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5화 〉1부 (265/315)

어림도 없지.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서 버티니까 물 속에서 뽀그르르하고 물거품이 올라옴과 동시에 세나가 물 속에서 솟구쳤다.

"푸학···!"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순간적으로 진짜 물귀신 같더라.

세나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갈색의 긴 머리가 물에 흠뻑 젖어서 몸에 철썩 들러붙어있는데 그 정도로 처참한 비쥬얼이었다.

"너··· 너···!"

"속았쬬?"

그래도 앞이 보이기는 하는지 씩씩거리면서 날 향해 삿대질을 해대길래 세나가 그랬던 것처럼 씩 웃으면서 약을 올려주니까ㅡ

"···뒤져."

싸늘하게 변한 목소리와 함께 양손으로 수영장 물을 잔뜩 퍼올린 세나가 그걸 그대로 내 얼굴을 향해 끼얹었다.

그 다음부터는 뭐··· 제 1차 수영장 전쟁이 시작되었고.

솔직히 상대가 집순이다보니까 내심 좀 얕잡아봤었는데 의외로 좀 치더라.

그래서 적당히 좀 치고받다가 이내 휴전했다.

어차피 계속 싸워봐야 서로의 피해만 커질 뿐이었으니까.

"아으··· 다 젖었네···"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붙잡고 물기를 쭉쭉 짜내던 것도 잠시, 성큼성큼 수영장을 가로지른 세나가 이내 수영장 벽에 매달렸다.

그러더니 수영장 밖으로 팔만 쭉 뻗어서 아까 내가 완성해놓은 튜브를 수영장 쪽으로 끌어당기더라.

나와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심신을 튜브 위에서 하는 신선놀음을 통해 달래볼 생각인 걸까.

헌데 어째 뜻때로 잘 되는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일단 튜브를 수영장 안으로 끌어들이긴 했는데 이게 말이 튜브지 사실상 보트나 매트에 가까운 물건이다보니까 그 위로 올라가는게 쉽지 않아보였으니까.

"읏챠···!"

귀여운 기합성과 함께 수영장 위에 둥둥 떠있는 매트의 끄트머리를 단단히 움켜쥔 세나가 이내 몸을 팍 띄워올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그 위로 올라가길 시도하는데··· 세나가 매트 위에 올라가는 것보다 매트가 세나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울어지는 게 몇 배는 더 빠르더라.

"으엑···?!"

덕분에 이제 막 매트 위에 배를 올렸던 세나가 대각선 방향으로 기울어진 매트를 따라서 쭈르륵 미끄러지더니 그대로 물 속으로 퐁당 빠져버렸다.

그리고 완전히 뒤집어져버린 매트가 다시 물 위로 솟구치던 세나의 머리를 퉁하고 때리는 것으로 마무리.

"이야···"

이게 프로 스트리머의 몸개그력인가?

거의 뭐 미리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일련의 수순들이 딱딱 맞아떨어지는데 웃기기보다는 감탄부터 나오더라.

"으··· 씨···"

커다란 것에 머리를 맞긴 했지만 안에 든 건 바람 뿐이라서 아플 리는 없건만 머리 위를 덮어버린 매트를 팍 밀어내며 물 위로 솟구친 세나가 짜증스러운 표정과 함께 본인의 정수리를 어루만졌다.

그러더니 내쪽을 힐끔거리면서 은근히 내 눈치를 살피는 게ㅡ

'쪽팔린가 보네.'

하긴 그럴만도 하지.

"···괜찮아 누나? 힘들면 도와줄까?"

"돼, 됐거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큰맘먹고 내민 손을 단호하게 거절하더라.

물론, 그런 세나의 태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비슷한 광경이 몇 번 반복되더니만 결국 혼자서는 무리라는 걸 깨달은 세나가 홀딱 젖은 고양이같은 꼴을 한채 내게 도움을 청해왔으니까.

"야···"

"혼자 하려니까 잘 안 되지?"

"응···"

"으휴··· 그러니까 아까 도와준다고 했을 때 순순히 받아들이지. 그럼 물도 덜 먹었을텐데."

할 말이 없었는지 애꿏은 입술만 삐죽거리던 세나가 도와줄거면 얼른 도와주기나 하라고 날 재촉했고, 그에 그녀 쪽으로 다가가 매트부터 움켜쥐었다.

"그··· 일단 저기 좀 올라가봐."

그리고는 세나를 수영장 끄트머리에 걸터앉게 만든 뒤 그 앞까지 매트를 끌고가서 그 밑을 내 팔로 단단히 떠받쳤다.

"자, 이제 올라와 봐."

"지금?"

"어, 그렇다고 너무 서두르지는 말고."

"오케이."

마지막에 덧붙인 당부가 효과가 있었는지 세나가 물 속에 담궈놓고 있던 다리를 끄집어내 조심스레 매트 위에다가 올렸다.

왼쪽부터 시작해서 양 다리를 모두 매트 위에다가 올려놓은 세나가 잽싸게 매트 위로 옮겨탔고ㅡ

"돼, 됐다···!"

그렇게 세나의 소원을 성취시켜주고 난 후에야 수영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세나야 뭐··· 수영장 한가운데에 둥둥 뜬채 본인만의 로망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었고.

'뭐,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안 덥나?

더울텐데···

"누나 안 더워?"

"엉."

저러다가 더위라도 먹으면 어쩌나 싶어서 물어봤는데 괜찮으시단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그늘 안에만 있어."

"오야."

저러다가 깜빡 졸아가지고 그대로 물 속으로 다이빙하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이 머릿속으로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일단은 내버려두기로 했다.

로망을 채우는 것도 잠깐이지 천성적으로 스릴 중독자인 세나가 손에 휴대폰조차 없는 상황에서 오래 버틸 수 있을 리 없으니까.

아마 저대로 5분 정도 있다가 지루해서 기어나오지 않을까.

"집 안에 있을테니까 뭔 일 생기면 불러."

"니예에에···"

그래도 혹시 몰라서 그리 덧붙여준 다음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꽤나 분주한 현장이 날 반겨주었다.

가영하고 지나가 서로 마주보고 앉아있길래 내가 없는 동안 2차전이라도 벌어진건가 했는데 알고보니까 저녁에 하기로 한 바베큐를 준비하고 있더라.

"왔어?"

"뭐야, 이럴 거면 나도 부르지."

"뭘··· 두 명이면 충분하지. 그리고··· 엄마랑 할 말도 좀 있었고."

그리 말하는 걸 보니까 꼭 저녁 준비만 한 것 같지는 않긴 했지만.

"응? 유한이 왔니?"

손에 든 휴대폰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던 가영이 고개를 들어올려 날 맞이한 건 그런 식으로 지나와 대화를 주고받고 있던 와중이었다.

"세나는 어디갔니?"

"세나 누나라면 수영장에 있어요."

"아···"

가영이 알만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쓴웃음을 짓고 있는 동안 살짝 뒤로 밀려났던 지나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걔는 보면 진짜··· 집밖에도 잘 안 나가는 주제에 쓸데없이 이상한 로망같은게 있더라?"

"뭐, 어때 취향이라잖아. 존중해줘야지."

"으휴··· 나중에 봐라. 백퍼 피부 따갑다고 찡찡댈걸."

"그럼 선크림같은 거라도 좀 가져다 주는 게 좋으려나?"

"냅둬. 걔가 뭐 세살먹은 꼬맹이냐? 네가 하나하나 다 챙겨주게?"

그러니까 그런 소리는 그만하고 여기 앉으라는 뜻으로 자기 옆자리를 팡팡 두들겨대길래 쓰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서 흠뻑까지는 아니어도 축축하게 젖은 옷 상태를 과시해보였다.

"뭐야, 샤워하고 나갔던 거 아니었어?"

"아, 세나 누나 좀 도와주다보니까···"

"그래? 그럼 일단 옷부터 갈아입자. 감기 걸리겠다."

"그래, 유한아.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오렴."

둘다 그렇게 말하길래 잽싸게 내 짐을 보관해둔 방으로 가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니까ㅡ

'흠···?'

한계까지 늘어난 고무줄마냥 팽팽하기 긴장감이 가영과 지나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시간을 조금 뒤로 되돌려 유한과 세나가 수영장 안에서 한창 전쟁 중일 때 지나는 막 뒷정리를 끝마치고 별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맞이한 건 홀로 별장 안을 지키고 있던 가영이었고.

받은 게 있는만큼 돌려주기 위해 그런 행동을 벌이기는 했지만 설마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가영과 딱 마주쳐버릴 거라고는 생각치 못했던 걸까.

막 현관을 넘으려던 지나의 몸이 그대로 멈칫하며 그녀치고는 적잖은 동요를 내보였다.

물론, 가영의 상태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녀가 별장 안에 홀로 남아있길 택했던 것도 자괴감 때문이었으니까.

보란듯이 행해진 도발 때문에 울컥해서 일단 저질러버리긴 했다.

저질러버리긴 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감정이 가시고 나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와서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해버린 건 다름아닌 자괴감이라는 감정이었으니까.

다른 이도 아니고 딸을 질투해서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에서 오는 자괴감.

별장 안에 홀로 남아있던 가영은 그 감정에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중이었고,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지나가 들어온 것이었다.

서로 상황이 그렇다보니 둘 사이로 흐르는 분위기가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고, 덕분에 둘 사이로 자연스레 내려앉게된 건 어색하고도 무거운 침묵이었다.

그걸 어떻게든 해야만하는데 그렇다고 먼저 나서기는 또 그래서 서로 헛기침만 해대면서 상대방의 눈치만 열심히 살피고 있던 와중이었을 것이다.

"흠흠··· 그··· 유한이는?"

둘 중에 먼저 나서서 단단한 벽과 같았던 침묵을 깨뜨리길 시도한 건 다름아닌 지나였다.

그 사실에 가영은 안도와 민망함을 동시에 느꼈다.

안도는 어깨가 짓눌리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무거웠던 침묵이 드디어 깨졌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민망함은 어른이 되서 먼저 나서지는 못할 망정 그 수습을 딸인 지나한테 떠넘겼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침묵은 깨졌지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던져진 지나의 물음에 답을 하는 가영의 목소리나 표정은 여전히 어색하기만 했다.

"유한이라면 뒷마당에··· 있을 거야."

"···그래?

"응···"

어쨌든 궁금해하던 걸 알아냈으니 이제 필시 유한을 보러 뒷마당으로 향할테지.

그럼 자신도 한숨 돌릴 수 있을 터.

그래서 살짝이지만 옆으로 비켜주기까지 했는데··· 정작 지나의 입을 뚫고 튀어나온 건 생각치도 못했던 말이었다.

"···잘 됐네."

혼란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대체 뭐가 잘 됐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면··· 잠깐 둘이서 이야기 좀 할까 엄마?"

"그, 슬슬 저녁 준비도··· 해야 되는데···"

"내가 옆에서 거들어드릴테니까 이야기 좀 해요."

차마 그 말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지나는 단호하고도 진중한 표정과 목소리를 하고 있었으니까.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한국을 떠나기 전처럼 경고같은 거라도 할 생각인 걸까.

그런 거라면 자신도 할 말이 있었다.

'아무리 무인도라도 그렇지···'

주위에 남들의 시선이 없다고 해서 그렇게 막 아무데서나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되는 거니까.

틀림없이 그런 식의 대화가 오고 갈거라고 생각해서 말도 거기에 어울리는 것들 위주로 골라놓았었는데 말이다.

업체 측에서 챙겨준 바베큐 재료를 가운데다가 놓고 마주 앉은 순간,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쪽의 예상을 깨뜨리는 발언이 지나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엄마는 유한이가 우리 셋 중에서 누굴 선택할 거라고 생각해?"

그럴 리가 없건만 질문 자체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던져졌다.

그래서 꼭 부담갖지 말고 편하게 대답해보라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그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이미 말문이 턱하고 막혀버린지 오래였으니까.

목소리가 나오려고 하질 않는데 어떻게 답을 한단 말인가.

"엄마? 아니면 나? 그것도 아니면 세나려나?"

뿐만아니라 확신같은 것도 없었다.

확신을 갖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했으니까.

누구와는 다르게 적극적이기도 했고.

그래서 답을 하지 못했던 것이었는데··· 애초에 지나도 답을 바라고서 질문을 했던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까부터 이쪽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데 저런 식으로 개의치 않아하는 표정을 지어보일 이유가 없으니까.

"내가 볼 때는 말이야···"

유한의 선택을 받게되는 걸 틀림없이 자신이 될 거라고 선언이라도 할 생각인 걸까.

자신과는 다르게 적극적이고 망설임이 없는 지나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ㅡ

"못 고를 것 같아."

"···뭐?"

"못 고를 것 같다고."

그리 말하는 지나의 목소리에는 기이할 정도로 강한 확신이 깃들어있어서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그야··· 유한이는 욕심이 많으니까."

그러니 결국에는 망설일 수밖에 없다고 지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뭐··· 결국에는 흐지부지 되겠지."

"···"

"그런데··· 내가 바라는 결말은 그런 게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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