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의 평범한 유부남-38화 (38/77)

〈 38화 〉 균열

* * *

" 피곤해. "

마치 건조대에 늘어놓은 미역에 새 생명이 불어 넣어져 움직이는 것처럼 흐느적거리며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유진의 뒷모습은 굉장히 처량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피곤으로 절여진 눈은 당장이라도 감길 듯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으며 팔에 힘은 들어가지 않은 상태로 지나가는 사람이 툭 치면 그대로 부러질 듯이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 힘들어. "

정말, 교수님들이 진행하는 전공 수업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머릿속이 혼잡해져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인데 생전 처음 보는 지식을 억지로 뚜껑을 열어 집어넣으려 하니 과부하가 걸려 벌어 고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처음에 마석 관리과에 들어와 여러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느꼈던 점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할만하네?

믿기지는 않겠지만 정말로 저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주위 사람들과 인터넷에서 마석 관리과라는 학과에서 배우는 수업은 정말 지옥을 방불케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굉장히 겁을 먹고 있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그게 아니구나 라고 느꼈으니까.

의외로 전공 수업들은 굉장히 쉬웠으며 처음 배우는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었고 손쉽게 접근을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진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학과에 입학을 하고 슬슬 몇 달이 지나면서 수업이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자 자동으로 나는 여태 동안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모조리 뒤엎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난이도는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고 교수님들 또한 진도를 빨리 빼기 위해서 따로 부가 설명을 하지 않고 빠르게 휙휙 넘어가는 바람에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점점 수업 시간에 대답만 하는 감자가 되어갔다.

그러니까, 머리로는 이해하겠는데 그걸 풀라고 하면 손과 발이 싫다면서 거부를 한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냥 미치도록 어려웠다.

남는 시간에 복습도 하고 관련 자료와 인터넷 강의도 봐가면서 최대한 수업의 진행에 맞춰가 보려며 노력은 하고 있는데 그 성과가 크게 나타나지는 않는 중이라서 더욱 씁쓸했다.

단순한 대학 전공 수업인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 수준에서 놀고 있는데 대학 수업보다 몇백 배, 몇천배 어렵다고 평가받는 자격증 시험은 도대체 어떻게 통과해야 할련지 원,

" 에휴. "

갑자기 펼쳐지는 미래에 대한 걱정에 새어 나오는 한숨을 막지 못한 그는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몸을 굽힌 채 그렇게 계단을 한 칸 씩 또 한 칸 씩 올라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새, 도착한 집 앞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입력한 그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서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안으로 몸을 비집어 넣었다.

" 저 왔어요. 여보. "

간단한 안부인사후 신발을 벗어 던진 그는 가지런히 신발을 신발장에 가지런히 넣어 정리한 후 곧바로 아내에게서 돌아올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게 웬걸? 당연히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내의 목소리는 되돌아오지 않고 그저, 새근새근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는 내 콧소리만이 집안을 가득 채워나가고 있었다.

" 여보? 어, 안 계시는 건가? 여보! 어디 있는 거예요? "

곧바로 상황을 파악한 그는 혹여나 아내가 다른 일을 집중을 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가능성을 고려하고서 목소리를 아까보다 크게 높인 채 일부러 발걸음을 크게 굴리며 성큼성큼 안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안쪽으로 몸을 움직여 거실로 들어서자 형광등이 켜지지 않아 오히려 바깥보다 더욱더 어두운 기운을 내뿜고 있는 집안의 풍경이 나를 제일 먼저 맞이해주었다.

고요하고 적막한 집안의 기운.

고개를 돌려보자 항상 아내가 앉아서 TV를 보던 소파의 중앙자리에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으며 아내가 항상 끌어안고 있던 쿠션은 한쪽에 가지런히 놓여 정리가 돼 있는 상태였다.

또한, 밤새 예능프로를 방영하며 집안을 왁자지껄 시끄럽게 만들어주던 TV의 전원선은 뽑혀 있었으며 오직 시계의 분침이 움직이는 똑딱똑딱 소리가 TV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었다.

" 어디 가신 거지? "

안방이나 화장실에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애초에, 거실의 형광등도 켜져 있지 않은 상태였고 TV의 윗부분에 손을 올려 느껴지는 온도도 굉장히 차가웠는데 이는 오랫동안 TV가 틀려있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 일 가셨나? '

그는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곧바로 안방으로 달려가 아내가 사용하는 옷장 문의 문을 벌컥 열어버리자 아내의 작업복과 구석에 박혀서 수북한 먼지가 잔뜩 쌓여있는 아내의 장비를 한 번에 목격할 수 있었다.

이게 집 옷장에 아주 곤히 모셔져 있는 거로 봐서는 아내가 일을 나갔다는 것은 아니라는 건데, 그러면 도대체 집을 비우시고 어딜 가신 거지? 마음도 적적하고 복잡하시니까 어디 바람이라도 쐬러 가신 걸까?

' 그런 거면 기다렸다가 나랑 같이 나가면 되는데. '

아쉬움을 뒤로하고 머릿속에 생겨나는 궁금함에 그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곧바로 품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부 제일 위 상단에 위치해 있는 아내에게 전화 통화를 연결하였다.

뚜르르ㅡ

덜컥ㅡ

몇 초 이어지지 않고 끊겨버린 통화음.

[뭐, 왜?]

그리고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에 그는 조심스레 운을 띄었다.

" 여보. 저 지금 집에 왔는데 혹시 어디 나가신 거에요? 아무리 찾아도 안보여서 전화드렸어요. "

[나 나온 지 오래야. 너 학교 나가고 거의 바로 나갔지. 지금 밖에서 술 먹으려고 하고 있는데 전화 길게 못 하니까 용건만 말해. 씨발]

쾅쾅 울리는 음악 소리가 전화 너머로까지 울려 퍼져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함이 전달되었다.

내가 전화를 건 것이 귀찮은 걸까? 아내의 어투에서부터 귀찮음과 짜증이 많이 묻어나왔고 그로 인해 저절로 나의 몸이 위축되었다.

[아, 빨리 말해. 나 바쁘다고, 개새끼야]

" 아, 그, 그러면 여보. 혹시 언제 들어오시는 거예요? 시간만 대충 이야기해 주시면 제가 속 편 하라고 해장국 만들면서 기다리면 될 것 같은데. "

[해장국? 에이, 그딴 거 만들지 마. 어차피 오늘 집에 들어가도 존나게 늦게 들어갈 거라서 굳이 그런 거 안 만들어도 괜찮으니까 괜히 재료 낭비하지 마]

" 느, 늦게 들어오신다고요? "

[그래. 그러니까 넌 그냥 집안에 얌전히 박혀서 어디 나갈 생각하지 말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혹여나 노파심에 말하는 건데 내가 늦게 들어온다고 해서 밖에 나갈 생각은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 그런 거 안 해요! "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아무튼, 한 새벽쯤 돼서 집에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데 자세히는 잘 몰라, 알아서 유동적으로 조정이 될 수는 있는데 기본적으로 11시는 무조건 넘어서 들어올 거니까 그렇게 알고나 있어]

" 11시라서 너무 걱정돼요. 늦게 들어오시지 말고 조금만 더 일찍 들어와 주시면 안 될까요? 여보. "

[씨발, 내가 무슨 한두 살 처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무슨 걱정을 하고 지랄이야? 잠깐만, 어, 이거 지금 네가 나한테 통금시간 거는 건가? 밖으로 싸돌아다니는 아내가 꼴 보기 싫다. 집에 잡아두고 싶다. 뭐 이런 뜻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거지?]

급격하게 굳어지는 그녀의 목소리.

아내가 내 말을 왜곡하여 알아들었다는 것을 빠르게 눈치챈 그는 혹여라도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다급하게 본인이 내뱉은 말이 품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빠르게 전달했다.

"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통금이 아니라 그냥 개인적인 희, 희망인거죠. 저는 그냥 여보랑 같이 자고 싶어서 그런 거에요. 항상 옆에 누군가가 있었는데 갑자기 혼자 자게 되면 쓰, 쓸쓸하기도 하고 또 집에 혼자만 있는 건 조금 외로워서 그런 거에요.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

사랑과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그의 대답에 만족한 것일까? 아까까지만 해도 딱딱했던 그녀의 말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흠, 그런가? 알았어. 뭐, 하긴 유진이 너는 나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못 하는 병신 새끼 그 이하니까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지]

" 맞아요. 저, 저한테는 여보밖에 없는데.... "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오늘 술자리는 단순히 술 먹고 노는 자리가 아니라 정말 중요한 자리라서 그런 거니까 괜한 불평불만 쳐 부릴 생각하지 말고 입 닥치고 집에 가만히 박혀 있기나 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옛말이 있잖아? 하긴, 어차피 내가 이런 말을 해봤자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한 번도 못 해본 개 찐따 새끼인 네가 알아들을 리가 없지]

끊임없이 나를 깎아내리는 아내의 말.

하지만, 난 그런 아내의 말에 분노를 표출하거나 투정을 부리기보다는 그저 실없는 웃음을 보여줄 뿐이었다.

흔한 말이었으니까, 난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게 사실이니까. 난 그런 소리를 들어도 되는 사람이니까.

" ....그러게요. "

그는 미소를 지었다.

조금은 씁쓸한.

그런 미소를.

* * *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고개를 살짝 돌려보자 벽면에 걸려있는 시계의 분침이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각인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이 마치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 올려둔 버터처럼 사르르 녹아버려 벌써 이렇게나 지나가 버렸다니.

나도 원래라면 이미 곤히 잠에 들어 있는 시간이지만, 오늘만큼은 특별한 날이기 때문에 최대한 제정신을 유지한 채로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 아으으.... "

물론, 말은 제정신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내 상태는 거의 반 숙면 상태라고 봐도 무방한 정도였다.

눈꺼풀은 천근만근 무거워서 부산 앞바다까지 닿을 정도로 아래로 내려와 있었고 몇 분마다 나오는 하품과 온몸에서 느껴지는 피로감에 자꾸 고개가 앞으로 숙여졌다.

또한, 눈앞의 초점은 계속 흐려져 사실상 TV를 제대로 시청하지 않고 있었고, 피로감에 몰려오는 약한 두통 덕분에 입 밖으로는 고통에 가득 찬 신음만이 나올 뿐이었다.

" 자고 싶다. "

당장이라도 침대에 몸을 던져 행복한 잠에 빠져들고 싶은 마음은 정말 굴뚝같았다. 사실, 침대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이부자리 하나만 던져줘도 어디에서나 잘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난 억지로 입술을 씹어가면서라도 몰려오는 잠을 참아냈다.

잠이 쏟아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침대에 누웠다가 집에 돌아온 아내한테 혼이 나는 것은 더욱더 싫었으니까 그는 몰려오는 잠을 악으로 깡으로 참고 또 참아냈다.

' 나, 조금 있다가 학교도 가야 하는데. '

눈곱이 잔뜩 끼기 시작하는 눈가 주위를 손가락으로 비비면서 생각을 해보니 아침 일찍 수업이 들어있다는 것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수업뿐만 아니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도 준비를 해야 해서 실제로 지금 침대에 누워도 그리 많은 숙면 시간을 보장받지는 못할 것 같은데 아직도 아내가 귀가하지 않았으니 당장의 앞길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순간 언제 오냐는 카톡이라도 잠깐 보내볼까 생각이 들었지만 난 곧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머릿속에서 생겨난 이상한 상념을 떨쳐버렸다.

그건 바깥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불편함을 주는 행위일 수도 있었다. 당연히 내가 그런 행동을 보여준다면 아내의 심기는 불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고스란히 그 대가는 나에게로 돌아오겠지.

' 여보, 빨리 와줘요. '

결국, 버티다 못해 소파에 풀썩 쓰러진 그는 시선을 여전히 TV에 둔 채 다시 한번 큰 하품을 내뱉었다.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그저 소파에 앉아 가만히 아무런 목적도 재미도 감흥도 없이 시선을 TV에 고정해두고서는 나는 최대한 한시라도 빨리 아내가 집에 일찍 귀가하기를 빌고 또 빌 뿐이었다.

그게,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수단이었으니까.

그때였다.

삑ㅡ 삑ㅡ 삑ㅡ

" 어, 여보다! "

어쩜 이렇게 타이밍 좋게 나타나는 걸까?

현관문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소리에 귀가 쫑긋 움직였고 쏟아질 것 같은 피로는 순식간에 사라졌으며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져졌다.

또한, 부산 앞바다까지 닿을 정도로 내려 앉아있던 눈꺼풀도 당연히 위로 올라갔으며 병에 걸린 것처럼 힘이 쭉 빠져있던 몸에는 다시 활력이 되살아났다.

소파에 누워있던 몸을 곧바로 빠르게 일으킨 그는 잔뜩 흘러내려 상체를 반 정도 드러내고 있는 가운을 다시 위로 올려 흘러내리지 않게 꽉 동여매고서는 혹여라도 놓칠세라 빠르게 현관문으로 총총 달려갔다.

" 여보. 오셨어요? "

덜컥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내는 아내의 곁으로 총총 다가가 머리를 숙이고서는 곧바로 아내의 손에 들려있는 외투를 받아주었다.

멀리서부터 느끼긴 느꼈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그녀의 몸에는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뒤섞인 향기가 심하게 풀풀 풍기고 있었고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충분히 인상을 찌푸릴만했지만 나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채 홍조를 붉히고 있는 아내의 곁으로 더욱더 가까이 다가갔다.

" 목욕물은 데워놓았으니까 들어가서 곧바로 샤워하시면 돼요. "

" ... "

" 외투랑 옷은 벗어서 화장실 앞에다 두면 제가 깨끗이 빨래해서 널어놓을 테니까 나중에 필요할 때 다시 입으면 될 것 같아요. "

그런데 아내의 반응이 무언가 이상했다. 평소 같았으면 뭐라고 말이라도 해줬을 텐데 이상하리만치 내 말에 아내는 단 일의 반응도 보여주지 않고 그저 가만히 나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뭐랄까? 마치, 지금 이 상황을 불편해한다고 해야 하나?

안색에서부터 미간의 주름이 잡혀있는 걸 보아하니 화도 조금 나 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 왜 그러는 거지? '

혹시나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건가?

아닌데.

오히려, 아내를 기분 좋게 만들어줬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아무리 곱씹어보고 생각해보아도 내가 여기서 아내를 화나게 할 만한 행동을 한 것은 없었다.

그럼, 도대체 아내는 무슨 이유로 얼굴을 구긴 채로 입술을 이빨로 짓누른 채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걸까? 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아내의 어깨에 올려지는 두툼한 손바닥.

" 아이고, 힘들어라. 집이 뭐 이렇게 높은 데 있는 거야? "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아내의 뒤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여성을 보자마자 나는 고개를 갸웃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살집은 두툼하게 올라있었으며 피부 관리는 따로 하지 않는 것인지 얼굴에는 트러블이 가득했고 옷이 맞지 않는 것인지 티셔츠 사이로는 뱃살이 잔뜩 튀어나와 있었고 또한, 눈빛은 너무나도 그윽해서 저절로 보는 사람에게 하여금 혐오감을 심어주었다.

" 집 좀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어때? 응? 동네도 흉흉해 보이고 집도 다 낡아서 금방이라도 쓰러져버릴 것 같은 거지 같은 집에서 살면 어떡해? 여자는 자고로 궁전같이 멋지고 넓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법인데 말이야. "

말하는 어투를 보아하니 성격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무례한 언행에 저절로 나의 눈살이 잔뜩 찌푸려졌다. 도대체 이 여성분, 아니 중년 여성분은 누구시길래 아내의 어깨에 함부로 손을 올리고 집주인의 앞에서 저런 무례한 말을 내뱉는 걸까?

저러다가 아내한테 한 대라도 맞으면 어떡하려고 저러는 거지? 라고 생각을 하며 잔뜩 걱정을 할 때쯤 당연히 화를 내며 욕을 내뱉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내가 의외의 행동을 내가 보는 앞에서 보여주었다.

" 저도 그러고는 싶은데 돈이 좀 많이 모자라더라고요. "

" 하긴, 그렇겠지. D급 헌터가 벌어봤자 얼마나 벌겠어. "

" 그런 의미에서 사장님이 좀 도와주시죠. 이 모자란 사람이 이런 거지 같은 집에서 더이상 살지 않고 궁궐 같은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말이에요. 어떠십니까? "

" 하하! 이 사람. 이거, 말 굴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야? 어!? 하하하! "

아내는 화를 내고 욕을 내뱉으며 당연히 싸울 것으로 생각하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몰려오는 분노와 짜증을 참아내고서는 머리를 숙이고 저 여성의 앞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주고 있었다.

" 여, 여보? "

생전 살면서 본적 없던 처음 보는 아내의 행동에 그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어갔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