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8화 〉1부 (308/315)

[ㅅㅂ 어질어질하네 진짜 ㅋㅋㅋ]

[아까 누가 큰 거 온다더니만 진짜로 큰 게 와버렸누..]

누군가의 말마따나 다들 좀 어질어질한가 보다.

'하긴···'

갑작스러운 진실 발표부터 시작해서 결혼 발표까지 전부 원큐에 이루어졌으니까.

그야말로 원투 스트레이트를 얻어맞은 꼴이니 그럴만도 하겠지.

이 와중에 살짝 웃긴 건 처음만 하더라도 세나를 무슨 도둑년 취급하며 채팅창을 불태우던 이들이 결혼한다는 말을 한니까 태도를 싹 바꿔서 세나를 동정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 남자에게 결혼이란 무덤이라는 말이 있듯 남녀의 정조관념이 서로 뒤바뀐 이 세계에서는 그 말이 다름아닌 여자를 상대로 적용되기라도 하는 걸까.

'누가보면 내가 잡아먹기라도 하는 줄 알겠네···'

아닌가?

잡아먹는게 맞나?

따지고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아이도··· 생긴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런 류의 채팅만 있는 건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착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세상에는 착한 사람만 있지 않았으니까.

그게 장난스럽게 세나를 동정하는 채팅들 사이로 간간히 어그로성이 다분한 질 나쁜 채팅들이 올라오고 있는 이유기도 할 것이고.

작정하고 시청자들을 속인 주제에 뭐 그리 당당하냐며 세나를 꾸짖는 체 하며 제 관종력을 채우려는 목적의 채팅들 앞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여기서 발끈하고 나서봐야 오히려 역풍만 맞을 게 뻔하니까.

그러니 여기서는 숙이는 게 정답이었다.

'슬슬··· 올라올 때가 됐는데···'

그렇게 다시 한 번 카메라를 향해 꾸벅하고 허리를 숙여보이면서 은근슬쩍 채팅창을 주시했다.

'그 채팅'이 올라온 건 다름아닌 그 와중이었고.

[문득 든 생각인데 세나가 동생 분 소개할 때 친동생이라고 한 적은 없지 않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한 줄의 채팅.

미리 걸어둔 슬로우 채팅모드의 효과 덕분에 채팅창이 잠시 소강 상태로 접어든 틈을 타서 시기적절하게 등장한 그 채팅은 30초간 지속되는 채팅 봉인 모드에서 막 해방된 이들의 어그로를 팍팍 끌어당겼다.

[음? 그랬나?]

[그러고 보니까 그냥 동생이라고만 말했지 친동생이라고 한 적은 없는 것 같긴 한데...]

[그게 뭔 상관임 속인 건 속인 거지]

[ㄹㅇ ㅋㅋ]

[이때다하고 쉴드 쳐주려고 하는 머가리 깨진 년들 많네 ^^]

[쉴드로 쳐주고 싶은 건 니년들이고요]

[하여간에 뭐 일만 터지면 물어뜯으려고 우르르 몰려오는 년들 ㅈㄴ 많음]

[자기 입으로 말 안 했으면은 솔직히 좀 애매하지 않나?]

[그래도 따로 정정하진 않았잖아 그럼 속인 거지 ㅅㅂ]

[어허 나쁜 말 안 돼요]

[나쁜 말 멈춰!!]

[동생 분 사정 들어보니까 솔직히 숨긴 거 이해가 되기도 함]

아무래도 내 입으로 직접 내 사정, 아니 '이유한'의 사정에 대해 미리 밝혀놓길 잘한 것 같았다.

그게 지금 이 순간 참으로 적절하게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의견 다툼에서 승리를 거둔 건 '세나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를 주장하는 쪽이었다.

아무튼 세나의 잘못이라며 몰려온 이들의 수도 만만치 않기는 했지만 그래도 몇 년동안 쌓이고 쌓여서 콘크리트에 버금가는 강도를 자랑하게 된 세나의 시청자 층을 뚫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으니까.

물론, 그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수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채팅창과 세나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손으로 조심스레 세나의 배를 쓰다듬는 걸 반복한 것도 나름대로 한몫했을테니까.

조금이라도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내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었고, 그게 사람들의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만들었던 것.

그런 식으로 어그로를 끌러 들어온 이들이 채팅으로 흠씬 두들겨 맞고 물러나고 나니까 채팅창 분위기가 조금씩 요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그거 맞지...?]

[어쩐지 결혼을 왜 이렇게 서두른다 했더니...]

[그게 뭔데 니들만 아는 이야기 하지 말고 공유해라]

[어휴 저 눈새련...]

[딱 보면 모름? 백펀데 ㅋㅋㅋ]

[눈치 없는 거보니까 아직 남자 손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아다 년일듯]

[앗...]

[아아...]

[광역기 멈춰!!!]

[아군 오사 멈춰!!!]

[아닌데? 아닌데? 남자 손 잡아본 적 있는데?]

[아뉜뒈 아뉜데 ㅇㅈㄹ ㅋㅋ]

[응 아빠 손이죠?]

[아빠가 남자냐 ㅅㅂ]

[아부지도 남자긴 하지 ㅋㅋㅋㅋ]

[근데 도련님일지 아가씨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겁나 귀엽긴 할듯]

역시 다들 눈치챘나 보다.

하긴··· 그러라고 일부러 좀 노골적으로 행동하긴 했지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이용하는 게 살짝 찝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이한테도 엄마가 욕먹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아직 성별조차 확정되지 않았을테지만 만약 나중에 태어날 아이가 남자아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아닌가? 딸이어야 맞는 건가?'

내가 살짝 혼란을 겪고 있는 동안에도 시청자들의 주접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ㄹㅇ ㅋㅋ 유전자가 있는데]

[개부럽네;;]

[ㄹㅇ 태어나 보니까 엄마 아빠가 다 존잘 ㅋㅋ]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킹받네? 이거 따지고 보면 소꿉친구랑 결혼 성공한 거잖아]

[어라...? 버근가? 유서깊은 법칙에 따르면 소꿉친구는 패배하는 게 국룰인데;;]

[그거 마따]

[사장님 이거 버그 났는데요?]

[소꿉친구면 패배가 국룰이긴 한데 이건 소꿉친구라기 보다는 키잡 아님?]

[아 키잡은 ㅇㅈ이지~]

[부.럽.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슬슬 방송을 마무리해도 될 것 같았다.

세나는 뭐하냐고?

세나야 뭐··· 딱 보니까 일이 설마 이렇게 술술 풀릴 줄은 몰라서 살짝 당황한 상태였다.

그 꼴을 보니 저대로 내버려두면 언제까지고 저러고 있을 것 같았고.

세나가 원한다면 방송을 더 진행해도 상관없긴 하지만··· 그래도 초기이니만큼 무리해서 좋을 건 없지 않겠는가.

안 그래도 지금까지 받은 스트레스며 긴장이 어마어마할텐데 여기서 더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저희는 슬슬··· 여기서 마무리 하고 나중에 또 기회가 되면 방송 키도록 하겠습니다."

해서 세나를 대신해 전면으로 나서서 방송을 마무리했다.

[ㅇㄱㅇ]

[하긴 무리하면 안 되긴 하지]

[돌아와 줄거지...? 나 숨 참으면서 기다려도 되는 거지...?]

[아니 ㅋㅋㅋ 그러다 죽어요 선생님;;]

[흡!]

[세바~ 동바~]

[ㅅㅂ~(욕하는 거 아님)]

우릴 배웅하기 위해 올라온 채팅들을 눈에 담으며 방송 종료 버튼으로 마우스를 가져갔다.

그리고는 딸칵하는 소리를 내며 마우스 버튼을 누르니 그제서야 긴장했던 게 탁 풀리기라도 했던 것일까.

"허으으···"

벽을 배경삼아 등지고 서 있던 세나가 그대로 살짝 몸을 휘청하더니 이내 요상한 소리와 함께 벽을 따라 쭈르륵 미끄러졌다.

"뭐야, 괜찮아 누나?"

"몰라··· 씨···"

"부축해줄까? 누워서 좀 쉴래?"

그런 내 제안을 세나는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그만큼 바짝 긴장했던 걸까.

침대가 많이 마려워보이는 세나를 부축해서 일으킨 다음 급한대로 옆에 있던 침대에다가 눕혔다.

그런 식으로 남은 하루를 휴식으로 꼬박 채운 다음, 정확히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결혼 준비에 착수했다.

아무래도 외국이다보니까 이래저래 걱정이 좀 많았는데 세나의 말마따나 돈이면 안 되는 게 없긴 하더라.

덕분에 어찌보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식장도 꽤 괜찮은 곳으로 잡을 수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 결혼식장하면 흔히 떠오르는 그런 곳들처럼 오직 결혼식만을 위해서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곳은 아니긴 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성당에 가까운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래서 더 마음에 들더라.

이곳까지 안내해준 직원의 말에 따르면 옆에 있는 호텔에서 같이 관리를 한다는데 덕분에 안쪽이 새하얗게 반짝반짝 거리는 것이 누가봐도 결혼식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으니까.

"어때 누나? 마음에 들어?"

이곳이 마음에 든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내가 그리 묻기도 전에 세나의 얼굴에는 이미 미소가 맺혀있었다.

덕분에 질문을 던지자마자 세나가 흡족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한채로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원하면 성당 뒷쪽에 있는 정원에서 피로연도 할 수 있다더라."

"그래? 그럼 거기도 한 번 가볼까?"

그에 세나를 데리고 성당 뒷문 쪽으로 나가니 녹색으로다가 예쁘게 잘 꾸며진 정원의 모습이 우릴 반겨주었다.

바닥에는 잔디를 깔아놓고 덤불인지 뭔지 모를 것으로 예쁘게 모양을 잡아놓은 것이 꼭 놀이공원같은데나 있을 법한 그런 정원 같더라.

피로연은 아마 저 한가운데에 있는 공터에서 열리는 것일테고.

"진짜 괜찮은데···? 바다 보이는 것도 마음에 들고···"

"그치? 그럼 여기로 할까?"

"응."

그런 식으로 장소가 결정되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말 그대로 일사천리였다.

일단 대관한 곳을 결혼식에 걸맞은 모습으로 꾸미는 건 거길 소개해준 업체 측에서 담당해주기로 했다.

덕분에 나하고 세나는 예물하고 예복 맞추는 데에만 집중하면 되었고.

그렇다고 해서 업체 측에다가 맡겨놓고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간간히 들려서 진행상황도 확인하고 우리가 요청한 부분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 지도 확인했으니까.

물론, 그런 식으로 움직일 때는 거의 혼자서 움직였다.

아무래도 세나가 막 돌아다녀도 될만한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덕분에 상당히 바쁘게 돌아다녀야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종일 결혼 준비만 하면서 보냈냐면 그렇지는 않았다.

처음을 빼앗겨버린 탓에 제대로 토라져버린 지나의 마음도 풀어줘야만 했으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세나한테 허락받고 진행한 일이었다.

솔직히 허락해줄지 확신이 없긴 했는데 의외로 순순히 허락해주더라.

'이게 바로 승자의 여유인가···?'

아무튼 세나가 나름 흔쾌히 허락을 해준 덕분에 말 그대로 온몸을 써서 지나를 달래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진 찐득찐득하고 농밀하기 그지없는 섹스는 지나가 그토록 원하던 결과를 가져왔고.

말해 무엇하랴.

세나에 이어 지나도··· 내 아이를 갖게 되었다.

···많이 기뻐하더라.

그래서 더 양심이 콕콕 찔렸지만··· 그런만큼 더더욱 지나또한 잘 챙겨주겠다고 다짐했다.

지나가 그러는 동안 가영은 뭘 했느냐고?

물론, 가영이랑도 관계를 맺기는 했다.

다만··· 아무래도 딸인 세나가 내 아이를 가진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와 관계를 맺는 것이 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라도 했는지 지나랑은 다르게 한두 번 정도만 몸을 섞는데서 그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영의 마음이 날 떠난 것 같다거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더한 애정을 보여주는데 그걸 느낄 때마다 속으로 다짐했다.

나중이 되겠지만 가영도 꼭··· 내 아이를 갖게 만들 거라고.

반드시 그렇게 만들고 말 거라고 다짐했었는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식탁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다 같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와중이었을 것이다.

세나를 상대로 결혼 준비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묻던 가영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더니ㅡ

"우웁···!"

헛구역질 하는 소리와 함께 가영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채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

말 그대로 갑작스럽게 그지없는 가영의 돌발행동은 나를 포함해 자리에 같이 앉아있던 이들을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어, 엄마···?"

"설마···"

그런 식으로 다들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가운데 내 강권에 못 이겨 임신테스트기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던 가영이 조심스레 그 안에서 빠져나왔고ㅡ

그렇게 화장실 안에서 빠져나온 가영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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