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잇 무인도인데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어딨어요]
[말이 무인도지 있을 건 다 있다고 하지 않았음?]
[아니 와이파이도 터지는데 그게 어떻게 무인도냐고 ㅋㅋㅋ]
[무인도 특(와이파이 잘 터짐, 전기, 수도 됨]
결국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걸 알고 있긴 하지만 막상 오케이를 하자니 걸리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걸까.
"하, 씨···"
한숨 비스무리한 것까지 내쉬면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머리를 벅벅 긁으며 고민을 거듭하던 세나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역시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었지만.
"···대신."
"대신?"
"너도 불러."
아니 이걸 이렇게 물귀신 작전을 쓴다고?
솔직히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는데 그게 현실이 되니까 골이 살짝 띵하더라.
"나도?"
"그럼, 나한테는 노래 시켜놓고 넌 가만히 앉아서 박수나 칠 생각이었냐?"
"아니··· 햄버거값 냈잖아."
"그러면 축하공연이라고 치면 되겠네. 그쵸 여러분?"
캠코더를 향해 동의를 구하면서 씩 웃는 세나의 두 눈동자 속에는 절대 혼자서는 죽을 수 없다는 의지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갈 땐 가더라도 나도 같이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속이 후련할 것 같았던 걸까.
보아하니 내가 여기서 발을 빼버리면 그걸 핑계삼아 자기도 안하겠다고 할 것 같아서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뺄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니까···'
말해 무엇하랴.
세나가 시전한 물귀신 작전에 채팅창은 이미 난리가 난 상태였다.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시청자들 입장에서 보면 진귀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 알아서 복사가 된 셈일테니까.
[이거지 ㅋㅋㅋ]
[퀸갓엠페러마제스티충무공유세나 ㄷㄷㄷ]
[역시 국보지킴이;;]
[진짜 큰 거 온다...]
[아 ㅋㅋㅋ 이걸 생방으로 보네]
[ㄹㅇ 오늘 학원 땡땡이 안 쳤으면 어쩔 뻔 했냐고~]
[이것이... 수신료의 가치...?]
[세나 방송 복귀하면 감 떨어져서 떡락할 거라고 음해한 련들 누구야!!]
[이게... 두 달동안 쉬고 온 서터리머가 맞냐? 시청자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세나의 능력에 찌찌가 웅장해진다 진짜 세나 방송은 전설이다...]
[아무튼 난 아님 ㅋㅋㅋ]
[하여간에 그 갤련들이 문제임]
[그 갤이 어딘데 씹덕새끼야]
[디씨... 넌 디씨를 하는 구나...]
"대신 이렇게 해."
당연한 말이지만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뭐 어떻게?"
"가위바위보 세 판 정도해서 지는 사람이 그때마다 한 곡씩 부르는 걸로."
"굳이?"
"그냥 부르면 그게 무슨 재미야."
"허··· 자신 있나 보네? 오케이 콜."
"누나야 말로 뭐 부를지나 미리 생각해두셔. 걸리고 나서 노래 고른다고 얼타지 말고."
"누가 할 소리를. 빨리 세 곡 뭐 부를지 생각해놔라."
가능성이 많이 낮기는 하지만 잘만하면 세 판을 내리 이겨서 역으로 나한테 독박을 씌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걸까.
눈동자가 승부욕으로 반짝거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걸 꿈꾸고 있는 모양인데ㅡ
'그 꿈···'
내가 부숴주지.
가위바위보에서 반드시 이기는 방법이 뭘까.
그건 생각보다 간단하다.
상대가 뭘 낼지 미리 알고 있으면 되는 거니까.
상대가 무엇을 낼지 알고 있다면?
질 수가 없는 게임이 바로 가위바위보였다.
그리고 내게는 그걸 가능케 해줄 수단이 하나 존재했고.
그렇다는 건?
이건 내가 질래야 질 수가 없는 조건이라는 소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이기는 사람이 뭐 부를지 곡도 지정해주는 건 어때?"
"허··· 누가 보면 벌써 세 판 다 이기신 줄 알겠어요."
"왜? 쫄려? 쫄리면ㅡ"
"하···!"
내 말에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을 친 세나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예 한 가지 조건을 추가했다.
"안무 있으면 안무도 하는 거다?"
"모르는 노래면?"
"안무영상이라도 틀어놓고 따라하든가 알아서 해야지."
"오케이 콜."
이긴 사람이 지정해준 노래 부르기 플러스 안무라니.
오늘 밤은 즐겁겠구만.
"그럼 바로···"
"아, 잠깐만 시작하기 전에 나 잠깐 화장실 좀."
"왜? 긴장했냐?"
그 새를 못 참고 으스대는 꼴이 얄미워서라도 아니라고 받아쳐주고 싶었지만 그러는 대신 순순히 인정했다.
"···살짝?"
"크흠···"
그러니까 오히려 당황스러워 하더라.
내 말을 듣고 나니까 까딱 잘못하면 오늘 진짜 개망신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뒤늦게 막 몰려오기라도 한 것일까.
긴장으로 얼굴을 굳히는 세나를 뒤로한채 그대로 별장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는 화장실로 들어가 나의 필승카드라 할 수 있는 것을 구매해 그대로 눈에다가 끼웠다.
'이러면 질 수가 없지.'
왜냐고?
그야 세나가 뭔가를 내기 위해 팔을 휘두를 때 그 손모양이 눈에 다 보일테니까.
내가 할 일이라고는 거기에 맞춰서 이기는 패를 내기만 하면 되는 것 뿐인데 질 리가 있겠는가.
그렇게 별장 안으로 들어온 용건은 달성했지만, 그렇다고 바로 별장을 빠져나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서야 되겠는가.
해서 간단하게 라면이라도 끓여보려고 냄비하고 라면을 비롯해 이런저런 물건들을 챙겼다.
토치하고 화로도 잊지 않고 챙겼고.
"방송 잘 하렴."
"넵."
"그렇다고 너무 늦게까지 밖에 있지는 말고. 그··· 모기도 많으니까."
그리 말하면서 모기 퇴치용 스프레이를 손수 챙겨주는 가영을 향해 싱긋 웃어보인 뒤 어느새 묵직하게 변해버린 것을 양손으로 들고 세나가 기다리고 있을 간이 스튜디오로 돌아갔다.
'그나저나 진짜 오래 자네···'
잠깐 방에 들려서 뭐하고 있나 확인을 해봤더니 세상 모르고 골아떨어져있던 지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해변가로 진입했더니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한 세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쪽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뭐야, 뭘 이렇게 많이 챙겨왔어?"
"그냥··· 라면이랑 이것저것?"
"라면? 왜? 배고프냐?"
"누나는 배 안 고파?"
"어··· 살짝 출출하긴 한데···"
그렇게 찾아온 세나와 짐을 나눠들고 다시 카메라 앵글 안으로 진입하니 시청자들이 세나를 막 꾸짖기 시작하더라.
"하··· 얘가 말도 안 하고 가져온 거라니까요? 말했으면 나도 따라갔지."
"어이, 유씨. 헛소리 그만하고 휴지나 찢어."
일단 불만 먼저 피워놓기로 했다.
막 방송을 시작했을 때는 그리 춥지도 않더니만 사방이 새까맣게 물든 지금은 은근히 또 쌀쌀했으니까.
굳이 귀찮게 불까지 피울 필요없이 얇은 담요같은 걸 챙겨와서 덮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래서야 세나가 그토록 강조했던 '갬성'이 없지 않겠는가.
거기에 어차피 라면도 끓여먹을 생각이기도 했고.
"아, 맞다. 누나."
"엉?"
"휴지 다 찢었으면 그거 이리주고 물이나 좀 떠와."
"아, 진짜··· 귀찮게···"
"얼른."
투덜투덜대면서도 가기는 가더라.
그렇게 세나가 빈 양동이를 짤랑짤랑 흔들며 바닷가로 향한 사이, 세나가 잘게 찢어놓은 것들을 장작 밑에다가 밀어넣고 토치로 불을 붙였다.
[아니;; 능숙함 뭔데;;]
[이게... 보이크러쉬?]
[헤으응... 옵빠...]
[근데 이런 거 그냥 세나 시키시지;;]
[ㄹㅇ 데기라도 하면 큰일이라구욧]
"누나요? 누나한테 시키기에는 좀···"
하루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새까맣게 그을려있는 잔디밭의 땜빵을 보면 저런 소리도 못할텐데 말이다.
물론, 지금은 방송 중이니만큼 그때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전과가 있지 않은가.
좀 귀찮더라도 그냥 내가 하는 게 훨씬 속 편했다.
난 어디까지나 그런 의미로 그리 말했던 것뿐인데 다들 눈치는 귀신같아서 내 말에 담겨있는 못미더워하는 기색을 귀신같이 짚어내더라.
[딱 보니까 이미 한 번 사고쳤었네 ㅋㅋ]
[하긴... 솔직히 세나한테 맡기는 게 더 위험할 것 같긴해 ㅋㅋ]
[ㄹㅇ;;]
[집순이 주제에 캠핑? 오우 쉣...]
[혹시 우리 세나가 뭐 또 사고쳤나요? 그렇다면 미리 사과드리겠읍니다...]
"아니, 진짜 별 건 아니고··· 그, 어제 가족끼리 바베큐 구워먹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어쩌다보니까 누나가 불 피우는 걸 맡게 됐는데···"
"야···! 그걸 방송에서 왜 말하는데!"
"아니, 글쎄 불쏘시개 들고 까불다가 잔디에 불똥이 튀어가지고 불이 막···!"
"아아아아아악ㅡ! 아아아! 안 들린다! 안 들리지로옹!"
[응, 이미 다 들렸어]
[불도 못 피우고 으휴...]
[이딴 게 군필...?]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둡다;;]
[태우라고 가져다놓은 장작은 안 태우고 잔디를 태우는 얼빠진 련이 있다? 뿌슝빠슝]
[어... 요리 제목은 잔디 바베큐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살짝 불맛을 곁들인...]
[이왜진?]
[아 ㅋㅋㅋ 안 봐도 뻔하네 백퍼 불쏘시개들고 폼 잡으려다가 그랬겠지]
[보인다 보여]
이룩한지 이제 고작 하루밖에 되지 않는 흑역사가 시청자들 앞에서 낱낱이 까발려진게 그리도 수치스럽고 민망했던 것일까.
세나가 그새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양손으로 덮어서 숨겼다.
그 상태로 수치심에 몸부림치던 것도 잠시, 어느 정도 멘탈을 회복하는데 성공한 세나가 반대편이 앉아 날 향한 적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반드시 가위바위보에서 승리해서 방금 자기가 느꼈던 수치심 이상의 것을 내게 선물해주고 말겠다는 걸까.
날 노려보면서 이를 부득부득 갈아대는데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보면 그저 가소로울 따름이었다.
"자, 그러면 불도 다 피웠으니까···"
[ㄱ? ㄱ? ㄱ?]
[폭.풍.전.야...]
[큰 거 온다 ㄷㄷㄷ]
[세나야 믿는다...! 이겨야 해...!]
[여기서 지면 넌 변사체가 된다...]
[방장의 노래하고 춤따위 즈이는 보고 싶지 않그든요?]
[왜? 세나가 아이돌처럼 노래하고 춤춘다고 생각하면 웃기지 않음?]
[리듬겜 할 때마냥 박자 개 못맞춰서 웃음벨이긴 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