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의 평범한 유부남-14화 (14/77)

〈 14화 〉 대학생 유부남

* * *

" 여, 여보. "

다리를 꼰 채 마치 역사 속에서 나오는 위대한 여왕들처럼 나를 고고하게 내려보는 아내의 시선에 저절로 나의 고개 또한 아래로 내려갔다.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를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포식자의 눈빛에 초식동물에 불과한 나는 바닥에 주저 앉은 채 몸을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라네? 감히, 하늘 같은 아내를 보고 말이야. "

" 아, 아니 여보. 애초에 이런 상황이면 어떤 사람이라도 놀랄 수밖에 없는... "

헙.

망언이 튀어나오는 입을 재빠르게 막아보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아내의 눈빛은 아까보다 더욱 흉흉하게 변해있었으니까.

' 유진아. 너 오늘 왜 이러는 거야? '

오늘 미친 거니? 왜 자꾸 이런 실수를 하는 건데? 도대체 왜 네가 너 스스로 명을 단축하는 거냐고? 가만히 입만 닥치고 있으면 되잖아.

" 말대꾸까지 하네? "

미간을 주무르면서 불편하다는 기색을 뽐내는 아내의 모습에 마음속에 불안감이 더욱 증폭되기 시작했다.

아내가 미간을 주무른다는 것은 지금 이 상황에 굉장히 불만이 있다는 뜻이었고 그것은 즉, 아내가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 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튀어나와 버렸어요. 본심은 절대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

" 너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면 마음속 한 쪽에 가지고 있었다는 뜻 아니야? 그게 본심이 아니면 뭔데? "

" ... "

" 유진아. 너는 네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 혹시 모르고 있다면 네 처지가 아주 곤란해지는데, 설마 모르고 있는 건 아니지? "

" 아니에요! 알고 있어요. 다 제가 잘못한 걸 잘 알고 있어요! "

" 자기 잘못을 안다는 새끼가 바닥에 편히 주저앉아서 아가리만 또박또박 벌리고 있다니. 뭔가 상황이 앞뒤가 안 맞지 않아? "

짜증이 난다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나를 보는 아내의 모습에 저절로 두 다리가 덜덜 떨기 시작했다.

" 아... "

" 뭐해? 내 앞으로 안 오고? "

넘실거리는 살기가 흘러나오는 아내의 통보에 나는 곧바로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후다닥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서는 알아서 그녀의 눈치를 보고서 곧바로 두 무릎을 바닥에 세게 처박고서는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긴장감에 저절로 침이 목 뒤로 꿀꺽 넘어갔다. 벽에 걸린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소리는 오늘따라 너무 컸는데 딸깍딸깍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숨소리도 계속해서 가팔라졌다.

" 유진아. 일단은 대충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네가 뭘 잘못했는지 네 입으로 직접 읊어볼래? "

" 네? "

" .... 아 씨발, 오늘 이 새끼가 왜 이렇게 존나 봊같게 하는 거지? "

그 순간 그녀의 손이 앞으로 뻗어지더니 곧바로 내 머리카락을 강한 힘으로 움켜잡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힘에 저절로 바닥에 붙어있던 나의 몸이 들려졌고 엄청난 통증이 나의 머리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다.

" 유진아. 하늘 같은 아내가 한번 말하면 제발 다시 되묻지 말고 한 번 만에 쳐 알아들으라고. 이 봊같은 새끼야. "

" 아악, 죄,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하,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

"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아들었지? 너 지금 원스트라이크야. 아웃돼버리면 나 어떻게 변할지 나조차도 모르니까 조절 잘하는 게 좋을 거야. 너 내일 학교 갈 때 시체 상태로 나갈 수도 있는 거 알지? "

다른 사람이 저런 말을 했다면 단순한 농담으로 치부하겠지만 아내만큼은 그 경우가 다르다. 아내는 나에게 있어서 한 말은 무조건 지키는 성격이니까.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통증 때문에 느린 속도로 고개를 끄덕이면 혹여나 그녀가 불만을 품을 것 같아서 아픔을 참으면서 최대한 빠르게 고개를 끄덕거려주었다.

" 좋아. 이제 내가 아까 말했던 것처럼 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천천히 처음부터 하나씩 읊어. "

그녀가 나의 머리채를 잡은 손을 갑자기 놓아버리자 곧바로 나의 몸이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서는 다시 후다닥 몸을 일으켜 그녀의 앞으로 달려가 곧바로 다시 무릎을 꿇어 자세를 계속 유지했다.

" 이, 일단 하늘 같은 아내님이 싫어하는 이야기를 감히 제가 해버렸고…."

" 그래. 그다음. "

" 그리고 감히 저따위가 아내님이 하는 말씀에 말대꾸를 해, 했습니다... "

" 그리고. "

" 그, 그리고 제 처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하늘 같은 아내님이 봐준다는 것도 까먹은 채 건방지게 해, 행동했습니다. 이, 일단 제 머리로 생각나는 건 세 가지 밖에 없는데... "

" 어. 세 가지면 다 말했어. 내가 생각하는 것도 딱 거기까지야. 내 말에 말대꾸 한거랑 내가 금기시하는 이야기를 해버렸고 또 건방지게 행동한 거 요거 세 개를 네가 잘못했다고 내가 느끼고 있거든. 우리 유진이가 그래도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는 잘 알고 있네? "

" 아.... "

" 유진아. 그런데 말이야. "

갑자기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는 아내는 몸이 찌뿌둥했던 건지 기지개를 켜면서 허리를 돌리며 뚜두둑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를 하기 전 준비운동을 하는 것처럼 그녀는 몸을 계속해서 풀었고 나는 곧바로 나에게 닥칠 운명을 직감했다.

' 아, 그거나. '

아내가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전 갑자기 몸을 푸는 데는 오직 한가지 이유뿐이었으니까.

나는 최대한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배와 팔에 젖먹던 힘까지 쥐어 짜내서 힘을 잔뜩 주었다. 그리고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절대로 입 밖으로 소리를 내선 안 된다는 것.

입 밖으로 아픈 소리를 내는 순간부터는 그야말로 사형이라고 보면 되기 때문에 나는 혹시라도 입 밖으로 새어 나올 비명에 대비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바로, 그때였다.

" 그걸 알고 있는 새끼가 감히 그딴 식으로 쳐 행동해!? "

퍽ㅡ

단 한 번의 발길질로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고요한 집안의 정적이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반으로 허리가 접혀진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져버렸다.

" 켁! "

비명을 지르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역시나 평범한 여성의 발길질도 아닌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가진 D급 헌터인 아내의 발길질을 당하니 저절로 입 밖으로 비명이 새어 나와버렸다.

눈물은 핑 돌았고 겨우 구역감을 참아내자 입 밖으로는 토사물 대신 침이 줄줄 흘러나왔으며 저절로 두 손과 두 발이 덜덜 떨렸고 눈앞은 마치 맹인처럼 사물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흐릿하게 변해버렸다.

" 흐윽, 하악, 헤엑. "

" 너 나 놀리는 거야? 아니, 자신의 잘못을 그렇게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왜 그런 잘못을 저지른 건데? 아가리가 달려있으면 말을 해봐. 응? 유진아. "

쓰러진 나에게 다가온 아내는 내 머리채를 아까와 똑같이 우악스럽게 잡더니 곧바로 내 몸을 들어 올렸다.

축 늘어진 내 몸을 머리카락만 잡고 들어 올린 채 흉흉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에 나는 도저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아내의 저 질문에 내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아내의 화를 돋울 뿐이므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내의 화가 풀릴 때까지 사과하고 또 사과하는 것뿐이다.

" 죄, 죄송해으요. 자, 잘모해써요.... "

" 잘못했다고? 죄송하다고? 그럼, 씨발 처음부터 죄송하고 잘못할 짓을 하지 말던가. "

곧이어 연속으로 그녀의 커다란 손바닥이 그의 왼쪽 얼굴을 세게 후려쳤다.

짝ㅡ

굉장히 청아하고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와 동시에 그의 얼굴도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단 한 대를 맞은 것이지만 그의 왼쪽 얼굴은 마치 수십 대를 구타당한 사람처럼 퉁퉁 부어있었고 뻘겋게 물들어있었으며 진한 손자국이 새겨졌다.

' 여보. 정신 나갈 것 같아. '

누가 헌터 아니랄까 봐 뺨을 단 한대 후려 맞았을 뿐인데 머리를 뜯어 뇌를 망치로 세게 내려치는 것처럼 골 속이 지진이 난 것처럼 세차게 요동친다.

정신을 일단 놓지 않으려고 최대한 붙잡고 있긴 한데 이 상황이 계속 간다면 중간에 기절해버릴 것 같아서 겁이 났다.

하지만 생각할 겨를 없이 곧바로 쇄도하는 그녀의 넓은 손바닥이 다시 한번 나의 왼쪽 볼을 세차게 내리쳤다.

짝ㅡ

" 씨발 새끼가 하늘같이 높은 집안의 가장인 아내가 하는 말을 무시하고. "

눈앞이 흐릿해졌다.

짝ㅡ

" 말대꾸하고. "

이젠 한 쪽 귀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짝ㅡ

" 친구 대하듯이 건방지게 말을 해!? 씨발, 내가 네 친구야!? "

입안에서 금속 맛이 진하게 나고 있었다. 입 안쪽이 터져버린 게 분명했다.

짝ㅡ

" 야 이 봊만아. 너 내가 요즘 풀어주고 편하게 대해주고 다른 집 아내들처럼 잘 대해주니까 아주 살맛 났지? 존나 행복하지? "

상처가 난 곳에 계속 충격이 전해지니까 상처가 벌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입안에 감도는 피의 양은 많아졌고 이젠 입술을 꽉 다물고 있어도 사이로 피가 줄줄 새어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피를 흘리자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면서 그의 머리채를 더욱더 세게 움켜쥐었다.

" 왜 사람이 호의를 건네면 그걸 씨발 좋게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고 권리라고 생각하고 거들먹거리는 건데? "

" 자, 잘모해써요오.... "

" 봊까. 씨발 새끼야. 살인자가 이미 살인을 저질러놓고 유가족에게 달려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전부 일이 끝나? 아니잖아. 너도 씨발 이미 일을 저질러놓고 사과 하나로 퉁치려고 하면 안 되지. 살인자가 법의 심판을 받듯 너도 나의 정당한 심판을 받아야 끝나는 법이야. 아, 씨발 피 존나 묻네. "

왼쪽 뺨을 계속 내리치자 어느샌가 그녀의 손바닥은 그의 입에서 줄줄 새어 나오는 피로 인해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피가 잔뜩 묻은 자신의 손바닥을 그의 얼굴에 잔뜩 문지르면서 최대한 닦아내었다.

" 에이씨. 아까 일하다가 피 묻어서 씻었는데 이러면 또 씻어내야 하잖아. 아, 오늘따라 행동 하나하나가 왜 이렇게 봊같지? "

그럼에도 전부 다 닦이지 않은 피를 씻어내야 하는 것인지 그녀는 세게 움켜쥐고 있던 그의 머리채를 놓고서는 주방 싱크대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잡힌 머리가 놓이자마자 바닥으로 머리가 떨어졌고 그와 동시에 안 그래도 흐릿했던 왼쪽 눈의 시야가 더욱더 흐릿해져 마치 안개가 잔뜩 낀 것처럼 앞을 제대로 분간할 수가 없어졌다.

' 너무 세게 맞은 건가? '

강한 충격이 여러 번에 걸쳐 끊기지 않고 계속 주어지니까 왼쪽 눈에 무언가 이상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눈물도 흐르네? 아니지. 비릿한 냄새가 또 올라오는 걸 보니까 이건 그냥 눈물이 아니라 피눈물이구나. 뭐, 실핏줄이 터졌든 뭔가 안쪽에 문제가 있는 거겠지.

' 여기서 끝냈으면 좋겠다. '

여기서 그녀가 화를 풀고 대충 끝을 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역시이건 어림도 없는 나의 망상에 불과하겠지.

" 아, 봊같게. 담배 존나 당기네. 씨발, 내가 이래서 담배를 끊을 수가 없어. "

언제 담배를 가져온 것인지 모르지만 입에 담배를 문 채 그녀는 라이터를 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빨간 색깔을 보여주며 안쪽으로 서서히 타들어 가는 담배.

안쪽까지 깊숙이 타들어 간 걸 보니 꽤 깊게 빨아들인 것 같았다.

" 흠. "

그녀는 다리를 쭈그려 앉아 나의 시선에 얼굴을 맞추었고 곧바로 새하얗고 독한 담배 연기를 내 얼굴에 뿜어주었다.

" 여기서 끝냈으면 좋겠지? "

당연하죠. 여보.

" ... "

" 근데 유진아. 너도 내가 여기서 끝낼 사람이 아니라는 거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잖아? "

" ... "

" 그러니, 그렇게 희망에 젖은 눈빛 짙지 마.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더 봊같아지니까. 자꾸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면 손에 힘이 더 들어가 버릴 것 같거든. 너도 그건 싫잖아? 아프게 열대 맞는 것보다 약간 덜 아프게 열대 맞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건 대학까지 간 우리 유진이가 더 잘 알 텐데? 그렇지? "

" ㄴ, 네. "

" 그러니 얌전히 있어. 괜히 잘못 후려쳐서 얼굴 싹 다 뭉개버리기 전에 말이야. 알아들었어? "

재밌다는 듯 씩 미소를 지으며 담배 연기를 다시 뿜어대는 그녀를 보고 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거려주었다.

동의의 의사를 받아낸 아내는 좋다는 듯이 크게 미소를 지어주고서는 입에서 흘러나온 핏물 위에 쓰러져있는 나의 머리를 다시 움켜잡은 채 들어 올렸다.

" 자, 다시 들어간다? "

담배를 입에 문 채 다시 손을 들어 올리는 아내의 모습에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고 곧이어 나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세차게 돌아갔다.

아마, 오늘 밤은 길게 느껴질 것 같았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