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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의 평범한 유부남-7화 (7/77)

〈 7화 〉 대학생 유부남

* * *

자기소개라니.

결국 그 거지 같은 시간이 돌아와 버렸다. 모든, 아싸들이 두려워한다는 그 시간.

자기소개 같은 게 도대체 왜 필요한 거지? 어차피 마음 맞으면 나중에 다 같이 저절로 어울리게 될 텐데 말이야.

' 아, 교수님.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

앞에 있는 저 인싸 여자분은 아주 많이 신나셨네. 하긴, 저 사람 같은 친화력이 높은 사람들은 대부분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니까.

하지만, 난 아니라고.

벌써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 보면서 엉성하게 서 있는 채로 나 자신을 소개한다고 생각하니 손과 발이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대충 끝내고 들어가려고 해도 앉아있는 여러 사람, 그리고 특히나 앞줄에 앉은 인싸분들이 황급히 자리로 돌아가려는 나를 막고선 온갖 질문을 퍼부어버리겠지?

아직 닥치지도 않은 현실이었지만 그래도 덜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어서 저절로 엄지손가락을 물어뜯게 돼버린다.

" 지루한 수업에 관한 이야기는 오늘 일단 집어치우겠습니다. 어차피 지금 말해봤자 복잡하고 어려워서 다들 못 알아 들게 뻔하니까요. 그렇죠? 여러분? "

" 예! "

" 10분의 짧은 오리엔테이션에서 제가 말해드릴 것은 일단 첫 번째로 성적이 어떻게 계산될 것인가를 말씀드릴 것입니다. "

교수는 보드마카로 화이트보드에 각각 30, 30, 20, 20 을 적었다.

" 자, 일단 중간고사 30% 기말고사 30% 출석이 20%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포트와 과제가 20%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 "

" 예! "

" 출석 20% 이거 은근 큽니다. 학교에 꼬박꼬박 나오기만 해도 20점은 벌고 가는 거니까 출석 무조건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

" 예! "

" 사실, 여기는 고등학교도 아니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대학교이기 때문에 출석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긴 하지만 그래도 다들 비싼 등록금 내고 온 거 아닙니까? 맞죠? "

" 네. 맞습니다! "

" 그러니, 등록금 값은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한 두 푼 하는 돈도 아니고 몇백만 원이 훌쩍 넘는 큰돈인데. "

정론이다.

근데, 어차피 교수님이 저렇게 말해도 어차피 뺄 사람은 나중에 계속 빼게 된다. 지금은 첫날이기 때문에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다 다 나온 것일 뿐, 한 며칠 지나면 슬슬 한두 명씩 빠지는 사람이 나오게 될 거다.

그건 어느 대학교 어느 과를 가든지 간에 변하지 않는 만고불변의 법칙.

뭐, 근데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다.

나는 대학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이미 대학교의 자유와 성인의 자유는 원래 세상에서 질리도록 느껴보았다.

난 이곳에서 놀고 술을 먹으려고 대학을 온 게 아니라 집안의 기둥을 혼자서 받치고 있는 아내의 경제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 빨리 취직을 하려는 목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무조건 성적, 즉, 학점이 매우 중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출석을 거른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

애초에 내가 출석을 거르고 농땡이를 피우는 순간 그날은 내 제삿날일걸? 아마, 아내가 " 등록금 대주니까 감히 학교를 째!? " 라고 소리치면서 휘두른 주먹에 온몸이 피멍으로 물들고 병원으로 실려 갈게 백 퍼센트라고.

" 여기서 중요한 점은 중간고사랑 기말고사가 각각 30%라서 머리 싸매고 걱정할 수도 있는데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과목은 중간, 기말 전부 다 오픈북으로 칩니다. "

" 와아아아아!! "

앞줄에서 들리는 함성이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사실 나도 미약하게나마 뒷자리에 앉아서 방금 교수님의 한 말에 감탄사를 날리고 있었다.

' 오, 개꿀이네. '

사실 공대에서의 오픈북 시험은 " 볼 테면 봐라. 어차피 봐도 모를 테니까. "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여긴 공대가 아니니까 시험의 난이도는 분명 쉽겠지.

그나저나 중간, 기말 전부 다 오픈북이라고? 앗싸. 그럼 과제나, 레포트만 제대로 내면 A 맞는 건 일도 아니겠어. 이 과목은 딱히 걱정할 필요 없겠네.

" 시험 난이도도 굉장히 쉬울 테니 제시간에서만큼은 편한 마음으로 의자에 앉아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면서 즐겁게 수업을 들으시면 됩니다. 다들 아시겠죠? "

" 네! "

" 그런데 제가 한가지 당부해 드릴 말이 있는데 제가 가르치는 마석의 관리와 계산은 아무래도 과목이 과목인지라 실습 같은 게 없습니다. "

그건, 좀 아쉬운 이야기네.

" 교재나 따로 나누어주는 참고자료로 수업을 계속 진행하기 때문에 조금 지루할 수도 있으니 여러분들이 부디 꿈나라로 빠져들지 않고 제 수업을 잘 들어주셨으면 좋겠네요. "

" 절대로 졸지 않겠습니다! 교수님! "

역시 대답도 잘하시네. 저 여자분.

" 흠... "

앞줄에 앉아서 반짝반짝 눈동자를 빛내는 그녀를 빤히 지켜보는 김성정 교수는 턱을 손가락으로 살짝 매만졌다.

" 원래, 처음에는 다 그렇게 말하는데 막상 본격적으로 수업에 들어가면 자네 같은 학생들이 제일 먼저 자거나 수업을 째버리던데... "

" 예? 아닙니다! 전 믿으셔도 괜찮습니다. 교수님! "

" 그런가? 자네 얼굴은 내가 똑똑히 기억해두겠네. 양면의 날인 건 알지? 잘하면 내 눈에 확실히 들어오는 거고 못하면 완전히 나가리 될 거야. "

" 기대에 부응해보겠습니다! 교수님! "

" 하하하! 이거 오랜만에 과에 유쾌한 학생이 들어왔네. 원래 첫날에 이렇게 대답을 크게 하거나 교수들한테 쉽게 말을 트는 사람은 정말 드문데 말이야. 과대 같은 거 하면 어울리겠네. "

" 예, 안 그래도 한 번 신청해보려고 합니다. "

역시나, 친화력이 높은 사람이 과대를 맡을 확률이 높은 것도 어느 대학교 어느 과를 가든 똑같구나.

" 그래, 자네같이 친화력이 높은 사람이 과대를 하면 모두가 편해지거든. 자, 아무튼 여기서 성적에 관해 더 궁금한 사람 없으시죠? 그럼 성적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

" 네! "

" 아이고, 그런데 이야기를 막상 시작하니까 할 말이 점점 많아지긴 하는데 아까 제가 제 입으로 10분 안에 끝낸다고 했으니까 약속을 지켜야겠죠? 여러분들이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지 대충 간추려서 이야기해 주고 바로 자기소개로 넘어가 버리도록 하겠습니다. "

" 네! "

" 일단 여러 분들 중에 분명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어차피 여기 있는 새끼들 졸업하고 나면 다 볼일 없는 놈들이니 관심 끄고 살아야겠다고 말이죠. "

뭐야?

교수님 혹시 독심술사세요? 어떻게 제 마음을 그리 잘 아시는 겁니까? 제 마음의 문을 열고 한 번 방문했다가 나오신 겁니까?

" 표정 보니까 그렇게 생각하신 분이 몇몇 있는 것 같은데 사실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애초에 이런 것에 정답이 어디 있겠어요? 다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죠. "

" ... "

" 하지만, 제가 여러분들보다 인생을 많이 살아본 선배로서 말하자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맥. 즉, 여러분들을 힘들 때 곁에 서서 그것을 위로해줄 수 있는 친구들이 매우 중요해질 겁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보면 더욱 잘 느끼실 수 있을 테죠. "

" ... "

" 그러니, 사이좋게 지내셔야 합니다. 어차피 저희 마석 관리과는 졸업하면 대부분 가는 직장이 비슷비슷해서 공무원 쪽으로 빠지거나 몇 없는 마석 관리 회사로 들어가면 어디서 봤던 얼굴들이 막 보일 거에요. "

" ... "

" 제가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어차피 가는 직장이 다 비슷비슷할 거 친하게 지내면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잖아요? 안 그래요? "

" 맞습니다! 교수님! "

" 제가, 다른 과 학생이랑은 친하게 지내라는 소리 안 합니다. 애초에 볼일도 없는데 그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내서 뭐 해요?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들? "

" 예! 맞습니다! "

" 그러니, 적어도 저희 과 학생들만큼은 누구 하나 소외되는 일 없이 전부 다 두루두루 잘 지냈으면 좋겠네요. 그게 언젠간 여러분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겁니다. "

강의실에 앉아있는 학생들은 교수의 말에 전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한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들도 전부 초등학교, 중학교·고등학교라는 작은 사회를 거쳐오면서 느낀 게 있으니 대충 교수가 무슨 뜻으로 저런 말을 한 것인지는 대충 다 알아듣고 있었으니까.

" 흠, 자! 그러면 오리엔테이션은 여기서 끝마치도록 하고 드디어 여러분들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자기소개 시간을 한 번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

아, 이런 제기랄! 교수님 차라리 수업해주세요! 본인 인생 이야기도 괜찮으니까 자기소개 시간 안 가지면 안됩니까!? 전, 진짜로 열심히 들을 자신 있어요!

" 일단, 저는 소개를 했으니까 저는 간단히 넘어가고 제가 여기 종이에 적힌 학번 순서대로 이름을 부를 건데 이름이 호명된 학생은 앞으로 나와서 간단하게 자기소개 후 질문 타임 가지고 다시 자리로 들어가면 되겠습니다. "

이런 썅! 결국 감행하실 생각이시구나. 하, 어쩔 수 없지. 한낱 학생에 불과한 내가 교수님이 정한 뜻을 어떻게 바꿔버리겠어.

' 그래, 차라리 제발 내 학번이 맨 뒷자리기를 기도하자! '

아직, 학번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내 학번이 몇 번인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두 손을 모으고 평소에는 찾지 않던 하느님을 찾으면서 기도를 시작했다.

' 전능하신 하늘의 아버지시여. 제발, 저를 딱 한 번만 구원해주소서. 진짜 이번에 구원해주신다면 앞으로 매일매일 꼬박꼬박 기도도 드릴 것이며 약소하지만, 헌금도 조금씩 내도록 하겠습니다. '

어차피 시간 내에 모두가 자기소개를 마치지는 못할 게 분명했다.

과에 사람이 많았고 앞줄에 나란히 앉아있는 인싸들 때문에 질문 타임이 길어질 게 무조건이었으므로 내 학번이 맨 뒷자리라면 운 좋게 자기소개를 하지 않고 수업을 마칠 수도 있었다.

" 어디 보자. 맨 처음 자기소개를 할 사람이... "

제발, 전지전능한 아버지시여. 가엾은 어린 양을 단 한 번만 구해주소ㅅ...

" 오유진 학생? "

이런 개 같은 하느님! 왜 내 기도는 단 한 번도 들어주지 않는 건데!? 내가 너한테 잘못한 게 도대체 뭐가 있다고!

" 오유진 학생 없나요? 결석입니까? "

" 아, 아닙니다. 저 여기 있습니다. "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정말 들고 싶지 않았던 손이지만 괜히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출석이 그여버리는 것은 더욱더 싫었기에 나는 손을 번쩍 들어 내가 강의실 안에 있다는 것을 어필해주었다.

" 아, 있네요. 앞으로 나와서 시작하면 됩니다. "

" 짜, 짧게 해도 괜찮은가요? "

" 뭐, 짧게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건 본인들의 자유니까요. "

후, 그러면 이름하고 나이만 말하고 바로 도망쳐 나와야겠네.

" 오, 남자다. 첫 빠따는 남자네. "

" 오유진? 이름 이쁘네. 근데 좀 평범하게 생기셨네. 뭐랄까? 잘생겼다기보다는 수수한 느낌이 강하네. "

" 원래 저런 사람들이 연애하면 여자들한테 진짜 진국으로 잘해주는데. 조금 있다가 질문 타임 때 여자친구 있냐고 물어봐야지. "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사이로 걸어가자 뒤통수에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과 집중되는 것과 함께 그들이 나를 보면서 자기들끼리 수군수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 다 귓가에 들리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아 그들이 나를 보며 나누는 대화를 차단해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기에 나는 떨리는 마음을 겨우겨우 진정 시켜 가면서 맨 앞까지 도달했다.

뒤를 돌자 나에게로 집중되는 시선에 저절로 몸이 위축되어간다.

원래 세상에서는 이렇게까지 낯을 가리거나 수줍을 타지는 않았는데 세상이 바뀌고 바뀌어진 세상에 적응을 하다 보니 내 성격과 행동도 많이 바뀌어버렸다.

' 그냥, 빨리 끝내자. '

괜히 여기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서 있으면 그게 더 쪽팔리니까 그냥 아까 계획했던 것처럼 빠르게 끝내고 얼른 내 자리로 도망가버리자.

" 시작하면 돼요? 유진 학생. "

" 아, 네. 알겠습니다. "

나는 떨리는 몸을 뒤로하고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을 똑바로 마주 보고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ㅇ....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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