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6화 〉1부 (306/315)

그런 식으로 인상을 팍 쓰고 있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귀엽게 느껴지더라.

'이것도 콩깍지인가···'

맘 같아서는 골이 패인 부분을 손가락으로 살살 문질러서 펴주고 싶었지만 진지하기 그지없는 표정 때문에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대신 흐뭇한 눈빛으로 고민에 빠진 세나를 지켜보고 있던 와중이었을 것이다.

"그냥··· 밝히지 않고 비밀로 하면 안 되는 거니?"

여태껏 입을 꾹 닫고 있던 가영이 조심스레 그 말을 내놓았다.

혹시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나나 세나가 상처를 입거나 피해를 보진 않을지 걱정이라도 됐던 걸까.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 모르지는 않는데 그래도 그건 들어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아직은 세포상태긴 해도 세나의 뱃속에··· 아이가 자리를 잡은 이상 더더욱 그랬다.

가영의 말마따나 나와 세나의 진짜 관계에 대해 밝히지 않고 비밀로 한다고 치자.

그러면 그 비밀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절대 그럴 리 없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으니까.

드러나지 않도록 꽁꽁 숨긴다해도 결국 언젠가는 드러나고 말겠지.

그럼에도 어찌어찌 비밀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고 쳐보자.

그렇게 되면 그건 또 그것대로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킬거다.

나와 세나의 관계에 대한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의 존재마저도 비밀로 할 수는 없을테니까.

그러니 세나가 어쩌다가 아이를 갖게 된 건지를 어떤 식으로든 밝혀야할텐데··· 그렇게 되면 거짓이 또 새로운 거짓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겠지.

그렇게 되면 그때는 정말··· 겉잡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릴 거다.

"안 돼."

그 사실을 세나라고 해서 모르진 않을테니 저토록 단호하게 나오는 것이겠지.

"숨긴다고 숨겨질 문제도 아니고··· 어줍잖게 숨기려고 했다가 들켜버리면 오히려 일만 더 커질 걸."

아니나 다를까 세나의 입에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뉘앙스의 말이 흘러나왔다.

"그럼 어떻게 할 건데?"

그게 그런 세나의 말에 지나가 불퉁한 표정으로 내놓은 질문이었고.

"음··· 그러게··· 밝히긴 밝혀야될텐데···"

아직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기 전인 걸까.

세나가 머쓱한 표정을 한채 볼을 막 긁적거렸다.

'하긴···'

고민이 될 수밖에 없겠지.

상황상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세나의 주가는 나날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본래 인방하는 사람이 방송을 장기간 쉬면 그 반대로 흘러가야 정상이건만 세나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세나는 안 좋은 이슈, 그러니까 본인의 잘못이나 논란으로 인해 방송을 쉬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좋은 일, 그러니까 칼을 든 스토커년을 상대로 날 구하려다가 다치는 바람에 겸사겸사 안정을 취할겸 쉬고 있는 중이니만큼 세나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았다.

여자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었다는 식으로 세나의 행동을 억지로 깎아내리려고 하는 이들도 간혹 존재하긴 하지만 그건 남 잘되는 거 못 보는 뒤틀린 심보를 가진 이들이나 그런 거고, 막상 자신이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세나처럼 행동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쯤은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

'말은 쉽지···'

커터칼이라고는 해도 칼은 칼인 법.

게다가 당시 그 스토커년이 손에 꼬나쥐고 있었던 건 문구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손가락 하나만한 굵기짜리가 아니라 사실상 공구함하고 어울릴 법한 그런 물건이었다.

크기 자체가 큰 만큼 당연히 날의 굵기또한 굵었고, 그것에 당했다면··· 단순히 베인 수준으로 끝나진 않았겠지.

덕분에 세나의 주가가 꾸준히 우상향을 하고 있는 중인데 여기서 '그런 이슈', 그러니까 나와 세나의 진짜 관계에 대해 밝혀버린다면?

친남매인척 하며 시청자들을 속여왔다는 프레임이 씌워져버린다면?

이미지 추락이야 사실상 기정사실이고, 그동안 높이높이 올라간만큼 고꾸라질 때는 더 빠르고 치명적이겠지.

그 부분을 우려해서 세나도 저토록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일테고.

'이거 자칫 잘못하면··· 진짜 치명적일 수도 있겠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일이 잘못되면 세나의 방송은 여기서 끝나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세나가 뭐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시청자들을 상대로 작정하고 사기를 치려고 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긴 하지만··· 세나는 '방송'이라는 분야에 있어서 여태껏 승승장구만 해왔으니까.

내가 농담삼아 세나를 방송천재니 뭐니 하는 식으로 부르긴 했지만 세나는 실제로 그쪽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천재가 맞았다.

그리고 실패라는 걸 모르는 천재들은 처음으로 실패를 맛보게 되는 순간 그대로 좌절해서 주저앉아버리는 경우가 꽤 많고.

'진짜 어쩌지?'

한 명이라도 임신에 성공하면 그때는 정말 만사형통일줄 알았는데 진짜 시작은 그때부터 일거라는 걸 설마 누가 알았겠는가.

덕분에 내가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 있는 와중에도 세나는 머리를 싸매고 앉은 채 계속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해 세나한테 말을 걸었다.

"그러지 말고 처음부터 다시, 천천히 생각해보자."

혹시 또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그렇게 하면 뭔가 괜찮은 방법이 떠오를지도 모르지.

그래서 내가 말한대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는데ㅡ

"잠깐만 누나."

"···응?"

"그러고 보니까 누나가 방송에서 날··· 친동생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잘 나질 않는 걸까.

또 인상을 찡그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서··· 정확한 팩트 확인을 위해 내가 처음으로 세나의 방송에 등장했을 때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방송분까지 찬찬히 한 번 돌려보기로 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동생이라고 소개하기는 했어도 친동생이라고 말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야 뭐··· 아니, 근데 그게 중요해?"

"당연히 중요하지."

앞에 한 글자가 더 들어가냐 마냐에 따라서 단어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영상들을 빠르게 돌려서 확인해보니까 날 동생이라고 소개한 적은 있어도 본인의 입으로 직접 친동생이라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더라.

시청자들이 알아서 그런갑다하고 착각을 해줬을 뿐.

"아니, 이걸 가지고 우겨도··· 좀 그렇지 않아?"

물론, 세나의 말마따나 이것만으로는 좀 그런 게 사실이었다.

이걸 빌미로 너희들이 그냥 알아서 착각했을 뿐이라고 우겨대도 시청자들의 눈에는 그동안 자신들을 속여온 거짓말쟁이가 뻔뻔하게 자긴 잘못한게 없다고 적반하장을 부리는 모습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테니까.

"그건 그렇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나가 본인의 입으로 직접 그 말을 했을 때나 그렇다는 뜻이고ㅡ

"그럼 쓸모 없는 거 아냐?"

"누나 입으로 직접 밝히면 그렇겠지만··· 남의 입을 통해서 그 사실이 흘러나오면?"

"응?"

"그런 식으로 이 사실이 시청자들한테 알려지게 되면 어떨 것 같아?"

모르긴 몰라도 세나를 향해 쏟아질 비난의 화살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욕을 아예 안 먹을 수는 없을테니까···'

문제는 우리가 힘겹게 알아낸 이 사실을 어떤 식으로 시청자들의 귀에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만드냐는 건데···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금 이 순간 지나를 향해 눈빛으로 도움을 청하고 있는 이유기도 했다.

"···왜, 뭐."

아직도 불퉁한 게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는지 생판 남의 일이라도 대하듯 팔짱을 낀채 앉아있었던 지나였지만 그런 내 눈빛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분홍빛 입술이 한 차례 삐죽거리더니 아까 들었던 것에 비하면 한결 누그러든 목소리가 그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그런 지나를 향해 와락 달려들면서ㅡ

"누나!"

"···뭐."

"한 번만 도와줘!"

솔직하게 도움을 청했다.

그런 내 부탁에도 지나는 처음에는 난색을 표하며 도와주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필살의 응석부리기를 시전하니까 결국 못 이기는 척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라.

"···그래서 뭐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

그런 식으로 눈치는 없지만 팩트는 좋아하는 시청자 A 역할을 수행해줄 지나의 섭외까지 끝마치고 난 다음··· 세나와 함께 방송 킬 준비를 했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자."

"옷? 단정하게?"

"응, 지금 복장은··· 솔직히 좀 그렇잖아."

진지한 방송이 될 예정이니만큼 복장도 당연히 거기에 맞춰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최대한 단정해보이도록 검은색하고 흰색 옷들 위주로 골라 몸에 걸쳤더니만 세나도 그런 날 따라 비슷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방송도··· 야외가 아닌 실내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평소에 방송킬 때처럼 야외에서 하자니 배경이 썩 적절치 못했으니까.

배경이야 뭐 말할 것도 없이 좋긴 한데··· 이 경우에는 좋아도 너무 좋아서 문제랄까.

해서 방 하나를 골라 일단 깨끗하게 치웠다.

낑낑대면서 침대까지 옆방으로 옮기고 나니까 그럭저럭 봐줄만 하더라.

"카메라는···"

"거기다 놔. 벽만 나오게."

"여기?"

"응."

그런 식으로 벽만 나오도록 카메라 세팅까지 끝내고 난 다음에ㅡ

"그러면··· 킨다?"

"···어."

방송을 켰다.

'중대발표'라는 보는 순간 시선이 확 쏠릴 수밖에 없는 문구를 제목 삼아 달아둔채로.

인터넷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뭘까.

보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잘 만들어진 양질의 컨텐츠?

모바일 게임을 베이스로 한 무지성 가챠쇼?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 다르듯 그 부분또한 사람마다 선호도가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이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할만한 것을 꼽아보자면 하나가 나올 것이다.

'이슈.'

하물며 그 이슈가 그냥저냥 유명한 정도가 아니라 대기업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체급을 자랑하는 세나 정도 되는 이와 관련된 것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소식을 듣자마자 눈이 돌아가서 우르르 몰려들지 않을까.

그러니 내 휴대폰이 방송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띠링하는 소리를 뱉어내기 무섭게 이토록 시청자 수가 가파르게 치솟고 있는 것이겠지.

숫자 올라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분명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쫓지 못할 정도였다.

시청자수가 그 정도니 채팅창은 어땠겠는가.

[뭐임? 뭔 일 터짐?]

[갑자기 이게 머선일이고;;]

[아 ㅋㅋㅋ 이러고 오늘 점심메뉴가 중대발표라고 깝칠 거 다 안다]

[설마... 드디어...?]

[점심메뉴는 중대사항이지 ㅋㅋ]

[ㄹㅇ ㅋㅋ 회사에서 점심메뉴 잘못 픽하면 분위기 개 싸늘해지는 거 모름?]

[나 회사 안 다녀!]

[앗...]

[아아...]

[이 시간에 할 거 없어서 방송보는 백수 vs 회사에서 남몰래 숨죽이며 방송보는 월급 루팡년]

[ㄷㅈ]

[이건 닥전이지 ㅋㅋ]

[심장 떨려서 방송 어케 보냐고 ㄹㅇ]

[근데 이건 부장님도 못참으실듯;;]

[방송 제목에 중대발표가 박혀있는데 어케 참냐고 ㅋㅋ]

[아 ㅅㅂ 화장실 칸에서 몰래 방송보고 있는 련 이어폰 껴라]

[큰 거온다...! 큰 거 온다...! 큰 거온다...! 큰 거 온다...!]

[나락 달리면 되는 거임?]

[나]

[멈춰!!]

[락!]

[ㅅㅂ 맨날 큰 거 온다는 년부터 무지성 나락도배 달리는 년들 싹 모아다가 지건 갈기고 싶네]

[ㄹㅇ ㅋㅋ]

말 그대로 눈 한 번 깜빡거렸을 뿐인데 눈 감기 전에 봤던 채팅이 저 위에까지 올라가 있더라.

하긴 그럴만도 하겠지.

방송 제목도 제목이지만 달달한 냄새를 솔솔 풍기는 그것에 이끌려서 방송에 들어왔더니만 보이는 화면이라고는 새카만 화면 뿐이었을테니까.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시간이 흘러도 채팅창 올라가는 속도가 줄어들질 않았다.

오히려 시청자 수가 늘어나는만큼 점점 더 빨라지는데··· 덕분에 처음에는 그럭저럭 상태가 괜찮은 편이었던 채팅창이 서서히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짱짱하기 그지없는 한국산 와이파이에 비하면 한참 느린 외국산 와이파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정보량이었던 걸까.

이러다가 진짜 방송이든 내 휴대폰이든 둘 중에 하나가 펑하고 터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서 살짝 긴장한 얼굴을 한채 벽 앞에 서서 입술을 잘근거리고 있던 세나를 향해 조심스레 도움을 청했다.

"누나···? 이거 채팅창 속도가 너무 빨라서 방송 터지겠는데?"

"응? 아··· 일단 슬로우 걸어놔."

"몇초로 걸어?"

"3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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