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 조용하다가 나와 세나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등장하니까 안 그래도 빠르던 채팅창 속도가 숫제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 탓에 세나가 말한대로 슬로우 모드를 걸었음에도 채팅창 올라가는 속도가 평소하고 별반 다르지 않더라.
그만큼 평일 대낮에 방송을 킨 것 치고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시청자들이 방으로 몰려와 있었다.
그리고 끓어오르는 긴장을 달래듯 몇 번이고 심호흡을 반복해대던 세나가 마침내 휴대폰을 들어올려 그것을 확인했다.
안 그래도 창백한 편이던 세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건 다름아닌 그 직후였고.
세나의 상태가 어떤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당연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좀 기다렸다가 키게 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덕분에 새삼 그런 후회가 쓴물처럼 목구멍을 타고 역류했지만 이제와서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방제를 달고 방송을 켜버린 시점에서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어버렸으니까.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카메라가 꺼져있는 틈을 타서 세나를 향해 다가가 살짝 떨리는 손을 꽉 붙잡아주는 것 뿐이었다.
그런 내 손길에 처음에는 붙잡힌 손과 함께 몸을 움찔하고 떨어대던 것도 잠시, 덕분에 정신이 확 들기라도 했는지 세나의 얼굴이 그래도 처음보다는 살짝 나아졌다.
그래도 여전히 보기 안쓰러운 상태기는 했지만.
"괜찮겠어···? 정 힘들면 그냥··· 나중에 하는 게···"
그렇다보니 작은 목소리긴 해도 그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물론, 그리 말하는 나도 그건 힘들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방송만 키면 거의 다른 사람이 된 것같은 모습을 보여주던 세나가 처음 방송키는 사람마냥 바짝 긴장하고 있는데 한 번 정도는 무리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두 사람의 건강이니까.
그래서 그리 말했더니만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세나가 이내 피식하고 웃으며 내 코에 대고 살짝 손가락을 튕겼다.
마치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냐는 거냐고 말하는 것 같은 코웃음은 덤이었다.
"걱정하지 말고 아까 내가 말한 거나 까먹지 마."
"누나···"
"아무튼··· 다시 자리로 돌아가. 이제 슬슬 시작해야 되니까."
다들 화면 켜지는 거 기다리다가 숨 넘어가겠다며 슬쩍 우스갯소리를 덧붙인 세나가 이내 내 몸을 원래 있던 자리를 향해 꾸욱꾸욱 떠밀어대기 시작했다.
지나가 이랬다면 믿음직하게 느껴졌을텐데 세나가 그러니까 솔직히 좀··· 미덥지가 못하더라.
그럼에도 일단은 믿어보자는 마음으로 세나가 떠미는대로 순순히 밀려나 주었다.
그렇게 다시 카메라를 앞에 두고 앉은 순간 세나가 내쪽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딱딱하게 굳어있긴 했지만 어딘가 결심을 굳힌 듯한 그 얼굴에 결국 off 상태로 해두었던 카메라 화면을 켰다.
그리하여 마침내 화면 안에 세나의 모습이 등장한 순간ㅡ
[???]
[뭐임? 진짜 뭔일 터짐?]
[그 구도 에반데;;]
[ptsd 온다 ㄷㄷㄷㄷ]
[큰 거 온다더니 진짜 큰 거 올듯]
[아니 근데 진짜 뭔 일 터졌음? 아시는 분?]
[그랬으면 기레기들이 가만히 있었겠냐? 이거 걍 우리 놀려먹으려고 이러는 거라니까?]
[뭔가 싶어서 검색해보고 왔는데 아무 것도 없던데?]
[사고를 안 쳤는데도 일단 사과부터 박고 보는 스트리머가 있다?!]
[유세나:방송켜서 죄송...]
[방송인 유세나 오늘 점심은 제육이었다 밝혀, 채색주의자 분들께 죄송...]
[아 ㅋㅋ 제육은 못 참지]
[거... 유한 씨는 제육 좀 볶으시려나?]
[아니 그래서 뭔일인데;;]
[ㄹㅇ 복장도 그렇고 표정도 그렇고... 장난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뭐 탈세라도 했음?]
[일단 그건 아닐 듯]
[뭐 불법 도박이라도 함?]
[불법 도박을 왜 해요 ㅋㅋ 큐브가 있는데 ㅋㅋ]
[탈세 했을 수도 있지 왜 아니라는 거임?]
[생각해보셈 세나 능지로 탈세를 어케 해연;;]
[앗...]
[능지 이슈]
[능지가 처참하긴 해 ㅋㅋ]
각양각색의 반응들이 채팅창 위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냥 장난치려고 이러는 거라는 이들부터 시작해서 탈세에, 불법도박에, 뒷광고에, 조작 썰까지 정말 별의 별 이야기가 다 나오더라.
'참···'
그런 식으로 사람드링 각자의 창의력을 한계까지 쥐어짜내고 있던 가운데 진지한 방송보다는 재미있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방송을 지향하는 세나로서는 참으로 드물게도 진지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하고 있던 세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유세나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런 식으로 시작된 세나의 발언은 그녀가 카메라를 향해 허리를 깊게 숙이는 순간 잠시 끊어졌다.
"사실 저는 그동안 거짓으로 시청자 분들을 기만해왔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을 속이고 기만했던 것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그리 말한 세나가 다시 한 번 카메라를 향해 허리를 숙여보였고, 장난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진지하고 심각해보이는 세나의 표정과 목소리에 채팅창은 말할 것도 없이 의문으로 가득 찼다.
[???]
[뭘 속였다는 거임?]
[모루겟숴요...]
[아니 그런 말을 할 거면 먼저 어떤 식으로, 뭘 속였는지부터 말을 해주던가!!]
[나]
[아 또 나락단 년들 기어나오네]
[락]
[정신 나갈 것 같아... 정신 나갈 것 같아.. 점심 나가서 먹을 것 같아.. 점심 나가서 간짜장 먹을 것 같아..!]
"제가··· 그동안 어떤 식으로 시청자 분들을 속이고 기만해왔는지에 대해서 지금부터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 말한 세나가 카메라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날 향해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그에 곧바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카메라 앵글 안으로 진입한 다음 날 향해 내밀어져있던 세나의 손을 조심스레 맞잡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세나의 옆에 자리를 잡기 무섭게ㅡ
"사실 저희는··· 친남매가 아닙니다."
세나의 입에서 진실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나온 진실은 그걸 들은 시청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
[뭔 소리고 이게;;]
[나만 이해 안 됨?]
[?]
아까보다 거리가 확 멀어진 탓에 아까처럼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얼핏봐도 채팅창 위로 갈고리, 아니 물음표가 범람하고 있었다.
그야 그렇겠지.
다들 우리들 사이를 친남매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을테니까.
그런데 뜬금없이 '짜잔! 사실은 친남매가 아니었답니다!'같은 말을 들어버리니 당연히 다들 사고회로가 꼬여버릴 수밖에.
그런 식으로 혼란스러워 하던 이들이 결국 도착한 곳은 다름아닌ㅡ
[뭐야 둘이 그럼 사촌이었음?]
그런 결론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호응하듯 생각해보니 친남매치고는 우리 둘이 별로 안 닮긴 했었다는 식의 채팅이라던지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이렇게 사람 불안하게 각 잡고 사과한 거냐는 식의 채팅들이 채팅창 위로 우르르 올라왔다.
[사촌 관계는 맞음?]
[근데 아까부터 둘이 손은 왜 잡고 있는 거?]
[설마...]
물론, 단순히 그런 채팅들만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발언 후로 잠자코 침묵을 지키고 있던 세나가 다시금 입을 연 건 그런 식으로 시청자들이 새로운 오해를 빚어내고 있던 와중이었다.
"사촌이나 친척 관계도 아닙니다."
친남매도, 사촌도, 친척 관계도 아니다.
세나의 발언이 거기까지 치닫으니 제 아무리 눈치없는 사람이라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챌 수 밖에는 없었고 덕분에 채팅창 위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하는 게 눈으로 들어왔다.
[설마 둘이... 완전 남남임?]
[그런듯]
[아니 근데 세나 가족들이랑 같이 산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남이 집에 있을 수가 있나?]
[완전 남은 아닐 듯]
[왜 하숙생같은 걸수도 있지]
[ㅅㅂ 세나 쟤가 사는 동네 클라스가 있는데 뭔 하숙타령임]
[거기서 하숙하려면 월에 한 100은 줘야할듯 ㅋㅋ]
[왜 가족하고 산다는 것도 거짓말일수도 있지]
[거짓말일 수가 없음 언니 분 방송에 등장했던 게 몇 번인데]
[그럼 대체 이게 뭔 소리임? 나만 이해가 안감?]
[근데 아까부터 둘이 손은 왜 잡고 있냐고!!! 나 이거 안 알려주면 진짜 못 참아!!!]
[어? 그러고 보니까...]
[설마?]
쭈르륵 올라가는 채팅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것도 잠시, 침을 꼴깍 소리가 나도록 한 번 삼킨 세나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저와 유한이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여기서 세나가 내가 어쩌다가 같이 살게 되었는지 그 경위를 밝힐 예정이었다.
그랬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식으로 세나한테 모든 걸 맡겨놓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있는게 맞는 걸까 싶더라.
"···여기서부터는 제가 말씀드려도 될까요?"
어찌보면 아픈 기억일수도 있는 '이유한'의 과거를 본인의 입으로 직접 밝히려니까 망설여질 수밖에는 없었던 걸까.
말을 하다말고 애꿏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는 세나를 대신해 전면으로 나섰다.
그 순간 아까부터 마주 잡고 있던 손을 통해 움찔하는 떨림이 전해져오더니 이내 세나가 그러지 말고 자기한테 맡기라는 듯 손에 꼬옥하고 힘을 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세나가 하려고 했던 말을 대신 이어나갔다.
"사실 저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고 홀로 남겨졌던 것부터 시작해서 그런 날 엄마의 친구였던 가영이 맡아줬던 것, 그렇게 가영의 가족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세나하고는 진짜 친남매처럼 자라왔다는 것까지.
내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내가 직접 설정했기에 알 수 있는 것들을 간략하게 줄여서 읊을 때마다 내 손을 잡고 있던 세나의 손으로 힘이 꼬옥하고 들어갔다.
"그리고···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그 사건이 벌어졌던 거죠."
[그 사건이 뭐임?]
[있음 어떤 정신나간 련이 정신나간 짓거리 한거]
[그 사건이면... 공방 그거 말하는 건가?]
[ㅇㅇ 마즘]
[아니 그런데 이 타이밍에 둘이 손 꼭 잡은 채 그 사건에 대해서 언급한다는 건 설마...]
[아니지?]
[아니라고 해 시발!!!]
[구원메타 에반데;;]
"네··· 맞습니다. 그런 식으로··· 누나가 저 대신에 다치고 나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 말하며 세나와 손을 마주잡는데 쓰고 있던 손쪽에 힘을 꼬옥하고 주면서 고개를 돌려 세나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나한테··· 이 사람이 없으면 안 되겠구나."
다른 건 몰라도 그 말에는 거짓같은 걸 섞지 않았다.
오롯이 진심만을 그득그득하게 눌러담아 그것을 그대로 세나를 향해 내던졌다.
설마하니 잘못을 고백하기 위해서 나온 자리에서 이런 식으로··· 고백 비스무리한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던 걸까.
작게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와 함께 세나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펑하고 터져버릴 것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눈쪽에서 눈물을 글썽거리더라.
아이를 가지게되면 감정적으로 불안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혹시 그 영향인 걸까.
덕분에 순간 흠칫할 수밖에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할 말은 다 해야했기에 철렁했던 걸 최대한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마저 말을 이었다.
사실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밝히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그래서ㅡ"
[둘이 사귀기로 했다는 거지?]
[누가 먼저 고백했는데?]
[설마?]
[유세나 죽어..! 유세나 죽어..! 유세나 죽어..!]
[왜 배신해? 왜 배신해? 왜 배신해? 왜 배신해?]
[와 지 혼자만 솔로 탈출하네 에반데;;]
[지금부터 넌 우리의 적이다]
[중대발표? ㅈㄹ하네 중대장은 실망했다]
[믿었는데...! 너만큼은 끝까지 솔로일 거라고 믿었는데..!]
"저희···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
[아니 ㅅㅂ 전개가 이상한데?]
[중간은 어디갔쬬? 선생님?]
[시작이 반이라더니만 이건 뭐 시작하자마자 끝임?]
[세나야... 사귀는 건 괜찮아도 결혼만큼은 안 된다... 그건... 그건 아니야..!!!]
[하지마?]
[하지마!!!! 콰아아아!!!]
[그래도... 사랑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