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다.
지나라고 해서 긴장이 안 될리가 없었으니까.
나조차도 곧 있으면 셋과 한 침대 위에서 동침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서 입 안이 실시간으로 바짝바짝 마를 지경인데 엄마, 그리고 동생과 은밀한 모습을 공유해야만 하는 그녀는 어떻겠는가.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싶어도 그게 쉽지만은 않겠지.
아마 와인도 그래서 챙겨온 게 아닐까.
'그나저나···'
과감하기 그지없는 복장으로 날 유혹해올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진짜 잘 준비라도 하는 것처럼 가벼운 복장을 몸에 걸치고 있는 지나의 모습은 은근히 유혹적이었다.
"유한아."
"···응?"
"누나 좀 도와줄래?"
"아, 응."
심지어 아까 전부터 은근하게 풍겨져오는 향기마저도 그랬다.
방금 막 샤워를 끝내고 나왔기 때문일까.
평소랑은 다르게 살짝 촉촉하게 젖어있는 지나한테서는 거기에 딱 어울리는 달달한 향기가 났다.
허나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향기가 강렬하기보다는 은은한 것이 맡고 있어도 더 맡고 싶어지는 그런 종류의 향기였으니까.
그런 것이 지나가 살짝씩이라도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자연스레 코밑을 맴도는데··· 그게 은근하게 드러난 살갗 위에 물방울이 맺혀있는 모습하고 어우러지니 진짜 장난 아니더라.
'그냥···'
확 먼저 시작해버려?
내가 실시간으로 애가 닳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나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오늘따라 유독 촉촉해보이는 입술을 슬며시 삐죽거렸다.
"흐음··· 역시 와인만 마시는 건 좀 그러려나?"
그러더니 살짝 흐트러진 옆머리를 손가락으로 걷어올려 귀 뒤로 넘기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걸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목이 탔다.
반사적으로 침을 꼴깍 삼켰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런 식으로 유한이 유혹과 싸우고 있을 때, 가영은 이성과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유한과 합류한지 오래인 지나야 말할 것도 없었고, 유한에게 잔뜩 괴롭혀진 탓에 화장실 바닥 위에 철퍼덕 널브러져 있었던 세나조차도 슬슬 샤워를 끝내가고 있는 판국이건만 가영은 여전히 샤워기 아래에 서 있었다.
샤워기 아래에 서서 거기서 쏟아지는 차가운 물을 머리로 받아내고 있었다.
"하아···"
그런 가영의 입술이 한 차례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그것이 슬며시 벌어지며 그 사이로 나지막한 한숨소리가 흘러나와 샤워기 소리 사이로 섞여들었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다같이 한 침대 위에서 동침이라니.
울컥한 마음에 그런 걸 받아들이긴 했지만 코앞에 두고서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뭔가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머릿속을 복잡하게 헝클어뜨리고 있는 건 꼭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지나와 단둘이 있을 때 나누었던 대화또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데 크게 한몫하고 있었으니까.
유한은 절대 선택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담겨있는 단언과 그 상황을 대비한 해결책, 그것이 하나의 단어로 변해 자꾸만 머릿속을 돌아다녔으니까.
'임신···'
정말로 솔직하게 말을 하면 지나의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가능할까···?'라는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의문이었다.
그런 생각부터 들고 난 후에야 한 발 늦게 다른 것도 아니고 '그런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는 것을 두고 내심 철렁하긴 했었지만 사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자신은 지나하고도, 세나하고도 달랐으니까.
물론··· 가능하긴 할 것이다.
한국을 떠나 이곳으로 오기 전에 혹시 몰라 했었던 건강검진의 결과가 거짓이 아니라면은··· 아마도 그렇겠지.
신체 나이는 물론이거니와 어찌보면 몸에서 가장 소중한 곳이라 할 수 있는 곳의 상태도 굉장히 좋은 편이라고 의사가 그랬었으니까.
당시 자신을 담당했었던 의사가 은근한 목소리로 비결을 물어올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그러니 아마··· 가능하기는 할 것이다.
가능하기는.
하지만 '가능성'으로만 그치는 것과 그게 실제로 실현이 되어 현실이 되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니까.
그렇기에 그게 정말 현실이 되었을 경우를 생각해볼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게 아까 전부터 샤워기 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기도 했고.
생각이 진짜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통에 찬물이라도 맞아서 머리를 좀 식혀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으니까.
'올해 낳는다고 쳐도···'
머릿속으로 숫자를 하나씩 헤아리며 계산을 해보다가 이내 포기했다.
그쪽은 더 생각해봐야 답이 없을 것 같았으니까.
"하아···"
이 와중에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건···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 이제는 인정해야만 했다.
이제는 자신도 유한을 아들이 아닌 '남자'로, 그것도 '내 남자'처럼 여기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포기하려고 해도 아들이 아닌 이성으로서의 유한과 쌓은 추억들이 그러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았으니까.
참 부끄럽고 민망한 말이지만··· 유한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상대가 설령 지나나 세나라고 해도 그랬다.
욕심이라고 해도 좋았다.
자신은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게 맞았으니까.
솔직히··· 여태껏 스스로 욕심을 죽여가며 유가영이라기 보다는 누군가의 엄마인 삶을 살아왔는데 한 번정도는 괜찮지 않겠는가.
한 번 정도는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유가영이, 여자 유가영으로서의 삶을 욕심내봐도 괜찮지 않을까.
설령 그로인해 유한을 두고 딸인 지나나 세나와 다투게 된다 하더라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머리 위에서부터,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이던 것도 잠시, 샤워기를 끄고 그대로 욕실을 빠져나왔다.
생각을 정리하는 건 좋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었으니까.
결심을 했다면?
움직여야 했다.
지나라면··· 이런 식으로 망설이지 않을테니까.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이면 일찌감치 샤워를 끝마치고서 방으로 향했겠지.
그리고 아마 지금쯤 유한의 옆에 찰싹 붙어서···
제멋대로 막 뻗어나가려고 하는 온통 살색으로 가득찬 상상들을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머릿속에서 털어냈다.
그리고는 옷부터 입기 위해 옷을 정리해둔 옷장 앞에 섰는데··· 평소와 다름없이 잘 때마다 몸에 걸치곤 했던 슬립을 집어들려다가 그대로 멈칫했다.
그것을 집어들어 몸에 걸치려는 순간, '정말 이걸로 괜찮을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불쑥 고개를 치켜들었으니까.
막 몸쪽으로 가져가던 슬립을 다시 몸쪽에서 떨어뜨린 다음 그것의 모습을 위아래로 유심히 살폈던 것도 그래서였다.
'···너무 평범해.'
동시에 익숙하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잘 때마다 이런 걸 입고 잤으니까.
그리고 아마 유한도··· 이걸 보고 비슷한 감상을 느끼겠지.
그럴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나라면 틀림없이 과감한 복장으로 유한을 유혹하려고 들텐데···
평범하고 익숙한 복장을 입어봐야 단단히 결심하고 나섰을게 분명한 지나한테 속절없이 밀려버릴게 뻔했다.
그래서일까.
시선이 제멋대로 스르륵 움직이더니 지금 손에 들려있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향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선이 닿은 곳에는··· 손에 들고 있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과감한 모습을 한 잠옷과 속옷들이 차곡차곡 개어져 있었다.
충동적으로 구매했었지만 입을 엄두도 나지 않고, 입어야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해서 사놓고서 방치했던 것들.
그렇지만 혹시 모르는 마음에 챙겨왔던 것들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개중에서도 특히 분홍색을 띈 것이 유독 눈에 띄었다.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은근히 편해보여서 구매했던 것이지만 실제로 받아서 입어보니 너무 하늘하늘하기도 했고, 하늘하늘한 부분이 과할 정도로 비쳐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었는데ㅡ
'이, 이정도면···'
최소한 일방적으로 밀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
꼴깍 소리가 나도록 침을 한 번 삼켰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핑크 슬립을 집어들어 몸에 걸쳤다.
상태는 새것이나 다름없긴 했지만 그렇게 보여도 산지 꽤 된 것이라 내심 좀 걱정했었는데··· 참으로 다행히도 생각한 것 이상으로 몸에 꼭 맞았다.
그렇게 그것을 몸에 걸친 다음 방에 있는 거울에다가 스스로의 모습을 비춰서 확인을 해봤는데 그것만으로도 얼굴이 절로 뜨거워졌다.
스스로 이런 걸 골라서 몸에 걸쳤다는 사실이 민망하기도 했을 뿐더러··· 그만큼 야했으니까.
꼭 눈만 마주쳐도 불타오를 때인 신혼 때나 입을 것 같은··· 그런 옷이었다.
덕분이 얼굴이 갓 쪄낸 찐빵처럼 뜨끈뜨끈해졌지만 그렇다고 벗지는 않았다.
'이, 이왕 산 거니까···'
그래도 한 번 정도는 입어줘야하지 않겠는가.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해준 다음 거울이 딸려있는 화장대 위에 조심스레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평소처럼 머리를 말리려고 했는데ㅡ
'그러고보면 막 샤워하고 나온 모습을 좋아했었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완전히 말리는 대신 살짝 젖은 상태로 남겨두었다.
머리까지 말렸으니 이제는 정말··· 방을 찾아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
하지만 어째선지는 몰라도 발이 잘 떨어지질 않았다.
민망함이나 부끄러움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뭔가 좀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ㅡ
'살짝 정도는···'
평소랑은 다르게 살짝 화장을 해줘봤다.
물론, 화장한 티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투명하게 했다.
그렇게 화장까지 끝마치고 난 후에야··· 간신히 유한이 기다리고 있을 1층의 맨끝방으로 향할 수 있었다.
끼릭하고 문고리 돌아가는 소리가 난 건 뭐라도 있어야하지 않겠냐는 지나의 말에 따라 주방에서 손수 공수해온 과도로 웰컴 후르츠랍시고 놓여져있던 것들의 껍질을 깎고 있던 와중이었다.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지금 이곳 말고 원래 세계에서 술집 알바를 하며 단련한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최대한 예쁘게 과일 안주를 세팅하고 있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내 옆에 앉아서 흐뭇하기 그지없는 눈빛과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던 지나의 고개가 나와 거의 동시에 문쪽을 향했다.
그렇게 나와 지나의 시선을 한몸에 몰아받으며 등장한 가영은 뭐랄까ㅡ
'허어···'
정말 생각치도 못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걸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확실한 건 이대로 계속 칼을 손에 쥐고 있으면 내 손가락의 안위가 상당히 위험해질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정도로··· 매혹적인 모습이었으니까.
아마 여신이라는 존재가 실존한다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대충 저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방 안으로 들어선 가영이 조심스레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안쪽이 훤히 비치는 분홍빛의 하늘하늘한 천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딱히 창문같은 걸 열어두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그 정도로··· 얇은 천이 전부였다.
'씨발··· 미치겠다···'
이 와중에 날 더 미치게 만드는 건 가영이 그녀답지 않게 저런 복장을 택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는 점이었다.
아니, 알 것 같은게 아니라 확신했다.
저건 틀림없이 지나를 의식한 복장이라고.
아무래도 빠꾸따윈 없이 직진밖에 모르는게 지나다보니까 잠옷도 틀림없이 날 뇌쇄시킬 수 있는 과감하고 노골적인 걸로 입고 등장할 거라고 생각해서 거기에 대항하고자 저런 걸 택한 모양인데ㅡ
다른 게 아니라 그런 이유 때문에 저런 걸 골랐다는 사실이 날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딸에게 지지않기 위해 야하기 그지없는 잠옷을 골라 몸에 걸치는 미인 엄마라니.
자지가 안 설래야 안 설 수가 없는 시츄에이션이었고 덕분에 그만 빨딱 서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바지 위로 확 솟아오른 것을 깎다말고 방치해두었던 것이 툭 치고 지나갔다.
일단 내 감상은 그랬는데 옆에 앉은 지나의 반응은 어땠는가하면··· 허라도 찔린 듯 입술을 슬쩍 깨물고 있더라.
제 아무리 가영이 전과는 달라졌다곤 하지만 그래도 여태까지 보여준 모습같은게 있는데 설마 저런 식으로 과감하기 짝이 없는 복장으로 몸을 감싼채 침실로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걸까.
살짝 흔들리는 눈동자 속으로 고민이라는 감정이 조금씩 깃들기 시작하는게 여차하면 자기도 다른 걸로 갈아입기 위해 뛰쳐나가기라도 할 기세였다.
뭐, 그런 지나의 반응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만큼 지금 가영의 모습은··· 압도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했으니까.
정작 본인은 지나의 복장을 확인하고는 혼자 지레짐작해서 오버를 해버렸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라도 한 건지 얼굴이 실시간으로 달아오르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 와중에 살짝 의외였던 점이 하나 있다면 그런 식으로 부끄럽고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방을 뛰쳐나간다거나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고.
부끄러운 꼴을 나한테만 보인 거라면 또 모를까 나는 물론이거니와 딸인 지나한테까지 보여버렸으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판단했던 것일까.
"흠흠···!"
헛기침을 해 본인을 뒤흔들어대고 있는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가다듬은 가영이 사뿐사뿐 걸음을 옮겨 우리가 앉아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오우 쉣···'
멀찌감치 떨어져있을 때도 애가 닳아서 미칠 것 같았는데 가까워지니까 더 하더라.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슬립을 이루고 있는 분홍색의 얇은 천이 살랑살랑 나부낄 때마다 좋은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져오는데 그게 참 남자를 미치게 만들었으니까.
옆에 지나가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만큼 자제해야하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차마 가영한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덕분에 내 몸에 존재하는 이런저런 감각의 통제권이 실시간으로 가영에게로 넘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웬 와인이니? 한 잔하려고?"
"···어."
그런 내 낌새를 가영하고 지나도 알아차린 것일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끄러움에 젖어서 살짝 굳어있던 가영의 얼굴이 이내 부드럽게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