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균열
* * *
" 와, 어떻게 이런 곳에서 샤워랑 볼일을 볼 수가 있지? 진짜 더럽네. 씻다가 바퀴벌레 튀어나오는 거 아닌가? "
쾅쾅ㅡ 우당탕ㅡ 우지끈ㅡ
문밖으로도 쩌렁쩌렁 울리는 여러 가지 잡다한 소리에 나는 손가락을 펼쳐 살포시 귀를 막아버렸다.
도대체 안에서 무슨 행동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끊임없이 무언가 부서지고 어질러지는 소리가 나는 걸 보아하니, 굳이 들어가 보지 않아도 화장실 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 나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 집 가면 화장실이 딱 이랬는데. 요즘도 이런 집이 도심 한가운데에 존재를 하는구나. "
하지만, 귀를 손가락으로 막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걸까?
마치 우리가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리며 의도적으로 화장실 안에서 바깥으로 울려 퍼지는 불쾌한 소리가 귓속으로 침범하자마자 나의 표정이 저절로 굳어갔다.
" 하.... "
결국, 나오는 것은 한숨뿐.
아내를 위해 내가 손수 욕조에 받아놓은 따뜻한 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땅히 아내가 써야 할 목욕물이었지만 정작, 화장실에 들어가서 내가 열심히 준비해둔 목욕용품과 온수를 누리고 있는 것은 내가 이름도 알지 못하는 뚱뚱한 아줌마였다.
그리고 정작, 그것을 사용해야 할 아내는 입에 담배를 꼬나문 채 안방 침대에 앉아서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입 밖으로 연기를 계속 뿜어댈 뿐이었다.
" 씨발. 개 봊같네. 후우우.... "
한눈에 보아도 기분이 굉장히 나쁜 게 티가 나는 아내의 모습. 아내도 저 아줌마가 화장실 안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며 헛소리를 내뱉는 것에 불만을 가지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역설적이게도 아내는 저 아줌마가 화장실 안에 들어가서 샤워를 할 수 있도록 가장 큰 도움을 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지금 저 모습만 봐도 아내는 아줌마를 싫어하고 있다는 것이 티가 나지 않는가?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막상 아줌마의 앞에서는 괜히 투덜대면서 본래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지 않고 굉장히 살갑고 정성을 다해서 꼬리를 흔들어준다.
도대체 왜?
도대체 어째서?
평범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뭐랄까? 직장 상사와 직장 후배의 관계라고 보면 더 편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아내와 저 아줌마의 사이에는 무언가 메꿀 수 없는 간극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한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길래 아내는 저 아줌마의 앞에서 필요 이상의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까?
도대체 저 아줌마는 뭐 하는 사람일까?
궁금했기 때문에 아까부터 아내의 옷깃을 잡아당기면서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을 풀어주기를 계속 요구했지만, 장본인이 앞에 있는 마당에 이야기를 하거나 신호를 주기에는 껄끄러웠던 건지 명확한 답은커녕 일말의 신호조차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는가? 장본인은 지금 화장실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상태다.
즉,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지금 이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되는 소리라는 것.
화장실 문 앞에 가만히 서서 살짝 열려있는 안방 문을 쳐다보며 가운 속에 손을 넣고 자신의 몸을 쓸어내리던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움직여 안방 침대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문 채 연기를 뻑뻑 뿜어대는 자신의 아내에게로 다가갔다.
끼이익ㅡ
조심스럽게 안방 문을 열면서 하얀 가운을 나풀나풀 흩날리며 안으로 들어서자 입에 담배를 물고 있는 아내의 고개가 저절로 나에게로 돌아갔다.
" 음? "
미약한 소리를 내며 여전히 짜증이 가득 섞여 있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아내의 행동에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몸이 저절로 약한 떨림을 보였다.
그런 나의 반응을 본 아내는 눈썹을 잔뜩 치켜올린 채 코와 입으로 연기를 내뿜으면서 불만스럽게 나를 쳐다보고 담배를 쥐고 있는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면서 내가 질문을 내뱉기도 전에 곧바로 한숨을 내뱉었다.
" 에휴, 너 옷이 그게 뭐야? "
" 아, 네? 오, 옷이요? "
뭐라 질문을 내뱉기도 전, 기습적으로 들어온 아내의 지적에 나는 화들짝 놀라면서 곧바로 내가 입고 있던 흰 가운의 끝자락을 쥐게 되었다.
옷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혹여나 하얀 가운에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얼룩이라도 묻은 건가?
하지만, 옷을 이리저리 들춰보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움직여보아도 입고 있는 가운은 한치의 얼룩도 묻어 있지 않아 백옥같은 하얀색을 뿜어내고 있었다.
얼룩 같은 게 묻지는 않았는데?
" 아니, 옷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옷차림이 그게 뭐냐고. "
아, 그 뜻으로 말한 거였구나.
" 지금 너 가운만 입고 안에는 아무것도 안 입은 상태지? "
" 네. 그렇긴 한데... "
" 아, 그럼 그 상태로 여태까지 계속 있었던 거야? 에휴, 씨발. 안 그래도 저 씨발년 때문에 짜증 나는데 우리 유진이가 나를 더 짜증 나게 만들어버리네. "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음에 안 든다는 의미를 표시하는 아내를 보며 나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아내 말대로 이 가운을 벗으면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 자연인 그 상태의 모습을 보여주는 내 나체만이 있을 뿐이었다.
' 뭐가 문제인 거지? 여기서 내가 혼이 날 만한 게.... '
처음에는 내 옷차림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 라고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나는 아내가 제기한 문제가 무엇인지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 아! '
아내는 지금 내가 가운만 입은 채로 다른 여성, 그것도 저 아줌마를 맞이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맘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아뿔싸, 거기까지는 생각이 닿지 못했었다.
' 하, 하지만 이건.... '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솔직히 나도 할 말이 많았다.
일단 첫 번째로 나는 항상 집에서 잠옷으로 이 하얀 가운을 걸치고 잠자리에 든다.
특별한 날이라서 입은 것도 아니고 이벤트를 위해서 입은 것도 아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매일 입는 잠옷이 바로 이 하얀 가운이다. 즉, 나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늘 입던 것을 몸에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나는 저 아줌마가 집에 방문한다는 사실 자체를 아예 모르고 있었다.
문자도, 전화도, 언질도 그 어떤 것도 나는 전달받지 못한 입장이었다. 그저, 아내인 줄 알고 평소와 같이 가운을 걸친 채 쪼르르 문 앞으로 달려가 아내를 마중하러 나가보니 생전 처음 보는 아줌마가 눈앞에 있었을 뿐이었다.
아내가 아무것도 입지 않고 가운만 걸치고 있는 내 모습을 다른 여성에게 보여주는 걸 싫어한다는 건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는 사실. 당연히 다른 여성이 우리 집에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나는 옷을 바꿔 입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옷차림으로 인해 아내에게 혼이 난다는 것은 나로서는 굉장히 억울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난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억울한 점을 아내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난 그저, 언제나처럼, 늘 그랬던 것처럼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키고서 바깥으로는 글썽거리는 눈동자를 보이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 죄, 죄송해요. 여보.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
나의 대답이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했던 걸까?
아내는 아까보다 더욱 인상을 찌푸리고서는 담배를 잠깐 빨더니 자욱한 연기를 내 얼굴을 향해 거침없이 뱉어버렸다.
순간적으로 나의 얼굴을 덮치는 독한 향기에 저절로 기침이 솟아오르고 눈물이 핑 돌면서 고개를 당장이라도 돌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침대에 앉아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아내의 시선이 너무나도 무서웠기에 나는 손톱으로 손가락을 꾹꾹 누르면서 최대한 고통을 참아냈다.
" ..... "
한 번 눈을 감으며 고민에 빠지는 아내.
' 화내겠지. '
뭐, 예견된 일이었다.
그래도, 아내도 상황의 특수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혼이 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한 소리를 들을 것은 그저 정해져 있는 사실처럼 보였다.
" 후. "
그때였다.
당장이라도 윽박을 지를 것처럼 보이던 아내는 언성을 높이기보다는 한숨을 내뱉고서는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꺼버린 다음 곧바로 곽에서 새 담배를 꺼내 다시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면서 피식 썩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 그래. 씨발, 넌 그냥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여기서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 잘못이 있다면 지금 화장실에 박혀서 지랄 염병 병신 짓거리 하고 있는 저 봊같은 년밖에 없겠지. "
예상과는 다르게, 아내는 순간적으로 냉정을 되찾고서는 곧바로 나에게 쏟아지고 있던 분노의 화살을 화장실 안에 틀어박혀 아내 말 그대로 개지랄을 하고 있는 아줌마에게로 돌려버렸다.
" 에...? "
의외의 상황에 어리둥절하고 있을 무렵 아내는 한 손으로 뒤에 있는 옷장과 내가 걸치고 있는 하얀 가운을 번갈아 가면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그래도 옷은 당장 갈아입도록 해. 아무리 그래도, 네가 안에 아무것도 안 입고 가운만 걸친 채 저 봊같은 년이랑 마주 보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
" 아, 알겠어요. 여보. "
" 긴 거로 갈아입어. 최대한 맨살이 드러나지 않는 거로 꽁꽁 싸매는 거야. 저 씨발년이 존나 더러운 눈빛으로 훑는 걸 너도 분명히 느꼈을 거 아니야? "
엄청 노골적으로 바라보는데 그걸 못 느끼면 바보가 아닐까?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옷장에 다가가서 아내가 말한 대로 긴팔상의, 긴바지를 찾고 있는데 그나마 집에 있던 여름용 긴팔 상의, 긴 바지를 모조리 빨아버려 남아있는 것들은 두껍고 털이 숭숭 박혀있는 겨울용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 추, 충분히 느꼈죠. 여보. 그런데 얇은 긴팔 상의 바지는 저번에 다 빨아서 겨울용밖에 없는데.... "
" 지금 그딴 거 쳐 가릴 때가 아니니까 털이 있든 두껍든 일단 잡고 껴입어. 난, 네 맨살이 저 봊같은 년의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꼴을 절대로 못 보니까. "
상냥한 아내의 태도에 난 얼떨떨함을 감추지 못했고 일단 최대한 덜 두꺼우면서도 털이 그나마 없는 옷들을 최대한 추려냈고 곧바로 옷을 갈아입기 위해 걸치고 있던 가운을 스르르 내려버렸다.
" 예쁘네. "
턱을 괸 채로 내 나신을 바라보며 평가를 내리는 아내의 말에 나의 얼굴에 저절로 홍조가 돋아났다.
" 부, 부끄러워요. 여보. 보지 마세요. "
살짝 몸을 틀고 입술을 말아 올리자 가소롭다는 듯이 아내는 헛웃음을 내비쳤다.
" 뭐가 부끄러워? 씨발, 할 거 다 하고 지내면서 별걸 다 부끄러워하고 지랄이네. 알았어, 말 안 할 테니까 그냥 빨리빨리 옷 갈아입어. "
" 네... "
그러나, 말을 안 하는 대신에 아까보다 더욱더 강화된 아내의 시선은 나의 엉덩이를 훑고 지나갔고 결국 난 아까와 별반 다를 거 없이 여전히 홍조를 얼굴에 새긴 채 빠르게 옷을 한 겹씩 껴입어 나갔다.
그렇게, 피부가 보이는 곳이 모두 차단되고 동시에 시원함 또한 함께 차단되면서 더위가 밀려 들어왔다.
안 그래도 더운 집안이었기에 조금만 움직여도 삐질삐질 땀을 폭포수처럼 흘릴 것 같았지만 아내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서는 오히려 만족한 것인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었다.
" 좋아. 아주 좋아. 이거면 됐어.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너, 이거 절대로 벗을 생각 하지 마. 저 봊같은 년이 집 밖에 나가기 전에 네가 이걸 조금이라도 걷어 올리거나 벗어버린다면 넌 진짜 나한테 죽는 거야. 알겠어? "
" 아, 안벗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혹시 저 아줌마가 어, 언제 가시는지 아세요? 지금 가만히만 있어도 너무 더운데 이 상태라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은데.... "
" 몰라 씨발.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올 때도 제 마음대로 왔으니까 갈 때도 제 마음대로 가겠지. 개 씨발 봊같은 년. "
" 아, 그러면 저 사람이 갈 때까지는 꼼짝없이 이러고 있어야 한다는 거네요. 하아.... "
두 팔을 살짝만 움직여도 저절로 땀구멍에서 샘솟아 오르는 땀의 폭포에 벌써부터 옷 안이 후덥지근해졌는데 언제 갈지도 모르는 저 아줌마가 집안에서 사라질 때까지 꼼짝없이 이러고 있어야 한다는 뜻인 건가?
긍정의 표시를 나타내며 위아래로 움직이는 아내의 고개를 보자마자 머릿속이 절망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가지의 생각.
아내의 말속 이상한 단어.
올 때도 자기 마음대로 왔으니 갈 때도 자기 마음대로 갈 거라고?
잠깐, 그렇다면 이 말의 뜻은 아내가 저 아줌마를 초대한 게 아니었다는 뜻인 건가? 나는 여태까지 아내가 모종의 이유로 저 아줌마를 집으로 초대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 여보가 저 아줌마를 집안으로 초대한 게 아니었어요? "
그러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아내는 격양된 감정과 목소리로 나의 물음에 대꾸했다.
" 뭐? 씨발, 내가 미친 것도 아니고 저 봊같은 년을 왜 집안까지 들이겠어? 저, 개 같은 년이 오고 싶다고 생지랄을 떠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온 거야. 하, 존나 그냥 룸에서 계속 술만 처먹으면 되지. 와서 얻을 게 뭐가 있다고 씨발... "
" 전, 여태까지 여보가 저 아줌마를 집안으로 초대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그럼, 여보는 저 아줌마의 그런 막무가내에 거절 의사는 표현하지 않으셨던 거에요? "
" 씨발, 거절 의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딴 걸 내가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있겠냐? 내 처지에 저 새끼가 가고 싶다는데 거절을 하라고? 난 나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취미는 없어. "
" ... "
분하다는 듯이 혀를 차는 아내의 반응에 또다시 저 아줌마의 정체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해나갔다.
도대체 뭐길래, 아내가 자신의 처지에 무슨 거절을 하라고? 라는 말을 할 정도인 거지?
도대체 저 아줌마가 뭐길래?
아까 물으려고 했지만, 질문을 하기도 전에 나의 옷차림에 대한 아내의 지적으로 인해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리고선 잠시 잊고 있었는데 아내의 저 말 덕분에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아내한테 한 소리를 듣더라도 머릿속을 잔뜩 점령해 나가는 이 궁금증을 풀지 못하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기에 난 결국 용기를 얻고서는 아내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 여보. 도대체 저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 거에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