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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 댕···!
성당 위에 달려있는 종이 좌우로 흔들리며 유난히도 맑고 고운 소리를 사방으로 퍼뜨렸다.
그 소리를 귀에 담으며 눈앞으로 펼쳐진 새하얀 천으로 된 길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세나야 지금쯤 진작에 입장을 끝마쳤을테니 이대로 이 길을 따라 걸어서 그 끝에 도달한다면?
그토록 보여주지 않으려고 기를 써대던 세나의 웨딩드레스 차림을 볼 수 있게 되겠지.
대체 어떤 모습일까.
웨딩드레스를 입은 세나의 모습은 말이다.
현존하는 그래픽카드들 중에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뇌를 열심히 굴려가며 나름대로 그 모습을 그려보고 있던 와중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시간이 된 것인지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도우미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살짝 허리를 숙이면서 손으로 조심스레 앞쪽을 가리키길래··· 천천히 버진로드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뭐, 이 세계에서도 그렇게 부르는 지는 모르겠지만.
거리로 따지면 한··· 십미터는 될까.
평소였다면 느릿느릿하게 걸어도 몇 초면 충분했을 그 거리가 오늘따라 길게 느껴지는 건··· 틀림없이 기대감 때문이겠지.
한 걸음씩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심장의 콩닥거림또한 그에 맞춰서 커져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식장으로 통하는 문을 눈앞에 두었을 때는ㅡ
'미치겠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심장이 터질 것 같더라.
그래서 조금이라도 차분해질 수 있도록 숨을 고르고 있었더니만 내 뒤를 따라 움직이던 이들이 이번에는 문 옆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마침내ㅡ
끼이이익···
나무로 된 커다란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느릿하게, 열리기 시작한 문 사이로 빛이 들이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만큼 환한 빛이 눈으로 직접 들이쳤으니까.
"뭐해, 계속 그렇게 서 있을 거야?"
살짝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렇게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와중이었다.
바로 옆에서 울려퍼진 것처럼 들려온 그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질끈 감고 있던 눈을 슬그머니 뜬 순간 시야 속으로 파고 들어온 건ㅡ
"자."
"···"
"이리와."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고, 수줍게 웃고 있는 세나의 모습이었다.
그 왜 사람이 너무 놀라거나 당황하면 흔히 사고가 정지해버린다고들 하지 않나.
지금 내 상황이 딱 그랬다.
평소에 보여주던 틱틱대고 까칠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세상 수줍은 얼굴을 한채로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걸치고 있는 세나의 모습이 시야 속으로 파고 들어온 순간 뇌가 '어? 뭐지? 버근가?'를 외치며 그대로 정지해버리더라.
그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심지어는 광원이 세나의 뒷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든든하게 세나의 뒤를 받쳐주는데··· 덕분에 안 그래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모습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신비함까지 더해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가 일순간 정신줄을 놓고 말았던 것은.
그렇게 놓쳐버리고 만 정신줄을 다시 붙잡았을 때는?
'···미친?'
결혼식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키스타임이 되어있더라.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린 시간에 얼떨떨해하고 있으니 세나가 예의 그 발그레하니 달아오른 얼굴을 한채 조심스레 입술을 들이밀어왔고, 그걸 순순히 받아주고 나니까··· 사방에서부터 환호와 축하인사, 그리고 지인들의 축복이 쏟아졌다.
그래봐야 몇 명 초대하지 않은 탓에 막 그렇게 소란스럽고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환호를 들으며 내게 가볍게 입을 맞췄다가 떨어뜨린 세나가 이내 내 손을 꼭 움켜쥔채 사람들 쪽으로 돌아섰다.
"자, 이 다음부터는 피로연이니까 직원분들 따라서 뒤에 있는 정원 쪽으로 이동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말에 동그란 테이블을 따라서 앉아있던 이들이 피식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고, 개중에는 지나나 가영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나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막 티가 날 정도로 나쁘지도 않았지만.
그에 비해 가영은 어딘가 덤덤해 보이는 눈빛으로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아무튼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성당 뒷쪽에 있는 정원으로 보낸 다음 옷을 갈아입기 위해 세나와 함께 이동했다.
"벌써 갈아입어?"
"왜? 더 보고 싶어?"
그렇게라도 긴장을 좀 풀고 싶었던 것일까.
내 물음에 세나가 날 놀리기라도 하듯 빙글빙글 웃으며 그리 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솔직히 그 말대로였으니까.
식이 시작되자마자 정신줄을 놓아버렸던 탓에 얼마 보지도 못했는데 끝이라니.
이 아쉬움을 그냥 흘려넘겨버리면 나중에 가서 정말 땅을 치고 후회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더니만 그런 내 몸짓이 웃기기라도 했는지 순간 푸훗하고 웃은 세나가 이내 주위의 눈치를 슬쩍 한 번 살피더니 까치발을 들어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더니ㅡ
"정 그렇게 아쉬우면··· 이거 확 사버릴까?"
"살 수 있어?"
"사겠다고 하면 팔지 않을까?"
즉흥적으로 내밀어진 것치고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옷과는 다르게 부피부터가 어마어마한 탓에 보관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일단 가지고 있으면 세나의 웨딩드레스 차림을 두고두고 볼 수 있다는 뜻 아닌가.
"사자. 아니다 내가 살게."
"뭐?"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아예 옆에서 우릴 안내하던 직원 중 한 명을 호출해 손짓발짓은 물론 되지도 않는 영어까지 총동원해서 지금 세나가 입고 있는 드레스를 소장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런 내 돌발행동에 직원은 처음에는 난감해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잠깐에 불과했다.
얼마든지 처리 가능한 사안인지 이내 알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어휴··· 정말···"
그런 내 옆에서 세나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대긴 했지만··· 놀랍게도 조금도 신경이 쓰이지 않더라.
"됐다. 이제 옷 갈이입으러 가자."
그렇게 지금 세나가 입고 있는 걸 개인적으로 소장하는 게 확정이 되고 나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져서 오히려 얼른 가자고 앞장도 설 수 있었다.
"으휴···"
그랬더니만 자꾸만 내 옆에서 요상한 소리를 흘려대던 세나가 이내 탈의실로 들어가 한결 편안해보이는 드레스로 갈아입고 나왔고, 나도 거기에 맞춰서 다른 종류의 턱시도로 갈아입은 다음 세나와 함께 피로연 장소인 정원 쪽으로 향했다.
피로연은 뭐··· 말이 피로연이지 사실 별 거 없었다.
잘 꾸며진 정원에다가 테이블하고 간단한 먹을거리들을 늘어놓은 건 나쁘지 않긴 했는데··· 아무래도 세나가 술같은 걸 마실 수가 없는 몸이다보니까 그냥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면서 축하를 받고 이 먼 곳까지 와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돌려주는 식으로 진행되었으니까.
'그나저나··· 사람이 적긴 적네···'
사실 그 부분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긴 했다.
애초에 결혼식이 열리는 장소부터가 한국이 아니지 않은가.
뭐, 돈이 썩어 넘쳐나는 수준이었다면 초대장을 보낼 때 비행기 티켓을 같이 동봉하는 식으로 진행했겠지만··· 솔직히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더라.
그래서 이렇게 찾아준 이들 하나하나가 더 고맙게 느껴졌고.
"하··· 유세나가 결혼이라니···"
"왜? 부러워?"
"그래 이년아. 부럽다! 그래서 어쩔래!"
"그렇게 부러우면 언니도 빨리 결혼하든가. 아, 남자친구부터 만드는 게 먼저려나?"
"와··· 내가 유세나한테 이런 주제로 기만질을 당하는 날이 살아생전 올 줄이야···"
"그러니까. 인생 헛 사셨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세나는 지인들을 놀리기 바빴다.
뭐, 놀릴 수 있는 대상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거나 남자친구가 없는 이들 한정이긴 했지만.
그에 비해 이미 결혼한 상태인 이들을 상대로는?
"결혼··· 나쁘지 않지. 음···"
"···고생해라."
"애도 키우려면 빨리 방송 복귀부터 해야되는 거 아냐?"
"아니··· 누가보면 뭐 내가 전쟁같은데라도 나가는 줄 알겠네. 다들 표정이 왜들 그러세요."
"그런 게 있다··· 그런 게···"
"우리 세나 이제 어쩌냐? 전처럼 게임에 지르고 싶은대로 지르지도 못할텐데··· 쯧쯧쯧···"
"세나야. 그··· 허락보다는 용서가 빠르다는 말 알고 있지?"
오히려 역으로 놀림을 받았다.
어찌보면 이 분야의 선배라 할 수 있는 지인들이 하나같이 심각해보이거나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을 한채로 그리 말하니까 그럴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내심 불안해질 수밖에는 없었던 걸까.
"아니, 누가보면 뭐··· 전쟁나가는 줄 알겠네. 다들 반응들이 왜 그러세요···"
세나의 표정이 살짝 불안해지니까 그제서야 단체로 짜고서 세나를 놀려대던 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피식피식 웃으면서 세나의 어깨를 한 번씩 두들겨댔다.
"농담이야. 농담. 잘 살아라."
"그래, 유한 씨 정도면 진짜 네가 절하면서 같이 살아야지."
"그러니까."
"씨이··· 아니, 제가 어디가 어때서요."
세나의 소심하기 짝이 없는 반박은 풍부한 경험을 지닌 유부녀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 맞다. 병원은? 가봤어? 뭐라디? 딸이래 아들이래?"
"요즘은 그런 거 안 알려줄걸?"
"그래? 그래도 힌트 정도는 주지 않나?"
"아무튼 뭐··· 남자 애일지 여자 애일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노났네."
"내 말이. 아기때부터 막 기획사 같은데서 모델시켜보자고 연락오고 그러는 거 아냐?"
"그나저나··· 고생하겠네. 애도 키우고 방송도 하고 그러려면···"
"아··· 그거 장난 아니지."
고생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기라도 한 것일까.
자기들끼리 열심히 티키타카를 펼쳐대고 있던 이들이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마치 각오 좀 해두라고 미리 경고라도 하는 듯한 그들의 반응에 세나는 뭐라고 했냐면ㅡ
"흥, 우리 애는 순해서 안 그럴걸요?"
벌써부터 팔불출적인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순해? 글쎄··· 그러기에는 엄마 쪽 성격이 좀···"
"아니, 제 성격이 어때서요."
"솔직히 순한 성격은 아니지. 안 그래요? 유한 씨?"
"아니에요. 누나가 방송에서는 그래도 평소에는 얼마나 얌전한데요."
특히 침대 위에서 그렇다는 말은 일부러 생략했다.
"그래요? 의외네···"
"의외는 무슨, 남자 앞이라고 그냥 무게잡은 거겠지 뭐."
"그런가?"
그런 식으로 축하 인사도 받고, 축하 인사의 탈을 쓴 놀림도 받고 그러다보니까 어느새 피로연 시간도 끝을 향해 접어들고 있었다.
고로 이제 남은 건 딱 하나 뿐이었다.
호텔로 이동해서 대망의 첫날 밤을 보내는 것.
'뭐···'
원래는 호텔이 아니라 공항으로 이동해서 바로 신혼여행을 떠났겠지만 그럴 수가 없는 상황 아닌가.
그래서 그냥··· 호텔 스위트룸을 며칠 빌리는 걸로 그걸 대신하기로 했다.
결혼식을 찾아준 하객들?
각자 머물 방이야 다 잡아줬으니 지금부터는 알아서 하겠지.
꼭 소화해야만하는 일정이 있는 이들은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이들만 남아서 관광을 하든 뭘 하든 하지 않을까.
그들이 이후에 뭘 하든 그건 내가 신경쓸 부분이 아니었다.
그러려고 일부러 숙소도 우리가 머물기로 한 호텔에서 최대한 먼곳으로 잡았던 거니까.
물론, 지나나 가영이야 우리와 같이 움직일 예정이었다.
명분도 이미 그럴싸한 걸로 둘러대놓은 상태였고.
'그러면 이제 슬슬···'
끝내 보실까.
하객들에게 고지한 일정이야 여기서 끝이지만 실은 아직 소화해야할 일정이 꽤나 많이 남은 상태니 말이다.
너무 늦지 않도록 이쯤에서 정리하는 편이 좋겠지.
해서 세나와 함께 나서서 자리를 정리한 다음 세나는 물론이거니와 지나하고 가영과 호텔로 이동했다.
물론, 차만큼은 나눠탔다.
아무리 그래도 차까지 같이 타기에는 솔직히 좀··· 눈치가 보였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여길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가영과 지나가 우릴 따라 움직인 건 오늘 있었던 결혼식의 마무리를 돕고, 겸사겸사 이런저런 정리를 위해서라고 미리 핑계를 대놓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