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대학생 유부남
* * *
" 엉망이네. "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자 온몸으로 전해지는 통증에 내 몸이 저절로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 역시, 손으로 만지니까 통증이 확실하게 느껴져. '
이래선 연고도 못 바르겠네. 괜히 손댔다가 더 덧날 수도 있고 애초에 상처 부위를 만지지도 못할 것 같으니까.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연고와 반창고를 화장실 쓰레기통 안으로 던져버렸다.
" 더 못생겨져 버렸어. 하하... "
이렇게 맞은 게 정말 얼마 만이지? 요즈음 이 정도로 아내에게 맞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뭐, 떠올려봤자 썩 좋은 기억이 아니라서 머릿속에 저장이 되어있지 않은 걸 수도 있는데 아무튼 진짜 오랜만에 정신을 잃고 기절할 때까지 아내에게 두들겨 맞았다.
그나저나, 어젯밤 내가 기절을 해서 정신을 잃을 때까지 아내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고 나니까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이 더욱 못생기게 바뀌어버렸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엉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머리카락은 막 자다 일어난 사람처럼 삐쭉 빼쭉 이리저리 자기주장을 펼치며 위로 힘차게 솟아올라 있었고, 얼굴에는 새빨간 손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볼과 눈 주위는 퉁퉁 부어있었으며 눈동자는 실핏줄이 터져 빨간색으로 잔뜩 뒤덮여있었고 온몸 곳곳에는 시퍼런 피멍이 크게 솟아나 있었으며 또한 멀리서도 선명히 보이는 목덜미에 새겨진 진한 손자국과 얼굴 곳곳에 남아있는 피딱지, 그리고 잔뜩 뭉개진 왼쪽의 귀까지.
내가 보기에도 지금 나의 모습은 썩 보기 좋은 얼굴이 아니었다. 저절로 혐오감과 불쾌감을 불러오는 얼굴 그 자체. 그게 바로 지금 나의 모습이었다.
" ... "
나조차도 더 이상 나의 얼굴을 보기 힘들어서 황급히 고개를 숙여 거울로 향한 내 시선을 옮겨버렸다.
더 이상 보기가 싫었으니까.
그나저나 이 상태면 학교는 어떻게 가야 하는 거지?
오늘이 주말이었으면 토요일, 일요일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얼굴의 상처를 없애려고 노력해봤을 것 같은데 지금 나에겐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약 1시간 뒤에 옷을 갈아입고 집 밖으로 나서 당장 학교로 등교를 해야 했으니까.
얼굴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올 때까지 학교를 결석한다는 방법도 있었지만, 학점을 제대로 받고 장학금을 타려는 나에게는 절대로 실행하지 말아야 할 방법이었다.
그리고, 원래 대학교 수업이라는 게 한번 빠지는 순간 다음 수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게 되므로 결석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방법 그 자체.
' 그냥, 둘둘 싸매고 가는 수밖에 없나. '
무조건 학교는 가야 했으니 어쩔 수 없이 얼굴이 주변에 보이지 않게 꽁꽁 싸매고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약한 상처였다면 그냥 당당하게 오픈하면서 상처에 관해 묻는 애들한테 넘어져서 다쳤다고 둘러대면 되지만 지금 내 얼굴에 새겨진 상처들은 단순히 넘어져서 다쳤다고 볼 수는 없는 상처들이니까.
왼쪽 귀는 뭉개져 있고 얼굴은 퉁퉁 부어있으며 왼쪽 뺨에는 선명한 손자국과 왼쪽 눈동자는 실핏줄이 잔뜩 터져 빨개져 있으며 온 몸 곳곳에 시퍼런 피멍과 목덜미에 새겨진 선명한 손자국까지.
이걸 보고 어떤 이들은 단순히 넘어져서 다쳤다고 생각을 하겠는가? 당장 구급차를 불러서 날 들것에 실려 가게 만들어버릴걸?
일이 절대로 커지면 안 되므로 그것만큼은 절대로 사양이다.
' 특히 경섭이는 더 조심하자. '
경섭이 성격상 이렇게 변해버린 내 얼굴을 본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않고 펄쩍펄쩍 날뛰면서 무슨 일이냐고 나를 추궁할 게 뻔했다.
그러면 일이 복잡해져 버린다. 그라면 단순히 추궁하는 거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며 사방팔방 뛰어다닐 게 뻔했으니까.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후드티와 마스크는 벗으면 안될 것 같네. 점심도 나 혼자서 먹고, 자리도 최대한 뒷자리에 앉으려고 노력해보자.
아, 그런데 경섭이랑 창우가 어쩔 수 없이 내 옆에 앉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리고 또 여름이라서 후드티랑 마스크까지 하고 있는 나보고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물을 가능성도 백 퍼센트고.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지? 뭐라고 말을 해야 걔들이 충분히 납득을 할 수 있을까?
도대체 뭐라고....
" 화장실에서 뭘 하길래 안 나오는 거야? 빨리 안 나와!? "
그 순간 나의 상념을 한순간에 깨우는 아내의 큰 목소리에 내 얼굴이 자동으로 돌아갔다.
" 아, 나, 나갈게요! 죄송해요! 여보! "
나는 주섬주섬 화장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들을 다시 하나씩 챙겨입고서는 화장실 문밖으로 몸을 나섰다.
그러자, 식탁에 앉아서 조용히 밥을 먹고 있는 아내가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턱짓으로 자신의 앞에 앉으라는 신호를 보내주었다.
나는 조용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총총걸음으로 그녀 앞에 있는 의자를 빼낸 다음 살포시 앉아 그녀의 다음 할 말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 네가 네 얼굴을 봐도 솔직히 엄청 가관이지? "
엄청 가관이에요. 여보.
" 네. "
" 내가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나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지? "
" 아, 아니에요!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아요. 다, 제가 행동을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거니까 그런 생각 하지 않으셔도 돼요. "
나는 그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이 꼴이 된 책임은 전부 나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건방지게 행동하고, 함부로 말하고, 말대꾸했으니까 아내는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겠지.
그러니 즉, 나는 아내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제 제멋대로 날뛴 내 입을 원망하고 미워할 뿐.
아내에게는 잘못이 없다.
아내에게는 잘못이 없다......
아내에게는 잘못이..........
" 잘 알고 있네. 난 혹시라도 네가 이상한 상상 하고 있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정신은 똑바로 박혀있으니까 다행이네. "
" 아.... "
" 유진아.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나는 네가 선만 넘지 않으면 웬만한 건 다 받아주는 거. "
사실 저건 맞는 말이다.
아내는 의외로 내 장난이나 부탁을 잘 들어주는 편이다.
그게 아내가 정해놓은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 아닌 이상 웬만하면 아내는 꽤 쿨하게 내 부탁이나 장난을 잘 받아주는 편이었다.
" 마, 맞아요. "
" 내가 언제 네가 약한 장난칠 때 어제처럼 화낸 적 있어? 아니면 내가 정한 규칙 내에서 네가 부탁을 할 때 내가 만들어준 적이 있어? "
" 어, 없어요. "
" 그렇지? 없잖아. 유진이 네가 알다시피 나도 굉장히 유도리 있고 센스가 있는 사람이야. 그런데 네가 어제처럼 내가 정해놓은 선을 넘어버리는 행동을 하면 나는 당연히 깡패가 될 수밖에 없지. "
" .... "
"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 아내에 대한 존중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근데 너도 알다시피 네가 어제 한 건 아내에 대한 존중이 단 하나도 없는 건방진 행동이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킬 건 지켜야 하지 않겠어? 안 그래? "
" 네... "
" 그러니까 조심해. 괜히 어제처럼 행동하지 말고. 나도 너 때리는 거 싫어. 지겹단 말이야. 솔직히 때려도 때리는 맛도 안 나는 사람을 때리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아? 그리고 일할 때도 주먹질을 하는데 내가 굳이 집안까지 들어와서 주먹을 써야겠어? "
" 아, 아니에요. "
" 그렇지. 밖의 일을 집 안까지 끌어오고 싶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걸? 아무튼, 이제 조심히 행동해. 뭔가 할 때마다 자기가 이걸 함으로서 어떤 결과가 발생하게 될지도 한 번 생각해보고. 알겠어? "
" 네. 명심할게요. "
" 그래. "
* * *
햇빛이 쨍쨍 비치는 무더운 날씨에 모든 이들의 옷차림이 저절로 가벼워졌다.
다들 반팔이나 반바지를 입거나 몸에 자신이 있는 여성들은 나시를 입고와 남자들에게 탄탄하게 잡혀 있는 근육의 모습을 보여주며 끊임없는 자기과시를 표출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은 마석 관리과라고 해도 별다를 게 없었다.
마석 관리과 학생들도 모두 다 무더운 날씨에 두손 두발을 다 들고선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학교를 등교했지만 단 한 사람. 오직 한 사람만큼은 마치 시간을 달리는 소년처럼 유일하게 과 내에서, 아니 중앙대학교 학교 내에서 옷차림이 남들과 달랐다.
오유진.
등교 첫날 자기소개 시간부터 폭탄 발언을 던진 마석 관리 과의 유부남.
그는 현재 무더운 날씨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후드티의 후드를 푹 눌러쓰고 맨살이 보이지도 않는 통이 넓고 기다란 바지와 검은 마스크를 쓴 채 책상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옷차림에 당연히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될 수 밖에 없었고 그러한 시선들을 나 또한 아주 잘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미칠 것 같다. 더운 건 둘째치고 이목이 너무 나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연예인들이 길거리를 걸으면 항상 이런 시선들을 맞이하는 걸까?
내 몸 하나하나가 모두 샅샅이 들춰지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에 저절로 내 몸이 부르르 떨려버렸다.
당장이라도 사람들이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각자 자신의 할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초에 이렇게 더운 날에 겨울 옷차림을 입고 왔는데 사람들의 집중을 받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서 딱히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는 와중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아직 경섭이가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거 하나로 위안을 얻는 중이다.
" 야호! 이 몸 등장! "
" 미친놈아! 입 닥쳐! "
이제 그 위안을 얻지 못할 것 같으므로 취소하겠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같이 들리는 걸 보니 창우랑 같이 온 것 같네.
" 형! 저희 왔어요! "
역시나, 경섭이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아주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앉은 채로 가방을 내려놓고 나를 보며 인사를 건넸다.
" 어, 조, 좋은 아침이에요. "
나는 책상에서 고개를 들지 않고 머리를 박은 채로 인사에 대답해주었다.
" 어머나. 이 형 뭐야? 안 더워요? 밖에 일 분만 나가 있어도 더워 죽을 것 같은데 두꺼운 후드티에 긴 바지는 도대체 무슨 조합인 거에요? "
" 히엑? 이 더위에 지금 뭐 하는 거예요? 형 혹시 머리가 돌아버렸어요? 자체적으로 인형 탈 알바하는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런 옷을 입고 계신 거예요? "
역시나, 예상한 반응이었다.
" 아, 제, 제가 몸살 기운이 있어서 옷을 좀 따뜻하게 입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오늘 좀 더워도 두껍게 입고 나왔어요. "
그래서 내가 준비한 변명은 몸살 기운이 있다는 변명이었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는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음으로 한가지 변명을 더 준비해놓았다.
" 아, 그, 그리고 제가 아침에 너무 급하게 일어나버려서 샤워도 못 해버려서 조, 조금 얼굴이 추하거든요. 부끄럽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미안해서 이렇게 입은 건데.... "
샤워를 하지 않았다는 말은 자신의 몸이 매우 더럽다는 뜻을 나타내주지 않는가?
남녀역전의 세상에서 남자들은 원래 세상의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이곳의 여자들에게 굉장히 잘생기게 보이고 싶어 한다.
잘생긴 모습만을 여자들한테 보여주고 싶어 하고 못생기고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남자들의 마음. 크게 보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가지는 감정. 그러한 점을 나는 이용한 것이다.
" 아. 그러시구나. 엄청나게 늦게 일어나셨나 봐요? "
" 어젯밤에 일이 있어서 너무 늦게 자버렸는데 일어나보니까 느, 늦잠을 자버려서. "
" 어젯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늦게 잔 거에요? 오? 이거 설마 그건가? 어머나, 그거에요? 그거 맞죠? "
고개를 살짝 들어보자 경섭이가 음흉하게 웃음을 지은 채로 눈썹을 씰룩쌜룩 움직이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
" 정말요? 한창 젊은 때의 신혼부부가 저녁에 일이 있다는 건 그것밖에 없는 거 아니에요? 뭐, 형이 아니라고 한다면 믿기는 하겠지만 생각은…. 자유죠? "
" 그, 그런거 아니라니까요! 안 했어요! 어젯밤에 안 했단 말이에요! "
얼굴이 화끈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가? 다들 큰 의심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 계속 책상에 박고 있던 머리를 조금 들어도 괜찮겠지.
나는 고개를 들고 내 옆에 앉아있는 경섭이를 바라보았다.
" 그,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얼굴 보이는 건 아니죠? 안 보이죠? "
" 너무할 정도로 안 보이는데요? 검은 마스크에 검은 후드티를 푹 눌러쓰니까 게임 속에 나오는 악당들처럼 어두컴컴하니 하나도 안 보여요. 안 답답해요? 조금 벗으시지. "
" 아, 안돼요. 머리카락이 번개 맞은 사람처럼 이리저리 솟아올라 있어서 절대로 아, 안벗을 거에요. 아, 안보이니 다행이네요. "
경섭이가 말한 것처럼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겨서 다행이네.
만약 얼굴이 조금씩 보인다고 말했으면 곧바로 책상에 머리를 박고 청각에 의지해서 수업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 오늘 종일 계속 그러고 계실 거에요? 엄청 불편할 텐데. "
맞아. 엄청 불편해.
지금 옷 안쪽으로 땀이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콸콸 흘러내리고 있어서 당장이라도 나도 이 옷들을 벗어 던지고 싶긴 한데....
" 괘, 괜찮아요. 불편해도 감수해야 하는 거니까... "
이 후드티와 마스크가 벗겨지면 더 불편한 일이 생길 것이 뻔하니까 그럴 수는 없잖아?
그러니, 난 절대로 이것들을 벗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말이야. 나는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마스크를 다시 한번 꼭꼭 눌러 얼굴에 최대한 밀착시켰다.
미처 가리지 못해서 상처투성이로 가득한 손등을 앞자리에 앉아있는 창우에게 보여주며 말이다.
" ... "
창우는 그저 말없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그의 손등에 새겨진 상처를 이리저리 살필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