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지옥의 조별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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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 진짜 씨발, 개 같은 보도남처럼 생긴 창남같은 새끼가 사람을 봊같이 봐도 정도가 있지. 뒤질려고 씨발. "
하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면서 지운 씨에 대한 필터링 없는 욕설을 내뱉은 규리 씨가 머리가 아파지는 건지 두통을 호소했다.
" 이해합니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저도 화가 나던데 당사자는 오죽하겠어요? "
예나 씨도 입에 담배를 문 채 두통을 호소하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나는 따로 위로의 말이나 등을 토닥여주는 신체접촉 대신 옆에 서서 가방을 맨 채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조원으로서의 자리를 지켜주었다.
아까, 규리 씨의 급발진 이후로는 그야말로 난장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귀를 막아도 그 사이로 들어오는 규리 씨의 괴성에 감고 있는 눈을 떠보자 귀를 쫑긋 세운 채 멀뚱멀뚱 지켜보고 있는 다른 조의 조원들이 나서서 규리 씨를 말릴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었다.
그러나, 이런 막장 같은 상황에서도 지운 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뻔뻔하게 얼굴을 들며 규리 씨를 쳐다보며 말했었다.
ㅡ어머, 왜 화를 내고 지랄이야? 내가 뭐, 딱히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ㅡ욕까지 하고 지랄이네. 진짜 존나 한심하니까 어디 가서 보지 달고 있다고 말하지 마. 병신같은 새끼야.
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으며 그 이후로 우리 조는 조별 과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그는 가방을 챙긴 채 수업 중간에 어디론가 떠났으며 수업이 끝날 때까지 강의실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집으로 떠났거나 자기 친구들을 만나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욕을 늘어놓겠지.
그 이후로 우리는 하나의 조로서 제대로 된 회의를 할 수 없었으며 결국 수업이 끝날 때까지 별다른 진전 없이 전전긍긍하다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 아, 짜증 나. 왜 나는 조별 과제를 하면 항상 병신같은 새끼가 꼭 한 명씩 걸리는 걸까? 씨발, 또라이 보존의 법칙이라도 있는 건가? "
" 뭐, 아무래도 학교가 넓으니까 병신들이 많을 수밖에 없죠. 액땜했다고 칩시다. "
" 하긴, 나중에 본격적으로 조별 과제를 시작했을 때 이 꼬락서니가 났으면 진짜 끔찍했을 텐데 병신새끼를 미리 걸러냈다고 생각해야겠네요. "
깊게 담배를 빨고 내뿜은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움직여 나에게로 다가왔지만 나는 한발을 뒤로 빼 몸을 움직여 나에게 다가오는 독한 연기를 가볍게 피해냈다.
" ...유진씨는 담배 안 피우시나요? 요즘 남자들은 거의 다 피던데... "
그러자 가만히 옆에서 가방을 맨 채 멀뚱멀뚱하게 자신들을 지켜보던 내가 신경이 쓰이던 걸까?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어색하게 왼손으로 잡고서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나보고 담배를 피우냐고? 음, 원래 세상에서 나한테 저런 질문을 던졌다면 고민할 겨를도 없이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표시를 나타내주겠지만 지금은 절대로 그럴 수가 없었다.
" 아, 안펴요. "
" 아, 아예 손도 안 대신 건가요? 그게 아니면 건강이나 여러 문제 때문에 끊으신 건지? "
" 피, 피긴 폈었는데 이제는 끊었어요. 아내가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 그래서 그런지 제가 담배를 손에 대면 호, 혼난다고 해서... "
아내는 굉장한 애연가다.
항상 집에 들어올 때면 담배 냄새가 안 낼 때가 없으며 어떨 때는 집에서 그냥 불을 붙이고 필 때도 있을 정도로 담배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담배를 사랑하는 아내가 항상 필 때 나에게 해주는 말이 있는데 그건 바로....
' 담배 피지 마라. '
바로 이 말이다.
아내는 나와 결혼을 하기 전 사귀는 사이일 때부터 남자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굉장히 창남같다면서 꼴도 보기 싫다고 나에게 담배를 손에 댈 생각도 하지 말라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내가 피면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패 죽일 거라고 했는데 아내는 진짜 그걸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 말을 들은 이후로는 담배를 끊어버렸다.
원래 세상에서는 꽤 알아주는 애연가였기 때문에 끊을 때 고생 좀 했었다. 물론 그것도 이제는 전부 옛날이야기가 돼버렸지만 말이야.
그러나, 그들은 내가 담배를 피우던 말던 거기에 상관을 두지 않았고 앞서 내가 말한 단어에 온 신경을 쏟았으며 곧이어 놀란 반응을 감추지 못하고선 격양된 감정을 보였다.
" 아, 겨, 결혼 하셨어요?
" 네? 유진 씨 결혼하셨습니까? "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릴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여주는 두 사람.
하긴, 신기할 것이다. 결혼을 일찍 시키는 시대도 아니고 요즘 시대에 이렇게 일찍 결혼을 한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대학생 유부남이니까 꽤나 희귀한 생물이잖아?
" 네. 이제 1년 차 부부예요. "
" 아, 겨, 결혼을 하셨구나. 아, 이거 진짜 와…. 말이 안 나오네요. 혹시, 과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신가요? "
" 과 사람들은 전부 다 알고 있어요. 제가 자기소개 시간 때 유부남이라고 말을 해버려서 하, 한동안 조금 시끄러웠거든요. "
" 자기소개 시간 때 유부남이라고 말을 했다고요? 아이고야, 폭탄을 던지셨네. 던지셨어. 와, 그런데 21살에 벌써 1년 차 부부라니. 이야, 그런데 이러면 조금 난감해졌는데... "
" 네? 왜, 왜그러세요? "
그를 쳐다보며 낭패라는 듯이 머리를 긁는 민규리는 마치 위기에 봉착한 주인공처럼 입술을 이빨로 짓누르면서 미간을 좁혔다.
' 왜 그러시지? '
내가 결혼을 했는 사실이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아니지, 문제 될 게 애초에 존재는 하는 건가?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런 반응을 보이시는 거지?
" 결혼을 하셨는데 제가 연락을 보내면 부인께서 싫어하실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히네요? "
" 저한테 연락을 보내신다고요? 연락을 왜……. 어, 설마? "
순간적으로 신체적인 위협이 느껴진 나는 두 팔로 몸을 감싼 채 그녀의 곁에서 살짝 멀어졌다.
저 말의 뜻이 무엇인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내 몸을 노린다는 엄포로밖에 들리지 않는데?
혹여라도 갑자기 벌어질 불상사에 대비해 나는 여차하면 이곳을 빠르게 벗어날 생각해 다리에 힘을 주고 있었고 예나 씨도 규리 씨의 발언에 이상함을 눈치채고 피던 묘한 기류를 풍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몇 초간 이어지는 대치에 본인의 발언이 이상했다는 것을 알아챈 민규리가 자신의 발언을 정정했다.
" 자, 잠깐만요! 이게 오해가 갈 수도 있는 발언을 했는데 정정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연락을 한다는 게 사심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조별 과제 때문에 연락하는 걸 의미하니까 오해 푸시길 바랍니다! "
" 아, 그, 그런거였어요? "
나한테 흑심을 품고 개인적으로 연락을 한다는 게 아니라 조별 과제를 하면서 조원들끼리 필요한 의사소통을 위해 연락을 한다는 의미였구나.
" 당연하죠! 전 씨발 남의 남자를 뺏는 취미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짓거리 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됩니다! 저는 전국에 존재하는 모든 남자들에게 손가락질받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
강한 부정을 보여주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 괘, 괜히 오해를 해버렸네요. 죄송합니다. "
" 아니에요. 솔직하게 오해할 만도 했습니다. 씨발, 처음부터 확실히 말을 했으면 됐는데 이상하게 말한 제 잘못이 크죠. 뭐, 아무튼 제가 조장으로서 연락을 드려도 괜찮으시겠습니까? "
" 음, 연락 자체는 상관이 없는데 아무래도 아, 아내가.... "
연락 자체는 상관없지만, 아내가 그 광경을 목격하거나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확하게 장담할 수가 없었으며 더군다나 아내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더욱 행동을 조신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부정의 표시에 난감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는 민규리.
" 혹시, 부인께서 약간 질투가 많으신가요? "
" 네. 조, 조금 심한 편이죠. "
심하다는 한마디에 세상이 무너지는듯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
" 아이고. 이거 큰일 났네요. 하긴, 아무리 조별 과제 때문에 조원으로서 연락하는 것이라도 엄연히 여자와 남자의 관계니까 혹여나 부인께서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겠네요. "
" 그런데, 조별 과제라서 연락을 안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연락을 하자니 유진 씨가 괜히 피해를 볼 것 같고. 이거 완전 진퇴양난의 상황이네요. 규리 씨. "
" 그러게요. 예나 씨.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
해결이 필요한 의문만을 남겨놓고 담배를 다시 뻑뻑 피워대는 두 사람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 죄,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두 분 다 곤란해지신 것 같아서... "
" 아닙니다. 뭘 이런 거 가지고 사과하시고 그러세요? 원래 여자들은 자기 남자가 다른 여자랑 연락하는 걸 미치도록 싫어하게 설계가 되어있습니다. 저도 여자라서 아내분 마음을 백번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또다시 고민에 빠지는 두 사람.
그들은 다시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으며 또다시 산소 대신 깊게 빤 담배 연기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최대한 서로에게 피해가 안가면서도 가장 좋은 효율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머리를 굴린 지 약 일 분 정도가 지났을까?
그 순간 정예나가 담배를 들고 있는 오른손으로 손가락을 경쾌하게 튕겼다.
" 규리 씨. 그러면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어요? 어차피, 과제를 수행하면서 조원들끼리의 소통은 불가피한 요소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우리 조는 지운 씨가 나가리가 돼버려서 소통의 중요함이 더욱 부각될 게 뻔하고요. "
" 그렇죠. "
" 그러면 그냥 차라리 연락하되 최대한 사무적인 대화만 나누는 거로 합시다. 괜히 잡다한 이야기는 섞지 말고 오로지 과제에 관한 이야기만 하는 거로 하죠. "
" 예를 들면 어떻게? "
" 그냥 단순하게 밥 먹었느냐부터 시작해서 통상적으로 사람에게 예의상 묻는 말이나 나누는 이야기도 전부 하지 말도록 합시다. 저희의 단톡방에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과제에 관한 이야기만 나누는 거로 약속합시다. "
괜찮은 방법 같았다.
확실히 조별 과제를 하면서 팀원들과의 연락을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없다고 뺀다면 그거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없을 테고 그럼 좋은 점수를 받는 것도 물 건너가 버리겠지.
아내의 불호령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예나 씨가 제시한 방법이라면 아내도 내 사정을 고려해 어느 정도 이해는 해주지 않을까?
그러나 민규리는 정예나의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고개를 갸웃 움직였다.
" 차라리, 전화 통화를 하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나중에 통화기록도 삭제하면 될 것 같은…. 아니다. 통화는 뭔가 아내분 입장에서는 카톡보다 더 기분이 나쁠 것 같네요."
" 그렇죠? 카톡은 그냥저냥 넘어가고 이 해줄 수 있는데 통화는 뭐랄까, 보통 친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니까 더 화가 나실 수도 있어요. 그러니, 전화로 소통하는 건 그냥 고려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
" 네, 그러면 예나 씨가 말한 대로 하면 될 것 같네요. 유진 씨 들으셨죠? 저희가 최대한 사정 고려해가면서 조심히 카톡 넣을 테니까 과제에 참여만 열심히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뭐, 사실 여태까지 행동만 놓고 봐도 잘 하실 것 같으니 별걱정도 안되긴 하는데... "
" 아무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그냥 말하는 거니까 대충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시면 됩니다. 어때요? 이 정도면 괜찮으시겠죠? "
최대한 나의 사정을 듣고 배려를 해주는 두 사람의 세심함에 조금 감동을 하였다.
'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나를 배려해주다니. '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지만 난 최대한 정성스러운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여 진심이 담긴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 가, 감사합니다. 저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배려해주시다니. 지, 진짜로 감사드려요. "
" 아니에요. 어차피 한 팀이 된 이상 팀원의 사정을 고려해가며 배려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니 그렇게 너무 고개 숙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나는 친절한 대답이었다.
이들의 무한한 배려와 친절에 내가 최대한으로 보답하는 방법은 좋은 자료를 찾아 제시간에 규리 씨에게 빠짐없이 전달해주는 것뿐이겠지.
" 하, 한시라도 빨리 자료 찾아서 보내드릴게요. 아니지, 그냥 오늘 집에 가서 곧바로 정리해서 보내드릴게요! "
오늘 집에 빨리 돌아가자마자 아내를 위한 저녁 준비를 빠르게 끝내야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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