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6화 〉1부 (266/315)

그런 식으로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끝나버리는 건 딱 질색이라며 지나가 질색하는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올렸다.

"뭐든 깔끔한게 좋잖아?"

"···하고 싶은 말이 뭐니?"

"그냥 내 말은··· 어차피 유한이한테만 맡겨놓으면 망설이기만 하다가 흐지부지 되어버릴게 뻔하니까 우리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놓자는 거지."

"기준··· 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걸까.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런 식의 관계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으리라는 것 정도는 엄마도 알고 계시잖아요?"

그야 당연히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처럼 보이겠지만 그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결국에는 의심의 눈초리를 살 수밖에 없을테니까.

"그러니까··· 세 명 중에 한 명 정도는 유한이하고 정식으로 맺어져야하지 않겠어?"

"···"

다른 건 몰라도 그 말만큼은 그냥 흘려넘길 수가 없었다.

정식으로 맺어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분명··· 결혼을 말하는 것이겠지.

결혼.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꽤나 커다랗게 울려퍼졌다.

어쩌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정도는 해본 적 있지만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기에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침묵하고 있었는데ㅡ

"다만··· 그 한 명을 어떤 식으로 결정하느냐가 문제라면 문제인데···"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그런 어마어마한 단어를 테이블 위로 툭 던져놓은 지나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래서 내가 좀 생각을 해봤거든?"

"···"

"대체 기준을 어떤 식으로 잡아야 나머지 둘이 결과에 승복하고 깔끔하게 물러날까···"

그 말을 하는 지나의 목소리는 굉장히 진중했다.

"생각을 하다보니까 딱 하나밖에는 안 떠오르더라고."

그래서 그게 대체 뭘까.

"그 왜··· 흔히 아기는 하늘에서 점지해준다고들 하잖아?"

'설마···'

"엄마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지, 지나 너···"

"왜? 이 편이 가장 깔끔하고 좋지 않아? 둘 사이에서 아이까지 생겼으면 뭐··· 말 다한 거잖아."

어디서부터 어떤 식으로 지적하면 좋을 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아이라니.

결혼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기에 더 그랬다.

"호, 혹시 모르는 일이잖니? 지나 네 생각하고는 다르게···"

그렇기에 그런 식으로 말을 돌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었다.

"유한이가 우리 셋 중에 하나를 고를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응."

"그럼 우리 간단하게 내기나 하나 하실래요?"

"내기···?"

그리고 그게 바로 둘 사이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이유기도 했다.

그렇게 성사된 내기에서 지나는 유한이 둘 중에 누구의 옆자리에 앉을지조차 고르지 못할 거라고 단언했었고 가영은 그 정도까진 아닐 거라는 쪽에 자신의 표를 던졌으니까.

만약 여기서 유한이 둘 중에 한 명을 고르지 못한다면?

결국 지나가 말한 조건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되리라.

그러니··· 부디 선택해줬으면 했다.

이왕 둘 중에 한 명을 고를 거라면 이쪽을 골라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고.

허나 둘 사이에서만 오고간 대화의 내용을 유한이 알 리가 없었고 그렇기에 졸지에 두 명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된 유한이 느끼고 있는 것은 난감함과 당혹스러움 뿐이었다.

'아니···'

대체 분위기가 왜 이런 걸까.

설마 세나하고 투닥거리고 있는 동안 둘이서 한 마디씩 주고받기라도 했나?

'아니, 이제 첫날인데···'

분위기가 벌써부터 이래버리면 나중에는 대체···

속으로 그런 걱정을 곱씹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무 말없이 시선만 던져대고 있던 둘이 처음으로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뭐해? 계속 그렇게 서 있을 거야?"

그리 말한 지나가 슬쩍 옆으로 비켜앉으며 덕분에 생겨난 빈 자리를 손으로 팡팡 소리가 나도록 두들겨댔다.

얼른 여기로 와서 앉으라는 것처럼.

그런 지나의 행동에 대해 가영이 보여준 대응은ㅡ

스윽···

말 없이 살짝 옆으로 비켜앉는 것이었다.

"그래, 얼른와서 앉으렴."

그렇게 자기 옆에다가 빈 자리를 만들어내고 난 후에야 날 재촉하더라.

'아니, 이게 무슨···'

진짜 무슨 일이고.

말 그대로 두 모녀가 날 사이에다가 놓고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 남자로써 가슴이 웅장해지면서도 동시에 식은땀이 등을 타고 삐질삐질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여전히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는 둘의 모습을 보며 직감했으니까.

여기서 한쪽을 택하게 되면 선택받지 못한 쪽은 삐져도 단단히 삐질 거라는 걸.

그걸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한 번 상상해봤다.

상상해보다가··· 결국 어색하게 웃으며 둘 사이에 절묘하게 위치해있던 1인용 소파 쪽으로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첫날부터 감당하기에는 짐이 너무나도 무겁고 컸으니까.

그렇게 1인용 소파에 조심스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는데··· 어째 둘의 반응이 이상했다.

둘 중에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니만큼 크게 티를 내진 않더라도 둘다 적잖게 실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망에 가까운 표정을 지어보인 건 가영 뿐이었으니까.

그에 비해 지나의 표정은 어땠는가하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

꼭 그럴 줄 알았다고 으스대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근데 뭐 만들고 계신 거예요?"

예상과는 다른 지나의 반응에 내심 의문을 느끼면서도 일단은 여전히 팽팽하게 당겨져있는 분위기도 환기시키고 겸사겸사 실망한 것같은 가영도 달래주고자 그녀 쪽을 바라보며 그리 물었던 건데 정작 대답은 그 반대쪽에서 돌아왔다.

"아, 이거? 이게 그러니까 뭐였더라··· 샤슬릭?"

"샤슬릭? 샤슬릭이 뭔데?"

"러시아식 꼬치구이라던데? 맞지 엄마?"

"으, 응···"

뭐, 그렇단다.

아니, 그 부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진짜 표정들이 왜 이런 걸까.

어딘가 시무룩해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심각해 보이기도 하는 가영의 표정도 신경쓰이긴 했지만 사실 그보다는 지나가 얼굴 위로 띄워놓고 있는 쪽이 훨씬 더 신경에 거슬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가영과는 다르게 지나 쪽은 대체 왜 그런 반응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으니까.

실망해야 마땅한 상황에서 왠지 기분 좋아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다?

그렇다는 건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건데···

'대체···'

그게 뭘까.

내가 밖에서 세나하고 투닥거리고 있는 동안 둘이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지나의 반응이 저런 식인 걸까.

머릿속이 겉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퐁당 빠져드는 걸 느끼면서ㅡ

"옥수수도 여기다가 끼우면 되는 거야?"

"어, 맛있을 것같지 않아?"

일단 겉으로 크게 티내지 않고 저녁 준비에 집중하는 척을 했다.

거기에 집중하는 척 하면서··· 티나지 않게 눈동자를 굴려서 지나나 가영의 분위기같은 것을 예의주시했다.

도망친 곳에 낙원같은 건 없다고 그 누가 그랬던가.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가영도 지나도 고를 수가 없어서 눈치껏 중립을 택했는데 그렇게 도착한 곳은 말이 중립이지 사실 고래등 사이였으니까.

덕분에 고래등 사이에 낀 새우의 심정이라는 걸 아주 그냥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분명 뭔가 있어··· 뭔가 있는데···'

그게 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대화같은 거라도 좀 오고가면 그걸 단서 삼아서 추론같은 거라도 좀 해볼텐데 아까부터 둘다 말이 없었으니까.

대신 열심히 손을 움직일 뿐이었다.

덕분에 또 저녁 준비는 착착 이루어져서 슬슬 밖에서 신선놀음을 하고 있을 세나를 불러들여야할 때가 오고 있었다.

"그··· 유한아?"

"네, 넵?"

"슬슬 뒤에 나가서 세나 좀 불러줄래?"

이 얼마만의 대화란 말인가.

따지고 보면 정말 별 것도 아닌데 새삼 그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즉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넵!"

알겠다는 뜻을 듬뿍 담아서 위아래로 고갯짓을 해보인 건 덤이었다.

그렇게 유한이 세나를 부르러 잠시 자리를 비운 순간, 안 그런 척 하면서 은근히 주변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지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것 봐. 내 말대로지?"

유한에게 적잖은 혼란을 불러일으켰던 득의양양해 보이는 표정과 함께 내뱉어진 그 말에 가영은 말없이 침묵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반박할 수가 없었으니까.

저걸 반박할 수 있을만한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그러면··· 내가 말한대로 하는 거다?"

그런 식으로 아주 잠깐 자리를 비운 동안 가영하고 지나 사이에서 모종의 합의가 오가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채 뒷문을 통해 수영장 쪽으로 나온 유한은 여전히 튜브 위에 드러누워 있는 세나를 향해 다가갔다.

'뭐야··· 은근 취향에 잘 맞나보네.'

솔직히 5분 정도 버티면 오래 버틴 거 아닐까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설마 저녁 준비가 끝날 때까지 저 위에 드러누워있을 줄이야.

예상이 빗나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좋고 나쁨을 따져보자면 오히려··· 좋은 쪽이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면 하나를 알게 되었으니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수영장 끄트머리에 발을 걸치기 무섭게 깨달았다.

새로운 면모고 뭐고 그냥 자빠져 자느라고 저기서 안 내려오고 오래 버틴 것이라는 걸.

아주 그냥 코까지 도롱도롱 골면서 자고 있더라.

'뭐···'

낮잠자기 딱 좋은 조건이기는 했다.

까딱 잘못하면 그대로 물속으로 다이빙할 수도 있다는 부분이 좀 그래서 그렇지.

아무튼 가영이 시킨대로 하려면 일단 저걸 깨워야 되는데··· 음···

그렇다고 옷까지 새걸로 다 갈아입은 판국에 또 물에 들어가기는 그래서 딱 발만 담궜다.

수영장 안에 발만 담군 다음에··· 혹시라도 넘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면서 그대로 물을 걷어찼다.

촤아악···!

그러면서 일어난 거대한 물보라가 세나가 드러누워있던 튜브를 덮쳤다.

"···으엑?!"

그 위에 편히 드러누워있던 세나는 덤이었다.

역시 물 끼얹기야.

성능 확실하구만.

기분 좋게 자고 있는데 갑자기 물이 팍 끼얹어지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일까.

우스꽝스러운 비명소리와 함께 세나의 상체가 팍 튀어올랐다.

그리고 그 행동이 불러일으킨 결과는 가히 파멸적이었다.

가뜩이나 거칠게 흔들리고 있던 튜브 위에서 그래버리니까ㅡ

"에···? 엑?!"

불안불안하게 흔들리던 것이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천천히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

이윽고 풍덩하고 누군가 물에 빠지는 소리가 수영장 주변을 강타했다.

"야이···!"

물 속에서 물귀신이나 다름없는 몰골을 한 세나가 팍 솟아오른 건 그 직후였고.

"너 진짜···"

그렇게 물 위로 솟구친 세나가 날 향해 이를 부득부득 갈아댔다.

"밥 먹어 밥."

"그럼 그냥 불러서 깨우면 되지 튜브는 왜 뒤집고 난리인데!"

"뭐래, 누나가 혼자 난리치다가 뒤집어진 거잖아. 그리고 목이 터져라 불렀는데도 일어나질 않으시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물론, 그런 적따위 없었지만 알게 뭔가.

어차피 세나는 진실같은 건 알지도 못할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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