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11화 〉1부 (311/315)

"여기 놓고 간다?"

"응? 아, 응."

그렇게 호텔 방까지 동행했던 둘은 결혼식장에서부터 챙겨온 것을 방 안에다가 내려놓기 무섭게 바로 방을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이래저래 준비할 게 좀 많다보니 마음이 급해진 걸까.

'준비하려면 얼마나 걸리려나···'

그야말로 순식간에 닫혀버린 문을 보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커다란 침대를 발견하고는 그걸 향해 돌진한 세나가 그대로 그 위에 풀썩 드러누웠다.

"아으으으···"

그러더니만 피곤해죽겠다는 듯 그런 식으로 앓는 소리를 흘려대는게 아닌가.

"피곤해?"

"어··· 뒤질 것 같아···"

"그러니까 내가 굽 낮은 걸로 신으라고 그랬잖아."

"그러기 싫은데 어쩌라고오···"

푹신푹신하기 그지없는 침대에 몸을 맡기고 있으려니까 몸도 막 노곤노곤해지고 잠기운이 막 몰려오기 시작한 걸까.

침대에 파묻히다시피 한채 내 말에 답을 하던 세나의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가물가물해졌다.

"잘 거야?"

"아니···"

'아니···'는 무슨 목소리만 들어보면 거의 뭐 이미 잠든 사람이구만.

"잘 거면 화장이라도 지우고 자."

"아으으··· 귀찮아···"

목소리도 그렇고, 드러누운 채로 팔을 퍼덕퍼덕거리는 것도 그렇고 딱봐도 이미 수면이라는 영역에 반쯤 발을 걸친 상태인 듯 했다.

그러니 저대로 내버려두면 화장도 안 지우고 그대로 쿨쿨 잠들어버리겠지.

"어휴··· 대체 누가 앤지···"

해서 그런 식으로 한탄 비스무리한 걸 흘리면서 클렌징 티슈를 들고 침대 위에 드러누워있는 세나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여 화장을 지워주니까ㅡ

"헤헤···"

또 좋다고 웃더라.

화장 지우려고 안 일어나도 되니 편해서 좋은 걸까.

그게 왠지 좀 얄밉게 느껴져서 볼이라도 한 번 꼬집어줄까 고민하고 있던 와중이었을 것이다.

"야···"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세나가 잠기운으로 젖어든 목소리로 날 부르길래 내심 흠칫했는데ㅡ

"나··· 잠들고 나면 엄마랑 언니한테 갈 거지?"

바로 그 순간 웅얼웅얼거리는 투로 내뱉어진 것치고는 파괴력이 어마어마한 말이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런 식으로 던져진 물음에 차마 아니라고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침묵하고 있었더니만··· 세나가 피식하고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더라.

"하··· 진짜··· 내가 오늘만 특별히 허락해준다."

그러더니만 굉장히 선심쓰듯 그리 말하는 게 아닌가.

"···괜찮겠어?"

"너어는··· 진짜··· 나라서 다행인 줄 알아. 여기 누워있는 게 내가 아니라 언니였으면··· 알지?"

그야 뭐··· 오늘 결혼한 상대가 세나가 아니라 지나였다면 말 그대로 얄짤 없었겠지.

초기이니만큼 차마 그런 짓까지는 무리겠지만 그래도 꼼짝없이 하룻밤내내 잡혀있지 않았을까.

물론, 세나도 그냥 보내줄 생각은 없는 듯 했다.

"대신···"

"대신?"

"나하고 새싹이한테 잘하란 말이야. 알겠어···?"

그런 식으로 세나하고 태명으로 새싹이라는 이름을 갖게된 아이한테 잘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난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세나야 뭐··· 이미 체력적으로 한계였는지 내 대답을 듣자마자 그대로 골아떨어져버렸고.

처음에는 내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연기인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진짜 잠든 거더라.

아주 그냥 코까지 도롱도롱 골면서 세상 모르고 자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까 쓴웃음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곤히 잠든 세나를 내려다보던 것도 잠시, 휴대폰이 웅웅 울리는 타이밍에 맞춰서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낮의 결혼식이야 진작에 끝이 났지만··· 밤의 결혼식은 아직 시작도 안한 상태였으니까.

세나도 완전히 골아떨어졌겠다 남은 건 아무도 모르게 옆방으로 넘어가는 것 뿐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호텔에 도착한지 몇 분 안 된 상태였으니까.

그러니··· 아마 저쪽도 나름대로 준비라는 걸 할 시간이 필요할테지.

바깥으로 통하는 문쪽을 한 번 힐끔 쳐다봤다가 이내 소파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건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 넘어가봐야 안 그래도 준비한다고 바쁠 이들을 더욱 부산스럽게만 만들 게 뻔했으니까.

그러니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

그래서야 기다리면서 흘러갈 시간이 아깝지 않겠는가.

해서 소파 위에 잠시 앉아있다가 지나가 이 방까지 몸소 날라다 준 것을 챙겨서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왕 잠시 기다리기로 한 김에 축의금 명목으로 들어온 것이나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금액적으로 크게 기대가 되지는 않더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결혼식에 참가한 하객 수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그런만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짓도 사실 금액 확인보다는 차라리 여러모로 거추장스러운 상자를 제거하고자하는 목적이 크긴 했다. 

안에 들어있는 게 얼마 되지도 않는데 언제까지고 이 커다란 상자를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래서 상자를 오픈한 다음 상자를 탈탈 털어서 상자 바닥하고 찰싹 붙어있던 것들을 테이블 위로 떨군 다음 그렇게 떨어진 것들을 하나하나 까서 내용물들을 한데 정리하기 시작했다.

팔락ㅡ!

"음···?"

봉투 안에 든 것을 꺼내기 위해 그것을 반대로 뒤집은 다음 손바닥에 대고 탈탈탈탈 털고 있으려니까 요상한 물건 하나가 허공을 타고 팔랑팔랑 떨어졌다.

그래서 저건 대체 뭘까.

생긴 것도 그렇고 사이즈도 그렇고 돈같지는 않아보이는데 말이다.

'누가 실수로 잘못 넣은 건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대신 그 잠깐 사이에 테이블 위로 착지한 것을 조심스레 집어들었다.

직접 만져보니 더욱 확실해졌다.

이건 확실히 돈은 아니라는 걸.

단순히 우리나라 돈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세상 어느 나라가 이렇게 빳빳한 코팅지로다가 돈을 만든단 말인가.

'뭐, 광고지 같은게 잘못 딸려들어간 건가?'

일단 질감 자체는 그거하고 굉장히 유사했다.

그 왜 길가다보면 하나쯤 건네받게 되는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다만 마주하고 있는 면이 뒷면이다보니까 그 내용물까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반대로 뒤집어봤는데ㅡ

[어떻게든 '해줘' 쿠폰]

생각치도 못한 비쥬얼을 갖춘 앞면이 짠하고 날 반겨주었다.

이걸···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꼭 그거 같네···'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 만들어본 적 있는 부모님 생신선물용 쿠폰같은 비쥬얼이라고 해야할까.

그보다는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이긴 해도 특유의 크레파스같은 걸로 끄적거린 느낌만큼은 그대로 살아있더라.

그래서 이런 게 여기에 왜 들어가있었던 걸까.

'누가 장난친건가?'

아무래도 하객들이 다들 스트리머에 유투버들이다보니까 가능성이야 충분하긴 했다.

해서 누구의 소행인지 알아나볼겸 손에 든 쿠폰을 요리조리 돌려보고 있었는데··· 앞면 왼쪽 하단에 적혀있는 깨알같은 글씨가 눈으로 들어온 순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러니까··· 이 쿠폰을 이런 식으로 던져주고간 이의 정체를 말이다.

-이 쿠폰은 일생에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뭔가 곤란한 일이 생기셨나요?

-그렇다면 이 쿠폰을 찢으십시오.

-그러면 어떻게든 될 겁니다.

무인도에서의 연락 이후로 쭉 소식이 없길래 이제 정말 그걸로 끝인 줄 알았건만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결혼선물을 건네주고 갈 줄이야.

손으로 직접 끄적거린 듯한 비쥬얼이 좀 흠이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잘 보관하고 있기로 했다.

이 쿠폰의 출처가 내가 예상한 곳이 맞고, 이 쿠폰에 적혀있는 설명이 사실이라면 나중에 뭔가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아주 요긴하게 쓰일 가능성이 크니까.

'미리 까보길 잘했네···'

세나하고 같이 열어봤다면 틀림없이 쿠폰을 보고 뭐 그런 걸 챙기냐면서 뭐라 그랬을테니 말이다.

그런 식으로 몰래 온 손님이 몰래 건네주고간 것을 부적처럼 지갑 안에 챙긴 다음 벌려놓은 것들을 정리하고서 그대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얼마 되지 않는 것들을 일일히 하나하나 까뒤집다보니까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으니까.

이 정도면 뭘 준비하든 준비할 시간은 충분히 주어졌을테니 이제 슬슬 넘어가도 괜찮겠지.

지금 머물고 있는 방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세나가 잠들어있는 방에 들려서 잘 자고 있는 지 확인한 다음 깔끔하고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그대로 호텔방을 나섰다.

그리고는 지나와 가영이 기다리고 있을 옆방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들기니ㅡ

철컥ㅡ!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대신 잠겨있던 문 열리는 소리가 귀를 강타했다.

그에 살짝 얼떨떨해하면서도 일단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갔는데ㅡ

"뭐, 뭐야?!"

방 안으로 발을 들여놓기 무섭게 뭔가가 머리 위로 쑤욱하고 씌워지더니 그대로 눈이 가려졌다.

그야말로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인지라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고 크게 떨었더니만 안심하라는 듯 익숙한 목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누나야 누나. 그러니까 진정해."

"···지나 누나?"

"응?"

"아니, 눈은 왜···"

가린 거냐고 물으니까 지나가 이유는 알려주지 않고 대신 날 어딘가를 향해 잡아끌기 시작했다.

"발 조심하고."

"응? 아, 응···"

미심쩍인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긴 했지만 일단은··· 지나가 잡아끄는대로 움직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렇게 하기로 진작에 마음 먹은지 오래였으니까.

다만 딱 하나···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면 여전히 내 눈을 꽁꽁 봉하고 있는 안대의 존재였다.

'이건 언제 벗겨주려나···'

평소에 안대를 쓰는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기 때문일까.

끄응하고 앓는 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답답하더라.

그냥 눈을 감고 있을 때하고는 답답함의 정도가 차원이 달랐다.

눈을 떠도 안대 때문에 가려서 뵈는 게 없다보니까 더 그랬다.

그럼에도 일단은 잠자코 있었더니만 그 잠깐 사이에 현관 앞을 떠나서 침대가 있는 곳까지 도달했나 보다.

어깨를 꾸욱하고 누르는 손길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몸을 굽히니 이내 푹신푹신한 것이 밑에서부터 엉덩이를 받쳐주었다.

지나가 내 옆을 떠난 건 다름아닌 그 직후였다.

자박하고 자그마한 발자국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이내 그것이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 부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렇게 자리에 앉았으니까 이제 이 놈의 안대를 벗어도 되는 걸까.

차마 선뜻 벗지는 못하고 대신 손을 들어올려 안대의 겉부분을 살살 어루만지고 있던 와중이었을 것이다.

지나와 함께 자취를 감추었던 발자국 소리가 다시금 방 안으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다만··· 전과는 달랐다.

하나밖에 울려퍼지지 않았던 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두 개가 거의 동시에 울려퍼지고 있었으니까.

날 여기다가 내버려두고 대체 어딜 그리 바삐 가나 싶었더니만 가영을 부르러 갔던 것일까.

어느새 방 안으로 흐르기 시작한 가영 특유의 달달한 체향에 심장이 콩닥콩닥하고 뛰어대는 걸 느끼고 있으려니 잠시 멎었던 발자국 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퍼졌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울려퍼져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한 그것들의 존재에 안 그래도 빠르게 뛰고 있던 심장이 브레이크라도 고장난 기관차마냥 폭주를 해대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던 뭐라 이루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한층 더 커지는 것 같은 느낌에 괜히 손으로 안대를 잡아당기고 있으려니까··· 조용조용하게 울려퍼지던 발자국 소리가 완전히 멎었다.

바로 그 순간 콧속으로 흘러들어와 순식간에 그 안을 가득 채워버린 향기 덕분에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가영하고 지나가 내 바로 앞까지 도달해있다는 것을.

그렇다는 건?

이 망할 놈의 안대만 제껴버리면 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소리겠지.

그리 생각하니까 새삼 호기심이라는 것이 미친듯이 솟구치기 시작하더라.

대체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으로 날 기다렸길래 이런 식으로 나한테 안대까지 씌워가면서 쉽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

큼지막한 고깃덩어리가 눈앞에 있는데 주인한테서 '기다려!'라는 명령을 받아버린 강아지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기대감은 증폭되어 가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안대를 벗기도 그래서 실시간으로 애가 닳아 없어지는 게 아주 그냥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면 틀림없이 흥분으로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상태일테지.

그래서일까.

발자국 소리가 끊어진 후로 쭉 침묵에 잠겨있던 방 안으로 쿡쿡하고 작게 웃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누가 웃은 걸까.

가영일까?

아니면 지나?

한 번 폭주하기 시작한 호기심은 말 그대로 멈출 줄을 몰라서 자꾸만 날 안달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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