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혹시 몰라 세나의 뒤를 따르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저 비닐은 그대로 망망대해까지 떠내려갔겠지.
그렇게 비닐부터 건져낸 다음 세나 쪽으로 돌아가니 세나가 무릎을 부여잡은 채 울상을 짓고 있었다.
"뭐야? 다쳤어?"
"아, 아냐···"
눈꼬리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구만 아니기는 무슨.
그래도 쪽팔린 건 아는지 상처 부위로 추정되는 무릎을 감싸서 숨기고 있는 세나의 손들을 손수 걷어내고 확인해보니 무릎이 살짝 까져있더라.
'아니···'
대체 어떻게 하면 주변에 온통 고운 모래 뿐인데 무릎이 까질 수가 있는 걸까.
살짝 어처구니가 없긴 했지만 일단 다친 이상 처치는 해줘야했기에 무릎을 움켜쥔채 낑낑대고 있던 세나를 일으켜 일전에 지나가 깔아둔 선배드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일단 거기에 앉아있으라고 한 다음 별장으로 돌아가 구급상자하고 생수 한 병을 챙겨서 돌아갔다.
"가만히 있어봐. 일단 헹궈줄테니까."
"사, 살살해···"
쓰라릴게 걱정되는지 눈을 질끈 감은 채로 그리 말하길래 나름대로 살살 끼얹어봤는데ㅡ
"악···! 살살하라니까···?!"
물이 살짝 닿은 것만으로도 죽으려고 하더라.
그래서 그냥 한 번에 팍 끼얹어버렸다.
"아악···! 아프다고···!"
"그러니까 쓸데없이 왜 넘어져가지고는··· 으휴···"
그렇게 모래 알갱이들을 말끔하게 제거해준 다음 약도 발라주고 밴드도 붙여주고 하니까 뒤늦게 민망함이 몰려오기라도 했는지 약을 발라줄 때까지만 하더라도 죽겠다고 난리를 피워대던 세나가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살짝 빨갛게 물들인채 침묵했다.
"제발 다치지 좀 마. 걱정되잖아."
"내가 뭐 넘어지고 싶어서 넘어졌나···"
어느새 주변으로 내려앉은 어색한 듯 하면서도 달달한 분위기를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일까.
아직 통증이 채 가시질 않았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고 하길래 양 어깨를 꾹 눌러서 다시 자리에 앉혔다.
"됐어. 일어날 필요 없으니까 앉아서 쉬고 있어."
"아니,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다리 절뚝거리면서 돌아다녀봐야 더 신경만 쓰이지."
아직 설치가 끝나지 않은 나머지 것들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앉아서 쉬고 있으라고 말을 하니 세나가 살짝 멍한 얼굴을 한채 날 올려다보았다.
그 상태로 얼마나 지났을까.
일자로 맞물려있던 입술이 살짝 이지러지더니··· 그대로 고개를 팍 숙여버리더라.
그러면서 드러난 귀는 말할 것도 없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하여간에 저 놈의 입은 진짜.
입을 가만히 두면 혀에 가시가 돋는 병이라도 걸린 걸까.
속으로 피식 웃으면서 세나가 조립하다가 말고 방치해놓은 것을 향해 다가가 일단 그것부터 마저 조립했다.
그리고는 남은 것들도 싹 해치우고 나니까··· 어느새 저녁이더라.
"방송은 저녁 먹고 나서 킬 거지?"
"음··· 그러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서 일단 자꾸 꼬르륵대는 속부터 먼저 달래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텐트를 깔아둔 자리로 돌아오니 마침 해가 딱 수평선에 걸려서 빨갛게 타오르고 있더라.
"누나."
"응?"
"방송 말이야. 지금 키자."
"지금 바로?"
그에 뉘엿뉘엿 기울어가는 빨간 해를 턱짓으로 딱 가리키니 세나가 알만하다는 표정으로 피식하고 웃었다.
그러더니 잠시 기다려보라는 말과 함께 아까 미리 가져다둔 방송 장비들이 모여있는 곳을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그런 식으로 세나가 원활한 방송을 위한 막바지 세팅에 돌입했을때 의외로 세나 채널 채팅창에는 꽤나 많은 수의 시청자들이 머무르고 있는 상태였다.
[하... 벌써 며칠 째냐...]
[그립읍니다...]
[정신 나간련 하나 때문에 이게 뭐냐 진짜;;]
[세흐나야... 이제 그만 돌아와줘...]
[니 방송 없으니까 평일 저녁에 볼게 없다고!!!]
[돌아올 거라고 해짜나요... 왜 말이 없서요...]
[유세나!!!!]
[세하!(3622트째 연습중)]
그런 식으로 다들 평소처럼 켜지지 않는 세나의 방송을 그리워하고 있던 와중이었을 것이다.
오프라인 상태임을 상징하는 회색 동그라미가 빨갛게 물들더니 대기 화면 상태였던 화면이 순식간에 까맣게 물들었다.
[??????]
[뭐야 미친;;]
[제에에에에엔장!!! 믿고 있었다고!!!]
[세우제 3623트만에 성공했누]
[아니 순간 너무 간절해서 환각 본 줄 알았네]
[복귀각? 복귀각? 복귀각? 복귀각?]
[아 ㅋㅋㅋ 솔직히 두 달 가까이 쉬었으면 오래 쉬긴 했지]
[ㄹㅇ 사고 친 것도 아닌데 너무 오래 쉬는 것도 안 좋아~]
[세하!!!!]
당연한 말이지만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거의 두달 가까이 카페 공지 외에는 이렇다할 소식이 없던 장본인이 방송을 킨 것이었으니까.
그것도 아무런 전조조차 없이 기습적으로 말이다.
[빨리 화면 켜! 빨리 화면 켜! 빨리 화면 켜!]
[언냐... 여긴 너무 어두워... 빨리 불 좀 켜줘...]
[ㄹㅇ ㅋㅋㅋ 우리 무섭다구~]
[방송 화면 킬 때까지 숨 참겠읍니다! 흡!]
[큰 거 온다... 큰 거 온다!!!]
[흡!]
[세나단 단체 질식사 ㄷㄷㄷㄷ]
그런 식으로 뭐라도 반응이 돌아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이들에게 가장 먼저 찾아든 것은ㅡ
"아아, 들려?"
방장이 아닌 다른 이의 목소리였다.
[설마...? 이 목소리는...?]
[같이 복귀하는 거임? ㄷㄷㄷ]
[큰 거 온다더니 진짜 큰 거 와버렸누]
[복귀방송부터 남매 합방 달린다고? 미쳤다 ㄷㄷㄷ]
[아 ㅋㅋㅋ 이거 치킨 시키라는 시그널 맞지? 방장 믿고 바로 배민 달려도 되는 거 맞제?]
[아직도 치킨 안 시킨 흑우가 있다고?]
[속보) 전국 치킨집 유세나 복귀 효과에 주문 폭주]
[속보) 전국치킨협회 방송인 유세나에게 감사 표창 수여하기로 결정]
[남매 동시 부활 ㄷㄷ]
"야, 좀만 더 크게 말해봐. 목소리가 좀 작은 것 같은데?"
"그래? 지금은? 아아ㅡ"
"어, 이 정도면 괜찮은 듯."
그새 우르르 몰려온 시청자들이 채팅창을 버벅거리게 만들던 말던 막바지 세팅에 여념이 없던 둘이 마침내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그러면 화면 킨다?"
"엉."
이윽고 온통 검은색 뿐이던 대기화면이 전환되며 방송 화면 위로 떠오른 것은··· 시청자들로서는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광경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이국적인 풍경의 바닷가.
순식간에 화면을 가득 채워버린 그 풍경에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의 머릿속으로 일제히 물음표가 떠올랐다.
[???]
[뭐임?]
[아 ㅋㅋㅋ 크로마키네 깜빡 속을 뻔;;]
[이런 건 또 어떻게 구했누 겁나 사실적이네]
[세나 요뇬 이거이거 방송 복귀한다고 이 악물고 준비 해왔네 ㅋㅋㅋ]
[배경이 바다면 오늘은 수영복 방송인가요?]
[ㅗㅜㅑ 동생분 수영복... 진짜 큰 거 오나...?]
[어허!]
[쓰읍! 멈춰!]
[아니 저거 진짜 크로마키 맞음? 소리도 나는데?]
[뭐 월페이퍼 엔진인가 뭔가 썼겠지]
[아니 생각을 좀 해보시라구요 ㅋㅋㅋ 집 밖으로 죽어도 안 나가는 년이 바다까지 가겠냐고 ㅋㅋ]
[ㄹㅇ 귀찮아서 중간에 탈주했으면 탈주했지]
대체 방송에서 어떻게 행동했으면 시청자들이 저런 풍경을 보고도 감탄하기 보다는 가짜일게 뻔하다고 확신을 하는 걸까.
"그··· 죄송한데. 저거 진짜 바다 맞아요."
이대로 가다간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을 기세라서 바로 그렇게 말하니까 채팅창 위로 물음표가 막 빗발쳤다.
"왜? 뭐래?"
"아니··· 시청자 분들이 집밖에도 안 나가는데 바다가 웬 말이냐고 다들 그러셔가지고···"
"···"
"하긴··· 누나가 좀··· 그렇긴 하지."
할 말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어느새 끄트머리만 남겨둔 해가 뿜어대는 붉은 빛 때문일까.
세나가 새빨갛게 물든 얼굴을 한채 날 향해 손을 척 내밀었다.
쓸데없는 말 하지말고 캠코더를 내놓으라는 걸까.
그래서 원하는대로 건네줬더니만 캠코더를 건네받은 세나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방송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게 꼭 물 만난 고기같아서 쓴웃음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더라.
'진짜 많이 고팠나 보네···'
아니,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왜 또 시청자들하고 싸우고 있는 걸까.
"아니, 이게 어떻게 가짜냐고요. 모래 떨어지는 거 안 보여요?"
그런 식으로 시청자들하고 귀엽게 투닥거리던 것도 잠시, 세나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어쩌다가 이곳에 오게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적당히 각색을 거친 것이긴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사실대로 말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
"여기와서 아무 생각없이 쉬고 뭐하고 하다보니까 괜찮아졌는지 쟤가 오늘 아침에 저한테 와서 그러더라고요. 오랜만에 방송 좀 켜보는 건 어떻겠냐고."
[그럼 오늘은 근황만 전하고 가는 거임?]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
[방송? '이것' 말인가?]
[아 ㅋㅋㅋ 나 방금 치킨 시켰다고!!!]
[킷사마!!!!!!!!!!]
[네 놈!!! 잘도 저질렀겠다!!!!]
"아니, 뭔 말을 못하겠네··· 안 끈다니까요?"
[세나 방송 이대로 가면... 라이더! 세나 방송 이대로 가면... 라이더! 세나 방송 이대로 가면... 라이더!]
[그동안 기다린 게 있는데 달랑 근황만 말하고 튄다? 그때부터는 진짜 다들 악질이 되는 거야]
[자꾸~ 악질한 이 느낌~]
[ㄹㅇ 이대로 가면 바로 악질닉으로 바꾸고 도배 달릴거임]
[아 ㅋㅋㅋ 어차피 방송 끌건데 도배하든 말든 뭔 상관이냐고]
[난 바로 달린다 ㅅㄱ]
[가야아악 내 눈!!!]
[저 새끼 저거 배내!!!]
[방장!!!!! 빅팃단 쳐내!!!]
[어흑마이깟!! 아캔씨 애니띵!]
[앞이 안 보여..!]
[앗...]
[???:세그다노프 그녀가 치킨을 시켰습니다.]
[???:둠핏]
[그아아악...!]
[무분별한 무지성 방종 멈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