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의 평범한 유부남-29화 (29/77)

〈 29화 〉 원하지 않았던 모임

* * *

" 아니, 그게 도대체 무슨 개소리에요? "

과대의 날벼락 같은 발언에 모두가 시베리아 한복판에 떨어진 조난자처럼 꽁꽁 얼어 가만히 그녀를 쳐다보고 있을 때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큰 키의 기능성 언더아머 옷을 입어 몸에 탄탄한 근육이 옷 위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건강한 여성이었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성큼성큼 과대의 앞으로 걸어간 그는 고개를 살짝 숙여 시선을 맞추고서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내보이면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자신이 화가 났다는 것을 최대한 어필하였다.

" 아까, 학회장이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면 참석 안 해도 괜찮다고 했잖아요. "

" 당연히 말했죠. 저도 거기에 대해서 이학년 과대 분께 말을 안 해본 건 아닌데 돌아오는 대답이 상갓집처럼 누가 돌아가시거나 결혼식처럼 정말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그냥 모조리 하나도 남김없이 싹 다 오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

" ... "

" 그래서, 다들 오늘 마치고 집이나 다른 곳으로 달려가시지 마시고 제 안내를 따라 모임을 하는 장소에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

" ... "

그때였다.

" 씨발, 아니 상식적으로 모임을 하기 며칠 전에 공지를 띄워준 것도 아니고 오늘 일정 잡고 오늘 공지를 때려놓은 다음에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모조리 참석하라는 게 말이 됩니까!? "

목에 핏대를 선명하게 세운 여성은 지금 우리에게 펼쳐진 이 상황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인지 점점 그 목소리의 크기가 건물 복도를 꽉꽉 채울 정도로 쩌렁쩌렁해지기 시작했다.

" ... "

" 우리가 띵까띵까 노는 사람들도 아니고 누구는 아르바이트, 누구는 선약, 누구는 다른 활동 등등 다 일정이 잡혀있는 사람들인데 그쪽들이 막무가내로 약속 잡아놓고 그 약속을 강요하는 게 정상이에요!? "

" 아이, 당연히 저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죠! 저도 백 번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 걸 제가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정말 죄송한 말인데 저한테 그렇게 화를 내시고 울분을 내셔도 저는 뭘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저도 끌려다니는 입장인 걸 아시잖아요! "

정론이었다.

과대는 그저 이미 전부 다 결정된 결과를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일 뿐, 무언가를 어떻게 조종하거나 변경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라면 이학년들이 얻어먹어야 할 우리들의 원망과 짜증 그리고 분노를 본인이 얻어먹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한 사실.

" 아, 씨발 존나 짜증 나네!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 시대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거야!? 아아아아! "

그녀도 과대에게는 큰 잘못이 없고 여기서 과대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봤자 바뀌는 것이 없다는 걸 인지한 것인지 과대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빙 둘러싸고 있던 진형 속에서 나와 복도를 걸어가며 머리를 혼자서 쥐어뜯으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강의실 안에서 교수님을 기다리며 수업 준비를 하고 있을 학우들에게 피해가 갈 정도로 큰 소리였지만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민폐에 가까운 그녀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다들, 그녀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고도 남았으니까.

" 잠깐만,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이렇게 화를 낼 이유가 하등 없는데요? "

그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난 것인지 번쩍 손을 든 평범한 얼굴의 남성은 자신의 의견에 대해 고개를 갸웃 움직인 우리에게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봊고딩, 봊중딩도아니고 왜 선배라는 새끼들 눈치를 봐야 하는 거예요? "

" ... "

" 그러니까, 선배라는 새끼들이 교수의 권한을 가진 것도 아니라서 우리한테 학점을 잘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성적을 잘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이렇게 눈치를 볼 필요는 없잖아요? "

" ... "

" 이거 한 번 안 간다고 해서 분노를 해서 감히 모임에 참석을 안 해!? 라고 외치며 칼 들고 사람 죽이러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며칠 지나면 전부 다 잊어버릴게 뻔하고 설령 뭐라고 지랄을 해도 개인 사정이 있었다면서 밀어붙이면 되는데. 안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굳이 화를 낼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 "

그냥, 원래대로 안가면 알아서 해결될 일이잖아요ㅡ

마치 지혜의 신 토트의 뺨을 후려쳐버릴 정도로 깔끔한 그의 대답에 모든 이들의 정답을 찾은 학생처럼 표정이 화사하게 밝아졌지만 단 한 사람. 과대만은 다른 사람들처럼 밝은 얼굴을 가지지 않고서 굳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 맞는 답이에요. 정론이고 또, 오직 선배들만 있는 자리라면 그쪽 말처럼 선배들이 점수를 주는 것도 아니고 학점을 잘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개인 사정이라고 밀어붙이고 아예 안 와도 되긴 하는데 이게 문제가 뭔지 아세요? "

" 뭔데요? "

" 오늘 저희 모임에 교수님도 같이 오시기로 하셨습니다. "

두 번째 날벼락이 우리에게 떨어졌다.

" 그러니까, 교수님들도 일이 있으셔서 모임이 끝날 때까지 계속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니고 자기들끼리 모여있다가 중간에 다 함께 사라지신다고는 했고요. 아이, 아무튼 늦긴 했어도 아무튼 오늘 모임에 오시는 건 확정이 됐습니다. "

" 잠깐만요, 예? "

" 교수님이 오신다고요. "

" 교수님이 왜 이런 모임에 참석을 하시는 거예요? 이학년들이 우리 일부러 다 참석하게 만들려고 만든 구라 아니에요? "

" 아니요. 구라는 절대로 아닙니다. 알아보니까 원래 교수님들이 전통적으로 항상 신입생 환영회는 빠짐없이 참석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이학년 과대분 의견을 들은 교수님들이 신입생 환영회인데 교수진이 참여를 안 하면 예의가 아니라고 말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의 뜻이 뭐겠어요? 온다는 뜻이죠. "

생각지도 못한 복병에 화사하게 밝아졌던 유진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 그래서, 제가 볼 때는 이학년들이 불참가자 없이 무조건 참가해라 라는 말의 뜻이 아무래도 선배 부심을 부리면서 저희를 엿먹이려는 뜻도 섞여는 있는데 제일 큰 요소는 아무래도 교수님들이 오시니까 얼굴만이라도 비추거나 아니면 교수님들이 없어질 때까지만 자리를 지켜달라는 뜻 같습니다. "

" ... "

" 교수님들이 왔는데 자리가 좀 텅텅 비어있거나 하면 아무래도 조금 보기가 그렇잖아요? 그것도 이학년은 다들 꽉꽉 차 있는데 일학년 자리만 비어있으면.... 뭐, 굳이 끝말을 붙이지 않아도 다들, 제가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는 이해할 거라고 믿습니다. 한두 살 먹은 사람들도 아니고 군대도 갔다 오신 분도 있고 여기 있는 모두가 본인이 어느 정도 옳고 그름을 판단을 할 수 있는 나이니까요. "

" ... "

" 뭐, 일단 제가 전해드리는 정보는 여기까지고, 솔직히 참석하던 안 하던 본인의 선택이고 선배들끼리만 모임을 가지는 것이면 저도 망설이지 말고 그냥 째 버리라고 말을 할 텐데 아무래도 교수님들까지 오시니까..... "

그녀는 굳이 뒷말을 이어가지 않고 말끝을 흐렸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그녀의 마지막에 이어질 말을 저절로 그려내지 못할 정도로 눈치가 없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가야 한다ㅡ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똑같은 생각을 하고선 결정이 나자마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 * *

[하, 씨발. 존나 어이가 없네]

과대의 말에 결국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자마자 핸드폰을 품속에서 꺼내 화장실로 달려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상황을 설명해주자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하게도 분노가 가득 담긴 아내의 욕설이었다.

전화로도 느껴지는 아내의 살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에 저절로 나의 두 다리가 떨려왔지만 나는 샘솟아 오르는 두려움을 겨우 억누르면서 천천히 최종적으로 결정이 난 사안을 아내에게 말해주었다.

" 죄, 죄송해요. 여보. 저도 어떻게든 안 가보려고 했는데 이, 일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모, 몰랐어요. 서, 선배들만 거기에 있다고 하면 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교수님들까지 오신다고 하니 가, 가야 할 것 같아요. "

[아, 봊같네. 야, 그냥 째 버려. 너 하나 없어진다고 해서 아무도 신경 안 쓴다니까? 거기서 씨발, 출석을 부르는 게 아니잖아?]

" 이, 인원을 딱딱 맞춰서 과대가 가게에 연락해서 몇 명씩 앉도록 테이블을 배정을 완료한 상태인데 저 혼자만 안가면 다들 꽉꽉 차 있는 테이블인데 한쪽만 의자 하나가 비어있는 상태가 되는데 그러면 너, 너무 돋보여서 아, 안될것 같아요. 차라리 안가려면 몇 명이 인원을 맞춰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전부 다 가는 거로 초점이 맞춰져 버려서... "

[하…….]

" 히끅! "

아내의 한숨에 저절로 딸꾹질이 튀어나온 나는 혹여나 나에게 화

" 가, 가야 할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은 다 가는데 저 혼자만 안 간다고 하면 제 처지도 그렇고 분위기도 아, 안좋아질것 같아서.....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여보. 이, 이말 밖에 할 말이 없어요. "

[하, 존나 짜증 나게 하네. 씨발, 늙었으면 개새끼들이 얌전히 방구석에 처박혀서 혼자서 소주나 한 병 까고 있지. 왜 씨발 그런 데를 가서 이 사단을 쳐 만들어놓냐고. 아, 존나 짜증 나네]

" 죄송해요. 여보. "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죄송해야 할 건 씨발, 나이 생각 못 하고 눈치 없게 그런 자리에 굳이 끼려고 하는 저 늙은이들이 사과해야지. 하, 씨발. 너 말고 안 간다고 했던 사람들은 전부 다 가는 걸로 정해진 거야?]

" 네. 다들 전화로 일정 조정하고 선약 있던 걸 취소하던데, 분위기를 보니까 다들 짜증 내면서도 갈려고 하는 것 같아요. "

[아, 존나 그 새끼들도 도움 안 되는 새끼들이네. 안 간다고 정했으면 보지 새끼들이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지. 자지 달린 새끼들처럼 존나 우유부단하게 굴고 지랄이야]

" ... "

[마음 같아선 절대로 가지 말고 당장 집으로 뛰어오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 늙은이들 때문에 그럴 수는 없을 것 같고, 그러면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네가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네]

평소 같았으면 당장이라도 욕을 하며 그에게 집으로 뛰어오라고 외쳤겠지만, 그녀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사회인이었기에 이런 난감한 상황에 부닥쳐있는 남편의 마음을 백번 천번 이해할 수 있었다.

감정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사회, 즉 세상이라는 것은 감정적으로만 행동해서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화를 삭이는 한숨을 한 번 내뱉고서는 그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하아,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가는 건 일단 허락할게]

" 네. "

[대신, 너도 알다시피 네 몸과 마음가짐을 조심히 해야 하는 건 알고 있지?]

" 알고 있어요. 여보. "

[아까 네가 제일 처음에 나한테 카톡 보낸 것처럼 남자아이들끼리만 테이블을 이뤄서 먹도록 해. 절대로 그사이에 여자들이 끼거나 다가오지도 못하게 최대한 막아. 그게 안 되면 그냥 네가 자리를 피하던가, 아니면 같이 먹는 애들한테 부탁을 따로 하던가. 알겠어?]

" 네. "

아내랑 전화가 끝나고 강의실로 돌아가면 곧바로 창우 씨와 경섭 씨에게 다시 한번 진심 어린 사과를 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리고, 넌 취하는 순간 넌 나한테 죽는 거야. 진짜 반으로 찢어서 죽일 거니까 명심해. 절대로 많이 먹지 마. 아니, 웬만하면 그냥 타이밍도 받쳐주고 상황도 받쳐준다면 아예 손에 대지도 마. 알았어?]

" 네. "

[또, 모임이 일찍 마쳤을 때나 혹은 중간에 먼저 혼자 집에 오려고 하지 마. 택시도 타지 말고 누군가가 와서 태워준다고 해도 그 차 타고 집에 올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고 지하철도 안되고 버스도 타지 마]

" 네? 그, 그러면 어떻게... "

[내가 일 마치고 차 타고 바로 너한테 갈 테니까 넌 위치만 찍어 놓고 가만히 가게 안에 앉아 있어. 그리고, 내가 도착하면 그때 넌 짐 싸고 내 차 타고 같이 집에 가는 거야. 그러니까, 무조건 내가 올 때까지 넌 가만히 가게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대꾸도 해주지 말고 그냥 병풍처럼 앉아만 있어. 알았어?]

" 데, 데리러 오신다고요? 힘들지 않으시겠어요? 괘, 괜히 저 때문에 왔다 갔다 하시면 피곤하실 텐데... "

[안 피곤하니까 입 닥치고 내가 말한 거 똑똑히 기억하면서 가만히 가게 안에서 짜져있기나 해. 만약 내가 갔는데 네가 불순하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다? 그때도 죽는거니까 잘 알아둬]

" 아, 네..... "

[아, 진짜 미치도록 보내고 싶지 않은데, 널 그런 병신들밖에 모여있지 않은 거지 같은 소굴로 보내고 싶지 않은데 왜 도대체……. 씨발 진짜 봊같네. 야, 오유진]

" 네? "

[내가 재차 말하는데 난 진짜 네가 여태까지 몇 번 실수한 것을 제외하고서는 잘해왔으니까 네가 알아서 잘할 거라고 믿고 있어. 밖에서 행동, 마음가짐 똑바로 하고 절대로 네 얼굴이랑 내 얼굴에 먹칠하는 일 없도록 해]

내 믿음을 절대로 배신하지 마ㅡ

[알았어?]

엄포와 같은 당부의 말.

" 걱정하지 마세요. 여보. "

나는 걱정과 의심이 가득 서려 있는 아내의 말에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해줄 뿐이었다.

내가, 지금 아내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었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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