말해야 해. 나중은 모르겠고 나는 지금 당장 그 돈을 갚기를 원한다니까? 어디서 싸가지 없게 돈을 빌려 간 새끼가 빌려준 새끼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봊같은 새끼가 아가리 다 찢어버리기 전에 함부로 입 놀리지 마. 그나저나, 돈 없는 거 맞지? 지금 천만 원 갚을 능력 안 되지? 맞지? "
"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나중에 갚아나갈게요. 꼭 갚아나갈 테니까.... "
" 나도 누누이 말하는 건데 난 분명 지금 갚으라고 말하잖아? 어쨌든지 지금 돈 갚을 능력 안 되는 거잖아? 안 되지? "
몸을 일으켜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온 그녀는 얼굴을 불쑥 내민 뒤 그에게서 대답을 재촉했다. 코앞까지 다가온 그녀의 더럽고 트러블이 잔뜩 일어난 얼굴을 마주 본 그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시선을 피하면서 다시 한번 말했다.
" 지금은 그만한 돈이 없다고 제가 방금도...... "
" 씨발 그러면, 몸으로 갚아. 이 창남 새끼야."
탐욕과 욕망에 젖은 눈빛과 함께 그녀의 입술이 그의 입술 위로 포개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