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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의 평범한 유부남-4화 (4/77)

〈 4화 〉 대학생 유부남

* * *

뭐, 남녀역전이라고 해서 여러 대중매체에서 보여준 것처럼 엄청나게 극단적인 세계는 아니다.

남자와 여자의 성 비율이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서 남자가 국보처럼 취급받는 세계도 아니고.

여자가 성욕에 미쳐 날뛰면서 남성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옷을 찢어버리고 덮쳐버리는 무지막지하며 막장인 세계는 더욱 아니며.

남성의 대우는 최악이며, 여성이 사회의 전반적인 모든 것을 지배하는 미친 세계는 더더욱 아니다.

그냥, 일반적인 세계다.

내가 원래 살던 세상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세상. 단지, 거기서 여자와 남자의 역할만이 바뀐 세계일 뿐이다.

사실 남녀역전이고 나발이고 이제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느끼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지내왔으니까.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미친 듯이 뛰어다니면서 온갖 개고생들을 했던 게 말이야.

" 으음. "

젠장, 그때를 떠올리기만 한다면 마음 한쪽에서 아픔이 샘솟아 올라서 저절로 눈물이 벅차오른다.

솔직히, 내가 엄청난 능력을 갖춘 대중매체에서 나오는 주인공도 아니고 그저 난 고등학생 딱지를 갓 벗어 던지고 이제 막 성인이 되어서 자유를 만끽하는 흔하디흔한 대한민국의 남성일 뿐이었다.

아무런 경험도, 준비도, 기술도, 능력도 없는 갓 성인이 된 20살이 불쑥 이상한 세상에 떨어졌다고 생각해보아라.

심지어 소정의 돈,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부모도 없이 그저 품 안에 갓 성인이 되었다는 것만을 증명해주는 신분증만을 가진 채 이세계로 떨어졌다고 생각해보아라.

정말 앞길이 막막하지 않은가?

그만큼 나는 굶어 죽거나 얼어 죽어버리지 않게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왔다.

오죽하면 정말 몸이라도 팔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을 정도다. 뭐, 물론 생각만 했을 뿐, 진짜로 판 적은 없다.

애초에 남녀역전이라는 특수한 세상에서 남성이 몸을 판다는 뜻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이들은 항상 말한다.

" 남녀역전 세상에 가면 마구잡이로 여자들과 섹스하고 다닐 거야! "

이렇게 말을 하는데, 솔직히 가감 없이 아무런 필터를 거치지 않고 내 의견을 내보겠다.

그건 정말 병신같은 짓거리다.

돈 것인가?

그따위 행동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나락의 구렁텅이로 박아 넣는 행위일 뿐이다.

본인이 원래 세상과 남녀역전의 세상을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신비한 존재면 모를까, 앞으로 남녀역전의 세상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자신의 몸을 함부로 굴리겠다고?

원래 세상에서도 남자가 함부로 몸을 쓰고 다니면 사회적으로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하는데 남녀역전의 세상에서는 그게 심하면 심했지, 절대로 더 낫지는 않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건가?

본인은 기분이 좋겠지.

하지만 과연 사람들도 그렇게 봐줄까? 과연 나를 성생활을 즐기는 개방적인 남자로 봐줄까? 개방적인 남자는 지랄, 나는 그저 더러운 걸레 새끼로 낙인이 찍힐 뿐이겠지.

과연 그 후에 일어날 모든 일의 뒷감당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감히 내가 말하겠는데 그것은 한사람. 즉, 개인이 버티기에는 절대로 불가능한 폭풍 같은 일들이 몰아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직접 체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창관에서 여러 여자에게 내 몸을 파는 행위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다른 의미로서 내 몸을 한 여성에게 팔아버렸다.

바로 지금의 내 아내인 선유린에게 말이다.

사실, 결혼한 이유는 별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 한 게 아니다.

단지, 나에게는 기댈 사람이 필요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으며 경제적으로도 큰 압박을 받고 있었으니까. 더 이상 버티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게 지금의 아내였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에 그녀는 자주 들러서 아침을 해결하고 갔으니까.

그러니 자연스레 서로 안면을 틀 수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계속된 시련과 고생에 계속해서 궁지에 몰려서 제대로 된 판단과 생각을 내릴 수 없었던 나는 현실의 벽 앞에 주저앉았으며 결국 기댈 사람이 필요했던 나는 다짜고짜 그녀에게 달려갔었다.

그리고 외쳤다. 제발 나의 기둥이 되어달라고.

무엇이든지 할 자신이 있다면서, 더이상은 버티기가 힘들다며 제발 나를 보호해달라면서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펑펑 울음을 터뜨리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었다.

아내도 처음에는 당황하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었고 결국 나와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충 상황을 파악한 그녀는 몇 번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아내는 나의 부탁을 받아 들어주었으며 그렇게 결국 나와 아내는 정식으로 결혼을 해 부부 사이가 된 것이다.

뜨거운 사랑으로 이루어져 영원을 약속하려 부부가 된 것이 아니라 한쪽이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어 결국 희생을 해준 것,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내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희생해서 이루어진 부부의 관계.

그것이 나와 아내의 관계였다.

그래서 나와 아내의 사이는 법적으로는 부부가 맞지만, 결혼을 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라고 부르기에는 무언가 애매한 사이라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내가 아내를 싫어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애초에 남녀가 한집에서 같이 지내면서 서로에 대한 애정의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 그것도 정말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다.

그녀 덕분에 나는 이 세상에서 쓰러지지 않고 올바르게 서서 평화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으니까.

사랑을 넘어 그녀에게 정말 엄청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아마, 이 은혜는 내가 평생토록 그녀의 옆에 있으면서 갚아 나아가야겠지.

그리고 아내도 나를 엄청나게 싫어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나를 사랑하고 있다.

예전에 밤에 서로 뜨거운 관계를 나눈 뒤 침대에 누워서 한 가지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 여보는 나와의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뭐예요? ' 라고 물었었는데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은 다름 아닌.

' 잘생겼으니까. '

' 정말요? 거짓말인 것 같은데. '

' 그냥 아내가 말하면 그렇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여. 뭘 그렇게 의심을 하고 그래? 네가 잘생겨서 결혼 결심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그냥. '

' 네, 알겠어요. '

바로 이 대답이었다.

' 잘생겼다고? '

글쎄. 과연 정말 그런 걸까? 흠, 난 모르겠는데 말이야.

상념을 깨우는 또박또박한 목소리.

" 다음 역은 아진 시장, 아진 시장 역입니다. 내리시는 문은 오른쪽입니다. 아진 시장으로 가시려면 이번 역에서 내려야 합니다. "

벌써 아진 시장까지 온 건가. 옛날 일을 생각하니까 시간이 아주 잘 지나가네.

그나저나 역시 아침 출근길 지하철은 역시 너무나도 빡빡하다.

수많은 사람이 가득 차 있으며 온갖 사람들이 밀집되어있는 곳이 아침의 지하철. 아니, 지옥철이었다.

뭐, 아침의 지하철은 원래 세상이나 남녀역전의 세상이나 별 다를 게 없으니 아무런 감흥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들고 유리창에 비추어지는 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 흠. "

턱을 들어보았다.

" 어. "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보았다.

" 허. "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았다.

솔직히 이리보고 저리 보아도 절대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사람들이 보자마자 불쾌한 인상을 받을만한 못생긴 얼굴은 더더욱 아니었다.

정말 평균 그 자체. 그냥 학교 반마다 한 명씩 있는 그저 그런 남자애의 외모.

그게 바로 나였다.

" 그런데, 내가 잘생겼으니까 결혼을 결심했다고? "

아무래도 거짓말 같은데 말이야.

엄청 좋게 봐줘도 그냥 볼만하다는 평가 정도가 딱 들어맞는단 말이지. 하지만, 기분은 정말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외모에 대한 칭찬을 들었는데 기분이 나쁠 사람이 도대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평소에 화도 잘 내고 짜증도 많이 내며 나한테 까칠하게 대하고 윽박도 지르며 가부장적인 면이 많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를 잘 챙겨주는 게 나의 아내였다.

그래서 좋았다.

또, 오늘은 내가 학교에 나간다니까 혹시나 모를 상황을 생각하며 나에게 질투를 뽐내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다른 여자들이 접근하면 왼손 약지에 있는 결혼반지를 보여주며 쫓아내라고 하며 나를 믿겠다는 소리도 했었지.

그런데, 여보.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아.

있잖아. 나 말이야. 어차피, 내가 잘생긴 것도 아니고 난 길가에 나가면 넘쳐흐르는 남자들의 외모라서 단 한 명이라도 다들 나한테 신경도 안 쓸 게 백 퍼센트 일 것 같거든.

온갖 상념이 뒤섞이는 머릿속을 다시 깨우는 또박또박한 아나운서의 목소리.

" 이번 역은 중앙대. 중앙대역입니다. 중앙대학교, 명물 시장 쪽으로 가시려면 이번 역에서 내려야 합니다. "

아, 드디어 도착이네.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 끼여서 힘겹게 가는 것도 이제부터 해방이었다.

그나저나 월요일, 금요일마다 이 짓거리를 반복해야 한다니. 월요일, 금요일 아침은 엄청나게 고역이겠네.

일단 출입문에서 완전히 먼 곳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서 최대한 계속 고개를 숙였다.

" 죄송합니다. "

" 아, 예. "

" 먼저 가보겠습니다. "

" 네, 가세요. "

" 정말, 죄송합니다. 잠시만 비켜주시겠어요? "

" 아이고, 알겠습니다. "

나와 똑같이 대학생으로 보이지만 외견은 나와 아예 다르게 젊고 멋지고 개성 있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내리는 것을 따라서 나도 황급히 가방을 단단히 챙겨 매고서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늘 그랬듯 교통카드를 찍고 개찰구를 통과하고 표지판을 따라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자마자 곧바로 웅장한 위엄을 뽐내는 거대한 대학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중앙대학교.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울권의 학교는 아니다.

애초에 나와 아내가 사는 곳도 서울이 아니며 그리고 난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서울에 있는 학교에 들어갈 수도 없다.

중앙대학교는 지방에 있는 국립대인데, 그래도 서울권에 있는 대학보다는 떨어지지만 그래도 이름값이 꽤 있는 대학교다.

' 원래 세상에서도 내가 잠깐 다녔던 대학교인데 여기서 다시 보니 무언가 감회가 새롭네. '

바뀐 건 없어 보인다.

저 커다란 정문도 그리고 중앙에 세워져 있는 동상도 원래 세상과 비교했을 때 아예 바뀐 게 없었다.

저절로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

" 가볼까.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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