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3화 〉1부 (283/315)

[압도적인 웃음후보 ㄷㄷ]

"일단 가볍게 한 판 고?"

맞은 편에 앉아있는 세나를 바라보며 그리 물으니 세나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막 심호흡을 해대는 것이ㅡ

"준비되면 말해."

많이 긴장한 것 같긴 하더라.

그래서 그리 말했더니만 바짝 긴장한 자신과는 다르게 한껏 여유로워보이는 내 모습을 보고 순간 울컥하기라도 했는지 세나가 손을 슥 들어올렸다.

"···해."

그러시단다.

그래서 바라는대로 해주었다.

"안 내면 진 거! 가위··· 바위···!"

앙증맞은 모양으로 말려있는 세나의 손이 내 구령에 맞춰서 밑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한 45도쯤 내려왔을까.

검지하고 중지가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하는 게··· 누가봐도 가위더라.

그래서 가뿐하게 이겨주었다.

"이겼죠?"

"···"

어쩌면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정도는 당연히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 되니까 믿기도 힘들고, 이제 시청자들 앞에서 되도 않는 노래와 춤을 선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막 나갈 것 같고 그랬던 걸까.

가위라기 보다는 차라리 브이자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면서 멍~한 표정을 지어보이는데 그 모습을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자아, 그러면 뭘 시킬까요오."

[이걸 져? 이걸 져? 이걸 져? 이걸 져? 이걸 져?]

[나]

[락]

[나]

[실망했읍니다 소리아 구독 해지하러 갑니다]

[락]

[이런 건 내가 원한 게 아니야아!]

[어이 유씨 동생 분 춤추는 거 봐야되니까 대충하고 빨리 다시 가위바위보나 해!]

채팅창과 세나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승리의 달콤함을 만끽하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꽤나 괜찮은 정보가 채팅창을 통해 흘러들어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거'나 시키죠]

[아 그거 ㅋㅋㅋ]

[그게 뭔데 씹덕련들아;;]

[그걸 몰라? 이 새키 완전 뉴비네]

[그거는 그건데요]

[뉴비 배척 멈춰!!!]

[있음 옛날에 뭐 새로운 컨텐츠 해보겠다고 시도했다가 대차게 실패했던 거]

그래서 그게 대체 뭘까.

뭐길래 세나가 저렇게 안절부절 못하는 걸까.

"그게 뭐예요?"

궁금한 마음에 그리 물었더니만 채팅창 위로 낯선 링크가 빗발쳤다.

물론, 올라오는 족족 싹둑이에게 커팅당하기는 했지만.

개중에 하나를 짤리기 전에 클릭해보니 이윽고 노트북 화면 위로 등장한 건··· 나름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그랬다.

링크된 영상은 놀랍게도 무려 세나를 포함한 스트리머 5인의 커버 댄스 영상이었던 것이다.

"이야···"

영상 속에서 세나가 추고 있는 저걸 춤이라고 불러도 될지를 떠나서 일단 영상의 정체 자체는 그랬다.

저런 건 대체 어쩌다가 찍게 된 걸까.

"자, 잘 추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영상 속 세나의 몸짓은 여러모로 독보적이었다.

세나를 제외한 네 명의 춤이 '오···'하고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느낌이라면 세나의 춤, 아니 율동은 '허···'하고 탄식을 내뱉게 만들었으니까.

[오우 쉣;;]

[정답!! 오징어!!]

[진짜 독보적으로 못 추누;;]

[아니 어떻게 사람 몸이...]

[안무가 참 철학적이네요]

"그, 그만···!"

결국 끓어오르는 수치심을 배겨내지 못한 세나가 손을 뻗어 그대로 내 눈을 가려버렸다.

그러더니만 탁하고 뭔가 접히는 소리가 나더니 눈물나는 영상 내용과는 별개로 흥겹게 울려퍼지던 음악 소리가 뚝 끊어졌다.

참다참다 못해 다시 봉인하는 쪽을 택한 걸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서 특별히 세나에게 과거의 흑역사를 설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로 했다.

"자, 그럼 다들 즐길 준비되셨습니까?"

[아 ㅋㅋㅋㅋ]

[어떤 축제가 진행중인가요?]

[축제가 아니라 장례식입니다]

"세계가 모르는 월드스타! 대한민국이 낳은 최고의 댄스가수! 세나의 컴백 무대! 지금 바로 감상해보시죠!"

[와 정말요]

[세계가 모르는데 어떻게 월드스탘ㅋㅋㅋㅋㅋ]

[아 빨리 정신 놓으시라고요!!]]

[유세나! 유세나! 유세나!]

[꺄아아아악 언냐!!!!]

[Sen.A 기습 컴백 ㄷㄷㄷㄷ]

[죽기 전에 세나의 무대를 다시 볼 수 있다니;;;]

[채고다 세나챤!!!]

툭하고 스페이스바를 손가락으로 두들김과 동시에 일시정지 해두었던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까맣게 물들어있던 화면에 불이 들어오고, 흥겹기 그지없는 도입부와 함께 텐트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세나가 쭈뼛쭈뼛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카메라 앵글 안에 척 하고 멈춰서는데ㅡ

"오···"

일단 대기 포즈는 나름 있어보이더라.

하는 짓은 좀 그래도 외모가 워낙 압도적이다보니까 진짜 걸그룹이라도 보는 것 같다고 해야할까.

'진짜는 이 다음부터지만.'

과연 컴백 무대에서는 또 어떤 신박하기 그지없는 안무, 아니 몸놀림을 보여줄지 손녀 학예회를 지켜보는 할아버지의 마음으로다가 흐뭇한을 마음 속에 가득 담아서 지켜보고 있으려니까ㅡ

'···엥? 뭐야.'

슬쩍 이를 악문 세나가 범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왜···'

잘 추는 건데?

'왜?'

생각보다 훨씬 잘 춰서 놀랐나보지?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유한의 모습을 보며 세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던 게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저렇게 얼빠진 표정이나 짓고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딱 보니까 이쪽을 보고 깔깔대면서 비웃으려고 했던 모양인데 예상이 빗나가서 얼떨떨해하고 있는 걸 보니 그렇게 고소하게 느껴질 수가 없더라.

'이크.'

그 탓에 순간 힘들게 몸에다가 익혀놓은 동작이 흐트러질 뻔 했지만 빠르게 집중력을 되찾고 자세를 바로했다.

컨텐츠랍시고 찍어놓은 영상에 등장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나도 처참해서 언젠가는 그걸 만회할 수 있도록 이걸 익힌다고 한동안 가족들 모르게 팔자에도 없는 댄스학원 신세까지 졌었는데 이왕 선보일 거라면 제대로 선보여야 비싼 돈은 물론 시간까지 들인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말해 무엇하랴.

세나는 부모라는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이 흔히 말하곤 하는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요.'의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특히나 몸 쓰는 분야에서 그랬다.

사실 그건 어찌보면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가영도 지나도 다 몸 쓰는쪽으로다가 한가락씩 하는데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세나만 특별히 못난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니까.

다만 물려받은 것과는 별개로 타고난 성향이 기본적으로 집순이다보니까 그걸 활용할 기회가 별로 없었을 뿐.

제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다고 한들 갈고 닦지 않으면 녹슬기 마련이다.

세나가 이따금씩 보여주는 어설프기 그지없는 모습들은 사실 그 탓이 컸다.

게임할 때나 특별한 컨텐츠를 진행할 때를 빼면 몸을 거의 쓰질 않는데 몸이 굳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아무튼 야심차게 질렀다가 흑역사만 적립하고 끝난 과거의 컨텐츠 때문에 세나는 진심으로 이를 악물고 지금 추고 있는 것을 포함한 몇 개의 레퍼토리들을 제 몸에다가 때려박았고, 그게 지금 세나가 자신있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역시 돈 들인 보람이 있네.'

솔직히 배워놓고 그동안 추질 않았다보니까 시작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심 좀 불안했었는데 한 번 시작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몸이 알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바로 주입식 교육의 힘이었다.

'표정하고 제스쳐만 자신있게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선생님이 그러셨지.

보고 계십니까 선생님?

당신과 보냈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하도 오래된 탓에 이제는 얼굴마저도 흐릿하게 느껴지는 과거의 안무 선생님에게 감사를 표하며 유일한 직관러라 할 수 있는 유한을 향해 팔을 쭉 뻗었다.

그리고는 유한이 돌려줄 반응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실제 이 안무를 췄던 아이돌 멤버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감 넘치면서도 상대방을 유혹하는 듯한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보였는데ㅡ

"와···"

반응이랍시고 돌아온 것이 예상했던 것하고는 한 백만광년 정도 동떨어져 있어서 갑자기 확 민망해졌다.

틀림없이 그게 뭐냐면서 깔깔대며 웃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뭘까 저 순수하게 감탄하는 듯한 표정은.

반응 자체가 워낙 의외인지라 순간적으로 혹시 놀리려고 저러는 건가하는 생각마저도 들었지만 다시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박수는···'

또 왜 치는데!

이 느낌을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알 수가 없었다.

알 수가 없었지만··· 민망했다.

덕분에 얼굴이 불 앞에 앉아있을 때하고는 좀 다른 느낌으로 화끈거렸다.

그래서일까.

스스로가 보기에도 제법 괜찮아보이던 동작들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마 이걸 노리기라도 한 걸까.

어느새 머릿속은 물론이거니와 몸 안까지 가득 채워버린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어떻게든 몰아내보기 위해 일부러 쓸데없는 생각까지 해봤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부끄러워지기만 하는데··· 덕분에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가사를 따라부르기 위해 목소리를 입밖으로 낼 때마다 그것이 막 떨렸다.

'으으··· 진짜···'

하여간에 쟤는 왜 이상한 곳에서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걸까.

이렇게 된 이상 끝을 맺는 건 포기해야될 것 같았다.

지금도 이 정도인데 여기서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나아지진 않을 것 같았으니까.

"···그만 출래."

"엥? 왜!"

"···어느 부분까지 해야된다고 정해두진 않았잖아."

중간에 끊는 게 꼬우면 그걸 정하지 그랬냐는 식으로 말을 돌려주니까 유한의 얼굴 위로 떠오른 건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아··· 좋았는데."

"그래서 뭐, 불만있냐?"

"그럼 없겠어요?"

"꼬우면 또 이기시든가요."

아무리 그래도 두 판을 내리질까 싶어서 그리 말했던 것이었는데ㅡ

"또 이겼네?"

"···"

"아까 뭐라고 그랬더라··· 꼬우면 뭐?"

설마 그 누가 알았겠는가.

또 질 거라고 말이다.

"느, 늦게 낸 거 아냐?"

"응, 아니야."

"그쵸? 늦게 낸 거 맞죠? 살짝 늦게 냈잖아!"

유한의 노래나 춤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한 시청자들이라면 어쩌면 이쪽의 편을 들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캠코더 쪽을 쳐다보며 도움을 청했는데ㅡ

[어... 음... ㅋㅋㅋ]

[아니 어지간하면 우리도 도와주고 싶은데;;]

[이건 좀 아닌 거 가타요]

[근데 진짜로 동생 분이 살짝 늦게 내기는 했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