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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의 평범한 유부남-39화 (39/77)

〈 39화 〉 균열

* * *

놀라움과 경악감에 아내를 세차게 부르던 목소리가 꽤나 크게 들렸던 걸까?

끊임없이 메아리치며 되돌아오는 말 소리.

나도 그것을 인지했기에 황급히 두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아 보았지만 이미 늦어버린 후였고, 아니나 다를까 두 명 다 실없는 대화를 나누던 행동을 멈추고서는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내는 가운을 입은 채 현관 앞에 멀뚱히 서 있는 나를 보며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낭패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생전 처음 보는 이 불쾌한 아줌마는 마치 어린아이가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했을 때 짓는 표정을 얼굴에 그리면서 나를 향해 고개를 갸웃 움직였다.

" 어이구. "

입가에 호선을 그리면서 내뱉는 감탄사.

그러나, 그 감탄사는 절대로 순수한 감정으로 뱉은 게 아니었기에 나도 모르게 위협을 느껴 살짝 몸을 떨게 되었다.

" 여기 이 깜찍한 남자분은 누구길래 하얀 가운만 입은 채 이 집에서 우리 유린 씨를 이렇게나 반기고 있는 걸까? "

가운만을 입은 채 현관 앞에 서서 손을 공손히 모으고 멀뚱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그녀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한 걸까?

오만감, 권위 의식에 차 있던 그녀의 눈빛이 곧바로 탐욕스럽게 번들거렸고 내 몸 구석구석을 핥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지자 나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

" ... "

성욕에 가득 찬 여성들의 시선은 많이 마주해보았지만 이렇게나 노골적인 시선은 처음 느껴보았다. 마치, 나체 상태로 그녀의 앞에 서서 창남처럼 봉을 잡고 춤을 추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아, 저기 사장님... "

" 에이, 있어 봐. "

아내의 어깨를 잡고 있던 아줌마의 손이 움직이자 아내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주춤주춤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선 아내를 손쉽게 뒤로 밀어낸 아줌마는 곧바로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었고 그러자 아내와는 다른,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이 느껴지는 냄새가 풍겨 나와 내 코를 강하게 자극시키기 시작했다.

' 너, 너무 가까운데. '

냄새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새액 새액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나와 아줌마의 사이는 가까웠으며 마치 내 얼굴을 뚫어버릴 듯이 빤히 노려보는 시선에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서는 최대한 그 부담스러운 눈빛을 회피하기만 할 뿐이었다.

" 아이, 이러지 마십시오. 사장님. 남편이 부담스럽게 느낍니다. "

그 순간, 뒤로 밀려나 손톱을 물어뜯으며 불안하게 상황을 지켜만 보던 아내가 이 상황을 더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던 건지 나와 아줌마 사이에 손을 집어넣은 다음 둘의 사이를 최대한 떼어놓아 버렸다.

그러나, 평소처럼 욕을 하거나 상대에게 손을 올리지는 않고 최대한 비굴한 표정을 지은 아내는 실없는 미소를 얼굴에 새기며 아줌마에게 보여줄 뿐이었다.

" 아, 오늘 술 먹으면서 누누이 말했던 제 남편입니다. 그러니, 행동을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사장님. "

처음 보는 아내의 모습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당연히 화부터 냈을 텐데, 아내는 정말 신기하게도 굳은 미소였지만 최대한 친절한 태도를 유지한 채 저 아줌마를 상대해주고 있었다.

" 아! 그 말 잘 듣는다고 했던 그 연하 남편? "

" 예. 뭐……. 그렇죠. "

" 아이고, 그럼 내가 실수했네. 이거, 초면에 얼굴을 들이대면 남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부담스럽게 느낄 만 하지! 암, 다 이해하니까 걱정하지 마! "

" 감사합니다. 역시 사장님은 이 시대의 젠틀한 여성의 정석이신 것 같습니다.. "

조금은 굳은 얼굴을 띄고 있는 아내의 간접적인 만류에 아쉽다는 듯 눈을 흘기며 입맛을 다시고서는 한 발자국 물러나는 아줌마는 곧바로 이어지는 아내의 칭찬에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마치, 자신이 진짜 그렇다는 듯 모든 이야기를 빠르게 흡수해나갔다.

그리고선, 아줌마는 나와 아내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더니 아내의 팔을 툭툭 치며 눈썹을 씰룩쌜룩 움직이기 시작했다.

" 와. 이런 남자가 유린씨 남편이라고? 하이고,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유린 씨는 복 받았네. 복 받았어. "

" 아니요.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너무 금칠해주시는 것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

" 뭐가 아니야? 딱 생긴 것도 그렇고 방금 자기 아내가 들어왔다고 쪼르르 달려와 반겨주는 걸 보니까 남편이 아내한테 순종적으로 굴고 헌신적으로 대할 것 같은데 그게 복 받은 거지 아니면 뭐겠어? 야, 나 같은 경우는 집에 들어가면 살만 뒤룩뒤룩 찐 더러운 새끼가 소파에 누워서 꿀꿀대고 있다니까. 이 사람아. "

" 하하... "

" 그런데, 애인이나 원나잇 상대가 아니라 남편인데 이거 내가 들어가도 괜찮으려나? 괜히 사이좋은 부부에 웬 아줌마가 언질이나 연락도 없이 집에 대뜸 쳐들어왔니 유린 씨 남편이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 "

" 아닙니다. 그런 거 전혀 신경 쓰시지 마시고 편하게 내 집이다 생각하고 들어오셔도 괜찮습니다. 유진아, 넌 당연히 괜찮지? "

굳은 미소를 유지한 채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에 나는 저절로 입술을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 물었다.

당연히 괜찮냐고요?

그야, 제가 할 말은 정해져 있지 않을까요?

' 아니요. 여보, 이건 진짜로 안 괜찮은데요? '

적어도, 좋은 사람 같아 보이면 고민해볼 수 있는 질문이겠지만 첫 만남부터 인상이 안 좋게 박힌 사람을 집안에 들여보내자고요?

그 질문에 좋아요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저 아줌마가 신발을 벗고 본격적으로 아내랑 내가 같이 쓰는 한 공간인 집안에 들어온다고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 ... "

이건 아니었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저 아줌마에게 집으로 돌아가달라고 부탁을 하며 현관에서 내쫓아버리고 샤워를 끝마친 아내와 함께 침대에 눕고 싶었고, 실제로도 난 그렇게 말을 하려고 했었다.

' 최대한 둘러서 말하면 충분히 이해해주시겠지? '

물론, 직설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고 약간씩 돌려가며 최대한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주려고 했는데, 그 순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아내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신호.

" ... "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싫다는 기색을 보여주려 하자마자 이리저리 좌우로 움직이는 아내의 눈동자.

' 그냥, 입 닥치고 고개 끄덕이고 있어. '

마치, 이 말을 나에게 전해주는 것 같았다.

' 아.... '

아내가 전해주는 신호를 대충 알아듣자마자 최대한 거절의 의미를 돌려 말하려고 해 위아래로 움직이던 내 입은 순간 멈췄고, 앞을 향해 움직이던 손길 또한 갈 곳을 잃어 그저 어색하게 공중에서 자리를 잡고 있을 뿐이었다.

' 어, 어쩔수 없는 건가? 싫은데... 엄청 싫은데... '

정말 싫고 불쾌했으며 당장이라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주고 싶었지만 결국 난 아내가 나에게 보내준 신호대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음속과는 다르게 바깥으로는 긍정의 의미를 나타내줄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하자는 것에 부정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 뭐, 유린씨 남편까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잠깐 실례하도록 하지. "

" 실례라니요. 그냥 편안하게 들어오셔도 됩니다. 사장님. "

" 아이고, 그럼, 사양하지 않고. "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해두지도 않고서 마구잡이로 벗어던진 그녀는 땀으로 잔뜩 젖어있는 양말을 신은 채 성큼성큼 집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땀으로 양말이 잔뜩 젖어있어서 그런 건지 그녀가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기며 집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바닥에는 선명한 발자국이 찍혔는데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의 입에서는 저절로 탄식이 튀어나왔다.

' 청소 열심히 했는데. '

오늘 평소보다 물걸레질 더 열심히 했는데 모조리 무용지물이 되어버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서러움이 밀려왔지만 일단은 그 감정을 최대한 밀어 넣은 채 집 안으로 들어가는 아내의 뒤를 따라 쪼르르 나도 같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 아이고, 집이 조그마해서 아늑하니 좋네. 인테리어도 나쁘지 않게 했는데 남편 작품인가? "

" 네. 인테리어는 제가 돈 던져주고 남편보고 예쁘게 꾸미라고 했습니다. 사실, 별 기대 안 하고 맡겼는데 의외로 결과물을 보고 나서 저도 좀 놀란 기억이 있네요. "

" 놀랄 만하네. 이야, 이렇게 작은 집을 예쁘고 감각 있게 꾸미는 건 아무리 남자라고 해도 힘든데 말이야. 남편이 예술적 감각이 있는 것 같은데? "

" 에헤이, 그 정도는 아닙니다. "

속전속결로 탁탁 차례차례 해결되는 그들의 티키타카에 나는 뭐라 반응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멀뚱히 아내의 뒤에 서서 내 몸이 아줌마에게 최대한 보이지 않게 가리고서는 그들의 행동을 계속 지켜볼 뿐이었다.

마치, 부동산에서 나온 것처럼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이것저것 만져보는 아줌마와 또 그 뒤에 딱 달라붙어서 아줌마가 만지는 것마다 총알같이 튀어 나가서 설명을 하는 아내, 그리고 그 뒤를 졸졸 따라가는 나까지.

모르는 사람이 이 광경을 본다면 기차놀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라고 오해할 것만 같았다.

' 그나저나, 이 사람은 왜 우리 집에 온 거지? '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의문점.

지금 우리 집을 찬찬히 둘러보고 있는 이 아줌마는 도대체 무슨 이유를 가지고 이리도 늦은 시간에 우리 집에 방문한 것이지?

이 사람이 부동산 직원도 아니고 단순히 집 인테리어가 어떤지 둘러보려고 온 건 당연히 아닐 거 아니야. 그리고 아까, 이야기하던 걸 떠올려보니까 가정도 있으신 것 같은데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집 밖을 돌아다니시면 집안에서 걱정을 하지는 않는 건가?

' 그리고 아내랑은 무슨 사이인 걸까? '

또한, 아내와는 도대체 어떤 사이이길래 아내가 평소에 보여주지 않던, 아예 볼 수도 없었던, 꿈에서도 생각지 않던 그런 행동들을 저 아줌마 앞에서 펼치는 걸까?

사실상, 이 궁금점이 내 머릿속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길래, 어떤 사람이길래, 아내와는 또 어떤 사이이길래, 내가 평소에 아내한테 하는 것처럼 아내가 저 아줌마한테 저렇게 반응을 해주고 행동을 해주는 걸까?

대충 눈치로 파악을 해봐도 절대로 평범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가 있었지만 그래도 모든 정보는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아까부터 아내의 옷깃을 잡고 내가 보내는 뜻만이라도 눈치만 챌 수 있도록 살짝씩 당겨주면서 신호를 계속 주고 있었는데 아내는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서 동시에 나에게 눈길조차 돌려주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아줌마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고 있어서 대답을 해줄 겨를조차 없어 보였다.

그때였다.

" 이야, 뭐 알차게도 꾸며놓았네. 봊만한 집치고는 괜찮아 보여. "

탁상에 놓여있는 시계를 집어 들고서는 짧은 감상평을 남긴 아줌마의 언행에 아내의 뒤에 서서 멀뚱히 상황을 지켜보던 나의 눈동자가 대문짝만하게 커지게 되었다.

' 보, 봊만한 집? '

순간 내가 잘 못 들은 줄 알았는데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파서 점검을 해보니 귀에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까도 그렇고 사람을 앞에 두고 어떻게 저런 무례한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건 지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충분히 알 텐데.

" 하하, 칭찬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

여보도 아까부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원래 이런 소리 듣고서 참는 사람 아니었잖아. 여보 이렇게나 착한 사람이었어?

" 그래도, 난 개인적으로는 역시 이런 집에서 살 바에는 차라리 찜질방에서 지내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이렇게 좁아터진 집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라고? 난 절대로 못살지. "

" 아.... "

"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런 집은 이제 우리 유린 씨 같은 수준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렇게 보면 되지. 하하하! "

" ... "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상대를 완전히 깎아내리는, 여자의 자존심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아줌마의 핵폭탄 같은 발언에 식은땀이 흘러나왔고 저절로 나의 고개가 위로 올라가 아내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방금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굳은 미소를 보여주던 아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그곳에는 분노에 몸을 떠는 야수 한 마리가 존재할 뿐이었다.

아내의 주먹은 세게 쥐어져 덜덜 떨리고 있었으며, 눈동자에 감도는 살기는 당장이라도 등을 보이고 있는 저 아줌마를 때려 패 죽일 것 같은 기운을 뽐내고 있었다.

' 혹여라도 달려들면 어떡하지? 내가 막을 수 있을까? 어떻게 말려야 할까? '

어찌할 줄을 모르며 안절부절하고 있던 그때. 이게 웬걸?

여태까지는 참고 있다가 방금 저 말로 인해서 당연히 아내가 화를 낼 거라고 무조건 확신하고 있었는데 또 한 번 내 예상이 깨부숴지는 상황이 눈앞에서 발생하였다.

아까까지 분노를 조용히 표출하고 있던 것이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아내의 기색이 순식간에 사라졌으며 방금까지 분노에 몸을 떨고 있던 야수는 온데간데없어졌고 귀를 쫑긋 세우는 토끼만이 그곳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 제 수준이 그렇죠. 하지만, 전 사장님이 이것밖에 안 되는 제 수준을 저 멀리까지 끌어올려 주실 수 있다고 강력하게 믿고 있습니다. "

" 호오.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

" 사장님이 이끌어주신다면 뭐, 아파트나 단독주택까지는 올라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아무리 노력해봐도 사장님을 넘어서지는 못하겠지만요. "

" 하하하, 이거 진짜 사람 얼굴에 금칠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야? 어!? 으하하하! "

" 하하, 과찬이십니다. 사장님. "

둘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하지만, 다른 한 명의 얼굴에는 기쁨에 가득 찬 눈동자가 아닌 굳은 눈동자만이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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