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ㄹㅇ? 거의 동시에 내지 않았나?]
[다시보기 배속 낮춰서 보고 오셈 ㄱㄱ]
"그쵸? 얘가 늦게낸 거 맞죠? 와···"
"끽해봐야 영점 몇초 정도 늦게 낸 거 가지고 이러기야 진짜?"
"늦은 건 늦은 거지."
"아니, 보통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가지 않나?"
[ㄹㅇ ㅋㅋ 쵸큼... 추하긴 해]
[아 ㅋㅋㅋ 이성은 동생 분 말이 맞다고 하는데...]
[본능은 아니죠?]
[중립... 중립국으로 보내주시오...]
[이왕 이렇게 된 거 투표로 결정하시죠?]
"그래! 투표 좋다. 투표."
"투표 하자고?"
"어, 다수결에 따르는 거지."
"내가 왜?"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로 던져진 한 마디에 찔리는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았던 세나가 저도 모르게 멈칫한 사이, 유한은 그런 세나를 보며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아니, 우길 걸 우겨야지···'
거의 동시에 낸 거 가지고 이래버리면 내가 그 억지에 넘어가주고 싶어도 억울해서 못 넘어가주지 않나.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더라.
'역시 세 판 다 날로먹는 건 좀 그런가···?'
그래, 두 곡까지는 무리더라도 한 곡정도는 못 불러줄 것도 없지.
아는 노래가 거의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쪽 세상 노래를 아예 모르는 건 또 아니니까.
"그러면 이번 판 무효로 해줄테니까 대신 이렇게 해."
"어떻게?"
"만약 내가 걸리면 내가 부를 노래는 내가 직접 정하게 해줘."
세나한테 선택권을 맡겨놓으면 백이면 백 내 입장에서는 듣도 보도 못할 노래를 지정해줄게 뻔하니까.
뭐, 모르는 노래라고 해도 영상을 틀어놓으면 어설프게라도 따라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이왕 할거라면 어설픈 모습보다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더 보기 좋지 않겠는가.
내 입장에서도,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말이다.
물론, 나와는 입장이 전혀 다른 세나는 그런 내 조건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뭐야! 그건 좀 아니지!"
"뭐가?"
"아니, 딱 봐도 그렇잖아. 내가 부를 노래는 니가 고르는데 니 노래는 또 니가 고른다? 이게 공평해보여?"
"그러면 그냥 이대로 한 곡 더 뽑으시던가요."
그래봐야 이미 내게 가위바위보를 져버린 상태라서 세나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지만.
"윽···"
그 사실을 세나라고 해서 모르진 않았던 걸까.
아까 세나가 그랬던 것처럼 꼬우면 이기셨어야죠라는 식의 말을 돌려주니 도톰한 입술을 뚫고 침음성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할 거야. 안 할 거야?"
"···해."
"뭐라고? 목소리가 작아서 잘 안들리는데에."
"해! 다시 하자고!"
그렇게 된 관계로 결국 두번째 판에 해당하는 가위바위보를 다시 하기로 했다.
"와··· 누나 가위바위보 진짜 못하는 구나."
"···"
"어떻게 사람이 세 판 다 같은 걸 내서 질 수가 있지?"
뭐, 제 딴에는 두 번 연속으로 같은 걸 냈으니까 그걸 가지고 나름대로 심리전을 걸어보려고 했던 모양인데··· 애석하게도 뭘 낼지 다 보이는 통에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저 가위밖에 모르는 년···]
[???:자 이게 바위고, 이게 보야]
[믿었는데!!! 믿었는데!!!!!!!]
[아 ㅋㅋㅋ 이거 짰네 백퍼 짠 거임 내가 대본 보고 왔음 ㅋㅋ]
[차라리 진짜 대본이었으면 좋겠누...]
[아니 근데 ㅋㅋㅋ 따지고보면 가위가 바위한테 지는 게 말이 됨? 가위는 철이고 바위는 돌이잖아]
[음... 확실한 건 선생님 머리도 바위로 되어있는 것 같긴 하네요]
[걸어다니는 울산바위 ㄷㄷㄷ]
[씹련이 너 어디 살아]
세 번 연속으로 패배해버리고만 이 현실을 차마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일까.
세나가 브이자 모양을 그리고 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해서 그럴 수만 있다면 계속 보고 싶었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하지 않겠는가.
"어이, 유씨. 멍 그만 때리고 절로 가서 노래나 한 곡 뽑아봐."
특별히 두 번째 곡은 무난하고 쉬운 걸로 골라주었다.
한 두 달쯤 굶은 좀비마냥 비틀비틀거리면서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으로 향하는 모습이 왠지 좀 안쓰러웠으니까.
그런만큼 첫 번째 곡에 비하면 노래도 안무도 엄청나게 쉬운 것이었고, 그렇기에 무난무난하게 넘기고 바로 마지막 판으로 돌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상 오늘 방송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장면은 별 기대없이 시작된 두 번째 무대에서 나왔다.
내가 세나한테 지정해준 곡은 어깨를 으쓱으쓱하는 귀여운 안무가 포인트인 곡이었는데 세 번 내리, 그것도 다 같은 걸 내서 져버렸다는 허무함으로부터 태어난 표정을 한채로 그런 안무를 하니까 솔직히 좀··· 많이 웃기더라.
[미친 표정 뭔데 ㅋㅋㅋㅋ]
[뻘하게 터지네 ㅋㅋㅋㅋ]
[세하하 팡파레~~~! 세하하하하]
[근데 솔직히 얼척없을만 하긴 함 아니 어떻게 사람이...]
[어허!!!]
[멈춰!!!]
[아~ 아직 한 판 남았다구요~]
[원래 모든 게임은 막판에서 이기는 사람이 진짜 승자지]
[이번 판에 이기면 너 가위바위보 개못하잖아 시전 가능 ㅋㅋ]
[승... 자지? ㅗㅜㅑ...]
[저저저... 정신나간련 좀 썰어라 싹둑아]
[???:요 썰고... 요도 썰고... 요기도 썰고...]
[끼릭ㅡ 끼리릭ㅡ(대충 손목 돌아가는 짤)]
[근데 진짜 아직 모른다]
[ㄹㅇ 설마 네 판 내리 지겠냐고 ㅋㅋ]
[그럼 진짜 주작이지]
[잔뜩 기대하게 만들어놓고서 이상한 것만 보여주고 끝냈다? 이거 못 참그든요]
[아 세나 련 춤추는 거 세 번 연속 본다고 생각하니까 자꾸 악질해져;; 악질될 것 같아...!]
그렇게 많은 이들의 걱정과 우려 속에서 두 번째 무대마저도 끝이 나고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무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면··· 할까?"
그런 내 말에 어딘가 멍해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던 세나가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살짝 굳히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우···"
그러더니 비장한 느낌을 듬뿍 담아서 숨을 푹 내쉬는데··· 덕분에 나까지 다 긴장이 될 정도였다.
"준비 됐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리 물으니 세나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안 내면 진 거···"
내 구령에 맞춰서 세나의 손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그러더니 아예 머리 뒤로 슉하고 사라져버리는게 이번에는 기필코 이기고 말겠다는 의지가 아주 그냥 절절하게 느껴지더라.
그리고 마침내 위로 올라가있던 팔이 다시 밑으로 내려온 순간 세나의 얼굴 위로 떠오른 건ㅡ
"아··· 씨··· 이걸 마지막에 져버리네···"
"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한 미소였다.
"이겼다아아아아아아···!"
'으이구···'
그렇게도 좋을까.
이번만큼은 져줘야겠다고 생각해서 져준 거긴 하지만 막상 저렇게 히죽히죽대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솔직히 좀 꼴받긴 하더라.
"이겼죠? 이겨쬬?"
그런 내 속내를 아는 지 모르는 지 어느새 내 앞까지 다가와서는 그런 식으로 깐죽대는데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으이구··· 두 번이나 져놓고 한 번 이긴 걸로 좋단다."
"응, 좋아. 너무 좋아! 마지막에 이기는 사람이 승자죠?"
"뭐래."
"가위바위보 개 못하시네요 풉키풉키."
자기한테 불리한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날 놀려대는데에만 힘을 써대는데 보면 볼수록 꿀밤이 마려워졌다.
"흐으음··· 그래서 뭘 시키는 게 좋으려나아···"
"잠깐만, 뭐하는데?"
"응? 그야 당연히 노래 고르는 중인데?"
기쁜 나머지 몇 분 전의 기억이 그대로 날아가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그걸 누나가 왜 골라?"
"응? 그야 당연히···"
"당연히는 무슨, 기억 안나? 두 번째판 재경기 해주는 조건으로 내가 부를 노래는 내가 고르기로 했잖아."
까먹은 게 아니라 까먹은 척을 하고 얼렁뚱땅 넘겨버릴 생각이었던 걸까.
세나의 입에서 칫하고 작게 혀차는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이내 그 얼굴 위로 '큭···'하고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지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런다고 이제와서 물려줄 생각같은 건 없었지만.
"거 노래 골라야 되니까 비켜주시죠?"
해서 아쉬워하는 세나를 옆으로 치운 다음 노래를 고르는 척을 했다.
"흐으음··· 뭐가 좋으려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부를 노래는 이미 정해놓은 상태였다.
애초에 그걸 위해 두 번째 판때 굳이 가위바위보를 한 번 더 한다는 귀찮음을 무릅 쓰지 않았던가.
그런 식으로 노래를 둘러보는 척을 하다가 이내 미리 정해두었던 곡을 선택했다.
"아, 이거나 한 번 불러봐야겠다."
연하의 남자가 연상의 여성을 상대로 자신을 어리게만 보지 말고 이성으로 봐달라며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전형적인 사랑노래.
그것이 내가 부를 노래였다.
"흐음··· 뭐야, 재미없게···"
그런 내 선택을 확인하고는 세나는 그리 말했지만··· 글쎄 과연 언제까지 그런 상태로 있을 수 있을까.
왠지 모르게 살짝 닭살이 돋게 만드는 전주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세나의 표정은 덤덤했다.
아니, 덤덤한 수준을 넘어 살짝 벼르는 느낌마저도 나더라.
꼭 마치 '넌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라고 으름장이라도 놓는 것 같은 그런 표정이라고 해야할까.
귀여운 얼굴을 한채 눈에 힘을 줘봐야 하나도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그랬던 세나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린 것은 노래가 클라이막스 부분하고 가까워졌을 때였다.
자신을 이성으로 봐주지 않고 동생으로만 보는 '누나'를 상대로 이제는 제발 이성으로 봐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하는 부분.
노래가 그곳으로 접어들자마자 그제서야 노래 내용이 뭔가 좀··· 낯부끄러운 내용이라는 걸 깨달은 세나가 '어···?'하고 흠칫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라.
그러더니 이내 제 실수를 깨달은 듯 황급히 표정을 원래대로 되돌리는데 그 와중에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 하나 있다면 아까부터 캠코더는 나만 찍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굳이 표정을 고쳐보일 필요도 없었을텐데···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머지 그런 기본적인 사실조차도 깜빡해버리고 만 걸까.
그리고 한 번 당황한 세나는 정확히 그 때부터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야 그렇겠지.
외모도 외모지만 이미 몸도 섞은 사이일 뿐더러 어느 정도로 달달한 교감이 오간 판국에 상대방이 이런 식으로 절절한 노래를 부른다?
하물며 주변을 둘러싼 풍경도, 모닥불이 타들어가면서 나는 타닥타닥하고 불똥튀는 소리마저도, 그것들로부터 비롯된 분위기마저도 환상적이니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 아닐까.
심지어 노래를 못 부르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노래 솜씨마저도 뛰어난데?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나도 이렇게 심장이 쿵쿵하고 빠르고 크게 뛰어대고 있는 중인데 세나의 상태가 어떨지야 말할 것도 없겠지.
그래서일까.
노래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세나의 표정은 멍하게 변해갔다.
그 모습을 눈에 새기듯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하고 웃으면서 캠코더를 향해 보란듯이 몸을 부르르 떨어보였다.
마치 진절마리라도 난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아으··· 오글거려서 더 못 부르겠다."
덤으로 그런 말까지 덧붙이니 멍하게 변해있던 세나의 표정이 순식간에 평소 모습으로 돌아갔다.
다만 평소 모습으로 돌아간 건 형태에 불과할 뿐 그 흔적은 세나의 얼굴 위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홍조라는 형태로 말이다.
술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발그레한 색의 홍조가 세나의 목덜미와 얼굴 위를 점령하고 있었다.
저런 모습이 캠코더에 잡힌다면?
나와 세나가 친남매라 굳게 믿고 있는 시청자들이라 해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겠지.
하물며 내가 바로 조금 전까지 조금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니 더욱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터.
이 와중에 그나마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면··· 세나가 앉아있는 곳이 모닥불 앞이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