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의 평범한 유부남-18화 (18/77)

〈 18화 〉 D급 헌터 선유린

* * *

" 음, 잘 만들었네? "

열기가 남아있는 프라이팬에서 아직도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삼겹살 한 점을 집어먹은 아내는 만족의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는 말을 해주었다.

" 괜찮아요? 아까 프라이팬에 가만히 놔둔 상태로 너무 바삭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 부분도 괜찮나 봐요? "

" 아니야. 이게 딱 좋으니까 앞으로 고기 구울 때 이렇게만 해. 괜히 밖에 나가서 먹는 것보다 이게 더 맛있고 편한걸? 앞으로 자주 구워서 내와. 알았어? "

입에 한가득 고기를 집어넣고 우적우적 씹어대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새어 나왔다.

칭찬받아서 기분 좋네.

" 여보가 맛있게 먹으니까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네요. 앞으로 자주 해드릴게요. "

이렇게 좋아하면 얼마든지 시간을 내서 만들어줄 자신이 있었다. 원래 요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먹는 사람이 맛있게 먹어준다는 것은 행복 그 자체니까.

" 이거 먹고 소주 한 잔 딱 걸치니까 진짜 죽이네. 아, 지금 이 시각이 딱 저녁 시간이면 좋을 텐데 말이야. "

아쉽다는 듯이 탄식을 내뱉는 아내.

하긴, 지금 접이식 책상 위에는 고기, 쌈장, 밥, 김치가 올려져 있는데 이건 아무리 봐도 아침 식사라고 볼 수는 없었으니까. 완전 안주 요리잖아. 이거.

" 원하시면 저녁에도 만들어드릴게요. 그 정도는 제가 힘들지 않게 해드릴 수 있으니까요. "

" 아니야. 아침에 술 먹었는데 굳이 또 저녁에 먹어서 무리할 필요는 없지. 나중에 내가 따로 말하면 그때 구워서 내오기나 해. "

" 알겠어요. 여보. "

거의 하정우 먹방처럼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이 음식을 흡입하는 그녀의 밥그릇에 나의 밥을 조금 덜어 아내에게 전달해주었다.

" 근데, 넌 안 먹냐? "

밥그릇에 거의 반이 비워진 나를 보고선 아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 저는 아침에 너무 많이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서 원래 많이 안 먹는걸요. 예전부터 그랬잖아요. "

" 그래? 야, 사람이 원래 아침에 든든하게 배를 채워야 하루를 거뜬하게 지낼 수 있는 거야. 쯧쯧, 그거 먹고 힘이나 나겠어? "

" 괜찮아요. 저는 여보가 많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지니까요. "

" 싱겁기는. 아이, 짜증 나게 아까부터 계속 저년만 나오네. 저년은 존나 비호감인데 왜 자꾸 TV에 나오고 지랄이야. "

애정이 가득 담긴 나의 말에 살짝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미소를 슬며시 지은 아내가 곧바로 고개를 돌려 TV를 보자마자 짜증이 난다는 듯이 인상을 팍 찌푸리고선 입 밖으론 욕을 내뱉었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그녀가 보고 있던 TV에서는 대단히 아름다운 여성이 예능프로에 나와 활짝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누구지? '

노래를 부르는 걸 보니 가수인 건가? 내가 평소에 TV를 안 봐서 저 사람이 누군지 도통 알 수가 있어야지. 뭐, 노래는 잘 부르네. 고음도 잘 올라가고.

당장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바빠 죽겠는데 내가 TV 볼 시간이 어디 있겠어? 그나저나, 아내는 저 사람이 누군지 아는 건가? 왜 저걸 보자마자 욕을 내뱉는 거지?

" 여보. 저 사람이 무슨 사건이라도 저질렀나요? "

" 저 새끼? 아니, 사건 같은 거 없어. 오히려 사건도 안 저지르는 정직한 년이라서 오히려 사람들한테 까방권도 존나 많이 가지고 있는걸? "

" 그런데, 왜 그렇게 화를 내시는 거예요? 혹시,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세요? "

꼴도 보기 싫은 사건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아내는 저 여성분을 보고 화를 내는 거지? 혹시 개인적으로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 건가?

하지만 돌아오는 아내의 대답은 꽤 놀라운 대답이었다.

" 아는 사이? 씨발, 내가 저런 새끼랑 어떻게 아는 사이겠어. 그냥 저년의 꼴 자체를 보기 싫은 것뿐이야. 왜 너도 그런 거 알 거 아니야? 이유 없이 보기만 해도 짜증이 솟구치는 사람이 있듯이 나는 이상하게 저년만 보면 기분이 팍 나빠지더라고. "

" 아.... "

" 유진이 너도 나처럼 생각하지 않아? "

" 네? 아, 저는 TV 자체를 안보니까 연예인에 대해서 아예 모르니까.... "

별로 관심이 없기도 하고 TV를 볼 시간이 없기도 하고 또, 무엇보다 내가 여자 연예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순간 난 아내한테 그날로 죽는 날일걸?

" 씨발, 아 개 같네. 다른 채널로 빨리 돌려버려야겠어. 저런 년을 예능프로에 왜 출현시키는 거지? 노래도 봊도 못부르는데 저게 무슨 가수라고 지랄병을 떠는 건지 모르겠네. "

어지간히 기분이 나빴던 걸까? 소주를 한 잔 들이켜고서는 그녀는 곧바로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려버렸다.

삑ㅡ

[앞으로 베레카 길드의 전망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일단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겁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과 절망에 빠져 가만히 있다가는 더욱 도태될 뿐이니까요]

[그럼 앞으로의 일정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일단 전열을 재정비하고 내부를 정리한 다음 다시 실패한 게이트에 다시 한번 도전해봐야죠. 앞서 실패를 해서 얻은 데이터와 교훈을 통해 이번에는 더욱더 세세하게 작전을 짤 수 있으니까요]

[이번 게이트 공략의 실패로 많은 사람이 베레카 길드에 대해 큰 우려를 표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누구든지 앞으로 나아가면서 쓰러지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건 쓰러졌다는 게 아니라 거기서 무엇을 얻느냐가 문제인 거죠]

그러자 곧바로 세상의 여러 소식과 사건을 전해주는 뉴스 채널로 변경되었으며 TV 화면에서는 등에 거대한 창을 멘 세련된 정장을 입은 여성이 기자들과 질문, 대답을 주고받고 있었다.

가만히 TV에 나오는 여성분을 쳐다보자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라서 저절로 머릿속 기억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잠시,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해보자 곧바로 TV 속에 나오는 여성분이 어떤 분인지 떠올랐다.

' 부, 분명 윤지연이었지? '

13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헌터 일을 시작한 10년 차의 베테랑 B급헌터.

나 같은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이었다. 그만큼 윤지연이라는 이름은 한국에서 꽤 유명한 이름이었으니까. 아마,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창술사였지?

베레카 길드도 들어봤다.

B급 베테랑 헌터인 윤지연이 세운 길드였지? 한국의 5대 길드 중 하나라고 불리는 곳이기도 하고 말이야. 물론 5대 길드 중 가장 말석에 있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그게 어디야?

뭐, 자세한 건 알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지금 TV에 나오고 있는 저 여성분이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멋지네. '

사람 대 사람으로서 저 사람을 보면 저절로 경외심이 생겨났다. 분명 내가 들은 이야기로는 이능이 발현된 순간부터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의 전부를 모조리 훈련하는 데 시간을 소모했다고 하던데...

이능도 엄청 평범하다고 본인이 밝혔다. 굉장히 평범한 이능이었지만 본인이 계속 갈고 닦으면서 저 자리까지 올랐다고 하는데 진짜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 정도의 끈기를 가지고 행동하다니.

' 관련 업계에 종사하지 않는 나도 저 사람이 대단하다고 느끼는데 아내는 나보다 더 큰 대단한 감정을 느끼고 있겠지? '

아무래도 같은 헌터로서 아내는 저 사람에 대해 나보다 더욱 큰 감정을 느끼고 있겠지.

나는 고개를 TV에서 돌려 아내가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함에 곁눈질로 옆을 슬쩍 쳐다보는 그 순간.

" 씨발! 봊같은 년! "

갑자기 옆에서 들려오는 욕설에 깜짝 놀란 나는 저절로 어깨를 들썩였다.

TV에서 눈을 떼고 옆을 쳐다보자 아내는 마치 혐오스러운 걸 본 것처럼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주먹을 꽉 쥐고선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ㅇ, 왜그러세요. 여보? "

" 씨발, 꼴 보기 싫은 년이 보여서 채널을 돌렸는데 돌리자마자 곧바로 더 꼴 보기 싫은 년이 튀어나오네! 저 개 같은 축복받은 년! 아, 기분 존나 더러워! "

아내는 짜증이 난다는 듯 소주잔에 소주를 꽉 채워 단숨에 들이켰다.

아까 그 사람보다 더 꼴 보기 싫다고?

왜 그런 인상을 가지고 있는 걸까? 내가 알기론 저 사람은 행동도 올바르고 딱히 논란될만한 발언도 하지 않고 겸손을 되게 많이 차리는 거로 유명한 사람인데 말이야.

" 왜 그러세요. 여보? 저분이 혹시 뭐, 잘못한 거라도... "

그러자 내 말이 끝마쳐지기도 전에 들리는 욕설이 가득 담긴 외침.

" 씨발, 그냥 저년만 보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해서 그래! 존나 어릴 때부터 운 좋게 좋은 이능 하나 타고나서 저 자리까지 오른 새끼 주제뿐인 년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저렇게 유세 쳐 떨고 다니는 거지? "

" ... "

" 누구는 씨발, 좋은 이능 안 걸리고 싶은 줄 아나? 우리도 씨발, 좋은 이능 가지면 저 정도 자리까지 못 올라갈 것 같아? 존나, 운빨로 저기까지 올라간 새끼가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공식 석상 자리에 나와서 함부로 발언하는 게 그냥 봊나 마음에 안 들어. 씨발. "

결국, 아내는 더이상 윤지연의 얼굴을 보기 싫은 것인지 TV의 전원을 꺼버리고서는 리모컨을 소파 위로 던져버렸다.

저 사람이 좋은 이능을 타고났다고? 어, 내가 알기로는 저 사람 이능은 그냥 평범한데 노력을 미친 듯이 해서 저 자리까지 올라건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야.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 여보. 혹시, 궁금해서 묻는 건데 이능은 원래 타고나는 건가요? 안 좋은 이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단련을 하면 이능의 위력이 강해지지는 않는 건가요? "

혹여나 아내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 아니. 강해져. "

" 네? "

" 아무리 안 좋은 이능이라고 해도 단련을 꾸준히 하면 그 이능의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어. 뭐, 몇몇 체질이 이상한 사람은 안되긴 하는데 웬만하면 거의 다 돼. "

" 아... "

" 그런데 씨발, 어차피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봤자 어차피 저런 년들의 발끝도 못 따라가. 씨발, 벌레가 발버둥 쳐봤자 조금 크고 단단한 벌레로 성장할 뿐이지. 인간이 되는 건 아니잖아? "

" ... "

" 애초에 시작점 자체가 다른 거야. 우리는 맨 뒤에서 뛸 준비 하는데 저년들은 저 앞에 300미터 앞에서 준비하는 거랑 똑같은 거라고. "

" ... "

" 봊같은 년. 존나 운 좋은 년. 운 좋게 좋은 재능 하나 타고난 주제에 맨날 천날 TV에 나와서 겸손 떨고 착한 척 하는 게 그냥 존나 역겹다고. TV에서는 자기가 단련을 해서 이 자리까지 올랐다고 지랄 염병을 떠는데 그냥 존나 위선 떠는 거 다 티 나는데 씨발년이 왜 자꾸 지랄인 거지? 이해를 할 수가 없네. "

" 어.... "

" 에이씨, 좋던 기분 다 사라졌네. 아, 이럴 거면 처음부터 TV 틀지 말고 소주 먹는 데만 집중할 걸 그랬어. 저런 거지 같은 새끼들이 하필 이 타이밍에 TV에 나올지 누가 알았겠어. 씨발. "

더 이상 말을 하기도 싫은 건지 그녀는 소주병을 통째로 들어 꿀꺽꿀꺽 소주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마치 음료수를 마시는 것처럼 깔끔하게 한 병을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비워버린 그녀는 입가 주위를 스윽 닦으면서 나를 슬며시 노려보았다.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동자에 내가 잘못한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분노가 잔뜩 새겨져 있는 그녀의 눈빛을 마주하니 저절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 유진아. "

" 네? "

" 웬만한 남자들은 저년이 겸손하고 올바르고 능력도 좋다면서 막 좋아하거든? 대부분의 남자 헌터들도 좋아하거나 막 존경하는 마음을 가진단 말이야. "

" 네... "

" 나는 그런 좆달린 새끼들을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더라고. 저런 씨발 위선적인 새끼가 뭐가 좋은 거지? "

나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러자 내 얼굴을 쓰다듬으려 침투하는 아내의 손길.

아직 상처가 나 있는 얼굴을 쓸어내리는 그녀의 손길에 나의 몸이 미약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 그런데, 너는 어차피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하는 건데 절대로 그런 생각 쳐 가지지 마. 알았어? 저런 씨발, 재능충 같은 새끼는 이해해줘서도 상종해서도 안 되는 새끼들이야. "

방금까지 저 사람을 윤지연을 보면서 대단하네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마음 한구석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쿡쿡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 네! 절대로 그렇게 생각 안 하니까 그런 걱정 푹 놓으셔도 괜찮아요. "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면서 아내의 말에 긍정해주었다. 아주 필사적으로 말이야.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