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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의 평범한 유부남-11화 (11/77)

〈 11화 〉 대학생 유부남

* * *

" 앗싸! 그럼 진짜로 저희 친하게 지내는 거예요! 형! "

" 원래, 남자들은 남자끼리 뭉치고 다녀야 하는 법인 거 알죠? 같은 과라서 앞으로 자주 만날 것 같은데 길 가다가 만나면 서로 꼭 인사하기에요! "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갑자기 내 양팔을 껴안으면서 엉겨 붙는 그들의 행동에 나의 마음속 불편함은 한층 더 커져 버렸다.

하지만, 불편한 기색을 바깥으로 표출할 수는 없는 법이므로 나는 억지로 싱긋 웃음을 지어주었다.

" 어머, 웃음 봐! 형 진짜 웃는 거 너무 매력 있어요! "

" 에? 매, 매력이 있다고요? 아, 아닌데. 저 매력 없어요. 어, 얼굴도 못생겼고 키도 작아서 아무리 봐도 볼품없어 보일 텐데.... "

" 예!? 볼품이 없다고요!? 도대체 누가 그런 말 하는 거예요? "

" 누, 누가 그런 말 하기보다는 그냥 제가 거울로 봤을 때도 그냥 저 자신이 못생겨 보여서... "

항상 샤워를 할 때마다 거울을 보면 느끼는 건데 말이야. TV에서 나오는 연예인들과 비교하거나 지금 당장 내 옆에 있는 너희들과 비교해봐도 내가 부족한 건 사실이잖아.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침묵하고 있자 오른쪽 팔을 잡고 있던 노란색 머리카락이 특징인 창우가 잠시 뒤로 물러나면서 마치 보석을 세공하는 장인처럼 내 얼굴을 한땀 한땀 뜯어보기 시작했다.

인상도 찌푸려봤다가 눈동자도 굴려보고 입으로는 " 흠. " 소리를 내면서 이리저리 내 얼굴을 둘러보더니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 볼품없어 보이는 건 절대로 아니에요! 솔직히 까고 말해서 잘생긴 건 아닌데 형은 형만의 매력이 있으니까 절대로 그런 걱정 머릿속에 담아두지도 마세요. "

그렇구나.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엄청나게 못생겨 보이지는 않구나.

사실, 립서비스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단순히 입에 발린 소리를 술술 늘어놓는 경우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남녀를 막론하고 외모에 대한 칭찬을 들었는데 기분이 안 좋아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 고마워요. "

" 에이, 고맙기는 뭐가 고마워요?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저한테 감사 인사할 필요 없어요! 아 맞다! 그나저나, 형 그거 왼손 약지에 끼고 있는 거 결혼반지 맞죠? "

손가락으로 나의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가리키는 경섭.

" 네? 이거요? "

왼손 약지를 들자 형광등 불빛에 비쳐 밝게 빛나는 결혼반지의 모습에 저절로 나의 입꼬리가 다시 살짝 위로 올라갔다.

이건 결혼을 할 때 아내가 내 손에 직접 끼워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아주 소중한 반지였고 내가 얼마나 소중히 여기냐면 잘 때와 씻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 결혼반지 맞아요. 이, 이쁘죠? 아내가 저한테 끼워준 건데 잘 때랑 씻을 때 빼고는 맨날 끼고 다니고 있어요. "

" 진짜 결혼반지 맞아요? 가까이서 봐도 괜찮을지... "

" 어, 얼마든지 봐도 괜찮아요.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라서... "

왜 이렇게 꼼꼼히 내 반지를 요리조리 살피는 거지? 혹시 뭐가 문제라도 있는 건가? 가짜 같나?

아닌데. 이거 가짜 아닌데. 아내가 자기 먹을 거 안 먹고 입을 거 안 입고 열심히 모은 돈으로 사준 비싼 반지인데...

" 가, 가짜 같아요? "

" 네? 가짜 같냐고요? 아니요! 딱 봐도 조각이 정성스럽게 들어가 있고 때깔부터가 다른데 이게 어떻게 가짜겠어요! 딱 봐도 진짜 같아 보이는데. "

다행이다.

가짜 같다고 말했으면 엄청 속상했을 뻔했는데.

" 그, 그런데 왜 제 반지를 이리저리 살피는 거예요? "

반지를 왜 이리저리 살피냐는 나의 질문에 경섭과 창우의 시선이 서로 마주치더니 둘 다 동시에 고개를 바닥으로 푹 숙여버렸다.

" 아, 사실 그게……. 아, 이거 말해도 괜찮으려나? "

" 그냥 말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괜히 마음 상하실 것 같은데. "

" 안 하는 게 좋겠지? "

" 안 하는 게 좋아. 괜히 건드려서 일 커지는 것보다는 그냥 조용히 있는 게 백배, 천배 훨씬 나으니까 그냥 입 다물고 얌전히 있어. 개자식아. "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 영문을 알 수가 없는 나로서는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감도 잡을 수가 없었고 그 덕분에 중간에 끼여서 가만히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거지? '

도대체 뭐길래 경섭이가 자꾸 말을 머뭇거리고 창우가 필사적으로 말리는 걸까? 민감한 질문이라도 하려는 건가?

" 무슨 일이시길래 그러는 거예요? 저한테 물어볼 질문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

" 아니에요! 형은 별로 신경 안 쓰셔도 괜찮은 거라서. "

" 이미 앞에서 그렇게 다 말해놓고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하면 설득력이 없잖아요. "

" 그렇긴 한데... "

" 뭐길래 그러시는 거예요? 너무 민감한 질문이 아니면 대답해드릴 수는 있는데.... 혹시, 밤일에 관한 그런 질문인 건가요? "

그러자 화들짝 놀라며 그들 다급히 손사래를 치기 시작했다.

" 절대 아니에요! 무조건 아니에요! "

" 밤일이라니요!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세요!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남자한테 대놓고 밤일에 관한 걸 물어보겠어요! 그런 건 불알친구들끼리도 얘기하기 조심스러운 건데! "

밤일도 아니면 도대체 무슨 질문을 하려고 했길래 아까 그렇게 머뭇거리고 망설인 거지?

" 밤일도 아니면 너무 깊은 사생활만 아니면 어느 정도 대답은 해드릴 수 있으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물어보셔도 괜찮아요. 저, 그런 거로 속상해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

" 음, 그렇게 말씀하시면……. 에이씨, 몰라. 그냥 질문할게요! "

그냥 저질러버리겠다면서 입술을 꽉 깨무는 경섭의 행동에 창우가 노란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다시 필사적으로 손사래를 시작했다.

" 하지 마! 괜히 곤란해하실지도 모른단 말이야! "

" 그래도, 본인이 괜찮다고 하는데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솔직히 너하고 나는 딱히 게네들 말 믿지는 않는데 애초에 우리 과에 있는 여자들도 전부 다 궁금해하고 있어서 어차피 나중에 한 번쯤은 물어보게 될 수밖에 없을 것 같고. "

" 야, 그래도... "

" 결국 나중에 얘기 나올 거 그냥 내가 지금 총대 메고 끝내는 게 나아. 저기, 형! 미리 말씀드리는 건데 제가 하는 질문에 무조건 솔직하게 대답해주셔야 해요! 아시겠죠? "

진짜 솔직하게 대답해줘야 한다고?

" 네. 뭐, 애초에 숨기는 것도 없어서.... "

도대체 무슨 질문을 하려고 하길래 저런 밑밥까지 까는 걸까? 경섭이와 창우가 괜히 호들갑을 요란스럽게 떠는 걸 보니 나도 지레짐작 겁부터 먹게 돼버리네.

서서히 떨어지는 그의 입에 저절로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과연 무슨 질문이길래…….

" 형! 혹시, 진짜로 결혼하신 거 맞죠? "

음?

" 네? "

그게 무슨 소리지?

" 진짜로 결혼 하신 거 맞아요? "

" 진짜로 결혼을 했는게 맞냐고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

내가 잘못 들은 건지 그게 아니면 경섭이가 지금 헛소리를 하는 건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진짜로 결혼을 했냐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 거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의 모습에 경섭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팡팡 치면서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욱 질문에 대한 살을 상세히 붙여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 아니, 그러니까. 실제로 결혼식도 올리셨고 집에 들어가면 아내도 있는 게 진짜로 맞아요? 괜히 여자들 떼어놓으려고 거짓말하신 건 아니죠? "

" 예? 거짓말이라니요? 그게 왜 거짓말이에요. 저 아까 자기소개 시간 때 분명히 말했는데...? "

너희들 다 못 들은 거 아니잖아?

난 분명 자기소개 시간 때 제일 처음으로 나가서 결혼했다고 말했고 결혼반지까지 보여줬는데 갑자기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 거야?

얘네들 모두 다 내가 자기소개할 때 자리에 안 앉아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 앉아서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을 텐데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황당하다는 그의 얼굴에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경섭이 한숨을 푹 내쉬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시작했다.

" 사실, 형 자기소개 끝나고 아까 쉬는 시간 때 우리 과 여자애들이 다같이 모여서 형 이야기를 조금 나눴대요. "

" 제 얘기를요? 저에 관한 이야기를 도대체 왜? "

" 자기소개 시간 때 폭탄을 던졌으니까 그렇죠! 아무튼, 여자애들끼리 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다가 결국 나온 결론이 결혼을 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바로 이걸로 나와버렸어요. "

" 에? "

" 아까 저희가 슬그머니 다가가서 그쪽 애들 무리에 끼여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다들 형 이야기만 하고 있던데요? 아까, 저희가 여자애들 무리랑 같이 있었던 이유도 걔들 이야기 들으러 간 거에요. "

" ... "

" 근데 다들 뇌피셜로 내린 결론이라서 대놓고 말은 못 하고 있고 다가가서 물어보지도 못해서 그냥 쉬쉬하고 있긴 한데 저희가 마침 형이랑 친해졌으니까 진실을 알고 싶어서... 아, 물론 저희는 형이 했던 말 모조리 믿고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아시겠죠!? "

나는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꺼내 잠금화면을 푼 다음 갤러리에 들어갔다.

사진들로 꽉꽉 채워진 수많은 카테고리 중 결혼생활이라는 이름이 적힌 카테고리를 들어가서 스크롤을 최대한 밑으로 쭉쭉 내려버렸다.

분명 내 기억상으로는 핸드폰에 아내와 찍은 당시 결혼식 사진이 남아있던 거로 기억하고 있다. 이걸 찾아서 보여주면 되겠지.

' 아니, 그런데 뭐 그런 걸 의심을 하고 그러는 거야? '

의심병 환자들만 모인 건가? 왜 사람 말을 믿지 못하는 거지? 이런 거로 거짓말해서 얻을 이득이 도대체 뭐가 있다고....

" 형, 근데 진짜로 결혼하셨죠? 하신 거 맞죠? "

" 했어요. 제가 양치기 소녀도 아니고 이런 거로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여기요! "

찾았다.

역시나 갤러리 제일 밑쪽에 자리하고 있었네.

나는 사진을 클릭해 최대한 확대해 그들에게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 어머나. 형 여기 있다! 예복 입고 있으시네! "

" 역시나. 형! 저희는 믿고 있었어요. 애초에 이런 거로 거짓말하는 미친 새끼가 세상 어디에 있겠어요. 우리 과 여자애들 너무해도 진짜 너무하네요. 본인들 마음대로 생각해놓고 그게 진실인 것처럼 생각하고 다니는 거 개 역겹네. "

사진 속에는 예복을 차려입은 나와 팔짱을 끼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옆과 그 뒤로 줄지어서 서 있는 수많은 사람의 모습과 부끄럼에 잔뜩 붉혀져 있는 내 얼굴까지.

지나가는 어떤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결혼식장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확실한 증거 그 자체.

그나저나 사진을 얘네들한테 보여주고 나니 현자 타임이 갑자기 내 머릿속에 들이닥쳤다.

" 하,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죄인처럼 해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

" 형. 기죽지 마요! 형이 기죽고 고개 숙일 필요 전혀 없는걸요! 잘못은 괜히 뇌피셜 굴려서 그게 사실인 것마냥 믿고 있었던 애들이 잘못인 거니까 절대로 기죽지 마세요! 그리고, 어차피 이 시간 이후로 그런 생각 하는 여자들도 아예 사라질 테니까 이제 마음 놓으셔도 괜찮아요! "

" 그걸 어떻게 알아요? "

" 저기 뒤쪽에 옹기종기 모여서 저희 얘기 듣고 있으니까요. "

경섭이의 말에 고개를 살짝 돌려보자 순간 기다란 책상에 모여있는 여성들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척하면서 쟤네 아까부터 저희끼리 하던 이야기 다 듣고 있었으니까 이제 그런 개소리 하지도 못할걸요? "

경섭이의 날이 잔뜩 서린 말에 그들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하나같이 전부 다 나의 시선과 마주치려 하지 않고 고개도 푹 숙인 채로 휘파람을 휘휘 불면서 뻘쭘하다는 듯 머리카락을 계속 긁어대고 있었다.

" 이제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성인인데 왜 저렇게 행동하나 모르겠네. 뭐, 양심이 있다면 나중에 커피라도 한 잔 사서 들고 오겠죠. "

그렇지.

당연히 커피라도 한 잔 사서 들고 와야지. 그러니까 미리 주문해놓아야지.

"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너희는 뭐 마시고 싶어? 내가 사줄게.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누군가가 사줄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시켜도 돼. "

" 그럼, 저희 둘은 헤이즐넛 라떼로 할게요. 사이즈 업으로! "

" 음, 그러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랑 헤이즐넛 라떼 두 개네. 분명, 우리가 한 주문은 똑똑히 들으셨을 거야. "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 개 씨발! "

" 얼른 갔다 와! 존나 뛰어 갔다 와! 기집애야! "

" 젖탱이 빠지도록 뛰어갔다 와야 해! 계산은 네가 하고! "

" 개 봊같은 년들! "

그 순간 우리 옆으로 지나가는 긴 생머리의 여성 한 분. 그녀는 자꾸 밑으로 흘러내려 가는 치마를 위로 계속 올리면서 꽁지가 빠지도록 강의실 밖을 뛰쳐나갔다.

다음 수업 시작까지 1분 남짓이네. 여기서 커피가게까지 거리가 꽤 되는 거로 알고 있는데.

" 알아서 오시겠지. "

커피 맛있겠다. 침 고이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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