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5화 〉1부 (285/315)

타닥타닥하고 잘 마른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주황색과 빨강색을 절묘하게 섞어놓은 불꽃이 확 피어오르며 세나의 얼굴을 밝혔다.

덕분에 발그레하니 달아오른 세나의 얼굴이 그렇게까지 티가 나지는 않았다.

그 사실을 세나라고 해서 모르진 않을텐데 그럼에도 얼굴에서 느껴지는 불의 열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뜨거움이 못내 신경이 쓰였던 걸까.

슬그머니 손을 들어올려 얼굴을 덮은 세나가 시선을 스리슬쩍 옆으로 돌리면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계속 입 꾹 닫고 있자니 뭔가 좀 그랬던 모양.

"···아, 뭐야. 왜 중간에 끊는데."

다만··· 워낙 급하게 입을 열어서 그런지 입밖으로 흘러나온 목소리가 평소랑은 다르게 살짝 어색했다. 

"뭐래, 자기도 끝까지 안 불렀으면서."

거기서부터 비롯된 위화감이 시청자들에게까지 닿기 전에 잽싸게 말을 덧붙여 세나의 발언을 맞받아쳤다.

"그··· 그때는 첫 번째였고 방금은 마지막이었짆아."

그런데 중간에 끊어버리는게 말이 되냐면서 막 뭐라고 하길래 아까 별장 안에서 잔뜩 챙겨온 것들 사이에서 라면을 꺼내 세나를 향해 툭 던졌다.

"됐고, 물이나 올려."

"응? 라면 먹으려고?"

"어, 누나는 안 출출해?"

"나는 됐···"

자기는 됐다고 말하려던 것이었을까.

애석하게도 타이밍이 별로 좋지 않았다.

세나가 사양을 위해 내뱉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잘록하기 그지없는 허리 쪽에서 꼬르륵하고 뱃고동 소리 비슷한 소리가 울려퍼졌으니까.

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보통 그런 류의 소리는 잘 못잡아주는 캠코더가 그걸 놓치지 않고 잡아낼 정도였다.

"거봐. 배고프잖아. 그러니까 라면이나 끓이면서 슬슬 끝낼 준비하자."

"그럼 라면은?"

"먹어야지."

그리 말하고는 세나가 무어라고 말하기 전에 잽싸게 말을 덧붙였다.

"···방송 끝나고."

내가 일부러 말 속에 담아낸 의미심장함이 세나한테도 무사히 전해졌던 것일까.

라면을 양손으로 꼭 움켜쥐고 있던 세나가 움찔하고 손가락 끝부분을 떨어댔다.

"그렇게 된 관계로··· 저희는 슬슬 들어갈 준비 좀 하겠습니다."

아까 이런 말을 했다면 다들 불만이 폭주했을텐데 충분히 놀아주고서 이만 끝내겠다는 말을 하니까 다들 아쉬워할지언정 불만스러워하지는 않더라.

[아 라면 먹는 것만 보여주고가!!]

[비벼!!! 비벼!!!]

[라면 먹는 걸 방송에서 어떻게 보여줌;;]

[?]

[저저 또 눈치없이 섹드립치는 년 보소]

[근데 솔직히 이 시간에 라면은 좀 그렇긴 해 ㅋㅋ]

[이 밤에, 심지어 야외에서 라면? 이거 범죄 마따]

[즈어 선택과목 법과 사회였는데 그거 범죄 마씀미다]

[근데 아까 제대로 못봤는데 라면 무슨 라면임? 외국이라고 이상한 라면인 건 아니지?]

다행히(?) 라면은 한국에서 직접 공수해온 찐한 매운 맛의 라면이었다.

"물 떠왔어?"

"엉."

"그럼 저기다가 올려놔."

얼마 지나지 않아 냄비 안으로 기포가 막 피어오르더니 이내 보글보글 소리와 함께 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 저희는 슬슬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걸 확인하고는 마지막으로 멘트 하나를 딱 던진 다음 나머지 마무리는 온전히 세나에게 일임했다.

"진짜 오랜만에 방송켰는데 다들 잊지 않고 찾아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렇게 라면 끓이는데 집중하고 있으려니까 뒤에서부터 시청자들과 도란도란 작별인사를 나누는 세나의 목소리가 파도소리와 어우러지며 마치 배경음악처럼 촥 깔리더라.

"또 언제 키냐고요? 음··· 글쎄요. 확답은 못 드리겠네요. 잘하면 내일이 될 수도 있고··· 또 모르죠. 이러다가 또 한 일주일동안 소식없다가 기습적으로 킬지도."

말은 저렇게 하지만 아마 틈만 나면 키려고 할 거다.

애초에 세나가 충분히 방송을 킬 수 있음에도 그렇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이던가.

다 내 눈치를 보느라고 그랬던 것 아니었던가.

그런데 오늘 방송으로 이제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저 방송쟁이가 이만한 천연 스튜디오를 그냥 내버려둘리 있겠는가.

배경 자체가 워낙 사기적이라서 그냥 카메라만 들고 다녀도 컨텐츠가 숨풍숨풍 뿜어져나올텐데?

'이건 못 참지.'

다른 건 몰라도 그 부분만큼은 내가 장담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고양이가 츄르를 끊는다는 것이 차라리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라면 조리에 힘쓰고 있는 동안 방송을 마무리하기 위한 세나의 멘트도 어느덧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몇 년동안 거의 매일같이 방송을 하다가 거의 두 달 가까이 쉬고 나서 오랜만에 방송을 킨 것이다보니까 막상 끄려고 하니 뭔가 좀 아쉬웠던 걸까.

방종이라는 순간을 앞에 두고서 머뭇머뭇대던 것도 잠시, 이내 세나가 쓰게 웃으면서 방송을 종료했다.

"껐어?"

"···어."

"대충 대답하지 말고 제대로 확인해봐."

"확인했다니까? 내가 바보냐? 방송 끈지 안 끈지도 모르게?"

보통 스트리머들이 그런 안일함에 젖어 말도 안 되는 사고를 터뜨리곤 하던데 말이다.

뭐··· 다른 이도 아니고 세나가 하는 말이니까 여기서는 믿어줘야겠지.

다른 건 몰라도 방송이라는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그녀를 따라갈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정말 혹시 모르는 거라서 곁눈질로 방송이 제대로 꺼졌음을 확인한 다음 열심히 끓인 라면을 세나에게 제공했다.

방종 뒤에 찾아온 허무함을 라면으로라도 달래볼 생각이었던 것일까.

아까 내가 라면이나 한 그릇 하자고 할 때는 됐다고 하더니만 호로록 소리를 내며 제대로 면치기를 하더라.

그것도 모자라 국물까지 무슨 설렁탕 국물 마시듯 들이키는데ㅡ

"크흐···!"

따뜻하고 얼큰한게 들어가니까 알게 모르게 몸 안에 깃들어있던 긴장이 탁 풀리기라도 했던 걸까.

어느새 바닥을 훤히 내보이고 있는 그릇을 갬성 넘치는 테이블 위에다가 탁 소리가 나도록 힘차게 내려놓는 세나의 모습은 거의 광고를 방불케했다.

"어이구, 누가보면 광고라도 찍는 줄 알겠네."

"시켜주면 사양은 안 하지."

"어련하시겠어."

긴장도 풀렸겠다 반 개뿐이라고는 하지만 속도 제법 든든해졌겠다 거기에 주변이 어둑어둑하기까지 하니까 몸이 막 노곤노곤해진 걸까.

살짝 부풀어오른 배를 살살 어루만져대던 세나가 몸을 슥 일으키더니 그대로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자려고?"

"아니이··· 좀만 누워있다가 들어갈거야···"

그런 것 치고는 이미 반쯤 잠든 목소리더라.

"그래? 들어갈거야?"

"응··· 모기 밥주기 시러···"

"진짜 들어갈거야? 진짜로?"

"···왜, 뭐."

내 목소리에서 이상한 낌새같은 거라도 느꼈던 것일까.

부러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답을 하길래 보이지는 않겠지만 히죽하고 웃으며 잽싸게 덧붙였다.

"아니, 모처럼 이렇게 라면도 먹었으니까···"

"···"

"다른 라면도 먹어봐야하지 않겠어?"

라면 하나 더 먹고 가쉴?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기는 하지만 이 세계에는 '라면 먹고 갈래?'라는 시그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세계에는 그것의 시초가 된 영화가 존재하질 않으니까.

그럼에도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심장한 뉘앙스만큼은 무사히 전해졌던 것일까.

텐트 안에 드러누워서 기분 좋게 뒹굴뒹굴거리고 있던 세나의 움직임이 어색하게 굳어졌다.

그와 함께 우리 둘 사이로 내려앉은 건··· 묘하고 어색한 침묵이었다.

나와 세나 사이로 울려퍼지는 소리라고는 싸아아아하고 모래가 파도에 쓸려내려가며 나는 소리 뿐이었다.

그렇게 둘다 말 한 마디도 없이 있다가··· 내가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스윽하고 일부러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텐트 안에서 옆으로 돌아누워있던 세나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 자그마한 움직임마저도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눈에 담으면서 세나가 들어가있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어때 누나? 덥지는 않아?"

"어, 어···"

그리고는 그대로 세나의 옆으로 가서 누우니 세나가 어색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고개를 막 끄덕이면서 슬금슬금 물러나 나한테서 거리를 벌리더라.

그러거나 말거나 세나가 그랬던 것처럼 텐트 안에 편하게 드러누우니까 별들이 빼곡하게 박혀있는 새카만 하늘의 모습이 눈으로 파고 들어왔다.

솔직히 좀 멋있기는 하더라.

그렇게 잠시동안 경치 구경을 하다가··· 그새 또 살짝 뒤로 물러나있는 세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 식으로 뻗어나간 손이 스윽하는 소리를 내며 텐트 바닥을 스쳤다.

그 소리에 반응한 세나가 다시 한 번 몸을 움찔하는 동안 어색하고 엉거주춤한 느낌으로 놓여져있던 세나의 손을 그대로 내 손 안에다가 가두었다.

그러자 또 손을 움찔하고 떨어대는데 그에 참지 못하고 쿡쿡하고 웃어버리니까 입술이 댓발 튀어나오더라.

"웃기냐?"

"그럼 안 웃겨?"

"씨이···"

저 괘씸하게 삐죽 튀어나온 입술을 어떻게 혼내줘야할까.

잠시동안 고민하다가 그대로 세나하고 시선을 맞추니까 자꾸만 내쪽을 힐끔거리면서 내 눈치를 보고 있던 그녀가 히끅하고 요상한 소리를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선을 거두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하니 처음에는 나름대로 잘 받아치더니만 결국에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아버리길래ㅡ

츕···

더 참지 않고 튀어나온 곳에다가 입을 맞춰주었다.

"응, 읏···♡"

당황한 듯 몸을 살짝 움츠리고 있던 것도 잠시, 딱딱하게 굳어있던 세나의 몸이 부드럽게 풀리더니 이내 세나가 내 움직임에 어색하게나마 호응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세나의 손을 꼭 움켜쥔채 부드럽게 입을 맞추다가 이내 슬그머니 몸을 떨어뜨렸다.

그에 혀로 입 안을 한 번 헤저어줄 때마다 몸을 움찔움찔하고 떨어대던 세나가 다시금 몸을 경직시켰다.

이제 키스 다음 단계로 넘어갈 거라 생각한 걸까.

내 손길에 대비라도 하듯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길래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리고는 세나 쪽을 향해 돌아누워있던 것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니까 한참을 기다려도 예상했던 감촉같은게 느껴지질 않으니까 그제서야 뭔가 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것일까.

세나가 질끈 감고 있던 눈을 슬그머니 떴다.

그러더니 천장을 보며 누워있는 날 보고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는데··· 그래서 물어봤다.

"왜?"

"···아냐."

아니기는 무슨.

그렇게 말을 할거면 입술이라도 좀 집어넣고 말을 하던가.

입술이 저렇게 댓발 튀어나와있는데 그 말을 대체 누가 믿겠는가.

그게 내 실제 생각이기는 했지만··· 이번 한 번만 속아주기로 했다.

자꾸만 입술을 삐죽대는 세나의 행동이 귀여운 탓도 있긴 했지만 사실 그러는 편이 내게 유리하기도 했으니까.

"그나저나··· 경치 진짜 장난 아니다 그치?"

이게 바로 세나가 텐트 치는 동안 그토록 강조했던 '갬성'인지 뭔지하는 것일까.

텐트 천장 위로 뚫려있는 구멍을 통해 올려다보는 이국의 밤하늘은 밖에서 그냥 봤을 때하고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그래서 이런 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는데··· 이미 빈정이 팍 상해버린 세나가 볼 때는 그저 그랬던 모양이다.

"뭐어··· 그러네."

퉁명스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그리 말하길래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으니까 안 그래도 삐죽하고 튀어나와 있던 세나의 입술이 좀 더 도톰해졌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옆으로 돌아눕는게 아닌가.

누가봐도 나 삐졌어요라고 말하는 몸짓이라서 한 번 터져버린 웃음을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니 진짜···'

애도 아니고 말이다.

그럼에도 귀엽게 느껴지는 건··· 역시 세나라서 그런 거겠지.

어느새 완전히 돌아누워가지고 등으로 나 삐졌으니까 얼른 좀 달래보라고 열심히 어필을 해대길래 슬슬 놀리는 건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여기서 더 놀려버리면은 진짜 달래다가 밤을 꼴딱 새야될수도 있으니까.

그래서ㅡ

"···뭐야, 삐졌어?"

그리 말하며 세나 쪽으로 몸을 움직여 돌아누워있는 그녀를 뒤에서부터 스리슬쩍 끌어안았다.

진짜로 심각하게 삔또가 상한 거라면 내가 끌어안자마자 바로 쳐냈을텐데 그러지는 않더라.

그렇다는 건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는 소리겠지.

"···뭔 소리야 아니거든?"

"아니기는··· 목소리에 섭섭함이 아주 그냥 그득그득하게 담겨있구만···"

"···"

더 말해봐야 구차해지기만 할 것 같았던 걸까.

세나가 뭔가를 말하기 위해 막 벌렸던 입을 다시 꾹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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