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대학생 유부남
* * *
대학교 신입생의 하루는 바쁜 편이다.
수강 신청을 잘 조정을 해서 아침이 공강이라면 바쁘지 않고 여유를 부려도 괜찮겠지만 수강 신청을 망쳐버려 아침 일찍 수업이 들어있다면 여유를 부릴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군다나 그게 가정을 이룬 사람이라면 여유를 부릴 시간은커녕 몸이 두 개여도 아마 모자라겠지.
그래, 그게 바로 나의 경우다.
" 오늘 알람이 도대체 왜 울리지 않은 건데!? 진짜 미쳐버리겠네! "
허겁지겁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간단한 게 만둣국을 만들기 위해 냄비에 물을 담고 가스레인지를 켰다.
쫘르륵 소리를 내며 불이 켜진 걸 확인한 나는 곧바로 멸치와 다시마를 투하한 다음 곧바로 그릇에 계란을 깨 넣은 다음 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계란을 풀어주었다.
" 돌겠네. 진짜 썅! "
제기랄.
분명 6시에 알람을 맞추어놓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오늘 알람이 도대체 왜 울리지 않은 걸까?
그 덕분에 9시부터 수업이 있는데 7시에 일어나서 부리나케 가방을 메고 준비를 마치고 아침밥을 만드는 중이었다.
학교도 꽤 멀리 있고 자가용이 없어서 지하철을 타고 가야해서 학교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 정도기 때문에 아침밥을 만들면 시간이 아슬아슬해져버려서집 밖을 나서자마자 뜀박질을 시작해야 한다.
혼자 지낸다면 대충 아침밥을 생략하고 편의점에 들러서 삼각김밥을 사고 여유롭게 걸어가면 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혼자 사는 게 아니다.
" 쿠우울. 음냐음냐. "
" 에휴. "
크게 열려있는 안방 문안으로 들리는 코골이 소리에 나의 고개가 저절로 절레절레 저어졌다.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존재했다.
바로 안방에서 곤히 잠에 들어 있는 아내.
요리를 못하는데 애초에 아예 하려고 하는 의지조차도 없는 나의 아내인 선유린이 있었다.
내가 요리를 하지 않고 바쁘다고 지하철을 타러 나가버린다면 그녀는 쫄쫄 굶은 채로 일터로 출근을 하고 그리고서는 곧이어 전화기로 쏟아지는 그녀의 가부장적인 잔소리 폭탄이 쏟아지겠지.
미안하지만 그 꼴은 절대로 사양이다. 그녀의 잔소리가 한 번 시작된다면 귀에서 피가 나올 정도가 되어도 끝나지 않으니까.
" 양파 어디 있어? "
물론 이런 잡다한 재료들은 전부 만둣국의 맛을 한층 더 깊게 만들기 위해 넣는 부가재료이므로 굳이 이렇게나 바쁜 상황에 넣지 않아도 되지만 만약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 아, 만둣국이 왜 이렇게 맛이 없어? 밖에 나가서 돈 벌어오는데 아내한테 이 정도 밥상밖에 못 내오는 거야? '
분명 아내가 이런 말을 할 게 백 퍼센트기 때문에 바쁘더라도 얌전히 재료를 손질해 전부 다 투하하는 수 밖에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물의 색깔이 변한 게 확인이 되었다.
멸치·다시마 육수가 잘 우러난 것이었으므로 간단하게 채를 썬 양파를 넣고서는 불을 최대한 세게 높였다.
양파가 절반 정도 투명해져야 만두를 넣어야 하므로 아직 조금 시간이 남아있는 편이었기에 짬이 나는 시간에 자고 있는 아내를 깨우기 위해 후다닥 안방으로 달려갔다.
" 커어억. 킁, 컥. "
안방으로 들어가자 스포츠 브래지어를 낀 채로 얇은 팬티 한 장만을 걸친 채 배를 벅벅 긁으면서 코를 거는 아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 ... "
" 커억, 킁. 큭! 컥! "
진짜 다채롭게도 골고 있네. 신기한 건 나는 도대체 이 코 골임 옆에서 어떻게 잠을 자는 걸까? 내가 생각해봐도 의문점이야. 이건.
솔직히 말해서 아내는 아름답다.
그래, 이쁘다.
팔근육도 도드라져있고 복근도 선명하며 검은색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고 이목구비도 오밀조밀하며 태닝을 한 듯이 살짝 탄 피부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리고 몸 곳곳에 새겨진 흉터는 그녀가 일반적인 일을 하는 것이 아닌 꽤 험한 곳에서 구르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었다.
보통의 남자라면 침대 위에서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는 이 여성을 보자마자 마음속 안에서부터 성욕이 샘솟아 오르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마음속에서는 성욕은커녕 측은함만이 몰려올 뿐이었다.
우리 사이는 뭐랄까. 법적으로 부부는 맞지만, 결혼을 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애매한 사이니까.
" 일어나요. 여보, 일어나요. "
일단 일차적으로 그녀를 흔들어보았다.
팔을 잡고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보자 스포츠 브래지어로도 감출 수 없는 큰 가슴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 아음, 으음. "
실패다.
뭐, 이런 거로 일어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 후우. 하아. "
두 번째로 그녀의 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서는 귓바람을 살짝 불어주었다.
그러자 간지러움을 느끼고서는 실없는 웃음을 지은 그녀는 눈을 손으로 쓱쓱 비비고서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로 나를 노려보았다.
" 으음, 아이씨 진짜, 잘 자고 있는데 왜 깨워? "
" 어서 일어나요. 아침밥 만들고 있으니까 얼른 먹고 출근해야죠. "
해가 중천에....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어나야지. 안 그래?
" 몇 신데? "
부스스 눈을 작게 뜬 채로 덤덤한 말투로 묻는 그녀를 향해 손목시계를 한 번 본 다음 대답해주었다.
" 7시 10분이요. "
" 아 씨발. 진짜 아직 출근까지 엄청 많이 남았잖아. 왜 지금 아침밥을 만들어서 나를 깨우고 지랄이야. "
다시 이불을 깊게 눌러쓰려는 그녀의 행동을 바로 제지했다.
" 어제 제가 말했잖아요. 저 오늘부터 대학교 들어간다고 말했는데 그새 까먹은 거에요? "
" 어? "
" 까먹은 거 맞는 거 같네요. 오늘부터 학교에 가야해서 앞으로 매일매일 아침 일찍 나가야 해서 더이상 늦게 아침밥 못 만들어줘요. 그러니 얼른 일어나요. "
" 아씨, 진짜 짜증 나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대학교 등록금 대주지 말 걸 그랬나. "
어차피 장학제도의 혜택을 받아서 정작 낸 등록금은 약 10만 원 정도밖에 없으면서 생색은....
" 뭐 할 말이라도 있어? 눈빛에 약간 불만이 서려 있는 것 같은데. "
나의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턱을 치켜들며 눈썹을 찡그린 그녀를 향해 나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 에이, 무슨 소리예요. 제가 그런 생각을 할 리 없잖아요. 여보. 죄송해요. 조금만 힘들겠지만 참아줘요. "
" .... 알았어. 조금 있다 나갈 테니까 나가 있어. "
명백한 축객령.
그래도 다행이네. 더 짜증을 낼 거라고 예상했는데 내 생각과는 다르게 조용히 넘어가 주네. 안심이야. 괜히 아침부터 욕먹기는 싫었는데.
" 알겠어요. "
조용히 몸을 일으키고 안방을 나서 다시 주방으로 돌아오자 냄비 안에서 끓고 있는 절반 정도로 투명해져 있었다.
" 조금만 늦었으면 다 태워 먹을 뻔 했네. "
빠르게 냉동 만두 팩을 뜯어 한 팩을 전부 냄비 안으로 쏟아부었다. 많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아내가 음식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어쩌면 이 정도도 모자랄 수도 있었다.
뭐, 그러면 내가 조금 덜 먹으면 되니까 이 정도면 괜찮겠지? 나는 뭐, 아침에 많이 먹는 편이 아니니까.
그다음 국간장을 넣고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 다음 조금을 기다리고서 미리 풀어놓은 달걀 물을 동그랗게 돌려가며 넣어주었다.
" 조금만 더 끓이면 되겠네. "
한 30초에서 1분이면 충분하겠지. 시간도 7시 17분이니까 대충 아침 먹고 양치한 뒤 빠르게 출발하면 아슬아슬하게 시간 내에 맞출 수 있는 것 같은데.
첫날인 만큼 일찍 강의실에 앉아있고 싶었는데 그 바람은 물 건너갔네. 뭐, 지각을 안 할 거 같다는 거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하긴, 대학이 널널해도 입학 첫날부터 지각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좀 난감하잖아.
" 아으으으... "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하던 찰나 안방에서 그녀가 기지개를 쭉 피면서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 일어났어요? "
" 그래, 일어났어. 아이고, 일어나니까 배고파지네. 얼른 밥이나 내와. "
" 조금만 기다려줘요. 1분 정도만 있으면 완성되니까요. "
아주 익숙하게 식탁의 의자를 당겨 풀썩 주저앉은 그녀는 익숙하게 핸드폰을 켜고서는 열심히 화면을 두드려댔다.
" 수저나 물이라도 조금 준비해주시지. "
퉁명스러운 그의 말에 그녀의 눈빛이 순식간에 세로로 찢어졌다.
" 어? 그런 걸 내가 왜 해? 그런 역할은 원래 남편이 당연히 해야 하는 법이야. 내가 뭐 그런 걸 안 해서 불만 이라도 있는 거야? "
" 아니요. 불만은 아니고 그냥... "
" 밖에 나가서 위험한 일 하면서 돈도 벌어와 주고 그 돈으로 대학도 보내주고 여태까지 먹여줬고 네가 부탁까지 해서 결혼도 해줬는데 도대체 더이상 뭘 원하는 거야? 그딴 불만 내 앞에서 드러내지 말라고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내 말 무시하는 거야? "
" ...아니에요. 죄송해요. 제가 괜히 실언을 내뱉었어요. 한 번만 용서해줘요. 무시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
제기랄. 괜히 입 밖으로 불평불만이 나와버려서 결국, 이 사달이 나버렸네.
이럴 때는 빠른 사과가 진리다. 괜히 이것저것 말하면서 뱅글뱅글 돌려봤자 마지막에 손해를 보는 것은 나일 뿐.
" .... 앞으로 조심해. 애초에 그런 소리를 다른 사람도 아닌 유진이 네가 말하는 건 네 머릿속으로 생각해봐도 말의 아귀가 안 맞지 않아?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
그래, 맞지.
솔직히 그렇지. 내가 여태까지 받은 은혜가 얼마인데 그런 걸 요구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지. 이건 진짜로 내가 잘못한 게 맞아.
" 맞아요. 제가, 잠깐 정신이 나갔나 봐요. 정말 죄송해요. "
" 그래. 알았으면 됐어. 그나저나 밥은 언제 나와? 배고파 죽겠는데. "
" 아, 지금 다 됐어요. 가져다드릴게요. "
뚜껑을 열어 마지막으로 대파를 올린 뒤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냄비를 들어 그대로 식탁 위에 올려주었다.
" 국자는? "
" 여기 있어요. 제가 그릇에 따로 떠서 드릴까요? "
" 아니, 됐어. 내가 알아서 떠 먹을 테니까 놔둬. 오, 뭐야? 계란 많이 풀었네. "
" 네. 계란 좋아하시잖아요. 그러니, 이번에는 조금 많이 풀어봤어요. "
" 내 취향을 잘 아네. 하긴, 결혼한 지가 1년이고 실제로 같이 집에서 지낸 건 2년인데 그 정도 취향도 파악 못 하면 섭섭하긴 하지. 잘했어. 칭찬할게. "
숟가락으로 살짝 국물을 떠서 먹은 그녀의 모습을 보자 저절로 초조해졌다. 제발 맛있다고 해줘야 할 텐데.
" 음. "
" 어, 어때요? "
" 맛있네. 좋아. 딱 좋아. 간 잘 맞췄네. "
다행이다. 혹여나 간을 잘못 맞췄으면 어떡하지 라고 마음 졸이고 있었는데 말이야.
고개를 끄덕이면서 살짝 웃음을 짓는 걸 보니 빈말로 한 게 아니라 정말 맛있는 건 맞는 것 같네. 이제 마음이 놓인 것인지 유진도 드디어 수저를 들고 밥을 한 움큼 떠서 꿀떡 집어삼켰다.
" 오늘, 몇 시에 집에 와? "
"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 아무래도 등교 첫날이라서 신입생 오티를 할 게 뻔하니까 빨리 끝날 것 같긴 한데. 저도 확실하게 언제 끝난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어요. "
" 오티? "
갑자기 다시 눈을 세로로 뜨는 그녀.
풀어져 있던 눈매는 사나워졌고 몸에서는 살기가 샘 솟아올랐다.
무언가 잘못된 건가? 왜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나 딱히 말실수 같은 거 하지도 않았는데.
" 네. 오티인데 무슨 문제라도.... "
" 그거 막 어디 펜션 잡아서 술 먹고 처하는 거 아니야? 너 유부남이 다른 여자랑 함부로 술 마시고 돌아다니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너 정신머리가 있어 없어? "
" .... 예? "
이글이글 질투심에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머리를 긁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말했다.
" .... 저기, 여보. 죄송한데 그건 MT인데.... "
순간 이어진 정적.
그녀는 뻘쭘한 건지 헛기침을 한 번 하고서는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 ...밥먹자. "
그래, 모를 수도 있지. 이해한다.
아내는 대학을 안 나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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