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폭발
* * *
" 뚜, 뚱땡이 아줌……. 마? 지금 그거 나한테 한 소리…….? "
상대를 찢어 죽여버리겠다는 격한 감정이 담겨있는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는 경섭의 필터링 없는 신랄한 독설에 그녀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더니 어벙벙한 표정을 거둔 뒤 설마 그 말을 자신에게 말하는 거냐며 고개를 갸웃 움직였다.
" 그래. 뚱땡이 아줌마. 귀먹었어? 다시 한번 들려줄까? 야 이 봊같은 년아. 손가락 다 잘라버리기 전에 유진이 형한테서 그 더러운 손 떼라고. 이 뚱땡이 새끼야. "
그러나,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으며 자신의 말을 전하는 경섭의 행동에 기가 찬다는 듯 그녀는 헛기침을 내뱉었다.
" 하! 거기, 학생……. "
" 뭐. "
상대방의 심기를 쿡쿡 건드리는 위험한 발언을 덤덤히 내뱉는 그의 행동에 약간 열이 받은 걸까?
짧은 한숨을 한 번 내뱉은 그녀는 귀찮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더니 마치 버릇없는 아이를 훈계하는 어른처럼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 아니, 나랑 아는 사이인가? 내 기억을 떠올려보면 학생 같은 사람은 내가 본 적이 없는데, 그렇다는 것은 나랑 그쪽이랑 초면이라는 거잖아? 그, 부모님이 초면인 사람한테, 심지어 나이도 훨씬 많은 사람한테 그렇게 행동하라고 가르친 거야? 애초에 구면이라고 해도 상대방에게 그렇게 심한 인신공격을 퍼붓는 건 도대체 어디서 배운 예의... "
" 인신공격? 지랄하고 있네. 사실을 말하는 것도 죄냐? 주름은 존나 져 있고, 셔츠 사이로 뱃살은 삐죽 튀어나와 있지를 않나. 자기 몸무게도 감당 못 해서 호흡도 가팔라 헉헉대고 얼굴도 태어나다 만 사람처럼 생긴 주제에 그딴 개소리 지껄이면 설득력 없는 건 알고 있어? 이건 인신공격이 아니야. 애초에 공격이라는 단어 자체가 들어가는 게 잘못된 거라고. "
그러나, 그녀의 훈계는 경섭에게 단 일의 충격도 주지 못했으며, 오히려, 상대방의 전투력을 더욱 돋구어 준 것인지 경섭은 조금 흥분한 모습을 보여주며 그녀가 끼어들 틈을 조금도 주지 않으려는 듯 속사포로 말을 내뱉었다.
" 이건 공격이 아니라, 참교육이라고 하는 거야. 정의 집행? 뭐, 그런 거지. 씨발, 남자 몸에 함부로 손 올리고 추행하는 새끼한테 욕 좀 하는 게 참교육, 정의 집행이 아니면 뭐겠어? 하긴, 그쪽같이 모자란 새끼는 대가리 굴리는 능력이 떨어져서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아들을 리가 없지. 이 씨발, 대가리 사고 능력도 존나 떨어지는 저능한 뚱땡이 새끼야. "
" ...하. "
추행.
자칫 잘못하면 위험해 질 수 있는 발언이 경섭의 입에서 떡하니 나오자 당황스러움에 그녀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지만, 곧바로 헛기침을 한 번 내뱉었다.
그리고선, 그녀는 찌푸린 얼굴에서 곧바로 원래의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원상복구 시킨 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무고한 사람처럼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은 뒤 경섭의 발언에 부정하면서 두 손을 세차게 내저었다.
" 추, 추행? 그, 미안한데 나는 지금 학생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걸? 도대체 내가 언제 함부로 남자 몸에 손을 올리고 추행을 했다는 거야? 지금 세상이 쌍팔년도 시대도 아니고, 요즘 그러면 큰일 나! "
" 뭐? "
" 학생은 모르겠지만 내가 주위 사람들한테 젠틀한 여자라고 불리는 사람이야. 나 같이 매너 넘치는 사람이 남자를 지켜줬으면 지켜줬지. 함부로, 남자 몸에 손대고 그러는 사람은 아니란 말이지. 이름은 모르지만, 우리 잘생긴 학생이 도대체 뭘 보고 그런 오해를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
" 와, 이젠 자체적으로 기억도 왜곡시키네. 그게 아니면 지방이 뇌에 끼여서 정상적인 사고 판단이 불가능한 건가? 야. 그럼, 아까부터 내가 떼어놓기 전까지 유진이 형 허리에 강제로 손 올리고 엉덩이골 만지고 얼굴 만지고 한 건 도대체 뭔데? 그건 추행이 아니고 뭐냐고? "
" 학생이 뭔가를 단단히 착각하는 것 같은데 그건, 추행이 아니고 가벼운 스킨십이라고 부르는 거야. 친한 남녀 사이에서 가볍게 할 수 있는 스킨십 몰라? 안 해봤어? "
" 하, 스킨십? "
" 그래. 스킨십 몰라? 학생이 아무래도 우리 어른들의 사정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 정도 스킨십은 나랑 유진 씨 사이에서 거의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가벼운 터치에 불과하다니까? 나랑 유진 씨 사이가 얼마나 가까운데! 아이고, 젊은 사람이 오히려 나보다 더 꽉 막혀서 꼰대 끼가 있는 것 같은데 그 나이에 벌써 그러면 안 돼. "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는 그녀의 태도에 경섭이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고서는 품에 안겨있는 유진을 더욱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리고선, 분노에 잠겨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는 그녀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세게 이빨을 부딪치면서 말 한마디마다 자신의 감정을 가득 넣은 채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띈 채 한 글자, 한 글자씩 내뱉었다.
" 씨발, 그런 스킨십이 가볍게 이루어지는 가까운 사이라면 지금 유진이 형이 이렇게 겁을 먹을 이유가 전혀 없을 텐데? 제발, 머리카락 다 쥐어뜯어 버리기 전에 눈에 뻔히 보이는 구라 치지마 이 씨발, 봊같은 뚱땡이 새끼야. "
아까보다는 확실히 나아졌지만, 여전히 유진은 경섭의 품에 안긴 채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저체온증에 걸린 듯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입 밖으로는 가쁜 숨을 내뿜어내고 있었다.
안심하라는 듯 그의 머리를 재차 쓰다듬은 경섭이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녀를 향해 주먹을 휘두를 기세로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밖으로 표출했다.
한 치의 틀린 점이 없는 완벽한 그의 말에 할 말이 사라진 그녀는 잠시 대답을 망설인 뒤 흘끔 눈동자를 굴려 경섭의 품에 안긴 채 공포에 질려있는 유진을 스치듯이 쳐다보고선 곤란해졌다는 듯 혀를 튕겼다.
경섭의 날카로운 말에 뭐라 반박할 수 있는 말이 결국 생각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끝내 표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고서는 뻔뻔하게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 그나저나, 학생. 입이 참 험하네. 남자가 그렇게 입이 험하면 사회 나가서 욕 많이 보는데.... "
" 하. "
" 여자도 입에 걸레를 물면 사회적으로 좋게 보지 않는데 남자가 그러면 앞으로 사회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이 생긴다니까? 특히나, 어른들. 어른 앞에서는 그런 태도는 고치는..... "
" 아가리 다 찢어버리기 전에 봊같은 소리로 주제 쳐 돌리려고 하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해. 주제에서 벗어나지 말자고. 야, 그거 알아? 내가 유진이 형이랑 안 지는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집에서 자기도 해보고 많이 어울려 다니는 사람으로서 말하는 건데 유진이 형한테 여자 사람 친구란 건 존재하지를 않아. "
" 아이고, 사람 말 더럽게 안 믿네. 학생! 본인의 생각을 일반화시키지 말라니까? 예외란 건 언제든지 있을 수가 있어. 지금 네 앞에 그 예외의 사람이 존재하잖아. 왜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믿지를 못하는 거야? "
" 입 닥치라고. 네가 유진이 형의 여사친이라고? 내가 유진이 형을 얼마나 잘 아는데 여사친? 애초에 네 나이랑 유진이 형 나이 차이가 얼마나 많이 나는데 여사친이라는 관계가 성립될 수가 있냐? 대가리가 씨발 얼마나 모자라는 거야? "
" ..하아. "
" 그래, 백번 양보해서 네가 여사친이라고 치자. 아니지, 더 양보해서 가까운 사이라고 치자. 요즘은 가까운 사이면 아내가 있는 유부남한테 먼저 다가가서 끌어안고 만지고 엉덩이골에 손을 가져다 대고 하는 게 유행인가 봐? 이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한민국이 엄청나게 성에 개방적인 나라가 돼버렸네? "
" 후우. "
명백하게 비꼬는 그의 말에 한숨을 내뱉는 그녀. 그러나, 경섭은 그녀가 한숨을 쉬든 말든 단 일초도 쉬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칼 같은 비수를 계속해서 그녀에게 던져냈다.
" 그리고, 내가 아는 유진이 형은 소심한 사람이지만 결혼을 한 유부남이기 때문에 본인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여자들을 다 칼같이 쳐내는 사람이야. "
" ... "
" 학교 다니면서 조별 과제나 공적인 일을 제외하고는 여자랑 접촉은커녕 대화도 나눈 적 없고 음료수를 사서 다가오면 정중히 돌려주며 바로 쳐내는 게 우리 유진이 형인데 왜 방금은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그걸 받아주고 있었을까? "
" 아니, 몇 번을 말해. 학생! 나랑 유진 씨는 정말 친한 관계라니까? 나이 차이가 크게 난다고 해서 친한 사이가 될 수 없는 건 아니잖아? 그거 고정관념이야! 어린 사람이 벌써부터 이렇게 답답하게 굴면 어쩌자는 거야? "
" 도대체, 유진이 형이 왜 아무 말도 못 하고 벌벌 떨고만 있었을까? 너 뭔데? 뭘 하길래 여자에 대해서 칼같이 행동하던 유진이 형이 왜 너한테는 그렇게 무너졌던 거지? 야 뚱땡이. 너 뭐 하는 사람인데? "
끝나지 않는 평행선을 달리는 둘의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둘의 감정은 점점 격해지고 있었으며, 언성 또한 높아졌다.
감정이 격해짐과 동시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성적으로 판단하던 경섭마저 점점 감성적으로 변해갔으며 이젠 대화가 아닌 서로에 대한 비방만이 가득 찬 이야기를 뱉어내면서 끊임없이 서로를 깎아내릴 뿐이었다.
결국 끝이 나지 않는 평행선을 달리는 그들의 싸움에 마침표를 찍어준 것은 경찰도, 사람들도 아닌 둘의 대화의 중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유진이였다.
경섭의 품에 안긴 채 시간을 더 보내며 아까보단 상태가 나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사람과는 다르게 물에 젖은 생쥐처럼 축 처진 느낌을 보여주는 그는 아직도 가쁘게 몰아 내쉬는 호흡을 잠시 고르고서는 두 손을 뻗어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 그, 그만 해주세요. 경섭 씨 진정하시고 사, 사장님도 진정해주세요. 싸우지 말아 주세요. 다들 저 때문에 싸우지 말아 주세요. "
힘겹게 몸을 가누며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다툼을 중재하는 그의 필사적인 행동에 경섭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반대로 그녀는 잘됐다는 듯 오히려 환한 미소를 지었다.
" 형! 뭐 하는 거예요. 얼른 나와요! 빨리 나오라니까요! "
다급하게 그에게 소리치며 얼른 비키라는 말만 반복하는 경섭이와는 다르게 그녀는 유진이 필사적으로 중재를 하는 모습을 보고선 이제 한시름 놓는다는 듯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유진의 팔을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려주었다.
그리고선, 마치 무심하게 길을 지나가는 사람처럼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
" 아이고, 괜히 유진 씨 보러 왔다가 욕봐버렸네. "
" 아.... "
"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 유진 씨가 오늘 몸이 안 좋았던 건지 아니면 방금 급속도로 안 좋아진 건지 모르겠는데 막 부르르 떨면서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겁에 질린 모습을 보이니까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게 된 것 같은데.... "
다른 사람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정말 무심하게 들리는 이야기겠지만, 그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정확한 진의를 눈치챘고 눈을 질끈 감은 채 입술을 앙다물고선 녀를 향해 몸을 돌린 뒤 살짝 고개를 숙여 미안함을 표시해주었다.
" 아니야. 괜찮아. 유진 씨가 굳이 사과할 필요 없어.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고 또 친한 동생이면 좋아하는 형을 걱정하는 건 당연한 사실이니까 크게 신경 안 써도 괜찮아.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지. 또, 우리 사이에 대해서 모른다면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사실이고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이제 유진 씨가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
" 아, 네. 마, 말할게요. 사장님. 그, 가,감사합니다. "
" 아니야. 뭘 감사해. 감사할 필요 없고 그 대신, 확실하게 주위 사람한테 말을 해줘. 그래야 다음번에는 이런 사태가 안 일어나고 평화롭게 지나갈 거 아니야? 한 번은 그냥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다음번에 이런 일 일어나면 나도 사람인지라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단 말이지. 응? 괜한 오해 안 생겨나도록 부탁해. 유진 씨. "
" 아까부터 씨발, 아줌마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유진이 형한테 이상한 수작질 쳐 부리지 말라고! 형! 중간에 계속 서 있지 말고 얼른 제 뒤로 와요. "
작은 목소리로 말하기도 했고, 거리상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눈 지 들리지 않았던 경섭은 앞서 언급한 자신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유진의 옆에 붙어 무언가를 작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행동에 크게 분노했다.
결국 그는 눈썹을 씰룩쌜룩 움직이며 목에 핏대를 세운 채 유진의 손목을 가볍게 낚아챈 후 동네가 떠나가라 할 정도로 크게 소리치려고 했으나, 곧이어 유진의 두 손이 경섭이의 입술을 틀어막아 버렸다.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경섭을 뒤로하고 유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제일 먼저 그에게 진심을 담은 사과를 건넸다.
" 겨, 경섭씨 죄송해요. 그, 그런데 정말로 전 괜찮아요. "
" 프으으읍…. 푸하! 아니, 뭐가 괜찮아요! 또 무슨 소리 들은 거에요? 아니, 형! 저 아줌마가 도대체 뭔데 형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거예요? 뭐 하는 사람인데! 또 아까 둘끼리 속삭였을 때 무슨 소리를 들었길래! "
거칠게 발버둥 치며 유진의 두 손에서 벗어난 경섭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얼른 진실을 말하라며 그를 재촉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돌아오는 것은 유진의 실없는 미소뿐이었다.
" 아, 아무 사람 아니에요! 경섭 씨가 생각하는 그런 이상한 게 아니라 정말로 사장님이랑 저는 친한 사이에요. 며칠 전에 우리 집에 방문도 하셨는걸요. 그러니까, 경섭 씨가 오해하는 거예요. "
계속되는 그의 만류에 언제까지고 밀어붙일 수 없었던 경섭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나지막하게 유진을 불렀다.
" 형... "
"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친한 사이에요. 엄청 친한 사이니까 오, 오해 하지 마세요. 부, 부탁드려요. "
그러나, 그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자신의 할 말만을 내뱉는 그는 한눈에 보아도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함께 덜덜 떨리는 두 다리와 팔, 그리고 눈동자에 단단히 새겨져 있는 슬픔과 공허함.
그리고 그의 뒤에 서서 사람의 원초적인 감정인 분노를 자극하는 미소를 귀에 걸릴 정도로 높이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까지. 마치 짜인 인형극처럼 흘러가는 불쾌한 상황에 아무것도 손을 쓸 수가 없는 경섭은 그저 입술을 이빨로 세게 물어뜯을 수밖에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