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의 평범한 유부남-27화 (27/77)

〈 27화 〉 원하지 않았던 모임

* * *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새, 학교를 다닌 지도 한 달이 넘게 흘렀고 슬슬 중간고사에 관한 이야기가 학교 내에 나돌아 다닐 때쯤, 언제나처럼 모두가 한 수업을 끝내고 강의실에 앉아 이야기하며 시간을 죽이면서 다음 수업을 기다리는 도중, 강의실 앞문이 열리며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여성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 교수님인가? '

당연히,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당연히 지금 강의실 안에 들어온 사람이 교수님일 것이라 생각을 하고서 자세를 바르게 고치거나 가방에서 책을 꺼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가 수업 준비를 마치고 일제히 고개를 앞쪽으로 향할 때, 한 공간 안에 모여있는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들의 앞에 펼쳐진 풍경에서 큰 이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앞문을 열고 긴 생머리를 흩날리며 들어온 여성은 교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고 조교나 학회장이라고 단정 짓기에도 너무 젊은 얼굴을 가진 앳된 여성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옹기종기 모여서 방금까지 이야기의 꽃을 피우고 있던 창우, 경섭, 유진이의 무리도 마찬가지였다.

' 누구지? '

일단 확실하다.

지금 앞에 서서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있는 저 여성분은 교수님이 아니었다. 저렇게 젊은 교수님의 얼굴을 난 여태까지 학교에 다니면서 본적도 없었으니까.

' 그럼, 도대체 누구시길래 우리 과 강의실 안에 들어오신 거지? '

워낙에 얇은 종잇장 인맥을 자랑하는 나로서는 지금 우리 강의실에 침입한 괴한의 정체를 도저히 유추해낼 수가 없었다. 그럼, 워낙, 인맥도 넓고 인싸라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니까 창우 씨나 경섭 씨는 알 수도 있지 않을까?

" 누구야? 창우야, 너 저 사람 누군지 아냐? "

" 나야 모르지. 조교 아니야? "

" 아니야. 내가 조교는 여러 번 본 적 있는데 저렇게 안 생긴 거로 기억해. 자세히는 떠오르지 않는데 확실한 건 저 사람보다 더 못생기고 살도 많았던 거로 기억해. "

두 사람도 나와 처지가 별반 다른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래도, 조금 전에 둘이서 나눈 대화로 얼굴을 본 적도,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조교님이 저 사람보다 못생기고 살도 많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학교를 다닌 지도 어언 한 달이 지나고 중간고사에 관한 걱정을 할 때인데 아직도 우리 과 조교랑 학회장이 누군지 모른다니. 나도 여러 의미로 대단하네.

" 흠, 어험. 반갑습니다. "

앞에 서서 잠시 목을 가다듬고 강의실에 앉아있는 우리를 쭉 둘러본 그녀는 환한 미소를 뽐내며 두 팔을 옆으로 벌리면서 인사를 건넸다.

" ... "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어, 이해합니다. 갑자기 왜 알아보지도 못하는 미친년이 강의실 안에 들어와서 왜 지랄을 하는 거지 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으니까 먼저 제 소개부터 하도록 하죠. 전, 마석 관리과 학회장을 맡고 있는 백윤주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

몇몇 사람들이 소심하게 쳐주는 박수라도 감지덕지한 것인지 그녀는 고개를 숙여 감사의 표시를 나타냈다.

" 사실, 환호는 기대도 안 했습니다. 어차피 절 만날 일도 별로 없으니 그렇게 환호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일단, 아무래도 다음 강의 시간까지 시간이 촉박하니까 뭐, 서론은 다 집어치우고 본론부터 바로 들어가도록 하죠. 여러분들이 이제 저희 마석 관리과를 들어온 지도 어언 한 달이 지났는데 다들 재밌게 학교생활 즐기고 계시지요? "

네ㅡ

" 그래서, 여러분께 더욱 재미난 학교생활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오늘 저녁에 마석관리과 일 학년과 이 학년이 함께 모여 학교 앞 술집에서 신입생 환영회 겸 친목 모임을 오늘 가지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

신입생 환영회라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모든 이들의 얼굴에 의문이 감돌았다.

' 신입생 환영회라니. 그걸 이제 와서 한다고? '

보통,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친목을 도모하는 기념으로 하는 게 신입생 환영회 혹은 뒤풀이가 아닌가?

여태까지 안 하길래 이번에는 안 하고 그냥 건너뛰는가 보다라고 생각했고 학교에 입학한 지 어언 한 달이 넘게 지나고 슬슬 중간고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돌아다니고 있는데 이제 와서 굳이 저런 모임을 기획한 이유가 뭐지?

" 솔직히, 저도 이학년 과대랑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이미 늦을 거 다 늦었는데 갑자기 무슨 친목 도모회냐면서 어이가 없긴 했었는데 뭐, 그쪽도 그쪽 나름대로 하고는 싶었는데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저야 뭐,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죠. "

" ... "

" 거기에 대해서는 저한테 짜증을 내시면 안 됩니다. 저는 그냥 전달해주는 입장일 뿐이에요. 오해하지 마세요. 다들. 아시겠죠? "

네ㅡ

" 아무튼, 여차여차해서 오늘 모임을 하도록 일정이 잡혔고 참가는 되도록 하시는 게 좋습니다.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게 아니면 웬만하면 다들 오시는 게 좋습니다. "

" ... "

" 제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선배들과 하는 행사나 모임에는 여러분들이 참석하시는 게 나중을 위해서라도 좋은 자리가 될 겁니다. 인맥의 힘이라는 건 절대로 무시 못 할 힘이거든요. "

" ... "

" 아무래도, 저희 과를 졸업하고 어느 곳을 취업을 하든 마석 관리과에서 갈 수 있는 직업의 폭은 좁디좁아서 다들 마주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거든요. 그러니, 다들 그런 모임에 나가서 선배들 얼굴이라도 익히고 인연을 트면 여러분께 이득이 되면 됐지. 절대로 불이익이 오지는 않을 겁니다. 뭐, 정말 사정이 있는 분은 어쩔 수 없겠지만요. "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눈치를 보는 모두.

어떤 이들은 학회장에 말에 좋아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귀찮아하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걱정된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인싸들 대부분은 전자의 모습을 띠고 있었지만, 나같이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여러 가지 사정이 있는 사람들은 후자의 모습을 띠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연히 후자에 속했으며 경섭 씨와 창우 씨는 당연히 전자에 속해있었다.

" 자, 그럼 저는 일단 전달해드렸으니까 혹시 여기 과대 뽑으셨죠? 과대 분 손 한 번 들어주실 수 있나요? "

" 아, 접니다. 학회장님. "

번쩍 손을 든 여성은 오리엔테이션 첫날 때 교수님의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을 하며 인싸의 기질을 마구 뽐내던 여성분이었는데 당연하게도 우리 과의 과대를 맡고 있었다.

분명 이름이 설서……. 윤이었던가? 아무튼, 되게 개성과 인상이 강렬하신 여성분이라서 머릿속에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여성분 중 한 명이다.

" 네, 그러면 잠시만 밖으로 나와주실 수 있나요? 제가 이학년 과대랑 연결해드리고 따로 할 말이 있거든요. "

" 네. 알겠습니다. "

학회장과 우리 과 과대는 황급히 자리를 떠나 강의실 밖으로 발걸음을 나섰다.

두 명이 나가자 마치 방금까지 조용했던 강의실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모두가 저마다 친한 사람들과 끼리끼리 모여 어떻게 할 것인지 의견을 나누면서 다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포함한 경섭 씨와 창우 씨도 마찬가지였다.

" 야, 창우쓰! 너 당연히 갈 거지? "

" 뭐, 오늘 할 것도 딱히 없고 약속도 없고 하니까 가봐야지. 아까 학회장 말처럼 이런 자리는 웬만하면 참석하는 게 좋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참석하면 좋으면 좋지, 나한텐 나쁠 건 거의 없으니까. "

" 아씨, 이럴 거면 오늘 화장 좀 세게 하고 올 걸 그랬나? 오늘 아침 늦게 일어나서 화장 연하게 하고 옷도 편하게 입고 왔는데. 씨발!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일찍 일어날걸! "

거울을 보며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인상을 팍 쓰는 경섭은 울상인 얼굴을 짓더니 갑자기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 형도 같이 가죠!? "

" 어, 아, 아마도 못 갈 것 같아요. 저, 저는 사정이 있으니까.... "

원래도 그런 자리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무엇보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할 일이 산더미같이 많아서 갈 수 있는 사정이 되지도 않는다.

" 그냥 같이 가면 안 돼요? 집안일 하루 정도는 쉬어도 괜찮잖아요! 여태까지 옆에서 지켜보니까 진짜 눈코 뜰 새 없이 아내분한테 헌신적으로 대해주시는 것 같던데 하루 정도는 아내분도 이해해주시지 않을까요? "

이, 이해 안 해주던데...

그의 한쪽 팔에 매달리며 마치 장난감을 사달라고 부모에게 조르는 아이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경섭은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 그렇지만 사, 사실 그거랑 상관없이 제가 서, 성격이 이래서 그런 자리를 별로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굳이 가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전 안 갈 것 같은데.... "

일단 첫 번째로 아내가 이러한 일을 허락해줄 리가 없었다.

거기서 첫 번째로 막혀버리고 두 번째는 내 성격상 저런 모임 같은 자리를 썩 좋아하고 즐기는 성격이 아니고 남들과 교류하는 걸 꺼리고 낯을 많이 가려서 어차피 가봤자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있다가 기분만 처진 채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 돌아올 게 뻔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집에 가서 할 일이 태산인데 저 모임에 나가게 된다면 당장 오늘 집안일이 뒤로 미뤄지게 돼버린다. 오늘 해야 할 청소는 어쩌고 빨래는 어쩌고 일을 열심히 하고 돌아온 아내의 저녁은 누가 책임지겠는가?

하지만, 창우와 경섭으로서는 자신들과 가장 친한 친형 같은 사람이 참가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을 표시하자 그렇게 된다면 자신들도 가지 않겠다며 곧바로 바닥에 드러누울 듯이 몸을 축 늘어뜨리며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 아앙! 형 같이 가요! 형이 안 간다면 무슨 재미로 가겠어요! 학회장도 방금 말했잖아요! 이런 모임은 무조건 참석하는 게 이득이라니까요!? 사회생활 중의 일부에요! "

" 피, 피치못할 사정이 있으면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니까... "

" 그건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잖아요! 형은 여태까지 열심히 노력해왔으니까 한 번 정도는 본인에게 휴식을 줘도 괜찮다니까요! "

" 아, 아내 저녁이랑 청소랑 빨래도 해야 하는데…."

" 아내분이 애도 아니고 저녁 정도는 혼자 차려 드실 수 있잖아요! 그리고 빨래랑 청소도 나중에 하면 되고요! 저 형이랑 술 한번 먹어보고 싶은데 서로 일정도 다르고 약속도 많아서 매번 불발될 텐데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먹어보겠어요! 형 안가면 저 진짜 삐져버릴 거에요! "

" 제가 거기 가도 하, 하는것도 별로 없을 거예요. 수, 술도 잘 못 마시고 얘기도 못 해서 재미도 없고 무엇보다 저 유부남이라서 여성분들이랑 술을 먹으면 안 되는데.... "

" 저희가 옆에 꼭 붙어서 여자들 못 오게 막아드릴게요! 저희도 형 있는 자리에 여자들 끼이게 할 마음 없으니까 마음 놓으셔도 괜찮아요! 그리고 저희랑 같이 있으면 저희가 계속 이야기 걸어드릴 테니까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니까요!? 저희 취한 모습 진짜 웃겨요! 제대로 즐기게 해드릴 테니까 같이 가면 안 돼요? 네? "

그런가?

그들이 그렇게 말하자, 굳게 닫혀있는 내 마음이 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

창우 씨와 경섭 씨가 그렇게 해준다면 낯을 많이 가리고 낯선 사람들과의 교류를 싫어하는 두 번째 문제가 약간 해결이 되긴 할 테지만 그러나, 아직 나에게는 첫 번째와 세 번째 문제가 남아있었다.

넘을 수 없는 벽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난 양팔에 매달려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는 그들의 시선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매몰차게 발로 차버리고 거절해버렸겠지만, 그로서는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는 두 사람이 부탁을 하는 이 상황 자체가 괴롭기 짝이 없었다.

결국, 그는 잠시 머릿속에서 정리를 마친 뒤 힘겨운 결단을 내렸다.

" 그, 그럼 아내한테 한 번 물어볼게요. 아, 아내가 안 된다고 하면 저도 어쩔 수가 없어서 그때는 때, 땡깡 부려도 절 놔주셔야 해요. "

결국, 나는 최고결정권자인 아내에게 내 운명을 맡기기로 했다.

" 네! 그때는 떼 안 부리고 깔끔하게 놔드릴게요! 그런데, 당연히 제삼자인 제가 봐도 형이 아내분한테 헌신적으로 대하는 게 보이는데 아내분도 허락해주시지 않겠어요? "

" 맞아! 맞아! "

그러나, 이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내 아내는 내 부탁에 응해주지 않을 것이 뻔했다.

괜히 물어봤다가 아내에게 분노의 카톡을 받을 것 같아서 걱정된 마음을 감추지 못해 굳은 표정을 유지하는 그는 말없이 카톡을 켜서 아내와의 대화창을 열었다.

유진­>[저기, 여보. 혹시 바쁘세요?]

아내­>[ㄴㄴ]

연락을 보내보자 곧바로 돌아오는 답장에 나는 천천히 자판을 눌러 지금 이 상황을 아내에게 최대한 순화해서 설명해주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대화창을 꽉 채울 정도로 설명을 마친 나는 전송 버튼을 누르고 아내에게서 돌아올 대답을 천천히 기다렸다.

' 안 되겠지. '

당연히 안될 것이다. 그래서, 별로 기대하지 않고 있다.

사실, 이번에는 나도 은연중에 아내에게서 거절의 대답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미안한 말이긴 하지만, 창우 씨와 경섭 씨가 술자리에서 내 옆에 딱 붙어서 놀아준다고는 하는데 기본적으로 사람이 복작복작하는 그런 곳 자체를 싫어하는 내 성격 때문에 크게 모임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으니까.

카톡ㅡ

꽤 빠르게 돌아온 답장에 나는 황급히 화면을 키고 대화창을 눌렀다.

사실, 안 봐도 아내가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는 게 눈에 선명해서 굳이 아내에게서 온 카톡을 확인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이 들긴 하는데.....

아내­>[미쳤냐?]

역시 예상한대로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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