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안대를 벗고 싶어?"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걸까.
말해서 뭣하겠냐는 의미로다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니까 예의 그 자그마한 웃음 소리가 다시 한 번 울러펴졌다.
"흐음··· 어떻게 할까···"
내 속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아니면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저러는 것인지 지나가 가느다랗게 침음성을 흘리며 살짝 고민하는 듯한 기색을 내비쳤다.
"얘는··· 괴롭히지 않기로 했잖니."
그런 지나를 제지하고 나선 건 다름아닌 가영이었고.
"아니, 내가 괴롭히긴 언제 괴롭혔다고···"
가영의 핀잔아닌 핀잔에 그런 식으로 툴툴대던 것도 잠시, '에효···'하고 한숨을 푹 내쉬는 소리가 지나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방향에서부터 울려퍼졌다.
"그래, 뭐··· 해야할 건 해야하니까···"
애좀 타보라는 것처럼 슬쩍 말꼬리를 늘어뜨리는 지나의 행동에 꼴깍하고 침을 삼킨 순간··· 마침내 기다려마지 않았던 말이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벗고 싶으면 벗어도 돼."
그 말이 귓가로 울려퍼진 순간 굳이 사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기다려마지 않았던 순간이었으니까.
바로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대신 답답함만을 선물해주던 안대를 위로 제껴서 제거하니 그렇게 생겨난 틈 사이로 빛이 들이쳤다.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빛, 그것과 함께 시야 속으로 파고 들어온 건ㅡ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순백의 베일로 몸을 감싼채 수줍게 얼굴을 붉히고 있는 둘의 모습이었다.
"마, 마음에 드니···?"
"진짜··· 이런 거나 보여달라고 하고···♡ 누나랑 엄마한테 이런 거 입히니까 좋아···?"
'미친···'
일반적으로 아이를 갖게 되면 산모는 안정기라는 기간을 갖게 된다.
이는 아이를 임신한 이상 절대로 피해갈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인데··· 일전에 병원에 방문해 주워들은 것에 따르면 안정기란 보통 4개월차까지란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뭘 하든 조심해야한다나?
이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도 조심해야할 것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뭐 하루종일 누워있거나 앉아만 있으라는 뜻은 아닐테지만··· 역시 섹스는 힘들겠지.
결혼을 준비하면서 시간이 꽤나 흘러가긴 했지만 그럼에도 다들 이제 막 1개월 차에 접어든 상태임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한데··· 그 당연하다면 당연한 사실이 날 참 슬프게 만들었다.
아니, 슬픈 수준을 뛰어넘어서 원통하고 억울했다.
모처럼 둘이 저런 복장까지 입어줬는데 참아야한다니.
이게 고문이 아니고 대체 뭐란 말인가.
둘의 모습이 주는 흥분과 사실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슬픔이 배 안에서 쉬지않고 교차하는데 덕분에 몸을 딱 반씩 나눠서 반은 온탕에 반은 냉탕에 담구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게 표정에도 드러났던 것일까.
남들에게는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복장이 민망하기라도 했는지 얼굴을 발그레하니 물들이고 있던 둘 중에 지나가 날 바라보며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정작 그 표정과 함께 내뱉어진 목소리는 조심스럽기 그지없기는 했지만.
"꼭 입어달라고 해서 입어줬더니만··· 표정이 왜 그래? 혹시··· 별로야?"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못내 신경이 쓰였던 것일까.
지나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온 순간 옆에 서 있던 가영의 몸이 같이 떨렸다.
그런 식으로 '혹시···'하는 반응을 내비치는 둘을 향해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던 건 절대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고.
"그럼 표정이 왜 그런데?"
"내, 내 표정이 어디가 어때서···"
"음··· 뭐랄까··· 꼭 주인한테 개껌 뺏긴 강아지같아."
그 정도란 말인가.
"얘는··· 동생한테 강아지가 뭐니···!"
그러지 말라고 주의만 줄 뿐 그 말을 정정하려 한다거나 그러질 않는 걸로 봐서 가영의 의견도 지나하고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했고.
"아니, 딱 그런 표정 아니야? 엄마가 봐도 그렇잖아."
"그, 그렇긴···"
힐끔하고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본 가영이 이내 내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리더니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몸짓을 선보여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거봐. 그래서 뭐가 그렇게 아쉬우신데? 응?"
"아니, 난···"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기 때문일까.
평소였다면 당당하게 꼴리는데 할 수가 없어서 슬퍼서 그런 거라고 밝혔을텐데 오늘따라 그 말이 혀에 달라붙기라도 한 것처럼 입밖으로 잘 나오질 않더라.
그래서 애꿏은 입술만 오물오물대다가··· 어찌되었든 말은 해야겠다 싶어서 간신히 입을 열어 진실을 밝혔다.
진실을 밝혔더니ㅡ
"으···"
"흠흠···!"
지나의 목소리로 된 앓는 소리와 가영의 목소리로 된 헛기침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려왔다.
그에 왜들 그러나 싶어 살짝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리니까 눈으로 들어온 건···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꾹 눌러서 참고 있는 듯한 둘의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둘과 시선이 딱 마주친 순간 둘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깨를 움찔하고 크게 떨어댔다.
그게 꼭 정곡이라도 찔린 것같은 그런 반응이라서 둘이야말로 왜들 그러나 싶어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더니만··· 크흠하고 헛기침을 한 번 한 지나가 아까보다 좀 더 발갛게 달아오른 것 같은 얼굴을 한채 비밀 결혼식을 속행할 것을 요구해왔다.
"아니 다들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이러다가 날 새겠네."
그런 식으로 지나의 재촉과 함께 시작된 셋만의 비밀 결혼식은 낮에 치뤄졌던 것에 비하면 절차도 환경도 간소하기 그지없었다.
간소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마저도 간소하지는 않았다.
"그··· 나 먼저해도 돼? 아니면··· 엄마부터 할 거야?"
"지나 네가 먼저 하렴."
가영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영의 옆을 떠나 내 앞에 도달한 지나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기라도 하듯 고개를 옆으로 홱 돌린 채 그대로 내 옆에 조심스레 걸터앉았다.
'와··· 미치겠네 진짜로···'
그런 모습마저도 내게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흰색의 베일과 웨딩드레스에서 모티브를 얻어 탄생한 순백의 속옷들로 몸을 감싸고 있는 지나의 모습은 낮에 보았던 웨딩드레스 차림을 한 세나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았으니까.
특히나 셋 중에서 오직 지나만이 가지고 있는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가 몸을 감싸고 있는 순백의 소품들하고 묘한 대비를 이루는 것이··· 지금처럼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 걸로도 목 안쪽이 막 버석거릴 정도였다.
이게 바로 목이 탄다라는 느낌인 걸까.
그런 식으로 시작부터 날 미치게 만들면서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지나가 이내 몸을 살짝 옆으로 돌려 앉은 자세를 수정했다.
그렇게 날렵해보이는 근육들이 예쁘게 잡혀있는 등이 눈앞으로 드러난 순간 어느새 움직인 지나의 손이 본인의 목덜미를 가려놓고 있던 샛노란 머리카락을 슬그머니 옆으로 걷어냈다.
그와 함께 드러난 건··· 등보다는 살짝 옅은 색을 띄고 있는 목과 그 목 한 가운데를 보란듯이 가로지르고 있는 백금빛의 체인이었다.
"···자."
그 말과 함께 지나가 걷어낸 머리카락을 고정하는데 쓰고 있던 손을 살짝 움찔해보였고, 풀 거면 얼른 풀라는 의미로 행해진 그 몸짓에 나는 즉시 목걸이의 고리 부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차칵ㅡ!
서로 맞물려있던 연결고리를 푸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지탱해주던 것을 잃고 작게 촤르륵 소리를 내며 늘어지던 것을 조심스레 잡아당기니··· 지금 내 왼손 약지에 끼워져있는 것과 똑같은 디자인을 가진 반지 하나가 백금으로 된 체인 사이에서 반짝하고 빛났다.
"···풀었어?"
"응."
지나가 다시 내쪽으로 돌아앉은 건 그렇게 반지를 회수한 직후였고.
목걸이에 장식처럼 걸려있던 반지를 회수했으니 이제는 끼워달라는 것일까.
내쪽으로 돌아앉은 지나가 슬그머니 왼손을 뻗어왔다.
그러면서 약지를 부르르 떠는 것이 꼭 여기다가 얼른 끼워달라고 재촉이라도 하는 듯 했다.
해서 요구받은대로 목걸이 줄 사이에서 빼낸 반지를 조심스레 그곳에다가 끼워주니ㅡ
"읍···?!"
참는 건 딱 거기까지가 한계였던 모양인지 그대로 지나한테 입술을 빼앗겨버렸다.
낮에 하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했었던 맹세의 키스보다는 좀 더 본능적이고 그래서 더 질척거리는 키스가 내 입에 대고 퍼부어졌다.
"웁, 흐···"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숨결 한줌마저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지 않겠다는 듯 꽤나 집요하게 입을 맞춰오던 것도 잠시, 결국 호흡이 달렸는지 지나가 맞추고 있던 입술을 천천히 떨어뜨렸다.
한참동안이나 진득하게 혀를 섞고 있었던 탓일까.
오늘따라 더욱 윤기가 도는 것같은 진한 분홍빛의 입술이 떨어져나가기 무섭게 나와 그녀의 입술 사이로 투명한 실이 진득하게 늘어졌다.
그렇게 쭉 늘어지던 것이 어느 순간 툭하고 끊어진 순간 살짝 입술을 벌린 채 그 사이로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지나가 이내 날 꽈악하고 끌어안았다.
"후우···"
말 그대로 순식간에 목 주위를 점령해버린 팔이 살짝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일단은 지나가 하고 싶어하는대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크게 티를 내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낮동안 속이 적잖게 상했을테니까.
물론, 이런다고 해서 낮동안 지나가 느꼈을 감정을 모두 해결해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괜찮아질 수 있다면 그게 어딘가.
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목을 꽉 끌어안은 채 가볍게 숨을 몰아쉬던 지나의 입에서 오싹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알지···? 누나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혹시라도 다른 년한테 한눈팔기라도 하면···"
내 귀에 대고 그리 읊조리던 지나가 슬그머니 내 물건을 움켜쥐었다.
"그때는 진짜···"
어차피 그럴 생각도 없기는 한데 말을 꺼내놓고 끝을 맺지는 않으니까 대체 무슨 짓을 할 생각인지가 궁금해지긴 하더라.
그런만큼 더 오싹오싹했고.
"그래서 대답은?"
"으, 응··· 명심할게···"
궁금한 것과는 별개로 일단 알겠다고 대답을 돌려주니까 그런 내 대답을 듣고 만족했는지 지나가 내 물건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지나가 자리를 뜨기 무섭게 그 반대쪽을 차지하고 앉은 건··· 살짝 떨어진 곳에서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던 가영이었다.
조심스레 나와 몸을 붙이고 앉은 가영이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던 내 손에다가 조심스레 자신의 손을 포갰다.
그리고 딱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가영의 손이 내 손 위로 겹쳐진 순간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고, 그렇게 시선이 교차한 순간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흐읍···♡ 읍, 후으···♡"
가영하고 하는 키스는 세나나 지나하고 했던 것하고는 또 달랐다.
세나하고 했던 것이 맹세의 키스고, 방금 지나랑 했던 게 독점욕을 받아주는 듯한 그런 키스였다면 지금 가영하고 하고 있는 건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는 듯한 그런 키스에 가까웠으니까.
어느새 입 안으로 파고 들어온 가영의 혀가 부드럽게 움직이며 내 입안을 훑어댔다.
그 간질간질한 느낌을 만끽하면서 가영의 목 뒤로 손을 뻗어 조심스레 목걸이를 풀어냈다.
그리고는 체인 사이에서 반지를 뽑아낸 뒤, 입맞춤을 유지한채 가영의 손에다가 조심스레 반지를 끼워넣었다.
"흐우, 하아, 흐으, 하, 아···♡"
떨리는 눈동자로부터 비롯된 시선이 얼굴을 향해 날아와 꽂혔다.
그에 맞춰 다시금 입을 맞추려니ㅡ
"정말··· 누가 보면 둘만 있는 줄 알겠네."
그런 툴툴거림과 함께 턱하고 허벅지를 짚는 손길이 아랫쪽에서부터 느껴졌다.
"나만 쏙 빼놓고 둘이서만 그러기야?"
그에 나도 모르게 멈칫한 순간, 위를 올려다보며 나를 향해 보란듯이 싱긋하고 웃어보인 지나가 그대로 내 옷을 벗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있던 자지쪽에서부터 근질근질한 쾌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으···"
너무나도 당당하게 아랫쪽을 차지해버린 지나에게 지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걸까.
갑작스런 지나의 참전에 숨을 고르는 것조차도 깜빡한채 멍한 표정을 하고 있던 가영이 살짝 발끈한 표정으로 다시 내게 입을 맞춰왔다.
"흐움, 츕···♡"
"쪼옵, 쪽, 쯉···♡"
그런 식으로 질척질척한 입맞춤과 함께 밤의 결혼식마저도 막을 내렸고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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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누가 그랬던가.
삶은 전쟁이며 아침은 가장 치열하고 격렬한 전투가 펼쳐지는 순간이라고.
솔직히 전까지만 해도 그 말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반대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말만큼 뼛 속 깊숙하게 공감이 되는 글귀가 또 없었으니까.
그 말대로 삶은 전쟁이고 아침은 치열하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순간이 맞았다.
아침마다 어딘가로 출근하는 처지가 아님에도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난 출근이라는 행위와는 거리가 백만광년쯤 동떨어져있는 사람이지만 대신 매일 아침마다 출근 시켜야하는 사람이, 꼬꼬마가 셋이나 되니까.
안 해본 사람은 절대로 모를 것이다.
매일 아침마다 곤히 자는 애들을 깨워서 유치원 통학버스에 탑승시키는 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힘겹고 진이 빠지는 지를 말이다.
걸핏하면 울어대는 아기 때가 더 힘들지 않았냐고?
그 두 개를 굳이 비교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유격이든 혹한기든 결국 둘다 더럽게 힘든 건 매한가진데?
그럼에도 둘 중에 어느 게 더 힘드냐를 굳이 한 번 꼽아보자면··· 솔직히 지금이 조금 더 힘들긴 했다.
다들 연식이 이제 몇 년 밖에 안 되서 그런지 몰라도 곧 있으면 30년차에 접어드는 나하고는 다르게 아주 그냥 에너지가 넘쳤으니까.
덕분에 외출이라도 하면 그 때는 아침하고는 또 다른 의미로 전쟁이었다.
에너지도 넘치는데 호기심도 같이 넘쳐서 조금이라도 한 눈을 팔면 순식간에 저 멀리까지 뛰어가있곤 하는 게 말 그대로 일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