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1화 〉1부 (281/315)

"하··· 다들 이런 식으로 자꾸 도배하고 그러면···"

그러면?

"슬로우챗 '60초'"

그런 식으로 다소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본격적인 생존신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자, 일단 방송은 키게 했고···'

세나가 슬로우챗이라는 마법을 시전한 덕분에 채팅창 분위기도 어느 정도 정돈이 된 상황.

이제 남은 건 내가 아까 떠올렸던 그림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분위기를 자연스레 그쪽으로 유도하는 것뿐이었다.

'다짜고짜 이것 좀 해보라고 해도 들을 리가 없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청개구리 기질은 물론이거니와 은근히 자존심도 강한 게 바로 세나다.

그런데 내 말대로 할 경우 높은 확률로 꼴 사나운 모습을 보이게 될텐데 곧이곧대로 들어먹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니 분위기를 유도해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을 빚어내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인 셈이었다.

'그나저나···'

슬슬 궁금해할 때도 되지 않았나?

"아, 진짜 바로 안 끈다니까? 그러니까 무지성 도배 멈춰! 아, 구독은 감사합니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캠코더를 양손으로 부여잡은채 시청자들하고 열심히 투닥거리고 있던 세나의 시선이 내쪽으로 슥 돌아왔다.

그래서 대체 뭘 할 생각이냐고 묻는 그 시선에 살포시 웃으며 세나의 손에 들려있는 캠코더의 앵글 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맞아요. 바로 안 끌 거예요."

[아 ㅋㅋㅋ 세나 말은 못 믿어도 동생 분 말이면 ㅇㅈ이지~]

[맞지~]

[ㄹㅇ ㅋㅋ]

[그래서 뭐 하실 건가요? 바다니까 낚시?]

[걍 경치구경만 시켜줘도 다들 눌러앉아있을듯]

[경치도 좋고 파도 소리도 잔잔하니 나쁘지 않을지도...?]

[낚시같은 소리하고 있네]

[딱 걸렸죠? -틀-]

"낚시··· 그러고 보니까 창고에 낚싯대도 있긴 하던데."

심지어 풀세트더라.

"갑자기 그건 왜? 진짜 낚시라도 하려고?"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아서라··· 재미는 무슨 지루하기만 하지."

천성부터가 흥미본위다보니까 지루함과의 싸움이라 할 수 있는 낚시는 영 내키지가 않았던 걸까.

아주 그냥 학을 떼길래 피식 웃으며 그건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럼 뭐할 건데?"

"아니··· 브튭 보다보니까 시청자들이 참가하는 노래자랑 컨텐츠같은 걸 많이들 하시더라고."

그리고 아까 미리 알아본 결과 세나는 그런 식의 컨텐츠를 아직 진행한 적 없는 상태였다.

"그걸 하자고?"

"응, 괜찮을 것 같지 않아? 이 분위기에 노래가 딱 어우러지면···"

"어휴··· 그래, 우리 유한이 하고 싶은대로 다해. 우쭈쭈쭈."

살짝 부정적인 뉘앙스로 말하는 것치고는 세나도 은근히 관심이 많아보였다.

자기 방 시청자들의 노래실력이 어느 정도일지가 궁금한 걸까.

"그런데 보통 그런 거 하면 뭐 상품같은 거 걸고 하던데."

"그렇긴 하더라."

치킨을 거는 곳도 있었고 햄버거 세트를 거는 곳도 있더라.

"그거 나눠주는 것도 은근 빡센데···"

"누나 매니저 분들한테 부탁하면 되지 않을까?"

"아, 맞네."

그렇게 된 관계로 빅맥 기프티콘을 건 유세나배 노래자랑을 개최하기로 했다.

심사위원은 나와 세나였고.

"햄버거 값은 내가 낼게."

"엥? 굳이?"

"누나 이거 빌린다고 통장 털렸잖아."

뭐, 그렇게 따지면 나도 상점에서 구매한 것들 할부금 내느라고 풍족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처지긴 했지만··· 그래도 거의 2천에 가까운 금액을 일시불로 긁은지 얼마 되지 않은 세나에 비하면 한결 낫긴 했다.

"괜찮은데···"

"됐어. 줄때 받으셔."

노래방 세팅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필요한 프로그램을 깔고 음향세팅을 좀 만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그러면 시작하··· 기 전에!"

그래도 나름대로 대회인데 간단한 규칙같은 거라도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거창하게 정할 생각은 없었기에 딱 하나만 정해두었다.

"한 사람당 한 곡씩입니다. 다 부르시면 알아서 퇴장해주세요."

[ㅖ]

[^^7]

[아 ㅋㅋㅋ 딱대 ㅋㅋㅋ]

[미리 햄버거 감사합니다 ㅎㅎ]

[세]

[버]

[컫!]

[밴버거련 컷!]

[거]

[ㄲㅂ]

[보니까 방 들어가는 것도 빡세겠는데?]

내가 봐도 그럴 것 같아서 인원수를 최대로 설정했는데 50개에 달하는 자리가 1초도 안 되는 시간만에 꽉 차버리더라.

'허···'

다들 햄버거가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이러는 걸까.

"아, 게임 내 채팅은 되도록 자제 부탁드립니다."

그새를 못 참고 도배를 달리면서 관심종자 짓을 시작한 년이 하나 보여서 그 사람을 강퇴하고 난 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자, 그러면은··· 첫 곡을 들어봐야 하는데···"

과연 첫 타자의 실력은 어떨까.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을 느끼며 빨갛게 불이 들어와있는 '예약 허용' 버튼을 꾹 누르니 예약 리스트가 순식간에 가득 차버렸다.

이 사람들한테는 처음이 주는 긴장감같은 것도 없는 걸까.

"아, 저희가 들었을 때 이건 뭔가 좀··· 아니다 싶은 건 바로 컷하도록 하겠습니다."

[ㄱㄹㅇ]

[기래요]

[암요]

[분위기 곱창나는 건 못 참지 ㅋㅋㅋ]

[강서구 디바 출격 머기중 ^^7]

[아니 지가 강서구 디바라는 사람인데 노래를 잘 하는 줄 알아!]

정말 솔직히 말을 하면 그렇게까지 큰 기대는 느끼지 못했다.

다들 자기 노래실력에 자신이 있으니까 이렇게 우르르 몰려온 것이겠지만 그래도 다들 일반인이니만큼 노래로 밥 벌어먹고 사는 가수들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아니더라.

-···감사합니다.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긴장이 될 수밖에 없는 첫 타자의 차례가 끝나자마자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거 잘못하면···'

통장이 텅장이 될 수도 있겠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던가.

불길한 예감은 차례가 진행될수록 강렬해졌다.

"아니··· 그··· 저기요? 이거 상품··· 빅맥인데···"

왜 하던 놈들이 총출동한 걸까.

"다들 대체 빅맥이 얼마나 먹고 싶었던 거야···"

연달아 합격 판정을 내려야만 했던 세나도 내심 어이가 없었던 모양인지 옆에서 한 마디를 거들었다.

[빅맥은 못 참지 ㅋㅋㅋ]

[미남이 사주는 빅맥? 오우 쉣...]

[기만자련들... 같이 백수 코스프레 할 때는 언제고!!]

[이게 바로 '평균'이라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휴우먼?]

[국밥 먹을 바엔 노래 한 곡 뽑고 감자튀김에 콜라도 주는 빅맥 세트 타서 먹고 말지]

[ㄹㅇ ㅋㅋ]

[방장!!! 문 열어!!! 내가 못 들어간다구요!!!]

"예··· 뭐··· 합격 판정 받으신 분들은 그··· 누나 카페 있잖아요? 거기에 인증글 좀 남겨주세요."

무슨 해킹이라도 당한 것마냥 통장 잔고가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환각마저 보이는 와중에 그나마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면 화려하기 그지없는 참가자들의 실력 덕분에 분위기는 확실하게 뜨거워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이런 분위기를 바랬었는데 이제는 분위기가 좋아서 걱정이었다.

그야말로 파멸적이기 그지 없었던 세나의 박자 감각을 떠올려보면 이런 상황에서 나서려고 할 리가 없으니까.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를 제 손으로 죽이는 꼴이 될텐데 그럴 리 있겠는가.

'그래도···'

방송 분위기와는 별개로 솔직히 보고 싶긴 했다.

그리고 혹시 또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리듬 게임은 파멸적으로 못해도 노래는 또 괜찮게 부를 지도 모르지.

"다들 되게 잘 부르신다."

"그러게···"

"슬슬 누나도 한 곡 해야지?"

"···뭐?"

당연한 말이지만 세나는 내 제안에 질색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건 또 무슨 개소리냐는 식으로 말이다.

'저렇게까지 정색할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순순히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안 그래요?"

그래서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더니 시청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쪽에 가담해왔다.

[ㄹㅇ ㅋㅋ]

[어딜 듣기만 하고 튀려고]

[노래해! 노래해!]

[어이 유씨! 한 곡 뽑아봐!]

"아니, 갑자기 뭔 노래야. 그리고 님들도 그래. 이 와중에 내 노래를 꼭 들어야겠어?"

"왜? 중간광고같은 느낌으로다가 괜찮지 않아? 겸사겸사 시청자 분들 귀도 좀 쉬게 해드리고."

"응, 아니야."

"그래서 안 하시겠다고요?"

채팅창 분위기가 어떤지 좀 보라는 의미에서 테이블 위에 놓여져있던 노트북을 들어올려 세나를 향해 들이미니 이미 불타는 이모티콘하고 '나'와 '락'으로 가득 차 있는 채팅창의 모습을 확인한 세나가 윽하고 침음성을 흘렸다.

"아이, 그래도···"

[이걸 안해? 배불렀나 보네?]

[ㅇㄱㅇㄴ? ㅂㅂㄹㄴ ㅂㄴ?]

[나]

[에반데;;]

[락]

[나]

[락]

"씨이이···"

채팅창의 상태를 확인하자마자 본인이 물러날 구석이라고는 없는 궁지에 몰린 상태라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일까.

참 오랜만에 세나의 입에서 주전자 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노래 할 거야! 안 할 거야!"

[이것은 수류탄이여!]

[안 되겠소! 쏩시다!]

[방장 노래할 때까지 숨 참겠읍니다! 흡!]

[흡!]

[시청자들 이대로 질식사하도록 내버려둘거야?]

[너 시청자 버려? 니 방송 버려?]

[나같으면 그냥 빨리 치우고 달달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먹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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