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앞으로 열 달동안 고생해야하는 장본인이기 때문일까.
세나의 반응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나처럼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던 것이 순식간에 멍해지더니 창백하게 질렸다가 파래졌다가 붉어지기를 반복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새삼 감탄이 나왔다.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의 반의 반만이라도 자기 의지대로 써먹을 수 있었다면 세나는 아마 스트리머가 아닌 연예인, 그것도 배우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 않았을까.
'아, 아니지···'
애초에 집밖으로 나가질 않으니까 배우는 무리려나.
뭐, 아무튼 세나가 나 이상으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역으로 내가 침착해지더라.
'너무 놀라는 것도 아기한테 안 좋지 않나···?'
아까도 말했듯 나도 아빠는 처음이라서 잘 모르긴 하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아서 일단 진정부터 시키기로 했다.
"자, 누나? 일단 진정하고 나 따라서 심호흡 좀 해봐."
"무, 뭐?"
뜬금없다 생각한 건지 눈살을 찌푸린채로 반문하는 세나의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후ㅡ 하ㅡ 후ㅡ 하ㅡ'하고 보란듯이 심호흡을 해보였다.
그랬더니만 앞서 보여주었던 부정적인 반응과는 별개로 일단 날 따라하긴 하더라.
심호흡의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았던 걸까.
의식적으로라도 차분하게 숨을 쉬려고 노력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혼란으로 물들어있던 세나의 표정또한 차츰 차분해져갔다.
그리고 간신히 평소 상태에 가까운 모습으로 회귀하는데 성공한 세나가 가장 먼저 내놓은 말이 바로ㅡ
"그··· 어, 어쩌지?"
그것이었고.
누가 일부러 잘라내기라도 한 것처럼 짤막한 것치고는 굉장히 심오한 질문이었다.
"어, 글쎄···"
그렇기에 나도 덩달아 그 부분을 고민할 수밖에는 없었다.
세나의 말마따나 어떻게 해야할까.
···알 수가 없었다.
떠오른 게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순식간에 머릿속이 가득 차버릴 정도로 떠오르는 게 많아서 문제였지.
덕분에 다시금 머릿속이 복잡해지려는 가운데 그나마 딱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ㅡ
"일단은··· 고모랑 지나 누나한테 알려야하지 않을까?"
"어, 엄마랑 언니한테···?"
"어."
그럼 설마 말 안하고 숨기기라도 할 생각이었던 걸까.
"나··· 두들겨 맞는 거 아냐?"
"에이, 설마···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지나가 그러겠는가.
당황스러운 나머지 생각이 폭주하는 건 알겠는데 솔직히 그건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싶더라.
"뭐, 그럴 리는 없지만··· 만약에 지나 누나가 그렇게 나오면 내가 대신 맞아줄게."
뭐, 말따마나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세나를 상대로 단단히 다짐한 다음에 아직 이 소식을 알지 못하는 둘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세나의 임신 소식을 공표했는데ㅡ
"하···"
그 순간 지나가 보여준 모습에는 제 아무리 나라도 흠칫할 수밖에는 없었다.
지나가 그럴 리 없다고 내심 굳게 믿고 있기는 했지만··· 막 살벌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니까 나도 모르게 움찔했달까.
자연스레 내 옆자리를 꿰차고 앉은 세나야 뭐··· 내 티셔츠 자락을 손으로 꼬옥하고 움켜쥔 채 내 뒤에 몸을 숨긴지 오래였고.
아무튼 그런 식으로 나와 세나를 한 번에 쫄게 만든 지나였지만, 그런 지나의 손길이 나나 세나를 향해 날아드는 일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지나는 화장실 쪽으로 사라져버렸으니까.
손에 임신테스트기를 챙겨든 채로 말이다.
보아하니 세나한테 소식이 있다면 틀림없이 자기한테도 소식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일단 그 결과부터 끄집어낸 다음에 그걸 가지고 이 판을 어떻게 해볼 생각이었나 본데ㅡ
참으로 애석하게도 지나가 어깨를 시무룩하게 늘어뜨린채로 자리로 복귀하는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격렬하기 짝이 없는 반응을 보여준 지나랑은 다르게 가영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잠잠했다.
내 말을 듣자마자 말없이 쓴웃음을 짓는데 그 모습이 꼭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씁쓸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조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더니만 언제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냐는 듯 순식간에 표정을 싹 고쳐보이더니 지나가 선물하고 간 불안감에 젖어서 오들오들 떨어대고 있는 세나의 손등을 자상하게 토닥거리면서 임신 선배로서 조언을 건네기 시작하더라.
"앞으로 많이 힘들테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으, 응?"
"이 정도야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술같은 건 마시면 안 되는 거 알고 있지?"
"다, 당연하지."
"이 참에 군것질도 줄이고."
"그, 그것도···?"
가영이 보여주는 엄마로서의 모습에 감화된 것일까.
양갓집 규수마냥 얌전하게 변한 세나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동안 화장실로 뛰어갔던 지나가 허탈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합류했고··· 그제서야 '앞으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싶어가지고···"
먼저 그 말을 꺼낸 건 다름아닌 세나였다.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그 말에 대한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지나의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
"어쩌긴 뭘 어째. 이렇게 됐는데."
평생 제 밑일 거라 생각했던 세나한테 추월을 당해버린게 그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목소리가 거의 뭐 탄산수 수준이었다.
아주 그냥 톡톡 쏘아대는데··· 그럴 때마다 내 옷깃을 움켜쥐고 있는 세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거 왠지 보라고 그러는 것 같은데···'
나만 그리 느낀 게 아니었나 보다.
불만 가득한 눈빛을 그려내고 있던 지나의 눈가가 꿈틀하고 떨리더니 좀 더 톡 쏘는 목 소리가 분홍빛 입술을 뚫고 튀어나왔다.
"이미 다 정해놨잖아? 그러면 그대로 해야지."
"아···"
"아니면 혹시··· 내키지가 않아?"
그리 말하면서 눈을 번뜩거리는게 정말로 그런 거라면 내가 대신 해줄테니 얼른 고개나 끄덕이라고 으름장이라도 놓는 듯 했다.
"그, 그런 건··· 그런 건 아닌데···"
입술을 오물오물대던 것도 잠시 결국 세나가 고개를 굳게 딱 끄덕였다.
그렇게 원래 합의했던대로 하기로 결정했지만··· 그건 그것대로 또 문제였다.
원래 합의했던대로 하려면 나하고 세나가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데 결혼식을 올리려면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으니까.
"그런데··· 임신한지 얼마 안 됐는데 비행기 타도 되는 거야?"
"어··· 글쎄···?"
"애한테 안 좋지 않으려나?"
그렇다고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자니 또 그 점이 잘못 삼킨 생선가시마냥 마음에 턱 걸리더라.
물론, 내가 뭐 의사도 아닌만큼 확실한 이야기긴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일단은 여기서 좀 더 머물러 있어야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던 와중이었을 것이다.
"그··· 꼭 한국에서 해야해?"
"응?"
"결혼식 말이야.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여기서 하면 안 되나?"
세나가 갑자기 그런 의견을 내놓았다.
"여기서?"
"응."
"그럼 사람들이 못 오잖아."
"꼭 와줬으면 하는 사람들만 초대해서 작게 하면 되는 거 아냐? 그··· 뭐라더라?"
"스몰 웨딩 말하는 거니?"
"어어, 그거. 그냥··· 그렇게 하면 되는 거 아냐?"
성격상 귀찮은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세나는 가영이 언급한 스몰 웨딩인지 뭐시기를 원하는 눈치였지만··· 솔직히 난 조금 부정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을 하기 위해선 당연히 준비부터 해야하는데 결혼 준비가 무엇이던가.
서로 죽고 못 살기에 결혼까지 생각했던 연인들도 '에라이 결혼 개같은거 그냥 안 할란다!'하고 갈라서게 만들 정도로 악명 높은 절차가 바로 '결혼 준비'였다.
그런데 그걸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진행한다?
그래버리면 농담이 아니라 하루에 한 열 번씩 싸우지 않을까.
물론, 실제로 그리 된다고 하더라도 이제와서 놓아줄 생각따윈 추호도 없긴 했지만.
아무튼 내 의견은 그랬는데 세나의 생각은 좀 다른가 보다.
"까짓거 돈으로 박아버리면 돼."
"아니···"
섬 빌린답시고 이미 펑펑 썼으면 여기서 더 쓰겠다고?
정말 통장을 텅장으로 만들어버릴 생각인 걸까.
"야, 그리고 봐봐. 말이 준비지 실제로 해보면 준비할 것도 그렇게 없을 걸?"
"왜죠?"
"그야··· 일단 식장은 업체 측에 맡기면 알아서 꾸며주겠지?"
"그리고?"
"예복이나 메이크업같은 것도 알아보면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고."
뭐··· 맞는 말이긴 했다.
필리핀이라고 해서 결혼식을 안 하는 건 아닐테니까.
"그리고··· 애초에 우린 혼수나 집 알아보러 다닐 필요가 없잖아."
"아."
"그러면 사실상 끝난 거 아냐? 신혼··· 여행이야 뭐 미리 온 셈 치면 되는 거고."
신혼 여행이라는 말을 꺼내들 때 슬쩍 지나하고 가영의 눈치를 본 게 흠이라면 흠이긴 했지만··· 확실히 그 말대로긴 했다.
결혼 준비에 있어서 스드메만큼이나, 아니 어찌보면 스드메보다도 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신혼살림하고 그 살림들을 집어넣을 집을 알아보는 건데 그 두 개는 사실상 이미 준비가 끝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나가서 살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면 그렇게 하는 거다?"
"어, 어···"
아니, 이게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해결이 된다고?
진짜로?
생각치도 못한 전개에 얼떨떨한 심정을 느끼고 있으려니ㅡ
"그런데 너희··· 그건 어떻게 할 거니?"
씁쓸한 듯 하면서도 흐뭇해 보이는 표정으로 나와 세나의 공방전을 지켜보던 가영의 입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거··· 라뇨?"
"방송 말이야."
방송?
갑자기 여기서 그게 왜 등장한단 말인가?
라고 생각했었는데ㅡ
"그러고 보니까 엄마 말이 맞네. 시청자들이 너네 둘 사이 친남매라고 알고 있지 않냐?"
'어···?'
맞장구라도 치듯 이어진 지나의 말까지 들어보니까 나올만 하더라.
덕분에 나와 세나의 얼굴이 동시에 핼쑥해졌다.
"어, 어쩌지···?"
라고 물어본들 나라고 뭐 뾰족한 방법이 있겠는가?
그렇기에 내가 돌려줄 수 있는 대답은 어깨를 으쓱이는 것 뿐이었다.
"하우···"
나까지 그래버리니 이 사태를 대체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감이 잡히질 않았던 걸까.
세나가 골치 아파 죽겠다는 표정을 한채 머리를 감싸쥐었다.
나름대로 긴 방송경력을 지녔기에 이런저런 트러블과 돌발상황에 충분히 익숙해졌을 세나지만 이런 상황에서 답이 없는 건 마찬가지인가 보다.
'하긴···'
생각해보면 세나는 경력하고 체급에 어울리지 않게 논란이라는 것에 휘말려본 적이 없으니까.
덕분에 그쪽업계 사람이라면 어지간하면 하나쯤은 꼭 가지고 있다는 꺼무위키 사건사고탭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바로 세나였고.
'애가 좀··· 얄밉고 틱틱거리기는 해도···'
사람은 굉장히 착하니까.
저래뵈도 알게 모르게 기부도 많이하는 편이고 말이다.
절세 목적도 어느 정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그런 식으로라도 남을 돕는 게 어딘가?
세상에는 그마저도 안 하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말이다.
아무튼 뭐··· 현실이 그렇다보니 이런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케이스를 참고하는 수밖에 없겠지.
그래서 한 번 물어봤다.
보통 이런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 지에 대해서 말이다.
"방송하는 사람들이 논란에 어떻게 대처하냐고?"
"어, 그래도 누나 방송 꽤 오래 했으니까 이래저래 많이 봤을 거 아냐."
"그렇긴 한데···"
막상 떠올려 보려고 하니까 바로 생각나는게 없었던 걸까.
"으음···"
안 그래도 살짝 찌푸려져있던 세나의 미간에 힘이 잔뜩 들어가더니 이내 그 위로 살짝 골이 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