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D급 헌터 선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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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등급.
실전경험이 부족하고 능력의 적응이 끝나지 않은 미숙한 사람들이 분포해있는 즉, 아직 수습단계에 있거나 이능의 위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거나 종류가 적은 사람들이 분포해있는 곳이 바로 D등급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 아내는 실전경험이 부족하고 능력의 적응이 끝나지 않은 수습단계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아내는 놀랍게도 7년 차 헌터다.
본인 말로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무 생각 없이 지하철을 타고 등교하다가 갑자기 능력이 발현되었다고 했다.
그 이후로 아내는 공부와 대학입학 따위는 모조리 집어치우고 헌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즉, 그렇다면 아내의 현재 나이가 24살이니까 아내는 이미 7년이라는 시간 동안 헌터 업계에서 구르고 굴렀다는 뜻이 된다.
즉, 경력으로 따지면 중견 그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능숙한 사람이며 실전경험이 매우 풍부하다는 것이다.
애초에 어느 직장을 가도 7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한 가지 일을 한 사람이면 굉장히 대우를 많이 받는 편이다. 7년이라는 시간이 바람 한 번 불면 뚝딱 이룰 수 있는 시간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실전경험이 풍부한 그녀가 왜 D등급에 머물고 있느냐?
답은 하나다.
사실, 나는 일반인에 불과한 사람이고 그쪽 분야에 관심도 없고 당장 나 하나 먹고 살기도 바쁘기 때문에 헌터 업계에 대해서 단 일도 아는 게 없지만, 아내가 술을 먹고 취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한 번 떠올려보면 아주 쉽게 정답이 도출된다.
아내는 능력의 위력과 종류가 굉장히 약하고 적다고 한다. 즉, D등급에 있을 만한 사람은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C등급의 헌터로 올라가기에는 많이 모자란 이능의 위력과 종류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인지 아내는 항상 술을 먹고 취해서 자신의 일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쌍욕밖에 내뱉지 않는다. 어떨 때는 정말 입에 담기도 힘든 욕을 할 때도 있는데 그런 말을 내뱉을 만큼 아내는 화가 많이 쌓여있다는 것이겠지.
" 야! "
그 순간 안방 밖에서 들리는 불호령에 상념의 잠긴 내 머릿속이 순식간에 지우개로 지운듯이 깨끗하게 백지상태로 변해버렸다.
" 네? "
" 우리 집이 언제부터 대저택이었냐!? 안방에 칼 가지러 갔으면서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려? 씨발, 네가 대장장이도 아니고 칼을 만들어서 오는 거야? "
앗차, 너무 오랫동안 안방에 있었나 보네.
" 아, 죄, 죄송해요.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랬어요. "
" 너, 거기서 자꾸 시간 끌지 말고 얼른 후딱 튀어오기나 해! "
나는 힘겹게 두 손으로 칼을 들고서는 펭귄이 걷듯이 뒤뚱뒤뚱 걸어가며 아내에게 다가갔다.
겨우 몇 걸음만 걸었을 뿐인데 벌써 어깨가 빠져버릴 것 같았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나왔으며 내 몸을 지탱하는 두 다리에 통증이 저절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무거운 걸 한 손으로 들고 가볍게 휘두르거나 쓰지 않을 때는 허리춤에 찬 상태로 뛰어다닌다니. 역시, 헌터라는 사람은 전부 다 무서운 사람들이 분명했다.
" 여기요. 여보. 빠, 빨리 받아주세요. 이거 너무 무거워서 쓰러질 것 같단 말이에요. "
소파에 앉아서 가만히 TV를 보고 있던 그녀는 마치 아기를 안고 있는 것처럼 칼을 두 손으로 잡고서 몸에 가까이 붙여 낑낑거리고 있는 그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 엄살떨고 앉아있네. 이게 뭐가 무겁다고 지랄이야? "
" 네? "
그야 여보는 헌터니까 안 무거운 거죠. 전 일반인이라고요?
" 이리 내놔봐. "
가볍게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내 품에서 검을 낚아채 간 아내는 시시하다는 듯 검집에서 검을 높게 빼고서는 검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붕붕거리며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마치 홍길동이 봉을 휘두르는 것처럼 현란한 아내의 손놀림에 이리저리 검이 휘둘러졌다.
" 우와. "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검사들은 전부 다 이런 느낌인 걸까? 살상의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오금이 저절로 저릿해진다.
단순히 휘두르기만 해도 무서워죽겠는데 살의를 가지고 검을 휘두르고 찌르는 것이라면 과연 어떤 느낌이 들까? 상상조차 가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나 같은 사람은 그런 기운을 눈앞에서 목격하자마자 거품을 물고 졸도한다는 것이다.
' 가야겠다. '
내 임무는 안방에 있는 칼을 아내에게 가져다주는 것이므로 이미 끝났다. 그리고 이제 진짜로 내가 해야 할 임무가 남아있으니 그걸 완수하러 떠나봐야겠지.
" 여보, 저 다시 가도 괜찮겠죠? "
" 어, 가. 가서 고기 얼른 고기 굽고 있어. 아, 맞다! 나 오늘은 TV 보면서 밥 먹을 거니까 고기 구워서 프라이팬에 담은 다음 밥이랑 같이 작은 책상 하나 펴서 소파 앞으로 가져와. 알았어? "
상해진 칼날을 유심히 보면서 엄지 손가락으로 몇 번 긁어보는 아내는 나에게 통보하듯이 말했다.
" 네? 오늘은 식탁에서 안 드시려고요? "
" 그래. 나 오늘 TV보면서 밥 먹을거니까 잔말 말고 얼른 구워서 가져오기나 해. 쌈종류는 안가져와도 되니까 고기나 태워서 오지 마. 탄 고기 가져오면 너는 오늘 또 죽는 거니까 명심하고. "
" .... "
무심하게 툭 던지는 그녀의 마지막 말 한마디에 저절로 침이 목 뒤로 꼴깍 삼켜졌다.
그녀에게 맞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난 게 아니고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상처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었고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저절로 손과 발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건, 일생일대의 순간이다. 절대로 태우면 안 된다.
명심하자 유진아. 넌 지금부터 모든 집중을 총동원해서 지금 네 앞에 있는 프라이팬의 고기를 절대로 태워서는 안 된단다. 태우는 순간 네 목이 역모를 꾀한 간신들처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수도 있어.
" 아, 소주도 한 병 가져와! "
" 네? 그게 무슨 소리세요? "
컴컴한 암흑의 시간도 아니고 이제 사람들이 회사로 출근을 하고 등교를 준비하는 시간에 소주를 먹는다는 소리인 건가?
나는 내가 잘못 들은 건 줄 알고 혹여나 하는 마음에 다시 아내에게 되물었다.
" 소주 가져오라고. 딱 한 병 정도만 먹고 바로 출근할 거니까 말이야. 애초에, 삼겹살이 나왔는데 소주를 안 먹을 수가 있겠어? 원래 맛있는 안주가 있으면 거기에 딱 알맞은 술이 바로바로 생각나는 법이야. "
내가 잘못들은 게 아니었구나.
" 여보. 아침부터 술 드시는 건 너무 안 좋은데 그냥 안 드시면 안 될까요? 아침에 운전해서 일터 가셔야 하는데 소주 드시고 나면 운전도 못하실 테고 온종일 피곤하실 텐데... "
" 오늘은 그냥 지하철 타고 가면 되니까 그냥 가져와. 야, 내가 허구한 날 매일매일 술 마시는 알코올중독도 아니고 회사에 출근하는 샐러리맨도 아니라서 괜찮은 건 너도 알고 있잖아? 원래 게이트 들어가기 전에 술 먹고 들어가는 아줌마들도 존나 많아. "
" .... "
" 그리고 헌터라서 어차피 술에 잘 취하지도 않는 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
헌터들은 일반인과는 신체 능력이 아예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말이지만 술도 굉장히 잘 먹는 건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침부터 술을 먹는 건 좀 그렇지 않나…….
" 여보.... "
며칠 전에 아주 신명 나게 맞았기 때문에 큰 액션을 취해서는 안되므로 나는 애절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아, 그냥 가져와. 내가 뭐, 세 병, 네병 먹는다고 했어? 가볍게 딱 입가심으로 한 병 정도만 할 거니까 그냥 가져와. 야, 아침에 술 먹고 운전을 하면 불법이겠지만 술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일터에 가는 건 불법이 아니잖아? 내가 뭐, 불법 저지른다고 한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유난이야? "
하지만 역시나 기각되었다.
뭐라 반박을 하고 싶긴 했지만, 솔직히 아내가 한 말 중에 틀린 말은 없었기에 할 말이 없어졌다.
아내가 술에 잘 안 취하는 헌터라는 사실도 맞고, 술에 중독이 된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라는 것도 맞고, 아침부터 술을 먹고 출근을 하면 안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어차피 아내의 결정에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었다.
" 알았어요. 대신 딱 한 병만이에요. 그 이상 드시면 절대로 안 돼요. "
그래, 한 병이면 뭐. 가볍게 반주한다고 생각하자.
아내도 집안의 기둥을 받치는 가장인데 반주 한 병 걸칠 수 있지. 남편으로서 당연히 이해해줘야 하는 부분이잖아? 신경 쓰지 말자.
" 그건, 내가 더 잘 조절하니까 신경 꺼. 애초에 한 병 이상 마시고 일터 나가면 집중 안 돼서 일도 잘 안 돼서 그 이상 마실 수도 없어. 아 참, 참 이슬로 가져와! "
결국 나는 구석에 박혀 있는 작은 접이식 책상을 꺼낸 다음 곧바로 냉장고 문을 열고선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참 이슬 소주를 꺼내 책상 위에 올린 뒤 접이식 책상의 다리를 펴서 먼저 아내의 앞에 대령해주었다.
아무것도 없이 책상 위에 덜렁 얹어져 있는 소주를 한 번 만진 아내는 소주병의 차가운 온도가 마음에 드는 것인지 씩 미소를 지었다.
" 아주 좋아. 자고로 술은 차갑게 해서 먹어야 제맛인 거지. "
" 그런가요? "
" 그럼, 당연하지. 하긴, 유진이 너는 술을 잘 안 먹으니까 이런 술꾼들의 감성을 이해할 수가 없지. "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차는 아내.
그녀는 입으로 " 쯧쯧. " 소리를 내며 아주 익숙하게 소주병을 돌리며 회오리를 만들어 준 뒤 병뚜껑을 따서 소주잔에 꽉 따르더니 한입에 들이 마셔버렸다.
" 크으으. 난 유진이네가 진짜로 불쌍하다고 생각되는 게 뭐냐면, 넌 평소에 술도 안 먹잖아? 애초에 술도 안 먹으면 인생을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사냐? "
" .... "
그렇다.
나는 술을 잘 안 먹는 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내가 거의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술에 약한 것은 절대 아니고 내가 단지 술을 먹지 않는 이유는 혹여라도 술을 먹고 실수를 범할 가능성을 아예 없애버리기 위해서다.
술이란 게 무엇인가?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필연적으로 취할 수밖에 없는 음료다. 이게 적당히 조절한다면 당연히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까고 말해서 나는 내가 조절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미 원래 세상에서도 술 먹고 실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난 그 기억을 살려서 혹여라도 이 남녀역전의 세상에서 술을 먹고 실수를 범할까 봐 아예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아내가 있는 남편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 아내의 성격이 보통 사나운 게 아니라서 술을 먹고 실수를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특히나 나는 더욱 조심에 만전을 기울여야 하는 편이다.
뭐, 가끔 먹기는 한다. 정말 가끔 특별하거나 술을 필연적으로 마셔야 하는 순간에는 한 잔, 두 잔 정도 먹기는 한다. 아주 가끔 말이야....
' 그나저나 무슨 낙으로 사냐고? '
글쎄다.
이 질문에는 나도 저 대답에 무어라 머릿속에 확실하게 떠오르는 영감처럼 명확한 대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왜냐고 라고 이유를 물으면 아주 간단했다. 그건 바로 아내가 말한 저 말이 맞았으니까.
예전 세상이라면 모를까, 이 세상에 떨어지고 난 뒤 나에게 살아가는 즐거움, 낙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단어가 돼버렸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는 게 무서웠으니까,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까 그냥 사는 것일 뿐.
그뿐이다.
뭐, 살아가는 즐거움을 찾으려고 여러 취미생활을 해보면 금방 찾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럴 시간이 어디 있나?
당장 학교에 갔다 와서 집안일을 하기도 바쁘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얼른 취직 준비를 해야 했고 취직을 하고 나면 아내의 경제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나보고 삶을 살아가는 즐거움을 찾기 위해 취미생활을 찾아보라고?
아마, 내가 삶을 즐거움을 찾게 되는 날은 관 뚜껑이 닫히고 난 뒤일 것이다. 아마, 그때쯤이면 편하게 누워서 하늘나라에서 하하 호호 뛰어놀며 열심히 내 취미생활을 찾을 수 있겠지.
뭔가 씁쓸하네. 갑자기 울적해지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난 미소지었다. 괜히 울상인 표정을 지어봤자 아내가 괜히 기분을 나빠할 수 있음으로 나는 더욱더 입꼬리를 억지로 올렸다.
" 저는 여보랑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삶의 낙인걸요?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걸 곧이곧대로 말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므로 나는 내가 말할 수 있는 대답 중 가장 모범적인 답안을 도출해냈고 곧바로 그녀의 옆에 살포시 꿇어앉아 그녀의 팔에 팔짱을 끼워주고선 몸을 밀착했다.
" ... "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아내. 무언가 애매한 눈빛이 정수리에 닿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더욱 몸을 밀착했다.
아내의 질문은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나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원래 이럴 때 조금 아내에게 엉겨 붙으면서 저번에 실수해 점수가 깎여나간 걸 보충을 해줘야 하는 법ㅇ....
" 고기 탄다. "
나는 곧바로 팔짱을 풀고 주방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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